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1장 엘리터 사냥
“다녀오셨어요? 백작님 성 좋지요?”
“응? 그럼, 좋았어.”
세실리아는 마치 외출했다 돌아온 남편을 맞이하듯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약간 그늘져 보인다.
현수가 백작성에 있는 동안 발가벗은 어부에 의해 몹쓸 짓을 당할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각 현재 그 어부는 세실리아의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있는 중이다.
“여기 오래 계시기로 했어요?”
“응……? 그건 왜?”
“그냥요. 조금 오래 머무셨으면 좋겠어요.”
“글쎄… 못 그럴 거 같은데?”
“왜요……?”
세실리아는 금방 처연한 표정을 짓는다.
“세실리아, 난 아드리안 공국으로 가야 해.”
“알아요. 이실리프 마탑의 대마법사님이라면서요? 그러니 그러셔야죠. 근데 거기서 영원히 살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세실리아는 정치나 권력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렇기에 이실리프라는 이름의 무게를 전혀 모른다. 하여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건 그렇지.”
“그럼 나중에 여기서 사셔도 되는 거 아니에요?”
“세실리아, 난 내일 아침에 여길 떠날 거야. 그리고 언제 내가 해야 할 일이 끝날지 몰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
“아까 그 어부는 어때?”
“네에……? 그놈은 왜요?”
“그 녀석이 세실리아를 많이 좋아하고, 잘 아껴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치이, 그놈이 조금 전에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나 알고 하는 말이에요? 날 막 어쩌려고 덮쳤단 말이에요. 그것도 발가벗고……. 어휴, 무서워서 죽을 뻔했어요. 짐승 같이 씩씩거렸단 말이에요.”
“그게 무슨……?”
세실리아의 설명은 이어졌다. 현수는 단순 무식한 어부의 행위가 어이없었다.
이처럼 분별력이 없다면 살아가는 데 문제가 있다.
가족을 지키는 것은 고사하고 본인의 목숨조차 어찌될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어부는 세실리아의 짝으로 불합격이다.
현수는 어찌할까 싶은 생각을 했다.
“세실리아, 네게 주고 싶은 게 있어. 잠시만 기다려 봐.”
재잘대던 세실리아가 입을 다물었다. 대체 뭘 주려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현수가 건넨 것은 화려한 꽃무늬가 그려진 원피스이다.
아르센 대륙에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입고 있던 옷이 상당히 낡아 보여 주는 것이다.
“와아! 정말… 어떻게 이렇게 예쁜 옷을……. 정말 예뻐요.”
“또 있어. 잠시만 기다려.”
현수는 비슷한 디자인으로 된 옷을 여러 벌 꺼내 주었다. 그때마다 예쁘다고 난리법석이다.
다음에 현수가 꺼낸 것은 비누다.
페퍼민트, 라벤더, 아세로라 등 여러 가지 향기를 지닌 것들이다. 여관에서 일을 하느라 음식 냄새가 몸에 배어 있다.
젊고 발랄할 나이에 행패나 부리는 취객을 상대하느라 시드는 것이 안타까워 준 것이다.
현수가 꺼낸 비누는 상당히 양이 많았다. 세실리아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함이다.
“이건 뭐예요? 흐으음, 향이 좋은데 먹는 건가요?”
“세실리아, 이건 먹는 게 아니야. 이리 와봐.”
현수는 세실리아에게 비누 사용법을 가르쳐 줬다.
“알았지? 이건 될 수 있으면 혼자서 써. 그런데 정말 돈이 궁해지면 그때는 팔아서 써도 돼.”
“이걸 팔라고요?”
“그래. 여기선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한 거니까 아주 비싸게 팔아야 해. 알았지?”
“예에……? 요까짓 걸 누가 비싸게 주고 사요?”
“아마 귀족들은 없어서 못살걸?”
“정말이요? 으음,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겠네요. 딱 한 번 문질러서 닦았는데도 은은한 향이 나네요.”
스무 살인 세실리아는 눈앞의 신기한 비누에 정신이 팔렸다.
그렇기에 내일 아침 현수가 떠난다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지 않게 되었다.
이런 세실리아의 정신을 완전히 팔게 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손거울과 빗, 그리고 머리핀과 향수이다.
현수 본인으로선 생전 쓸 일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난 이래 처음 보는 기물들 덕분에 세실리아의 관심은 이것들에 머무르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현수는 세실리아의 환송을 받으며 떠났다.
언젠가 반드시 한 번쯤은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야 겨우 떠날 수 있었다.
겨우 하루였지만 세실리아는 현수를 자신의 낭군으로 자리매김 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돌아올 날을 기다릴 작정이었다.
하나 그 작정은 오래 가지 못한다.
몸에서 향기 나는 여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어느 백작가의 차남과 결혼하게 되기 때문이다.
세실리아 덕에 백작가의 위생은 몰라보게 좋아진다. 게다가 적지 않은 돈까지 얻게 된다.
현수가 준 물품들을 아주 비싼 값에 팔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것은 향수이다. 15㎖짜리 한 병, 그러니까 마트나 인터넷에서 한 2만 원쯤 주면 살 수 있는 것이다.
이것들이 병당 300골드를 호가하게 된다. 그런데 세실리아는 이런 향수를 무려 20여 병이나 가지고 있다.
* * *
현재의 현수는 강폭이 무려 8㎞나 된다는 바벨강을 건너는 중이다.
배에는 오십여 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 대부분이 상인들이고, 그들을 호위하는 용병들도 끼어 있다.
“강을 건너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망할 놈의 엘리터만 나타나지 않는다면 아마 네 시간 반쯤 걸릴 겁니다요.”
현수의 물음에 선장이 친절한 대답을 한다. 케이상단 지부장이 특별한 손님이니 잘 모셔달라는 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현재 현수는 마법사 특유의 로브를 걸치고 있지 않다.
배를 타고 건너가는 곳이 현재 아드리안 공국과 아주 불편한 관계인 미판테 왕국이기 때문이다.
소문은 날개가 없어도 날아다니는 법이다.
현수, 아니, 이실리프 마탑 출신 마법사 하인스 킴의 출현은 본격적으로 소문나고 딱 하루가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벌써 이웃나라인 미판테 왕국의 왕궁에 이 소식이 전해져 있는 상태이다.
뿐만 아니라 한창 전화에 휩싸여 있는 카이엔 제국과 라이셔 제국, 그리고 크로완 제국까지 번져 있다.
물론 아드리안 공국에도 전해졌다.
예전 같으면 뛰어난 마법사의 출현과 거의 동시에 이들 세 나라의 비밀 첩보기관이 접촉을 시도했을 것이다.
대개의 경우 한 나라를 택하게 되고, 나머지 두 나라의 집요한 공격을 받게 된다.
상대가 강해질수록 위축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전화나 전신이 없음에도 이럴 수 있는 것은 지구엔 없는 마법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르센 대륙 전체에 소문이 번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는 집요한 추적의 시작을 의미한다.
실제로 세 제국은 전쟁 중이라 바쁘지만 미판테 왕국과 쿠르스 왕국, 그리고 엘리아 왕국의 첩보기관은 요원을 파견하였다.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목적지는 올테른 항구이다.
만일 그곳에 머물러 있다면 현수는 이들과 손을 잡거나 목숨을 내주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기로에 놓이게 되었을 것이다.
현명하게도 알론은 이런 상황을 주지시킨 것이다.
알론은 현수가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을 안다. 또한 귀찮은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안다.
그렇기에 마법사 특유의 로브를 벗고 수련여행을 다니는 자유기사 복장을 갖추도록 충고하였다.
자유기사라 함은 아직 주군을 정하지 않은 기사를 의미한다.
현재 각국에서는 뛰어난 자원을 얻기 위해 자유기사의 출입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다.
어쨌거나 여러 이유로 선장의 말에 공대가 들어간 것이다.
“엘리터……?”
“네, 바벨강에만 사는 수중 몬스터인데 성질이 포악한 데다 공격적인 놈입니다요.”
현수는 몬스터 도감을 떠올려 보았다.
엘리터, 큰 놈은 10m까지도 자라는 놈이다. 몸통은 악어와 비슷하게 딱딱한 껍질로 둘러싸여 있다.
수중 생물이지만 다리도 달려 있다. 그래서 물속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살 수 있다.
대가리는 메기 같이 생겼는데 입안엔 온통 이빨이다. 그래서 한번 물린 먹이는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고 한다.
입을 벌리면 상악골과 하악골이 빠질 수 있게 되어 있어 자신보다 몸통이 굵은 동물도 잡아먹을 수 있다.
악어와 아나콘다와 상어의 특성이 섞여 있는 놈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달고 있는 것입니까?”
타고 있는 배에는 고래를 잡을 때 쓰는 대형 작살들이 설치되어 있다.
엘리터는 고기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가죽은 경갑옷의 원료로 각광받고 있고, 이빨 역시 무기 재료가 되기에 눈에 뜨이면 잡으려는 것이다.
“네, 놈들이 몹시 위험하기는 하지만 한 마리만 잡아도 한 밑천 잡습지요.”
“그렇군요.”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곤 기감을 넓혀보았다. 배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엘리터 큰 놈은 10m쯤 된다고 했다.
그런 놈의 공격을 받으면 배가 뒤집어질 수 있을 것이다. 배의 크기가 불과 20m 정도인 데다가 첨저선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수가 수영을 못한다는 것이다.
어릴 때 물놀이 갔다가 빠지는 바람에 놀란 이후 물을 무서워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흐으음……!”
기감을 넓혀 살펴보았다. 다행히 500m 안에는 큰 수중생물은 없다. 그렇기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브라질에 있는 아마존의 경우 강폭이 2∼10㎞이다. 그런데 바벨강은 평균 강폭이 8㎞이다.
더구나 올테른에서 곧장 건너편으로 가려면 30㎞ 정도를 가야 한다. 가장 강폭이 넓은 부분이라고 한다.
말이 강이지 바다나 다름없다. 그래서 반대쪽 기슭이 보이지 않는다. 수평선만 보일 뿐이다.
보아하니 길이 20m 정도 되는 배에는 사공 여섯과 선장 하나가 선원의 전부인 듯하다. 승객들은 중심부의 여기저기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한가로운 풍경이다.
그렇게 약 1㎞쯤 노를 저어 나갔다. 오늘따라 바람이 불지 않아 돛은 있으나 마나 한 상황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공들이 구령 붙여 노를 저어서 그러는지 배는 아주 잘 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다.
“우측이다! 우측에 엘리터가 나타났다!”
누군가의 고함에 모두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견시수가 위에 있었다.
“선원들 모두 전투 위치로……! 승객들은 안전을 위해 배의 중앙부로 이동한 뒤 묶어놓은 밧줄을 단단히 잡아주십시오.”
선장의 지휘하에 노 잡던 사공들이 작살을 잡았다. 끝을 아주 날카롭게 벼려놓아 시퍼렇게 보인다.
사공들이 노에서 손을 떼었기에 배는 하류 쪽으로 표류를 시작했다. 덕분에 엘리터와의 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작살 투척 준비……!”
선장의 명에 따라 사공들이 작살을 높이 든다. 손잡이 끝에는 잡은 엘리터를 놓치지 않게 하기 위한 줄이 달려 있다.
“1번 작살 투척! 2번 작살도 투척!”
선장의 명에 따라 오른쪽 사공 둘이 작살을 던졌다.
하나는 엘리터의 등에 맞았으나 힘없이 튕겨져 나갔고, 다른 하나는 아예 겨냥이 잘못되었다.
공격받은 엘리터가 화가 났는지 잠수했다가 치솟으며 배를 들이받는다.
쿠우웅―! 우지지직―!
“아악! 아아악……!”
크게 흔들리자 승객들이 나뒹군다.
“3번 작살 투척! 코다일, 뭐해……? 어서 던지란 말이야!”
선장의 명령을 받은 사내는 마흔 줄에 접어들었는데 평생 노를 저어서 그런지 팔 근육이 장난이 아니다.
하나 노려만 볼 뿐 작살을 던지진 않았다.
그 순간 아가리를 벌린 엘리터가 치솟아 오른다.
“야앗……!”
휘익! 퍼억―!
크와와아아악! 크와와아악……!
“와아! 잡았다!”
쏜살처럼 날아간 작살은 엘리터의 입안에 박혔다. 거죽은 딱딱해도 속은 부드러운 법이기 때문이다.
엘리터가 심하게 몸부림치는 바람에 배는 일엽편주처럼 이리저리 요동을 친다.
그때마다 승객들은 바닥의 밧줄을 잡고 늘어진다.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그물 모양으로 묶어놓은 밧줄이다.
“하핫! 잘했어, 코다일! 역시 자네야!”
아직도 엘리터가 발버둥치고 있지만 선장은 이미 기분 좋은 상태가 되었다.
줄을 길게 풀면 발광을 해도 배에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한다. 제 아무리 강하고 흉포한 놈이라 할지라도 입안에 작살이 박힌 이상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표류해서 도착 시간이 지연되겠지만 무슨 상관이겠는가!
승객들은 안전하게 데려다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할 것이다. 게다가 엘리터의 사체는 돈 덩어리이다.
하여 입이 양쪽으로 쭉 찢어졌다.
“아악……! 또 엘리터다! 이번엔 좌우에 한 마리씩이다!”
견시수의 말에 선원들은 재차 작살을 들었다.
얼른 줄을 잡아당겨 조금 전 투척했던 작살을 회수한 사공은 긴장된 눈빛을 빛냈다.
“놈이 다가오면 기다리고 있다가 코다일처럼 아가리를 노려! 아까처럼 등 거죽에 대고 던져봐야 튕기니까. 알았는가?”
“네에.”
사공들의 대답을 들은 선장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좌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사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바벨강을 오갔다. 그런데 세 마리나 되는 엘리터의 습격을 받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그리고 한꺼번에 두 마리에게서 공격받는 것도 처음이다.
반드시 둘 다 잡아야 한다. 한쪽에 정신 팔려 있으면 다른 한쪽에 의해 배가 전복되기 때문이다.
놈이 치솟아 오른 후 육중한 체중을 이용하여 몸을 흔들면 20m 정도 되는 배는 단번에 전복된다.
그럼 끝이다.
소드 마스터라 할지라도 수영을 할 줄 모르면 엘리터의 먹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좌측……! 좌측이 조금 더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