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Ministère de l’Intèrieur Bureau est arriv?`a le scorpion venus de.” “내무부 장관실로부터 온 전갈이 도착했습니다.”
“Vraiment? S’il vous plaît venez.” “그래요? 이리 주십시오.”
“Ici, il est.” “여기 있습니다.”
“Merci beaucoup.” “대단히 감사합니다.”
“Avez―vous une chose mal `a l’aise en utilisant les installations?” “시설을 사용하시는 데 불편한 점은 없습니까?”
“Oui, je suis satisfait de tout.” “네 모든 게 만족스럽습니다.”
현수와 매니저의 대화를 들은 사장 및 임원들은 눈을 크게 떴다.
영어를 잘하는 직원들은 많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얼마나 극성맞게 가르치는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시험을 봐서 국어를 95점 받고, 영어를 72점 받으면 욕을 먹는다. 하나 국어를 72점 받고, 영어를 95점 받아오면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며 칭찬을 한다.
국어 잘하라고 과외 시키는 부모는 드물지만, 영어 잘하라고 과외며 어학원을 보내는 부모는 널리고 또 널려 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외국으로 어학연수까지 보낸다.
그래서 영어를 잘하는 직원들이 널린 것이다.
하나 프랑스어를 모국어처럼 말하는 직원은 거의 없다.
사장은 이곳에 오기 전 현수의 신상 기록에 대한 것을 세세한 부분까지 읽어보았다.
대체 어떤 녀석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일본과 맞붙은 World Baseball Classic 결승전에서 4대 1로 뒤지고 있던 9회말 2아웃, 주자 만루 상황에서 역전 홈런을 친 녀석이다.
축구를 예로 들자면, 어렵게 올라간 월드컵 결승전에서 한국은 강호 브라질과 맞붙었다.
상대의 실책을 틈타 한국이 먼저 한 골을 넣었다. 하나 2분 만에 동점골을 허용했고, 다시 5분 만에 역전골까지 내주었다.
심기일전한 한국팀 스트라이커가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한 골을 넣어 2대 2, 동점으로 만들었다.
이후 브라질의 파상 공세에 밀려 한국팀의 골 점유율은 불과 10%대에 머물렀다. 변변한 공격 한번 못해보고 쩔쩔 매는 상황이 후반전 내내 계속되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조마조마한 기분이 들게 하는 위기 상황의 연속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상대의 공을 가로챈 섀도우 스트라이커가 센터서클에서 슛을 했다. 무회전으로 허공을 가르며 상대의 골대로 다가간 공은 골기퍼의 손을 피해 골망을 뒤흔들었다.
후반 44분 55초에 2대 2로 비기고 있던 상황을 3대 2로 만든 것이다.
다시 센터서클로 온 공에 브라질 선수가 발을 대는 순간 심판의 휘슬 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경기가 끝난 것이다.
현수가 세운 공은 어쩌면 이보다 더 극적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현수에 대한 자료를 찾아 읽은 것이다.
인사 카드엔 서울 소재 삼류 대학 수학과 출신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 대목에서 사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삼류 대학 출신이 어떻게 서류 전형을 통과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 인사부장은 물론이고, 인사과장까지 불러들였다. 혹시 누군가의 인사 청탁이 있었는지를 확인할 생각이었다.
사실 천지건설엔 설립 이래 현수가 졸업한 삼류 대학 출신이 존재해 본 역사가 없다.
워낙 입사 경쟁률이 높기에 발붙일 수 없었던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원으로 등록이 되어 있으니 궁금했던 것이다.
인사부장은 서류 전형 통과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대신 현수의 영어 성적을 공개했다.
돈 몇 푼 벌자고 끙끙대며 했던 알바 덕분에 운 좋게 빈 줄 채워넣기를 했던 영어 시험 결과이다.
당시 입사지원서를 제출한 사람 숫자는 12,000명이다.
이중 서류 전형을 통과한 사람이 1,200명이고, 영어와 상식 시험은 600명이 통과했다. 최종적으로 면접 시험까지 통과하여 천지건설에 재직하고 있는 현수의 동기는 200명이다.
6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것이다.
말이 60대 1이지 실제는 11,800대 1이다.
11,800명이 탈락하고 붙은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수의 영어시험 성적은 A+로 최고였다. 신입사원 연수 성적은 그저 그렇다. 자재과에 배치된 이후 평가된 항목을 보면 모든 것이 평범하다.
자재과에서 매긴 점수는 C등급이다. 업무지원팀에서 매긴 고과 역시 C등급이다. 업무 협조 관계가 있는 구조계산팀에서 매긴 점수는 최하인 F등급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밖의 특기사항 어딜 봐도 프랑스어를 이처럼 잘한다는 내용이 없다.
그런데 너무도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있으니 놀란 것이다.
더구나 현수는 이과 출신이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프랑스어를 제2외국어로 공부했다 하더라도 이처럼 잘 할 수는 없다.
사장이 휘둥그래진 눈으로 임원들과 시선을 마주치자 그들 역시 대단히 놀라고 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곳 킨샤사 지사에 와서 통역을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지사엔 한국어 내지는 영어를 잘하는 현지인을 고용하여 통역 업무를 돕도록 한다. 그런데 이춘만 과장과 허드렛일을 하는 마투바, 그리고 현수 딱 셋뿐이다.
아무튼 일행은 현수가 봉투 속에 든 종이를 꺼내 읽는 것을 지켜만 봤다. 프랑스어로 쓴 것을 읽을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사장님! 내일 오전 8시에 내무장관실로 와달라는 전갈이 왔습니다. 참석 인원은 사장님과 저, 그리고 실무진 5명 이내로 한정한다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아, 물론이야. 당연하지.”
사장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임원들 역시 환한 웃음을 지었다. 회사의 성과가 좋으면 더 많은 보너스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이곳은 뇌물이 만연한 곳입니다. 내무장관의 마음에 들 만한 물건을 혹시 준비하셨는지요?”
“마음에 들 물건……?”
사장은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그 생각을 미처 못 했네. 워낙 급히 서둘러서 오는 바람에……. 이제라도 준비하면 되지? 그나저나 뭘 준비하면 되겠는가? 이곳에도 백화점은 있지?”
“있기야 있지만 평범한 것으론 마음에 차지 않을 텐데……. 지사장님, 혹시 좋은 생각 있으신가요?”
“나……?”
느닷없는 말에 이춘만 과장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얼마 전 통관해 온 텔레비전 가운데 이 과장 본인이 사용하려고 들여온 것이 있다.
이 과장 입장에서 콩고민주공화국은 유배지나 마찬가지이다. 행동에 제약이 없기는 하나 아무것도 재미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고심 끝에 본인을 위한 선물을 사기로 했다.
LG전자에서 만든 3D Full HD 65인치 LED 스마트 텔레비전이 그것이다. 영화 감상을 좋아하기에 DVD 플레이어와 써라운드 스피커 세트까지 갖췄다. 그리고 고장 나면 A/S 받는 것이 어려워 3D 전용안경 네 개를 추가로 더 구한 것이다.
그런데 이 과장은 그간 바쁜 일이 많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본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이것저것 지시를 했다. 게다가 기술진들이 들어오면 묵을 호텔도 알아봐야 했고, 음식과 음료까지 신경 써야 했다.
하여 아직 포장조차 뜯지 못한 채 곱게 모셔놓고 있다.
“사장님, 마침 제게 포장도 뜯지 않은 텔레비전 한 세트가 있습니다. 그거면 어떨까요?”
“그거 좋습니다. 여긴 우리나라 가전업체들의 활동이 미미하여 최신형 텔레비전이 없는 곳입니다.”
“네, 아마 받으면 되게 좋아할 겁니다.”
현수와 이 과장은 시선을 마주치며 빙그레 웃었다. 죽이 척척 맞았기 때문이다. 사장도 이견은 없는 듯하다.
“그런가? 그렇다면 그게 좋겠군. 이 과장의 그 텔레비전 세트로 하지. 귀국하면 그거와 똑같은 걸로… 아니, 그거보다 훨씬 더 좋은 놈으로 부쳐주겠네.”
“네, 그렇게 하십시오.”
이렇게 해서 내무장관에게 줄 선물 준비가 마쳐졌다.
사장 입장에선 뭔가 이가 딱딱 맞물려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다시 말해 만사가 순조롭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오늘 저녁은 내가 사겠네. 이 과장, 여기서 제일 괜찮은 곳으로 안내하게.”
“알겠습니다.”
지사로 되돌아 온 현수와 이 과장은 텔레비전 세트를 잘 포장해서 차에 실어두었다.
“고맙네.”
“네? 뭐가요?”
“자네 혼자 다 한 일인데 내가 꼽사리 껴서 자네 공을 뺏는 거 같아서 하는 말이네.”
“아! 그거요? 이 과장님 공이 왜 없습니까? 그날 거기까지 절 데려가 주신 분이시잖아요.”
“그렇긴 해도……. 그거야 내 볼일 보러 가다 그런 거잖아.”
“그래도 데려다 주신 것은 맞잖아요.”
“자네에게 미안해서 그래.”
“에이, 괜찮아요. 지사장님! 그리고 이럴 때 진급하셔야죠. 만년 과장이라고 푸념하셨잖아요.”
계면쩍어 하는 것을 보면 이 과장은 양심이 있는 사람인 것이 분명했다. 하여 현수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착한 사람이니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 때문이다.
한국 사회를 예를 들자면 착한 사람보다 나쁜 사람들이 더 잘 사는 경향이 있다. 마음씨 곱지 못한 사람들은 선량한 사람들의 착한 마음을 악용하여 이용해 먹는다.
그렇게 번 돈으로 또 착한 사람들을 고용하고, 그들이 뼈 빠지게 일한 결과의 대부분을 삼킨다.
홍수나 가뭄으로 재난당한 사람들을 돕자는 모금운동을 하면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조금씩 갹출해서 거액을 만든다.
이 돈은 거의 모두 서민들의 얇은 지갑에서 나온 것이다.
반면 돈 많은 이들은 이런 모금운동을 거들떠도 안 본다. 오히려 모금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돈 벌 궁리만 한다.
이는 결코 정의로운 사회의 모습이 아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낡은 집들이 모여 있는 곳을 새롭게 정비하여 살기 좋은 환경으로 만든다는 재건축이나 재개발사업도 그러하다.
사업 의도는 그럴듯하다. 하나 본래 그곳에서 살던 가난한 사람 대부분은 몇 푼 안 되는 보상금을 받고 타지로 살 터를 찾아 떠나야 한다. 새 아파트를 소유하기 위한 추가 부담 금액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떠난 곳엔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욕심 사나운 놈들만 남는다. 그리곤 한 푼이라도 더 이득을 보려고 우글거리는 소굴로 변모한다.
본래의 그럴듯하던 취지는 사라지고 오로지 금전적 이득만 추구하는 추악한 재개발 또는 재건축사업이 되는 것이다.
이 과장이 킨샤사에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악랄한 놈들의 음모에 놀아난 것이다.
천재지변에 가까운 일 때문에 생긴 사고를 빌미로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으로 보낸 놈들이 있다. 자신은 가기 싫고, 남은 가도 된다는 못된 심보의 소유자들이다.
이용당한 이 과장은 세상을 선량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간의 대화만으로도 충분히 짐작된다.
그러니 이젠 복을 받아도 된다. 그렇기에 적극적으로 이춘만 과장의 공을 부풀린 것이다.
“고맙네. 자네의 은혜 잊지 않겠네.”
“은혜라니요. 말씀이 과하십니다. 별일도 아닌데요. 아무튼 이거 내일까지 잘 보관하세요.”
“물론이네.”
저녁나절 현수와 이 과장은 사장이 베푸는 리셉션3)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둘의 공에 대해 칭찬을 했으며 계약이 확정될 경우 진급 및 포상할 것이란 약속을 받았다.
현수는 두 계급 특진하여 과장이 되고, 이춘만 과장은 꿈에도 그리던 차장으로 진급하게 될 것이란 언급을 들었다.
현수에겐 보너스 2,000%가, 이 지사장에겐 1,000%의 보너스가 주어질 것이란 말도 있었다.
세운 공에 비하면 너무 작은 돈이지만 어쩌겠는가!
월급쟁이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라는 위로를 들었다. 물론 이 과장이 한 말이다.
* * *
“안녕하십니까, 장관님! 이쪽은 저희 회사 사장님이신 신형섭 대표이사입니다. 이쪽은 기술진 대표이신 박준태 전무이사이고, 이쪽은 토목관련 기술…….”
현수의 소개에 따라 차례로 인사를 했다.
내무장관의 곁에는 차관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배석해 있었다. 곧이어 댐 및 수력발전 건설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이날 내려진 결론은 내일 중으로 MOU 체결을 하자는 것이다. 연후에 댐과 수력발전소가 자리 잡을 곳을 실사한 후 구체적인 공사비 흥정을 하게 될 것이다.
차관 등을 내보내고 장관과 사장, 그리고 현수만 남았을 때 가에탄 카구지 내무장관이 대놓고 이야기한다.
“내가 이 공사를 천지건설에 일임하려는 것은 귀사의 사원인 김현수 씨의 희생정신과 정직한 자세를 높이 산 때문입니다. 사원이 이러하니 회사 또한 제대로 되었을 것이란 신뢰가 생긴 거지요.”
장관의 말에 사장은 허리를 곧추 세우고 귀를 기울였다.
“따라서 귀사에서 공사를 하게 되겠지만 국내 사정이 그리 좋지 않으니 최대한 절약하는 공사가 되도록 하여주십시오.”
현수가 장관의 말을 통역하자 사장이 깊숙이 고개 숙인다.
“물론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회사를 선택해 주신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은 상기된 얼굴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의 내무장관이자 실세인 가에탄 카구지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공사를 주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