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5화 (55/1,307)

# 55

“이걸 다 팔았다고 가정할 때 내가 자네에게 얼마를 지불하면 흡족하겠는가?”

“이, 이걸 전부……! 으으음, 소인에겐 매출 총액의 5% 정도면 적합합니다.”

총액의 5%면 25골드이다. 한국돈 2,500만 원이다.

얀센의 계산법은 이렇다.

물건은 현수가 댄다. 자신이 투자하는 돈은 한 푼도 없다. 하지만 이것에 대한 홍보는 자신의 식당에서 한다.

손님 가운데 귀족가와 관련있는 자들이 오면 스테이크나 스튜에 조금씩 뿌려주면 된다.

당연히 입소문이 날 것이다.

다음엔 귀족가로부터 구매 의사가 타진될 것이다. 이때 직접 물건을 들고 귀족가를 방문하여 특장점을 소개한다.

물론 갈 때는 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적당한 선물이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이 작전이 성공하면 다음부터는 순항이다.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릴 것이다.

이렇게 각기 100병을 파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한 달은 넘지 않으리라 예상된다. 한 번에 하나씩 사는 게 아니라 귀족 특성상 뭉텅이로 달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하루에 다 팔릴 수도 있다.

아무튼 판매하는 동안 발생되는 비용은 모두 얀센이 부담하여야 할 것이다. 귀족들을 만나려면 시종 등에게 적지 않은 뇌물을 뿌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선물 비용을 제하고도 1,000∼1,500만 원 정도의 수입이 발생된다.

이것은 한국에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혹시 거절당하면 어쩌나 하는 심정으로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한편, 현수의 계산은 이렇다.

유리병의 원가는 소매가 1,000원의 40% 수준인 400원, 양철통은 3,400원의 40%인 1,360원을 잡았다.

합쳐서 1,760원씩 100병이면 원가는 17만 6천 원이다. 이걸 5억 원에 판다. 약 2,840배가 남는 장사이다.

“욕심이 적군. 좋아! 좋은 자세야. 내 그에 대한 보상을 하지. 자네에게 판매총액의 10%를 주겠네.”

현수는 인터넷에 떠도는 어떤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당사자가 아니기에 사실인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는 루머일 수도 있지만 흥미롭게 읽었기에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이전 대통령 가운데 J와 N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J는 재임 기간 동안 부하들에게 인심을 잃지 않았다.

부하들이 공직에서 물러나게 되면 소위 전별금이라는 것을 하사하여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런데 물러나는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끝자리에 ‘0’이 하나 더 붙은 금액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퇴임 후 곤경에 몰렸을 때에도 부하들이 끝까지 의리를 지켜주었다고 한다.

반면, N은 제 욕심만 채우느라 그러지 못했다.

그 역시 전례에 따라 공직에서 물러나는 부하들에게 전별금을 주었다. 그런데 그 금액은 물러나는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0이 하나 적었다고 한다. 이전 정부에서 받은 전별금에 대한 소문이 있었기에 부하들의 기대치가 높았던 때문이다.

그 결과 퇴임 후 곤경에 처했을 때 거의 모든 부하들이 모른 척하여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현수에게 있어 아르센 대륙에 아는 사람은 손으로 꼽을 만하다. 알베제 마을 사람 가운데 일부와 케이상단의 알론과 몇몇 용병이 전부이다.

이런 곳에서 아드리안 공국의 위기를 구하는 중차대한 일을 해야 한다. 아무리 이실리프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혼자서 어찌 그 일을 다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필요하고, 자신의 명령에 따라 일을 해줄 세력도 필요하다.

그런데 얀센은 제법 괜찮은 사람으로 보인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잘못된 판단일 수도 있지만 일단 인상이 괜찮아 보인다.

하여 내 사람으로 만들어볼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넉넉하게 베풀어야 한다. 하여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이 주겠다고 한 것이다.

“네에……? 저, 정말이십니까?”

“그렇네. 이제 얀센상단을 만들 일만 남았나?”

“아이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상단의 이름은 얀센이 아니라 하인스가 되어야 합지요.”

“하인스상단?”

“네. 기사님의 이름을 따야 장사가 더 잘 될 겁니다. 그러니 상단의 이름은 하인스가 더 좋습니다.”

“좋네, 그럼 그렇게 하게.”

현수는 생각보다 얀센의 상재가 더 좋다는 느낌이었다.

일개 평민보다는 기사, 기사보다는 귀족의 이름을 파는 것이 더 장사하기 쉽다.

그런데 장사가 잘 되면 파리가 꼬이는 법이다. 되먹지 못한 뒷골목 주먹들이 그런 놈들이다.

하지만 귀족이, 그것도 작위가 높은 귀족이 상단을 운영할 경우 감히 건드려 볼 생각조차 못 한다.

몇 푼 벌려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판단을 내렸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계약서를 작성할까?”

“아이구, 아닙니다요. 이제부터 전 하인스상단의 서기입니다. 하인스상단주님! 스페른상단의 일개 지부 서기였던 저를 본점 서기로 승진시켜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말을 마친 얀센은 충성을 뜻하는 절을 하였다.

한국처럼 엎드려 고개를 조아리는 게 아니라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정중히 고개 숙이는 예절이다.

“좋아, 내가 물건을 보관한 곳에 다녀와 자네에게 넘기지.”

현수가 아공간에 있는 물건을 꺼내지 않고 이런 말을 한 것엔 이유가 있다. 이상하게도 지구로 귀환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까부터 든 때문이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막연히 그런 생각이 계속해서 떠올랐던 것이다.

“네에.”

“그럼, 말 나온 김에 갔다 오겠네.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네.”

지구로 귀환하여 얼마 있을지 어찌 알겠는가!

하여 이런 말을 한 것이다.

“네에,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참, 그 안에 이곳 영주로부터 전갈이 있을 수 있네. 그럼 조만간 돌아온다고 해주게.”

“네에, 걱정 마십시오.”

잠시 후, 현수는 세실리아 주점을 벗어나 올테른 외곽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좌표를 확인했다.

이곳은 미판테 왕국의 서단에 자리한 마을이다.

강만 건너면 테리안 왕국이다. 그렇기에 테리안 왕국과 미판테 왕국 간의 문물이 교류되는 지점이다.

그렇기에 좌표를 확인한 것이다.

현수는 아르센 대륙으로 와서 사흘을 지냈다.

매일 밤 마나 집적진 위에서 잠을 잤다. 그 결과 급속도로 마나가 충진되어 다시금 차원 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킨샤사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곳과 지구의 시간차에 대한 것을 확인해야 한다.

전능의 팔찌를 설명해 놓은 부분을 보면 지구에서 출발은 2월 13일에 했다. 오늘로서 사흘째이니 그냥 돌아가면 2월 15일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2월 14일로 돌아갈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둘째, 아무래도 천지건설 본사에서 예상보다 빨리 사람들이 들이닥칠 것 같다.

그때 자신이 없으면 문제가 발생될 수도 있기에 불과 며칠도 머무르지 못하고 되돌아 갈 생각을 한 것이다.

* * *

“트랜스퍼 디멘션! 마나여, 나를 킨샤사로 데려다 다오. 2013년 2월 14일로!”

스르르르르릉―!

눈을 뜨니 은색 랜드로버가 보인다. 그리고 엄청 덥다. 그렇다면 제대로 온 것이다. 현수는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제기랄, 괜히 왔나?”

조금 전에 비가 내렸는지 푹푹 찐다. 옷을 갈아입는 동안 나온 땀 때문에 끈적거리는 것이 불쾌하다.

당연히 시원한 아르센 대륙이 떠오른다.

“다시 돌아가? 참, 안 되지?”

전능의 팔찌를 보니 검은색이 또 회색으로 변해 있다.

당분간은 아르센 대륙으로 갈 수 없음을 의미한다.

딸깍 !

차 문을 열어보니 이건 한증막과 다를 바 없다. 뒷좌석에 있던 노트북을 만져보니 뜨끈뜨끈하다.

마투바의 동생들에게 게임을 하라고 꺼내 놓았던 것이다.

‘이제부턴 항상 아공간에 넣고 다녀야겠군.’

“흐음, 오늘 날짜부터 확인해 보자.”

현수는 전능의 팔찌로 차원 이동을 할 때 지구 시간으로 2013년 2월 14일이 되도록 타임딜레이 구현 마나석에 손을 댄 채 마나를 불어넣었다.

“어디 보자. 흐으음……! 에이, 너무 느려. 한국에 가면 속도 빠른 놈으로 바꿔야지.”

노트북이 부팅되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심해서 손해 볼 거 없지. 와이드 센스!”

기감을 넓혀 보니 큰 이상은 없다.

현수가 있는 곳은 킨샤사 외곽을 살짝 벗어나 콩고강에 가까운 곳이다.

아무데나 차를 몰고 갔기에 이곳에 당도한 것이다.

그리고 남들의 이목으로부터 차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숲속 깊숙한 곳에 주차해 두었다.

그래서 현재 있는 이곳은 수림이 울창한 곳이다. 세상에선 이곳을 콩고우림이라 부른다.

도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지만 원시에 가까운 숲이 존재하는 것이다. 당연히 짐승과 곤충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움직임이 없다.

하여 마법을 거두려는 순간 이상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뭐야, 이건……?”

바닥에서 뭔가가 기어온다. 그런데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아나콘다인가?”

현수는 동물의 왕국에서만 보았던 아나콘다가 다가오자 뇌리를 뒤져 마법을 찾아냈다.

열대우림이기는 하지만 불이 나면 겉잡을 수 없을 수도 있다. 하여 윈드 블레이드를 시전하려 했으나 이것도 포기했다. 멀쩡한 나무들까지 베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본닛을 딛고 차의 지붕에 올라간 뒤 놈의 종적을 느껴보았다. 생각보다 빠르다. 제법 멀리 있었는데 어느새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온 것이다.

일부러 모르는 척하며 차 위를 왔다갔다하는 동안 밀림 속으로 쓱 사라진다.

이제부턴 천천히 조심스럽게 움직일 것이다. 그리다 어느 순간 쏜살처럼 아가리를 벌린 채 다가올 것이다.

‘짜식아, 넌 상대를 잘못 골랐어.’

현수는 악동의 웃음을 짓고는 놈이 있는 곳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먹잇감이 자신의 존재를 눈치챘다는 것을 안다는 듯 내놓고 다가온다.

언뜻 보니 길이가 10m는 넘는 것 같다. 몸통도 엄청 굵다. 사람 정도는 한 입에 집어삼킬 정도로 큰 놈이다.

“뭘 잡아먹어서 그렇게 컸는지 모르지만 오늘로 끝이다. 난 뱀이랑 악어, 그리고 모기와 쥐를 아주 싫어하거든.”

나직이 중얼거리며 가까이 다가온 놈을 노려보았다.

현수를 한 입에 먹어치우기 위해 달려들려는 듯 대가리가 뒤쪽으로 쏠려 있다.

“짜식아! 어림도 없어. 마나여, 저 녀석을 단숨에 얼려라. 블리자드(Blizzard)!”

휘이이이잉―!

남극에서나 볼 수 있는 눈보라가 휘몰아쳐 간다. 대상 마법으로 구현시켰기에 모든 냉기는 아나콘다에게만 집중되었다.

그 결과 재수없는 아나콘다는 그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멀린의 마법답게 냉기가 단숨에 뇌까지 침투하였기에 1초도 안 걸리는 시간 만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짜식! 별것도 아닌 것이……. 근데 크기는 엄청 크네.”

죽은 아나콘다의 몸통 대부분은 우거진 수풀 속에 있다. 하여 수풀을 들춰가며 확인해 보니 길이가 12m를 넘는 것 같다.

“어라……? 이 자식이 뭘 처먹은 거지?”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몸통의 한 부분이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음에도 사냥을 한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대체 뭘 잡아먹은 거야? 잠깐, 먼저 날짜부터 확인하고.”

다시 자동차로 되돌아온 현수는 노트북으로 오늘의 날짜를 확인했다.

“뭐야? 2월 14일이 아니고 2월 16일? 왜 이러지? 분명 타임딜레이 마나석에 손을 대었는데…….”

하루 일찍 도착하려 했는데 오히려 하루 늦게 도착한 것이다.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실리프 마법서를 펼치진 않았다. 언제 비가 올지 모르는데 괜히 적시기 싫은 때문이다.

“흐음, 이건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군. 그나저나 저놈은 뭘 먹었지?”

뒷좌석의 칼을 꺼내 아나콘다의 배를 갈랐다.

푸욱!

스스스스슥 !

“허억……!”

갑자기 튀어나온 손을 보고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몬스터의 사체는 여러 번 보았기에 괜찮으나 사람의 손이 뱀의 사체에서 튀어나오니 놀란 것이다.

배를 완전히 갈라 꺼내놓고 보니 원주민 남자아이인 것 같다. 그런데 먹힌 지 얼마 안 되는 모양이다.

“에이, 어쩌다가……! 묻어줘야겠구나. 디그(Dig)가 좋겠지?”

마법을 써서 땅을 파려는 순간 사방으로부터 인기척이 느껴진다. 와이드 센스 마법을 구현해 보니 대략 20여 명이 활과 창으로 무장한 채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중이다.

현수는 움직임을 멈춘 채 이들이 다가섬을 기다렸다.

다가온 사람들 모두 상의는 벗은 채였고, 하의는 반바지 차림이다. 머리는 짧으며, 신발은 모두 신지 않았다.

‘이곳 원주민인가?’

콩고민주공화국에는 200여 종족이 살고 있다. 후투족, 투치족, 피그미족 등이 그들이다.

사람들이 다가오자 현수는 전능의 팔찌에 마나를 모았다. 그들 일행 중 가장 나이 많은 자가 묻는다.

“네가 왕뱀을 죽였는가?”

“그렇다.”

“죽은 아이의 시체를 네가 꺼냈는가?”

“그렇다.”

“그 아이의 시체를 우리에게 넘겨줄 수 있는가?”

“너희 종족이라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

“저 왕뱀의 시체도 줄 수 있는가?”

“필요하다면 가져가라.”

“고맙다. 나는 므와섬이라 한다. 네 이름은 뭐냐?”

“난 김현수라 한다. 너희는 무슨 종족이냐?”

“우리 말을 하면서도 우리가 무슨 종족인지 모른다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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