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다만 공사비가 부풀려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한다. 세상에 이런 공사가 어디에 있는가!
기업의 수장으로서 신형섭 대표이사는 솟구치는 환희를 느끼고 있다. 하여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던 것이다.
국제 관례를 보면 MOU를 체결했다가도 어그러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따라서 양해 각서를 작성한다 하더라도 마냥 안심만 할 것은 결코 아니다.
하여 지극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왔다. 그런데 현장에 와보니 이건 아예 MOU도 필요없는 상황이다.
형이 건설사 하는 동생에게 모든 일을 일임하고 은행 통장과 도장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
사장은 준비한 텔레비전을 선물로 주었다. 한국에서도 최신형에 속하는 3D 스마트 TV라는 말에 장관은 흡족해했다.
천지건설 기술진들이 이걸 설치하느라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그리곤 준비된 DVD로 입체영화를 보았다.
시연된 것은 하지원이 주연을 한 ‘7광구’라는 영화였다.
장관은 물론이고 차관과 관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물론 실제처럼 너무도 생생한 입체영상 때문이다.
사실 공사 규모에 비하면 너무도 약소한 선물이다. 하나 장관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다음날,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MOU가 체결되었다. 신형섭 사장은 가슴 벅찬 기쁨을 나누려 다시 한 번 리셉션을 베풀었다.
이번엔 전과 달리 매우 성대했다. 주 콩고민주공화국 대사와 교민들까지 모두 초대한 때문이다.
교민이라고 해봤자 다 해서 150여 명뿐인 곳이다.
이런 척박한 곳에서 무려 3조 7천억 원짜리 공사에 대한 우선협상 대상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모두가 놀랐다.
사실 그 공사는 지금껏 지나가 공을 들이던 것이다.
많은 뇌물이 오갔고, 많은 비밀스런 접촉이 있었다.
하여 외교가에선 공공연하게 지나의 수주가 거의 확실하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렇기에 최대 경쟁자였던 벨기에 최고의 건설사인 시베트라가 공공연하게 손을 떼겠다는 발표를 했던 것이다.
사실 천지건설은 그동안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전격적으로 우선협상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하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호텔에서 리셉션이 벌어지는 동안 지나 대사관과 지나 건설사의 킨샤사 지부에선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온갖 공을 들여 밥을 지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놈이 뚜껑 열고 날름 집어삼켰으니 어찌 난리가 벌어지지 않겠는가!
즉각 관계자들과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이는 시도로만 그쳤다.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전 같으면 면담 신청만 하면 쪼르르 내려와서 준비해 간 뇌물을 잘도 처먹던 놈들이다.
그런데 관계자 전원이 외근 중이라는 전갈만 있었다.
이곳은 지나가 아무리 강대한 경제대국이 되었다 하더라도 입김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군사력은 물론이고 경제 분야에서도 전혀 힘을 쓸 수 없다. 그렇기에 홀로 분통만 터뜨려야 했다.
결국 리셉션장으로 사람을 파견하여 어찌된 영문인지를 알아보는 게 전부였다. 전후사정을 파악한 지나의 관계자들은 노발대발하며 집기까지 부수는 난동을 부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내무장관은 이미 현수의 사람이 되었다. 현수가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좋게만 해석하려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니 중간 결정권자에게 선을 대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내무장관과의 만남을 시도했다. 어찌된 영문인지를 직접 들어보려는 요량이다. 한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천지건설이 개최한 리셉션장에 내무장관을 비롯하여 내무차관 진저엘 두림바, 내무부 건설국장 조셉 투윙크, 그리고 광업부장관 마틴 카베루루와 광업개발권관리청 뮤판데 청장까지 참석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수행원들도 참석해 있었다.
이번 공사와 관련된 실세 전부가 방문한 것이다. 신형섭 사장은 대단한 영광이라면서 밤늦도록 연회장을 떠나지 않았다.
다음날, 천지건설의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를 했다.
공사를 하게 될 잉가강까지 실사단을 파견하는 것 때문이다.
헬기를 대절하여 쉽게 가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실사를 하려면 진입 도로라든지 자재 운반 과정까지 세심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육상으로 이동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도 위험 사항이 없는지 주변 상황까지 모두 파악하며 가야 한다. 그래야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공사엔 댐과 수력발전소 건설 이외에도 도로 개설, 터널 굴착 등이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울창한 밀림 속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나콘다가 있을 수도 있고, 악어 떼가 습격할지도 모른다.
아예 미지의 생명체로부터 공격받을 수도 있다.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식인종의 습격이 있을 수도 있다.
격론 끝에 일부만 가기로 했다.
그런데 현수도 그 일부에 끼어 있다. 현수가 가야 관료들로부터 최대한의 협조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이다.
이번 탐방에는 건설국장 조셉 투윙크가 동행한다. 그에겐 업무에 협조하라는 내무장관 명령문이 주어지게 될 것이다.
그것을 들이밀면 어디든 업무 협조를 받게 된다. 만일 반군과 조우할 경우 그것을 이용하여 군부를 움직일 수도 있다.
옛날로 치면 암행어사의 마패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결국 콩고민주공화국 쪽의 인사 13명과 천지건설의 기술진 37명, 그리고 현수가 떠나기로 했다.
총인원 51명이다. 차량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제공하기로 했다. 랜드로버 12대와 2.5톤짜리 트럭 6대이다.
트럭엔 각종 기자재와 식량, 그리고 연료와 취사도구, 야영 도구 등이 실린다. 물론 유사시를 대비한 무기도 있다.
분주한 가운데 준비가 진행되었다.
그러는 동안 현수는 내무장관의 집을 방문했다. 초대를 받았던 것이다. 그의 가족 모두 열렬한 환영을 했다.
현수가 좋아서가 아니라 LG 텔레비전 때문이다.
그 자리엔 후조토 쿠아레 킨샤사 경찰청장과 그의 가족들도 있었다. 웃는 낯으로 텔레비전을 가리키며 얼마짜리냐고 묻는다. 어찌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가!
현수는 사장에게 연락하여 경찰청장을 비롯하여 내무차관과 건설국장에게도 적당한 선물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당연하게도 긍정적인 답변이 왔다.
사장의 뜻을 전하자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히 웃는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경찰들의 총수가 되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천진난만한 웃음이었다.
아무튼 그들과 단란한 한때를 보내곤 숙소로 돌아왔다.
삼 일 후, 드디어 대장정의 길을 시작했다.
랜드로버가 앞장서고 트럭이 뒤를 따랐다. 선두 차량엔 콩고민주공화국 인사와 호위를 맡은 군인들이 탔다.
특수훈련을 받은 용사들이라는데 모두 11명이다. 다시 말해 건설국장과 그 비서를 제외한 전원이 군인이다.
현수는 건설국장과 같은 차를 탔다. 그쪽에서 요청한 때문이다. 두 번째 차는 박준태 전무와 일행이다.
처음엔 곧게 뻗은 도로를 이용했다.
비포장이란 것만 빼면 나름대로 괜찮은 여행이었다. 가는 길목마다 마을이 있어 먹고 자는 것도 별 문제가 아니었다.
세세하게 이것저것을 따지며 이동했기에 시간은 제법 많이 걸렸다. 그렇게 닷새를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제대로 된 길도 없는 곳에 당도하였다.
콩고민주공화국 군인들이 앞에서 길을 트고 천지건설 직원들이 조심스럽게 뒤를 따랐다.
각종 기기 및 야영에 필요한 것들까지 한 짐씩 진 채이다.
길은 열렸지만 정글 속의 동물들까지 제거된 것은 아니다.
현수는 일부러 맨 뒤에 섰다. 그리곤 와이드 센스 마법을 펼쳤다. 기감을 넓히자 주변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마법을 유지시킨 채 천천히 움직이면서 반경 500m 이내의 모든 움직임을 살폈다.
그렇게 반나절 정도 이동하였다.
작은 폭포가 있고 계류가 있는 곳에 당도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어 옷을 벗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모두들 땀으로 범벅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미안한 이야기겠지만 현수는 사정이 다르다.
와이드 센스뿐만 아니라 에어로 후레쉬 마법까지 구현시킨 채 뒤를 따랐던 때문이다. 대기의 온도와 습도가 37。와 71%라면 현수가 느끼는 온도와 습도는 19。와 47%이다.
그럼에도 현수 역시 땀은 흘렸다. 경량화 마법을 걸면 될 일이지만 신체 단련을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이다.
5장 괴생명체 모켈레 무벰베
쏴아아아아아!
첨벙, 첨벙! 텀벙, 텀벙!
“와아아. 시원하다! 하하! 하하하!”
“어휴! 이제 좀 살 것 같네. 안 그런가?”
폭포 쏟아지는 소리와 물장구치는 소리, 그리고 시원함을 말로 표현하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기분이 좋아진다.
하여 가늘게 눈을 뜨고 나무 등걸에 등을 기댔다. 그리곤 와이드 센스 마법을 거뒀다. 지금껏 별 이상이 없었기에 긴장이 풀린 것이다. 그렇게 5분쯤 지났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다.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사실 이 소리는 평범한 사람은 결코 들을 수 없는 소리이다. 너무도 먼 곳에서 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수가 소리를 감지한 것은 이동하는 내내 와이드 센스 마법을 구현시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오감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까닭이다.
푸슈! 푸슈! 푸슈!
“아악! 끄으윽!”
“헉! 뭐야?”
갑작스런 비명 소리에 화들짝 놀라 와이드 센스를 구현시켰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여 얼른 귀를 기울였다. 또 소리가 들린다.
푸슈! 푸슈!
“아아악!”
“이런……! 퍼퍽트 트랜스페어런시!”
누군가가 저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황급히 투명화 마법을 구현시켰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사방을 살폈다.
하나 반경 500m 이내엔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그러는 사이에도 이상한 소리는 이어졌다.
푸슈! 푸슈! 푸슈!
“크윽! 아악! 아아악!”
“이건 분명 소음기를 단 총이야. 어디지?”
500m 이내에 생명체가 없다는 것은 그 너머 어딘가에 저격병이 있다는 뜻이다.
대인저격총엔 여러 종류가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러시아제 반자동 저격소총인 드라구노프 SVD(Sniperskaya Vintovka Dragunova)이다.
최대 유효 사거리가 1,000m이다.
캐나다의 저격소총 PGW C14 Timberwolf도 유효 사거리가 1,500m에 이른다.
미국이 내놓은 최신형 저격총 Savage 110 BA의 최대 유효 사거리는 1,500m이다. Baret M82는 대인 저격시 1,500m, 대물 저격시 2,000m 유효 사거리를 가진다.
세계 최고의 명중률과 초장거리를 지닌 저격총을 꼽으라면 체이탁 M―20을 빼놓을 수 없다.
저격수를 잡는 저격총이라 불리는 이것엔 탄도계산용 PDA까지 달려 있다. 이것이 있기에 현장에서 기온, 습도, 거리, 풍속, 발사 속도를 자동으로 측정할 수 있다.
최대 2,270m 밖의 목표물을 명중시킬 수 있다.
현수는 상대가 장거리 저격소총을 사용하고 있다면 와이드 센스 마법으로는 감지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여 즉시 와이드 센스 마법을 중지하였다.
“마나여, 내 몸을 띄워라. 플라이!”
보이지 않는 현수의 신형이 둥실하고 허공으로 떠오른다.
그러는 사이에 콩고민주공화국 군인과 천지건설 직원들은 저마다 은폐와 엄폐를 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인다.
짧은 시간이건만 벌써 여섯 명이나 당했다. 셋은 즉사, 셋은 중상이다. 현수는 컴플리트 힐 마법을 쓰려다가 멈췄다.
그럴 경우 마나가 바닥나게 된다. 그럼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마법을 구현시킬 수 없다. 본인도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다.
그 이유만으로 힐 마법을 쓰지 않은 것만은 아니다.
지금도 계속되는 저격을 멈추지 않으면 더 많은 희생자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마나를 아낀 것이다.
아래를 살펴보니 사망자야 어쩔 수 없지만 부상자들은 남은 인원들이 나름대로 구호활동을 하고 있다.
“어떤 개새끼가……!”
눈에 뜨이기만 하면 갈아 마시겠다는 생각이 든 현수는 주변을 선회하며 아래의 상황을 살폈다.
그런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저격병 교육을 받았기에 저격병들의 습성을 알지만 이곳은 낯선 곳이다.
한국에서 배운 교범 내용을 적용시키기 힘든 곳이다.
그렇기에 통상적인 방법으로 저격수를 찾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마나 디텍션!”
이제 조금이라도 마나를 가진 것이 있다면 분명 감지될 것이다. 모든 생명체엔 마나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많고 적은 차이만 있을 것이다.
그렇게 두 가지 마법을 구현시키고 허공을 날아다닌 것만 거의 10분이다.
반경 1㎞를 샅샅이 뒤졌지만 작은 뱀 같은 것 이외엔 아무것도 없다. 하여 현장으로부터 1.5㎞ 떨어진 곳도 살폈다.
그곳 역시 아무것도 없다.
현수는 마나가 점차 고갈됨을 느끼고 속력을 높였다. 이번엔 현장으로부터 2㎞나 떨어진 곳이다.
이러는 사이에 저격수는 수많은 총탄으로 저격을 시도했다. 하나 상대는 위험을 감지하고 바위 뒤 등으로 피신한 상태이다. 여의치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추가로 2명이 사망했고, 3명이 더 부상당했다.
“대체 어떤 개새끼가……! 응? 이건……!”
사고 현장으로부터 2㎞ 부근을 뒤지던 현수의 감각에 이상한 것이 잡힌다. 그런데 사람의 크기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