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국토 거의 전체가 산지입니다. 중앙부는 사막이 있는데 침사는 물론이고 유사까지 있어 목숨을 잃기 싫으면 반드시 피해야 하는 곳입니다.”
“호수도 있나?”
“네, 미판테 왕국의 호수를 절대 만만히 보시면 안 됩니다. 특히 라니야라는 물고기와 얀디루라는 물고기가 있는 호수는 조심하셔야 합니다.”
“라니야? 얀디루?”
“라니야는 오우거도 5분이면 뜯어 먹을 식인 물고기입니다. 크기는 작지만 이빨이 몹시 날카롭습니다.”
“얀디루는?”
“그건 가늘고 긴 물고기로 남녀 구분 없이 사람의 생식기를 파고들어 가는 놈입니다. 일단 들어가면 갈고리를 펼쳐 자리를 잡고는 좋아하는 부위를 야금야금 뜯어 먹습니다.”
“으으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놈은 한번 들어가면 절대 뺄 수 없으며 죽을 때까지 엄청난 고통을 선사하는 아주 악질적인 놈이지요.”
“으으음!”
현수는 브라질의 아마존에 산다는 피라니아(Piranha)와 칸디루(Candiru)를 떠올렸다. 그리곤 이맛살을 찌푸렸다.
13장 세실리아 선술집에서
“미판테 왕국을 지날 땐 이에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또 한 가지 난관이 있는데 그건 라수스 협곡을 주의하시라는 겁니다.”
“라수스 협곡?”
“네, 여길 지나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피할 수 없다면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거기 뭐가 있기에?”
“거긴 드래고니안들이 있습니다.”
“인간과 드래곤의 혼혈?”
“그렇습니다. 라수스 협곡엔 레드 드래곤이 있습니다. 이놈이 인간 처녀들을 납치하여 여러 자식들을 낳았는데 드래곤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드래고니안이 태어났습니다.”
“흐으음!”
현수가 흥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칙적으로 포유류인 인간과 파충류에 속하는 드래곤은 혼혈을 둘 수 없다.
이종끼리는 유전자의 숫자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드래고니안이 태어날 수 있는 것은 폴리모프 마법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이 마법이 시전되어 인간의 형상을 갖추게 되면 혼혈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드래고니안은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라 불리기도 한다. 드래곤의 피를 받아 태어났지만 드래곤들은 자신의 무리에 끼워주지 않는다. 오히려 모순된 존재라 여겨 내침을 당한다.
인간들 역시 드래고니안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다. 대부분 성격이 포악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알론이 말하는 대로 라수스 협곡엔 드래고니안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협곡을 지나는 인간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드래곤의 피를 이어받았기에 마법에 능통하여 웬만한 사람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각별한 주의를 촉구한 것이다.
“좋아, 그 라수스 협곡이란 것은 어디에 있지?”
위험한 곳을 굳이 지날 이유가 무어 있겠는가! 하여 지도에서 어느 부분인지를 물은 것이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사실상 미판테 왕국을 동서로 분할하고 있습니다.”
“으으음!”
알론의 말대로라면 라수스 협곡은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데 그 길이가 거의 1,000㎞가 넘는다. 이를 피하려면 남동쪽으로 한참을 내려간 뒤 다시 북서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될 수 있으면 라수스 협곡은 피하십시오. 드래고니안도 문제지만 레드 드래곤 라이세뮤리안도 몹시 포악합니다.”
“알겠네. 정보 고맙네.”
“고맙긴요. 그리고 이 지도는 마법사님께 드리려고 가져온 겁니다. 갖고 가십시오.”
“고맙네.”
현수는 거절치 않고 지도를 챙겼다. 이 세상에 와서 지도 한 장 없이 다닐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알론과 말링코는 오늘 안에 반드시 처리해야 할 상단의 잔무가 있다면서 양해를 구하고 갔다. 물론 내일 오전에 꼭 들러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둘이 나간 후 주변을 맴돌던 세실리아가 다가온다. 현수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자신을 위해 피어슨과 얼굴을 붉혔다.
이를 자신에게 호감을 가졌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자신도 현수에게 왠지 마음이 간다. 하여 친밀감을 상승시키려 다가온 것이다.
현수는 세실리아의 접근이 달갑지 않다. 하여 방으로 올라가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이다.
우르르르! 우당탕탕!
“모두들 꼼짝 마!”
창과 칼을 든 병사들이 와르르 쏟아지듯 밀려들었다. 잠시 후, 병사들 사이로 기사들이 들어선다.
여섯 명이다. 모두 풀 플레이트 갑옷을 걸쳤는데 가슴엔 붉은 장미가 그려져 있다. 올테른의 영주이자 항구도시의 총독인 에릭 마이스진 백작 가문의 문장이다.
“하인스가 어떤 놈이냐? 나와라!”
실내의 모든 시선이 현수에게 쏠렸다. 하나 현수는 부름에 응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듯 등을 돌렸다.
“하인스라는 싸가지없는 놈을 찾는다. 셋 셀 때까지 나서면 손목 하나를 베겠지만 셋을 센 이후에 나오면 두 다리를 베어낸다. 나와라!”
“하나, 두울, 세엣!”
“흠! 안 나온다 이거지?”
기사는 자신의 말이 씹혔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나직이 읊조렸다.
“좋아, 너, 이 앞으로 나와라.”
기사가 손가락을 지목한 사람은 마흔 살쯤 된 사내이다.
“네, 기사 나리.”
“오늘 언제부터 이 술집에 있었나?”
“아, 아까부터 있었습죠.”
“그러니까 아까 언제냐고?”
“하, 한 세 시간쯤… 아니, 네 시간인가? 아닙니다. 한 다섯 시간쯤 되었…….”
짝∼!
우당탕탕!
뺨따귀를 맞은 사내는 술집 구석으로 나뒹굴었다.
“쓸모없는 놈! 너, 너, 앞으로 나와!”
이번에 지목된 이는 쉰 살쯤 된 초로의 인물이다.
“네? 네에.”
“좋아, 행동이 빠르군.”
“가, 감사합니다.”
“넌 오늘 이 술집에 언제 왔나? 아니, 아까 피어슨 공자님이 이 술집에 오셨을 때 있었느냐?”
“네. 그, 그렇습니다요.”
“좋아, 그럼 어떤 놈이 하인스라는 건방진 마법사인지 알겠군. 놈이 누군지 지목해라.”
“네에? 아, 네에.”
“어서!”
기사의 다그침에 사내는 할 수 없이 현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때 현수는 막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발을 디뎠을 때이다.
“어이! 거기! 멈춰라!”
기사가 소리쳤지만 현수는 이를 들어줄 이유가 없다. 그렇기에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이, 거기! 계단 올라가는 놈! 멈추지 못해!”
뚜벅! 뚜벅!
“야, 이 빌어먹을 놈아! 당장 멈추라고 했다!”
뚜벅! 뚜벅!
“이, 이런 개 같은……!”
기사는 다들 보고 있는 중에 무시당했기에 분노로 부들부들 떨었다.
스르르릉∼!
애검을 뽑아 든 기사는 다짜고짜 현수에게 쇄도했다.
텅, 텅, 텅, 텅……!
육중한 풀 플레이트 갑옷을 입어 발을 내디딜 때마다 소리가 난다.
“야아아앗∼!”
쉐에에엑! 부우웅!
퍼억∼!
“케엑!”
우당탕탕! 와장창∼!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기사가 현수의 뒤로 쏜살처럼 달려들었다. 오랜 수련의 덕인지 갑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마치 맨몸처럼 빨랐다.
기사는 현수의 등이 가까워지자 뽑아 든 검을 수평으로 눕혀 휘둘렀다. 이럴 경우 대부분 수직으로 내려긋는 게 보통이다.
그럼에도 허를 찔러 수평으로 그은 것이다.
옆으로 피하려다간 꼼짝없이 목 없는 시체가 될 판이다.
그 순간 현수의 신형이 빙글 돌았다. 그리곤 그의 주먹이 앞으로 뻗어나왔다. 주먹으로 시전하는 마법 헤비 펀치(Heavy Punch)가 시전된 것이다.
2써클 마법인 이것은 멀린의 독창 마법이다.
이것에 당하면 헤비급 권투선수의 카운터펀치에 맞은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 최하가 기절이다. 재수없으면 뼈가 부러지거나 아예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현수를 공격했던 기사는 단 한 방에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고, 그와 동시에 기절해 버렸다.
기사의 갑옷 전면, 가슴 부분이 주먹 모양으로 함몰되어 있다. 검이나 창, 또는 화살로부터 기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갑옷은 특히 가슴 부위가 단단하다.
심장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부분이 심하게 우그러들어 있다.
“헉! 이, 이건……? 이봐, 데이몬! 데이몬! 정신 차려!”
동료가 당하는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다가온 기사는 찌그러진 갑옷을 보곤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주먹 모양으로 갑옷을 찌그러뜨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데이몬이라 불린 기사의 입에서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나온다. 거품 섞인 선혈이다.
경험상 허파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음을 알아차렸다. 그렇기에 다급성을 토한 것이다.
그 순간 현수의 싸늘한 음성이 주점으로 퍼져 나갔다.
“내게 용무있는 자, 또 있는가?”
“……!”
기사는 분명 여섯 명이 왔다. 이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자가 기절한 데이몬이다.
그런 그가 단 한 방에 뻗어버렸다. 기사들은 직감적으로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여 잠시 주춤거렸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병사들 사이에서 피어슨이 등장한다.
“뭐해, 빨리 저놈을 공격하지 않고! 빨리 공격해!”
“네!”
주군의 하나뿐인 아들이다. 주군에게 문제가 생기면 차기 주인이 됨을 의미한다.
그런 그가 명령을 내렸다. 그렇기에 두려움을 무릅쓰고 기사들은 일제히 검을 뽑았다.
“피어슨이라고 했지? 네놈은 스스로 무덤은 팠다는 걸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곤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도 처절하게 반성하게 될 것이다.”
현수는 올랐던 계단을 도로 내려왔다.
그리곤 기사들과 마주섰다.
“너희들은 주인이 잘못된 길로 갈 때 이를 바로잡아 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죽을죄는 아니니 가벼운 징계로 그칠 것이다. 덤벼라.”
“야아아앗!”
“차이이잇!”
“야압!”
다섯 기사는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상대가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순간 현수의 다섯 손가락이 활짝 펴졌다.
“에어로 붐!”
펑! 퍼엉! 퍼퍼펑∼!
“헉! 아악! 끄윽! 케액! 크윽!”
우당탕탕! 와장창! 챙그랑! 우당탕탕! 챙그랑!
압축된 바람이 폭발적으로 체적을 늘리는 범위 안에 있던 다섯 기사는 하나같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육중한 갑옷을 걸쳤음에도 모두가 공중에 붕 떠서 날아갔다.
“너! 피어슨! 이리 와!”
“…병사들은 무엇들 하느냐? 어서 저 불한당 같은 놈을 공격해라! 어서 공격해! 공격하란 말이닷!”
피어슨은 현수가 천천히 다가서자 뒤로 물러서며 발악하듯 명령을 내렸다. 이에 현수는 병사들을 둘러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선다.
방금 전 무참하게 깨진 여섯 명의 기사와 자신들 전원이 맞붙으면 백전백패한다. 그런 기사들을 한 방에 깼다.
그런 존재와 싸우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병사들도 사람이다. 그리고 사고할 능력이 있다.
그렇기에 공포 어린 시선으로 물러선 것이다.
“무기를 내려놓는 병사들은 공격하지 않는다.”
챙그랑! 땡그랑! 우당탕탕!
현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병사 전원이 들고 있던 병장기를 내던졌다. 그리곤 일제히 손을 든다.
“좋아, 병사들은 전부 뒤로 물러선다.”
척∼! 척∼!
마치 제식훈련이라도 받은 듯 그야말로 일사불란하게 두 발짝씩 뒤로 물러선다.
“세 발짝 더!”
척척척∼!
“좋아! 그리고 너 피어슨! 너는 이 앞으로 와!”
“시, 싫어!”
“싫어? 넌 내 명령을 거부할 자격이 없어. 그러니 지금 즉시 이쪽으로 온다. 실시!”
“싫어!”
피어슨은 몸을 돌려 도주하려 했다. 그런데 어느새 현수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이잇! 허억! 언제……?”
털썩∼!
또다시 몸을 돌려 도주하려던 피어슨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현수가 또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놀랐기에 피어슨은 털썩 주저앉았다. 그 순간 현수가 마법을 시전했다.
“퍼머넌트 플라토닉 커스(Permanent Platonic Curse)!”
멀린의 4써클 마법 퍼머넌트 플라토닉 커스는 쉽게 설명하자면 영구 거세 마법이다.
아주 오래전, 멀린이 마법의 완성을 위해 바세른 산맥으로 갈 때 지나치던 자작가의 영지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평민이나 농노의 여인들을 마구 유린했다. 일찌감치 사라져 문헌상에만 남아 있던 초야권13)도 100% 실시했던 엽기적인 인물이다.
이에 격분한 멀린은 이런 자들에게 가장 강력한 징벌이 될 영구적 발기 불능 마법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불과 사흘 만에 이 마법을 창조했다.
퍼머넌트 플라토닉 커스에 당하면 어떤 방법으로도 생식 능력을 되살릴 수 없다. 신성력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하다.
육체가 아닌 영혼에 거는 마법이기 때문이다. 만일 사악한 기운이 담겨 있다면 신성력에 의해 풀어질 것이다. 그런데 멀린의 마법은 결코 사악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제 피어슨은 후손을 볼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어쨌거나 이제 꼼짝없이 죽는다 싶어 눈을 질끈 감았던 피어슨은 자신의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자 실눈을 떴다.
이때 현수의 음성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