# 46
“아,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그래, 수고했네.”
딸깍∼!
수화기 내려놓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해외영업부가 있는 9층은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와아아아아아! 만세! 만세! 천지건설(주) 만세!”
“우와아아아! 해외영업부 만세! 만세!”
사장과 임원들까지 두 손 들어 만세를 했다.
이 공사는 천지건설(주)이 창립된 이후 한 곳에서 수주한 공사 중 최대 규모이다.
댐과 수력발전소, 그리고 그곳까지의 도로, 광산 개발, 제련 공장, 운반을 위한 도로, 항만 건설을 통틀어 보면 실로 어마어마한 공사이다.
나중에 본계약을 체결할 때 신형섭 사장이 사인한 계약서에는 총액이 57억 달러(6조 원)라 쓰여 있다.
MOU를 체결한 이후 협의 과정에서 부가 공사가 계속해서 늘어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하! 하하하하!”
“후후, 후후후!”
“미스터 킴, 맥주 가져왔어. 파티해, 우리.”
“그래, 마투바. 마투바도 한잔해.”
“당연한 일이잖아. 그럼 나만 빼놓고 마시려 했어?”
“물론 아니지. 안주는 아까 그거로 했지?”
“그래. 근데 그거 어디서 났어?”
“그건 묻지 마.”
“가만, 이거 뭔 냄새지? 설마 삼겹살?”
이춘만 과장은 코를 벌름거리고 있었다.
“냄새 한번 기막히게 맡으시는군요.”
셋은 밤 깊도록 삼겹살에 소주 파티를 했다. 그러는 동안 현수는 컴퍼터블 템퍼러쳐 마법을 구현시켰다.
“지사장님, 며칠 휴가를 내주실 수 있는지요?”
“휴가……? 뭘 그렇게 정색을 하고 물어? 그냥 가고 싶으면 언제든 가. 내가 언제 뭐라고 했나?”
“아뇨. 안 그러셨죠. 하지만 지사장님이시니까 허락을 받아야죠.”
“됐어. 우리 사이에 무슨……. 그냥 가고 싶을 때 가.”
“조금 오래 걸릴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본사에서 사람들이 오려면 아무리 빨라도 열흘 이상은 걸릴 거야. 준비할 게 많으니까. 그러니 열흘 안에만 오면 되지. 왜, 그 정도론 부족해?”
“아, 아닙니다. 충분합니다. 가급적 그 안에 오겠습니다.”
“그런데 어딜 가려고?”
“여긴 아프리카가 아닙니까? 동물의 왕국! 그러니 사자 구경하러 한번 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자? 사자를 보려면 동북부 국경의 사바나 기후대까지 가야 하는데?”
“랜드로바, 튼튼하잖습니까?”
현수가 싱긋 미소 짓자 이 과장 또한 웃는다.
“언제나 조심해. 총도 꼭 가지고 가고.”
“물론입니다.”
“근데 언제 가려고?”
“준비할 거 준비되면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려 합니다.”
“그래, 맘대로 해.”
“네, 감사합니다.”
어젯밤 현수는 이 과장과 더불어 술을 마셨다.
늦은 시각이 되자 둘 다 곯아떨어졌다. 현수는 자신의 방에서 가장 먼 곳에 둘을 눕혀 놓았다. 그리곤 깊고 깊은 잠을 자는 딥 슬립(Deep Sleep) 마법을 걸었다.
현수는 오랜만에 앱솔루트 배리어로 결계를 치고 타임 딜레이 마법을 구현시켰다.
현실 시간과의 시간 비율이 1대 180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그리곤 그 안에 마나 집적진을 꺼내놓고 마나심법을 운용했다.
이춘만 과장은 열 시간 정도를 잤다. 현수의 시간으론 75일이 흐른 것이다.
이곳의 마나 농도는 서울에 비해 다섯 배 이상 진하다. 하여 마나 집적진을 그려놓고 그 위에 앉아 심법을 수련하니 서울과 달리 급속도로 마나가 충전되었다.
뿐만이 아니다.
전능의 팔찌에 박힌 검은 마나석들의 색깔이 점점 짙어졌다.
드디어 완전한 검은색이 되었기에 이제 아르센 대륙으로 언제든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킨샤사는 너무 덥다.
아르센 대륙을 떠난 지 한 달이 넘었다. 하나 다시 돌아가면 그곳은 1월 31일 아니면 2월 1일이다.
아직 겨울이라는 뜻이다.
아르센 대륙의 상쾌하고 시원한 공기는 이곳의 에어컨으론 구현해 낼 수 없다. 공기청정기가 있어도 불가능하다.
이는 마나 농도 때문이다. 마법사가 된 이후 마나 친화력이 높아졌기에 현수가 아르센 쪽을 동경하게 된 것이다.
영국으로 출장 갔다는 강연희 대리의 핸드폰으로 연락을 취했다. 그런데 해외로밍을 하지 않았는지 늘 꺼져 있다.
아쉬움이 없기에 훌쩍 떠나고픈 마음이 든 것이다.
2월 13일 수요일, 킨샤사 외곽으로 나온 현수는 전능의 팔찌에 마나를 불어넣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트랜스퍼 디멘션! 나를 올테른으로!”
스르르르르르릉∼!
현수의 신형이 부드러운 황금빛에 감싸이는가 싶더니 이내 사라졌다.
* * *
“후와아! 역시!”
예전에 좌표를 확인했던 올테른 외곽에 나타난 현수는 깊은 숨을 쉬었다. 폐부가 서늘해지는 것이 너무도 시원하다.
아공간을 뒤져 옷을 갈아입었다. 평범한 로브이다.
그리곤 케이상단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더듬었다. 한 달 동안 사라졌다 나타나는 것인데 이전과 너무 달라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제부턴 천지건설(주)의 신입사원이 아니다. 누구나 경외하는 마법사 같이 행동을 해야 한다.
지구에선 사회적 약자지만 이곳에선 넘보기 힘든 강자이다. 따라서 강자다운 포스나 아우라를 뿌려야 한다.
그러려면 눈빛이나 말투부터 달라져야 한다.
그렇기에 알론을 만나면 어찌할 것인지부터 생각해 두었다.
“앗, 하인스 대마법사님이 아니십니까?”
장부에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던 알론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한다.
“오랜만이네. 잘 있었는가?”
“네. 근데 어딜 다녀오셨습니까?”
“나? 이실리프 마탑과 연락을 취한다 하지 않았는가?”
“아! 그러셨군요. 근데 마법사님.”
“왜?”
“잠시만 저를…….”
현수를 으슥한 곳으로 인도한 알론은 주위를 살피곤 나직이 속삭였다. 그간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한 것이다.
“으음, 나 때문에 자네들이 고생을 했군.”
“아이고, 아닙니다. 고생이라니요? 저희는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어디로 가실 겁니까?”
알론을 조사했던 세 나라에서 다시 사람을 보낼 것이다. 다만 조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장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오기는 꼭 온다. 이곳에서 이실리프 마법사의 종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들이 온다면 분명 현수를 적대할 것이다.
귀찮은 일이 싫다면 그전에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기에 물은 것이다.
“여기서 배를 타면 아드리안 공국까지 갈 수 있다 하지 않았나? 그러니 배를 탈 것이네.”
“근데 저쪽 상황을 모르니… 오늘은 여관에 계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가서 저쪽 소식을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그나저나 여기 음식은 맛이 어때?”
“세실리아 여관으로 모시겠습니다. 올테른에서 가장 요리를 잘하는 집이니 마음에 쏙 드실 겁니다.”
“그래?”
“네, 이쪽으로.”
알베제 마을을 떠나 이곳까지 오는 동안 알론으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어들었었다. 수련만 하느라 세상물정을 잘 모른다는 말을 하였더니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그러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상당히 많은 걸 알려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세실리아 여관도 들었던 이름이다.
헤론이라는 생선 요리를 하는데 그야말로 일품이라 혀에서 살살 녹는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슬럼이라는 술을 곁들이면 환상적인 맛을 낸다고 했다.
세실리아 여관까지 가는 동안 현수는 각국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자네 생각에 며칠 동안은 여유가 있다는 뜻이지?”
“네,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흐음, 좋아! 그렇다면 내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내도록 해.”
“네에? 어쩌시려고요? 그럼 위험해지실 수도 있습니다.”
“위험은 무슨. 내가 누군지 잊었나?”
“아, 참! 죄송합니다. 제가 깜박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오우거를 주문만으로 죽이는 위대한 마법사에게 감히 위험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죄스럽다는 듯 알론이 바닥에 엎드린다.
“아냐. 그건 괜찮아. 그러니 일어서게.”
“그럼 이실리프 마탑의 하인스 킴 대마법사님께서 다시 나타나셨다는 걸로 소문을 낼까요?”
“그래,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네.”
“알겠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참, 자네 상단에 만드라고라가 있나?”
“네, 조금 있는데 필요하십니까?”
“그래, 있는 대로 가져다주게. 상품으로 골라서.”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대화를 하는 동안 세실리아 여관에 당도했다.
“어서 오세요. 어머! 케이상단 알론 서기님 아니십니까?”
“오오! 세실리아, 그동안 잘 있었어?”
“네, 요즘엔 좀 뜸하셨는데 오늘은 웬일이세요?”
“조금 바빴어. 근데 방 있지?”
“여기서 주무시게요? 집 있으시잖아요.”
“내가 잘 건 아니고 여기 이 손님이 묵으실 방이야. 최고로 좋은 방 하나 부탁해.”
“네에, 어느 분의 부탁이시라고요. 3층 특실을 준비해 드릴게요. 근데 특실이라 조금 비싸다는 거 아시죠?”
“알아. 하루에 10실버!”
“헤에, 하루도 머문 적이 없으시면서 어찌 그렇게 잘 아신대요?”
세실리아라는 여인은 이제 갓 스무 살 된 처녀이다.
키는 1m 65㎝ 정도 되고 몸무게는 52㎏ 정도 되는 건강해 보이는 아가씨다. 밝은 금발 아가씨인데 몸매를 자랑하려는지 몸에 딱 붙는 의복을 입고 있다.
아주 예쁘지는 않지만 건강한 매력이 있어 절로 웃음이 나게 하는 아가씨라 할 수 있다.
“손님, 아직 식사 전이죠? 뭐로 드릴까요?”
현수가 대답하기 전에 알론이 먼저 나선다.
“뭐긴, 입에서 살살 녹는 헤론찜 1인분하고,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슬럼 한 병이지.”
“같이 안 드셔요?”
세실리아의 물음에 알론은 그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함이 못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일하러 가야 해. 그러니 잘 모셔. 우리 케이상단의 귀빈이시니까.”
현수는 알론이 자신과의 인연을 길게 갖고 싶어 호의를 베푼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여 내버려 두었다.
오는 동안 겪어보니 장사를 해서 그런지 약간 약삭빠르다는 것을 제외하곤 괜찮은 사내였다.
“갔다가 올 거지? 혼자 마시는 건 좀 그런데…….”
“아이고, 당연하지요. 후딱 가서 지부장님께 보고하고 횡하니 도로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조금씩 드십시오. 제가 와서 대작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그러게.”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세실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이는 분명 현수가 어려 보인다.
걸치고 있는 의복을 보면 귀족은 아니다. 평범한 피풍을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알베제 마을을 떠나 이곳까지 오는 동안 여러 번 눈이 왔다.
우비나 우산을 꺼내서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랬다간 알론의 집요한 질문 공세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심코 볼펜을 꺼내서 쓴 적이 있다. 결국 그 볼펜은 현재 알론의 품속에 고이 모셔져 있다.
잉크를 찍어서 쓰지 않아도 되며, 아주 부드럽게 써지는 신기한 펜이다. 알론은 이런 걸 만들어주면 자신이 팔아주겠다고 합작을 요구했다.
이후 지구에서 가져온 물건은 어느 것 하나도 꺼내 쓰지 않았다. 아니, 꺼내 쓰지 못했다.
덕분에 이곳 음식을 알게 되었다. 냄새가 나고 거칠며 조금 질기다는 단점이 있다. 그런대로 먹을 만은 했다.
어쨌거나 상단 서기인 알론은 존댓말을 쓰고, 현수는 편하게 말하는 듯하다. 하여 세실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현수가 케이상단의 큰 거래에 관계되어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거래 당사자는 아니지만 계약의 열쇠를 쥐었다면 알론의 태도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상인이라면 무릇 거래 성사를 위해 간이며 쓸개까지 언제든 빼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기 때문이다.
장사를 하는 동안 나름대로 사람들을 파악하였기에 세실리아의 짐작은 거의 대부분 맞았다.
그런데 오늘은 틀렸다.
알론이 존댓말을 쓰는 것은 현수를 진짜로 존경하기 때문이다. 나이를 떠나 숲의 제왕 오우거를 한 방에 눕히는 마법사를 어찌 존경하지 않겠는가!
보아하니 이제 겨우 스물을 넘긴 듯하다. 그만한 나이에 너무 높은 성취이기에 존경하는 것이다.
반면 현수가 말을 놓는 것은 알론이 극구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해서이다.
알론이 아는 현수의 이름은 하인스 킴이다.
성이 있다면 귀족이다. 설사 몰락한 가문이라 할지라도 평민이 귀족에게 함부로 대하다가 걸리면 최하가 중상이다.
가끔은 목숨까지 잃는다.
그렇기에 꼭 말을 내려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말을 놓은 것이다.
“자아, 입에서 살살 녹는 헤론찜이 나왔습니다.”
쿵∼!
세실리아가 쟁반에서 접시를 내려놓는데 소리가 난다.
보아하니 두어 사람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푸짐하다. 무거우니 소리가 날 수밖에.
“그리고 여기, 슬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