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6화 (56/1,307)

# 56

현수는 상대와의 대화가 아프리카 고유어인 반투어로 이루어짐을 모르고 있었다. 하긴 어찌 반투어를 알겠는가!

“그렇다. 가르쳐 줄 수 있는가?”

“우린 후투족 전사들이다.”

“좋다. 아이의 시체를 가져가라.”

“고맙다.”

말을 마치고 손짓을 하자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흑인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아이의 사체를 수습한다.

사람 팔목 정도 되는 굵기의 나무줄기를 베어내고, 그 위에 넓적한 잎사귀를 어찌하는가 싶더니 금방 들것 비슷한 것을 만들어낸다. 아이의 사체를 올려놓고 나뭇잎사귀로 덮는다.

같은 시간 동안 아나콘다의 사체를 십여 토막으로 잘라낸다.

비릿한 피 냄새가 났지만 현수는 눈도 안 깜박이고 작업을 구경했다. 리얼 야생이다. 어디서 이런 구경을 하겠는가!

일련의 작업이 끝나는 데 불과 10분 정도 걸렸을 뿐이다.

“고맙다. 보답하고 싶으니 우리 마을까지 동행해 다오.”

“아니다. 나는 괜찮다.”

“은인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 우리와 동행해라.”

몇 번의 실랑이 끝에 현수는 후투족 마을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야생으로 사는 듯한데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때문이다.

후투족은 현수가 차를 몰고 따라가기 쉽게 비교적 평탄한 곳을 골라 정글 속으로 들어갔다.

가는 동안 소나기가 한번 내렸다. 그러다 습지 부근을 지나게 되었는데 악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온다.

후투족 전사들은 즉시 산개하였고, 창을 들고 놈을 약올려 시선을 빼앗은 뒤 다른 쪽에서 찔러 잡았다.

현수는 흥미로운 장면을 디카로 찍으면서 보았다. 보아하니 능숙한 사냥꾼들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악어가 죽자 일행의 리더가 현수에게 말을 건다.

“악어를 차에 실어서 운반해 주지 않겠는가?”

“어려울 것 없다. 지붕에 얹어라.”

“고맙다.”

현수는 앞 유리 창 한쪽에 축 늘어진 악어 꼬리 부분을 보면서 일행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대략 1시간 반을 이동했다.

그런데 차가 움직이니 악어의 사체가 자꾸 한쪽으로 미끄러진다. 하여 조수석과 운전석 뒤쪽에 두 명의 후투족 전사들이 탄 채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어찌된 영문인지를 알 수 있었다.

오래전, 콩고민주공화국은 벨기에의 식민지였다.

그때부터 1950년대 말까지 후투족은 투치족의 지배를 받았다. 벨기에가 그렇게 하도록 한 것이다.

1962년에 ‘콩고민주공화국’의 옛 이름인 ‘자이르’가 독립하자 후투족이 이러한 지배 구조에 반발하여 폭동을 일으켰다.

이것은 종족간 대규모 유혈 사태로 인접국인 르완다마저 내전으로 몰아갈 정도였다. 강경파 후투족이 온건파 후투족과 투치족을 수십만이나 대량 학살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 내전의 결과 투치족이 승리하였고, 후투족은 주변 국가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웃나라인 부룬디는 투치족이 지배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직후엔 후투족이 집권하였다.

하나 곧 투치족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빼앗았다.

하지만 1993년엔 후투족 출신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투치족이 또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1993년 이후 양 부족간의 격돌로 약 15만 명이 사망하였다.

어쨌거나 현재 콩고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인 조제프 카빌라는 투치족이다. 이후 후투족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힘을 잃었기에 후투족들은 일부는 도시 빈민으로, 또 다른 일부는 뿔뿔이 흩어져 정글 속으로 들어갔다.

나머지 일부가 반군으로 활동 중이다.

아나콘다에게 목숨을 빼앗긴 소년은 후투족이다.

정부의 탄압을 피해 정글 속에 부락을 형성한 온건파 후투족의 자손이다.

길조차 없는 정글 속에 마을을 형성하였기에 정부로부터의 탄압은 없었으나 문제가 있었다.

마을 근처에 아나콘다 서식지가 있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 몇이 희생된 이후 후투족 전사들은 아나콘다 사냥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십여 명이 죽었다.

아나콘다 역시 대부분이 죽었다. 오늘 소년이 마지막 아나콘다에게 희생되자 즉시 그 뒤를 쫓아온 것이다.

후투족은 은원이 분명한 민족이다. 다시 말해 은혜를 입으면 보답을 하고, 원수가 있으면 반드시 죽인다.

현수가 아나콘다를 죽이고, 소년의 사체를 내주었다. 이것은 은혜에 해당된다. 하여 마을까지 초대한 것이다.

물론 현수의 외모를 보고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흑인이었다면 투치족의 끄나풀일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닐 것이기에 경계심이 많이 누그러진 것이다.

마을에 도착하자 먼저 소년의 시신을 매장했다. 그리곤 잔치가 벌어졌다. 음식은 아나콘다의 살로 만들어졌다.

이곳에선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기도 한다.

콩고민주공화국 동북부 이투리 삼림지대와 키부 지역에는 약 60만 명의 피그미족이 문명과 떨어져 사냥과 채집을 하며 살고 있다.

피그미족은 성인의 신장이 120∼140㎝ 정도밖에 되지 않는 왜소한 종족이다.

한편, 콩고 북부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콩고해방운동(MLC)과 콩고민주연합(RCD)은 2002년과 2003년에 이투리 지대 피그미족을 대상으로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다.

이들은 피그미족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여기고 있으며, 피그미족의 살이 주술적 힘을 준다고 믿고 있다.

또한, 피그미족 여인과 관계를 가지면 통증을 가시게 한다는 미신이 팽배되어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해 콩고 일부 지역에선 피그미족에 대한 식인과 강간이 정당화되어 있다.

후투족도 이전엔 인육을 먹었다. 그렇다 하여 식인종은 아니다. 사람을 잡아먹되 원수의 살만 먹었다.

현수가 잡은 아나콘다는 후투족의 원수가 분명하다. 그렇기에 그 고기로 잔치를 벌인 것이다.

현수는 뱀 고기를 먹는 것이 저어되었다. 대강 대강 익힌 듯하여 기생충이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뱀의 몸속에 기생하는 기생충 가운데에는 뱀술을 담가도 죽지 않는 놈이 있다고 한다. 또한 뱀 고기는 잘못 먹으면 기생충이 뇌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하여 머뭇거리자 촌장인지 추장인지 하는 므와섬이 계속해서 권한다. 내키지 않았으나 어쩌겠는가!

뱀 고기 꼬치를 손에 든 현수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오거니즘 익스터미네이션(Organism Extermination)!”

어떤 생명체의 완전한 말살을 구현시키는 대상 마법을 한낱 꼬치에 구현한 것이다. 이 마법은 6써클로서 제법 마나가 많이 소모된다.

‘으이그, 마나가 아깝다. 겨우 이런 꼬치에다 대고……. 그래도 나중에 치매 걸리는 것보다는 낫겠지?’

마법을 구현시켰음에도 꺼림칙하다. 하여 아주 조금씩 떼어먹었다. 다행인 것은 더 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고역이다. 맛도 없는데 은인이며 손님이라고 꼬치 중에서도 제일 큰 놈으로 골라온 때문이다.

잔치가 벌어지는 동안 후투족 추장은 현수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현수 역시 이들에 대해 물었다.

이들은 정부군에 의해 밀려난 것이지 원래부터 이곳에서 원시적인 삶을 살던 부족이 아니라고 한다.

본시 킨샤사에서 살았는데 정부군의 무기에 대항할 힘이 없어 할 수 없이 은신한 채 사는 중이라 한다.

언젠가는 원수 같은 투치족을 물리치고 다시 정권을 쥘 것이라 생각하고 칼날을 갈고 있다고 했다.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잔치가 끝났다. 후투족은 하룻밤 자고 가라고 했지만 꼭 가야 한다 말하고 출발했다.

4장 의문의 저격자

“아이고, 그렇지 않아도 자네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했는데 정말 잘 왔네. 정말 잘 왔어.”

이춘만 과장은 현수의 출현에 환호작약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오후에 사장과 전무, 그리고 몇몇 이사진들과 해외영업부장이 실무진들과 함께 들이닥쳤다.

예고에도 없던 느닷없는 방문이다.

한편 이해는 된다. 45억 달러짜리 공사를 땄다.

그것도 직원이라곤 달랑 두 명뿐인 지사에서……!

이 지사를 유지시키기 위해 본사에서 하는 일이라곤 두 사람의 급여를 지불하는 것, 그리고 지사 사무실 유지비뿐이다.

그리곤 아예 위리안치를 시킨 죄인 취급하려는 듯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사고를 쳤다. 그것도 보통 사고가 아니다. 어마어마한 초대형 사고를 쳤다.

해외영업부 직원 전체가 일 년 이상 꼬박 매달려야 하고, 심혈을 기울여 세계 유수의 건설사들과 수주전쟁을 치러도 딸까말까 한 공사를 만화처럼 땄다고 한다.

그러니 만사 제치고 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하나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니다.

어젯밤, 이춘만 과장은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마투바와 더불어 술을 마셨다. 하여 빈 맥주 깡통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마투바 역시 대취했던 때문이다.

사실 마투바는 술을 마실 줄 모르는 여인이었다. 이춘만 과장이 아주 잘 가르쳐서 술꾼 중에서도 상술꾼이 된 것이다.

어쨌든 사무실 내부는 개판이고, 몰골은 세수도 하지 않아 엉망이다.

그런데 사장 일행이 들이닥쳤으니 얼마나 당황되겠는가!

그리곤 일등 공신인 현수를 찾는데 휴가를 줬다는 말을 못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사장은 다행히 개판인 사무실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곤 시내의 호텔에 짐을 풀겠다고 갔다.

떠나면서 현수가 돌아오는 대로 같이 오라고 했다.

하여 이춘만 과장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열흘을 기약하고 떠난 현수를 어디에서 찾겠는가!

하여 어찌할까를 고심하느라 다크서클이 점점 짙어지는 중이었다. 그런데 장본인이 나타났으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네에……? 사장님이 오셨다고요?”

현수도 경영진의 방문에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오리라곤 생각했지만 예상외였던 것이다.

한편으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르센 대륙에서 지구로 귀환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멤링(Memling) 킨샤사 호텔’은 5성급 호텔이다.

사장 일행은 비싸기로 이름난 이 호텔에 짐을 풀었다.

이 과장은 자신이 경영진의 안전을 위해 그곳에 머물도록 추천했다고 한다.

호텔에 발을 들여놓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불어온다. 곧장 사장과 일행이 머무는 7층으로 올라갔다.

“자네가 김현수 사원인가?”

“네, 사장님!”

“수고가 많았네. 이 과장으로부터 대략적인 이야긴 들었으나 자네로부터 다시 한 번 듣고 싶은데 말해줄 수 있겠는가?”

“물론입니다.”

이때부터 사장을 비롯한 일행은 현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춘만 과장이 새로 전입한 자신을 위해 킨샤사 안내를 한 것으로 했다.

자신이 세운 공은 아무리 많이 깎아내리려고 해도 부인하지 못할 만큼 큰 공이다. 그러니 상사인 이 과장이 큰 도움을 주었다 해도 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우스갯소리로 전생에 나라를 구했느냐는 말을 한다.

회사 입장에선 그럴 만큼 큰 공이다.

지난 수년간 도급 순위 5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4위와의 격차가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숨에 2위 내지는 3위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사상 처음 도급 순위 1위가 될 수도 있다.

이는 회사 가치의 급격한 상승을 의미한다.

확실하게 확인된 것이 아니기에 아직 공시2)하지 않았다. 만일 진짜로 본계약을 체결하게 된다면 즉시 상종가를 치게 될 것이다. 이는 주주들에게도 몹시 행복한 소식일 것이다.

사장 일행은 현수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면서 연신 탄성을 냈다. 폴이란 아이를 구해내는 과정에선 다친 데 없었느냐는 말까지 들었다.

예전 같으면 그런 건 물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경찰청장을 만나서 했던 이야길 리바이벌했다.

공사가 잘못되거나, 제대로 진척되지 못하여 권력자에게 누가 될 수 있어 끈을 대는 영업은 하지 않았다는 말에 아주 잘 했다는 칭찬을 들었다.

그 과정에서 이춘만 과장이 분위기 조성을 아주 잘했다는 이야길 했다. 그래서 나쁠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곁에서 이야길 듣고 있던 이 과장은 현수가 연신 자신을 띄워주자 내심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현수는 임원들에게 둘러싸여 무용담을 펼치는 중이다.

“그래서 우리 회사와 같이 일을 하고 싶다고 한 겁니다.”

내무장관 가에탄 카구지가 한 말을 끝으로 이야긴 끝났다.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한바탕 소설을 읽은 기분이 되었다. 우연과 행운이 겹쳐서 최상의 결과를 야기시킨 때문이다.

“잘 했네. 조만간 포상을 하지. 그건 그렇고 콩고민주공화국에 왔으니 내무장관님과 만나서 인사라도 하고 싶은데 가능하겠는가?”

“네, 그렇지 않아도 그쪽 비서실에 연락을 해두었습니다. 아마 이쪽으로 연락을 주실 겁니다.”

현수가 막 말을 끝냈을 때 문이 열린다. 흰색 반팔 와이셔츠에 나비 넥타이, 그리고 검은색 바지를 입은 사내가 들어온다.

연회장 담당 매니저이다.

몇 번 노크를 했음에도 반응이 없자 들어온 모양이다.

하긴 이곳은 세미나실 용도로 쓰이는 곳이다.

100명 이상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하기에 밖에서 노크를 했는데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담당 매니저는 정중히 고개 숙인 후 프랑스어로 묻는다.

“Qui est Kim hyun soo?” “어느 분이 김현수 씨이십니까?”

“Oui, c’est moi.” “네! 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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