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2화 (52/1,307)

# 52

견시수의 고함에 좌측 사공들의 근육이 한껏 긴장되었다.

“기다려! 엘리터가 아가리를 벌리기 전에 던지는 건 소용없어. 그러니 조급히 굴지 말고 기다려!”

선장의 말이 끝날 때까지도 엘리터라는 놈은 다가만 올 뿐 아가리를 벌리지 않았다.

“우측……! 우측에서도 엘리터가 쾌속 접근 중!”

또 다시 견시수가 고함을 치자 우측 사공들도 작살을 들었다. 좌측과 달리 우측엔 이제 작살이 두 개뿐이다.

두 번 다 실패하면 좌측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의미가 없다.

분노한 엘리터가 뱃전을 기어오를 것이고, 그러면 막아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좌측! 좌측 엘리터 근접거리 접근!”

“으음! 좌측 1번 작살 투척! 2번 작살도 투척!”

선장의 명령에 두 개의 작살이 허공을 날았다. 둘 다 목표에 격중했지만 딱딱한 엘리터의 껍질은 이를 튕겨냈다.

“이런 빌어먹을 자식들……! 겨냥 잘 하라고 했잖아. 에이……! 코다일, 자네가 좌측 3번을 잡게!”

자신의 작살은 사용하였기에 한 걸음 물러나 있던 코다일은 젊은 선원으로부터 좌측 3번 작살을 인계받았다.

그리곤 뱃전 가까이 다가갔다. 그 순간 공격받았던 엘리터가 잠수했다가 치솟으며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었다.

“크와아아아……!”

“야아앗!”

퍼억―!

꾸웨에에엑! 꾸웨에에엑!

“와하하, 성공이다! 또 성공이야!”

“선장님, 우측 엘리터 근접 거리 접근합니다!”

“알았어. 1번 작살 준비! 좌측 1, 2번 작살은 어서 회수해.”

선장은 작살을 회수한 선원이 멍하니 있자 고함을 지른다.

“뭐해? 준비됐으면 어서 투척해!”

“야압!”

휘익! 투웅―!

이번에도 등껍질에 맞아 작살이 튕겨져 나갔다.

“이런……! 아가리 속을 노리라니까. 안 되겠다. 코다일, 자네가 2번 작살 인계받게!”

코다일이 한 발 나서려는 순간 작살 든 사내가 외친다.

“아닙니다. 잘 할 수 있습니다!”

2번 작살을 든 사내가 이를 거절한 것이다. 코다일과 늘 이인자 자리를 놓고 다툼 벌이던 젭센이라는 사내이다.

코다일보다 더 근육질인 이 사내는 조금 전의 상황에 자존심이 상해 있었다. 자신이 던진 작살을 맨 처음 공격했던 엘리터가 피하는 바람에 무산된 것 때문이다.

곧이어 코다일의 작살이 놈을 잡았다. 방금 전 두 번째도 똑같은 상황이다.

이번에 다가오는 놈마저 코다일이 잡는다면 자신의 자리가 없다 생각하였기에 명령을 거부한 것이다.

평시 같으면 명령에 불복종한 젭센에게 가혹한 언사가 베풀어졌을 것이다. 하나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하여 선장은 입맛을 다셨다.

“좋아! 너도 한몫 하는 놈이니 잘 할 수 있겠지. 놈이 아가리를 벌렸을 때를 노려.”

“네. 걱정 마십시오.”

다가오는 엘리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대답한 젭센은 작살을 고쳐 잡았다. 이때 다른 선원의 보고가 있었다.

“선장님, 우측 1번과 2번 작살, 회수 곤란합니다. 줄이 엘리터에 꼬여 있습니다.”

“……! 젭센, 들었지? 이제 기회는 딱 한 번뿐이다.”

“걱정 말라고 했습니다.”

젭센은 잠수했다 치솟아 오르는 엘리터를 형형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아직은 물속에 있지만 이제 곧 튀어오를 것이다. 아가리를 벌리면 그 속에다 대고 던지기만 하면 된다.

목표의 크기가 작지 않을 것이니 침착하기만 하면 된다.

같은 순간, 현수는 스스로에게 버프를 걸고 있었다.

“마나의 힘이여, 이 검에 어떠한 저항에도 부서지지 않을 단단함을 부여하라. 스트렝스(Strength)!”

현수가 뽑아 든 검에는 잠시 푸른빛이 감돌았다. 이는 현수에게만 보이는 현상이다.

“마나여, 이 검에 모든 것을 벨 수 있는 날카로움을 부여하라. 샤프니스(Sharpness)!”

이번엔 주황색 빛이 감돈다.

현수는 젭센 곁으로 다가섰다. 그의 시도가 실패할 경우 즉각적으로 나서기 위함이다. 그러는 한편 예리한 시선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놈이 솟아오르는 때를 노려야 하기 때문이다.

쿠와아아아아!

“이야야압……!”

투웅―! 푸웅덩―!

“헉, 젭센! 어서 작살을 회수해!”

젭센이 던진 작살은 재수없게도 엘리터의 콧잔등에 맞았다.

입을 완전히 벌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다급한 나머지 먼저 던진 때문이다.

덕분에 작살은 콧잔등의 딱딱한 껍질에 튕겨 버렸다.

위기를 느꼈었는지 엘리터는 공격하지 않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하긴 콧잔등과 두 눈 사이를 맞았다. 조금만 더 위쪽이었다면 눈을 맞았을 것이고, 조금 아래라면 아가리 속이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기에 숨을 돌리려 잠수한 것이다.

“젭센! 어서…….”

선장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젭센이란 자는 멍하니 서 있었다. 자신이 실수하리라곤 생각지 않았던 때문이다.

“이런 빌어먹을……! 코다일, 자네가 작살을 회수하게.”

“네, 알겠습니다.”

코다일이 젭센의 자리로 와서 그를 밀어냈다. 젭센은 저항없이 물러섰다. 동시에 코다일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서두르게!”

“네에.”

이 작살을 회수하지 못하면 엘리터를 막아낼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온 힘을 다해 줄을 잡아당겼다.

“아앗! 엘리터가 솟아오릅니다.”

견시수의 비명성에 선장이 소리친다.

“코다일, 어서……!”

“아앗! 줄이 꼬였나 봅니다. 이이잇!”

크와와아악……!

코다일이 온 힘을 다해 줄을 잡아당겼지만 작살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생긴 것과 달리 영리한 엘리터가 조금 전 수면 아래에 있을 때 이를 엉키게 한 탓이다.

그래놓고 공격하려 아가리를 벌린 채 치솟아 오른 것이다.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모르지만 실로 교활하다.

한편, 뱃전에 있던 코다일은 물론이고 모든 승객의 얼굴에 사색이 감돌았다.

엘리터의 발이 뱃전에 걸쳐지면 육중한 체중 때문에 배가 뒤집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끝이다! 다 같이 죽는 것이다.

그러니 모두들 사신을 만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엘리터는 제 몸을 수면 위로 뽑아냈다. 그리곤 두 발로 뱃전을 움켜쥐는 동시에 아가리로 코다일의 몸을 씹어 삼키려 했다.

순간 현수가 나서며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물러서시오.”

우당탕탕!

“야아아아압!”

쒜에에엑―! 슈아아악―!

꿰에에에에엑……!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일이다. 현수가 강하게 밀치는 바람에 코다일은 옆으로 쓰러졌다.

그 순간 현수가 그 자리를 차지함과 동시에 한줄기 빛이 엘리터의 아가리 왼쪽과 오른쪽을 차례대로 베어갔다.

엘리터의 대가리는 메기처럼 생겼다. 하나 메기처럼 살로만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등딱지 못지 않게 딱딱하면서도 질긴 비늘로 뒤덮여 있다. 그렇기에 날카롭게 벼려놓은 작살마저 튕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양쪽 아가리가 베어지면서 시뻘건 선혈이 뿜어져 나온다. 그와 동시에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른다.

이때 엘리터의 발은 뱃전을 움켜쥔 상태이다. 그 상태로 동체가 수면 아래로 내려가면 배가 뒤집히게 될 것이다.

수영도 못하는 현수가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필사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챠아아앗!”

기합과 함께 오른쪽 아가리를 뚫고 나온 검은 묘한 각도로 치솟아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사선으로 내리그어졌다.

퍼어억―! 촤아아아악―!

꾸웨에에에 엑……!

첨벙―! 꾸르르르―!

조금 전과는 다른 소리가 난다.

엘리터의 왼쪽 눈알이 베어지면서 안에 담겨 있던 것들이 튀어나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곧이어 단단한 비늘을 예리한 칼날이 베어갔다.

이 순간 본인은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현수의 검에선 한줄기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소드 마스터 직전인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라야 간신히 뿜어낼 수 있는 날카로운 검기이다. 이렇게 솟아난 검기는 엘리터의 단단한 두개골을 뚫고 뇌수를 휘저어 버렸다.

이건 검이 엘리터의 살 속에 박힌 상태에서 일어난 일인지라 본인도 모르는 것이다.

아무튼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뇌수가 휘저어지면 방법이 없다. 하물며 하등한 엘리터가 어찌하겠는가!

이놈은 교활함으로 백 년 가까운 생을 유지했다.

하여 바벨강의 제왕이 되었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엘리터들의 두목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뇌의 기능이 멈추는 순간 뱃전을 잡고 있던 발에서 힘이 빠졌다. 그리곤 곧장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아아아……!”

사람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멍한 시선으로 현수의 등만 바라보고 있었다.

엘리터는 껍질이 단단하기로 이름났다. 그래서 여태 검으로 놈을 베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런 엘리터를 베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그것도 몸통보다 더 단단하다는 대가리를 베었다.

눈으로 보았지만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그런데 놀라지 않는 사람이 하나 있다.

“빠, 빨리……! 빨리 갈고리로 놈을 걸어! 어서!”

선장이다. 엄청난 돈 덩어리가 맥없이 가라앉고 있어 아까웠던 것이다.

“뭐해? 빨리 갈고리로 놈을 걸어. 아, 뭐해? 돈 떠내려 가!”

선장의 명령에 선원들이 얼른 갈고리를 던졌다.

그런데 가라앉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게다가 갈고리를 던져도 걸릴 부위가 없다.

하여 다섯 개의 갈고리가 모두 빗나갔다.

2장 귀족 증명서

하나 마지막으로 던진 갈고리가 용하게도 엘리터의 아가리 안쪽 이빨에 걸렸다.

“오오! 잘 했어. 젭센! 하하! 하하하하……!”

선장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너, 그거 안 걸렸으면 오늘 이 배에서 잘릴 뻔했다. 알지?”

“네……? 아, 네에…….”

젭센은 비지땀을 삐질 흘리며 말끝을 흐렸다.

작살이 빗나갔을 때 이제 끝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누가 밀어 제친다. 평상시 같으면 안 밀리려 버텼을 것이다. 그런데 다리의 힘이 쑥 빠졌다.

그렇기에 맥없이 밀려난 것이다.

코다일이 던진 작살마저 실패했을 때엔 이제 꼼짝없이 죽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현수가 엘리터를 죽였을 때에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당장 죽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장이 갈고리를 던지라고 한다. 처음엔 던져봤자 안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갈고리를 던질 때 이것마저 빗나가면 농사나 지어야 한다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운 좋게 걸렸다.

하늘이 돕지 않았다면 절대 안 걸렸을 것이다.

젭센은 흥건한 식은땀을 닦아내며 안도의 한숨과 함께 털썩 주저앉았다.

“젭센……! 잘 했어, 이 친구야!”

코다일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젭센을 부여안았다.

이 순간 선장은 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핫핫!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 실력이 좋으신 줄 모르고……. 핫핫핫!”

선장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

현수는 승객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배정받았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 중 하나가 다가와 묻는다. 서른쯤 된 사내이다.

“저어, 이름이 어찌 되시는지요? 정말 용감하셨습니다.”

“내 이름이요?”

“네, 아이들에게 기사님의 이름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으음! 내 이름은… 하인스라 합니다.”

현수는 하인스라는 이름을 감추지 않기로 했다.

처음엔 다른 이름을 쓸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러지 않은 이유는 하인스라는 이름이 너무 흔해서이다.

미국에서 제일 흔한 이름이 조(Joe)와 제인(Jane)이다. 이곳에선 하인스(Hains)와 세실리아(Cecilia)가 그렇다고 한다.

몇 집 건너 하나씩 하인스가 있는 세상이니 굳이 다른 이름을 쓸 필요가 없다 생각한 것이다.

“네에, 하인스 기사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네에, 저도 반가웠습니다.”

현수는 승객들의 감사인사를 받았다.

그렇게 여덟 시간 동안 배를 탔다. 엘리터의 사체를 끌어올리느라 시간을 많이 지체한 탓이다.

“자아! 다 왔습니다. 여기는 미판테 왕국의 최서단인 테세린입니다. 어어! 조심해서 하선하십시오. 그리고 이따 저녁때 세실리아 선술집으로 꼭 오십시오.”

선장은 내리는 손님마다 똑같은 소리를 했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이다. 엘리터 사체 세 개가 있으니 왜 아니겠는가!

같은 순간, 현수는 이 세상엔 세실리아라는 이름이 정말 흔하다는 생각에 웃음 지었다.

하선한 현수는 느릿한 걸음으로 포구를 벗어났다.

왁자지껄하고 활기찬 분위기이다. 웃음소리도 있고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도 있었다.

선장이 말하기론 포구는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다. 하나 포구를 벗어나야 여관에 머물 수 있다.

그런데 여관에 가려면 관문을 지나야 한다.

관문 앞에 당도하자 할버드1)를 든 경비병이 손을 내밀어 제지한다.

“멈추시오! 이곳부터는 미판테 왕국 영토이오. 출입하려면 신분증을 제시하시오.”

신분증이 없는 현수는 머뭇거렸다.

“신분증을 제시할 수 없으면 물러서십시오.”

“으음……! 꼭 신분증을 내보여야 하나?”

“그렇습니다. 왕국의 안전을 위해 신분증 확인을 반드시 하라는 영주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으으음……!”

“신분증이 없으면 출입을 못합니다.”

경비병은 꼬박꼬박 존대를 했다. 자유기사가 영주의 눈에 들게 되면 자신보다 상관이 되기 때문이다.

현수는 신분증이 없는데 어찌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 지갑을 꺼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