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60화 (60/1,307)

# 60

오랜 기간 행정업무를 해서인지 일사천리이다.

일단 가져온 짐 가운데 텐트와 취사도구 등을 동굴 안으로 운반했다. 하나의 텐트를 둘씩 쓰는 것으로 했다. 하나 원하는 사람에겐 혼자서 텐트를 쓰도록 했다. 넉넉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곤 콩고민주공화국 군인들이 남겨놓고 간 총을 배분하였다. 각자에게 총기가 주어진 것이다.

대한민국의 최고위 정치인 가운데 하나인 어떤 골빈 놈이 기자들을 잔뜩 대동하곤 전방 시찰을 나가 폼을 잡았다.

전방 초소에 거치된 총을 쏘는 시늉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 골빈 놈은 군대를 다녀온 적이 없다.

그렇기에 개머리판 뒤에 눈을 대고, 손은 방아쇠 뒤쪽에 어중간하게 놓여 있는 사진을 찍히게 되었다.

이 사진은 즉시 인터넷을 떠돌았고,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총을 만져보지도 못한 놈이라는 극명한 자료인 것이다.

이런 놈이 정치를 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이 개판이라는 이야기가 한동안 인구에 회자되었다.

하나 천지건설의 기술진들은 그때의 그 골빈 놈이 아니다. 또한 별 요상한 이유로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놈들이 대단히 많은 썩어빠진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들도 아니다.

전부 현역으로 만기 제대한 예비군 내지는 민방위요원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총을 다룰 줄 안다.

총기와 탄약 지급을 마치곤 조를 짜서 2인 1조로 입구 안쪽에서 경계 근무를 하기로 하였다.

15명이니 7개조가 가동되는 것이다. 효율과 집중을 고려하여 한 번에 2시간씩 경계 근무를 하기로 했다.

하나 현수는 유일하게 이 임무에서 배제되었다. 경계 근무하다 혹시라도 총에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 대접을 받은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현수의 텐트는 동료들의 것보다 훨씬 더 안쪽에 쳐졌다.

혹시라도 저격수들이 난입한다 하더라도 더 이상 저격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기 위함이다.

그 결과 가장 가까이 있는 텐트에서 거의 100m 이상 떨어진 안쪽에 쳤다. 중간이 꺾여 있어 보이지도 않는 곳이다.

게다가 그 사이엔 호수도 있다. 조심스럽게 걷지 않으면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속에 빠지게 된다.

박준태 전무가 정 부장에게 현수의 안위가 최우선이라는 것을 신신당부한 탓에 이런 조치가 취해진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곳에 텐트를 치고 있으면 놀러온 분위기가 나야 한다. 하나 일행은 별다른 이야기 없이 침묵만 지켰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총을 쏘아댄 저격수 때문에 마음이 무거운 것이다.

식사를 마친 후 현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있지도 않은 저격수 때문에 이처럼 위축되어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 때문이다. 하여 정 부장에게 다가갔다.

“저어, 부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뭔데? 말해 보게.”

“우리 모두 군대를 다녀왔습니다. 그러니 이따 밤이 되면 어떤 놈이 총을 쏘았는지 찾아보면 어떨까 싶어서요.”

“그래? 좋은 의견이네. 하나 위험할 수도 있네. 그러니 인원이 보강되면 그때 하는 것은 어떤가? 전무님도 자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셨네.”

표정을 보아하니 절대 허락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자칫 현수에게 어떤 일이라도 벌어지면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기에 이러는 것이다.

이런 눈치를 챘기에 더 이상 의견을 내지 않았다.

“네에,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제 텐트로 가겠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가게. 가다가 물에 빠지지 말고. 그런데 혼자 있어도 무섭지 않겠는가?”

“네, 제가 뭐 어린애도 아니고……. 저 때문에 괜히 사람 보내지 마세요. 아침이 되면 제가 알아서 나오겠습니다.”

“그러겠는가? 그럼 그러게. 근데 말일세…….”

“네, 말씀하십시오.”

“아예 버너랑 취사도구를 가지고 들어가는 건 어떻겠는가?”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전무님이 하도 당부해서 하는 말인데 혹시라도 이곳에도 문제가 발생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그곳에 계속 있게.”

“네에……?”

“킨샤사에서 오는 인원이 도착하면 그때 나오란 말이네.”

“가는 시간, 오는 시간을 따지면 아무리 빨라도 여드레는 걸릴 텐데요?”

가는데 사흘, 오는데 사흘, 그리고 후발대를 꾸리는 데 이틀은 걸리기에 하는 말이다.

“그래, 그러니 팔 일만 혼자서 버텨주면 안 되겠는가?”

“네에? 혼자서 팔 일이나요?”

“그래, 자네에겐 미안하네만 그게 최선인 것 같네. 웬만하면 내 말을 들어주게. 자네 안위가 이번 공사와 직결되어 있지 않은가! 안 그래?”

“네에? 끄응……!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대화 상대도 없이 혼자서 팔 일 동안 있으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답답하고 지루해서 미칠 것이다.

하나 현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가!

그렇기에 순순히 동의한 것이다.

“고맙네. 그리고 미안하네.”

“아니, 아닙니다.”

정 부장은 현수의 안위를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 같아 미안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잠시 후, 현수는 취사도구와 음식 재료들을 챙겨서 자신의 텐트로 향했다.

그것들은 일단 텐트 주변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나직이 중얼거렸다.

“마나여, 내 주위를 환히 밝혀다오. 라이트!”

제법 환한 빛을 내는 지름 15㎝ 정도 되는 구체가 생성되자 동굴 내부가 모두 보인다. 세상에 흔한 그런 동굴이다.

석순과 종류석이 있고, 바닥엔 어딘가에서 솟아낸 맑은 물이 흐른다. 겉보기엔 무공해이고, 1급수인 것 같지만 많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세심히 주변을 살피며 전진한 현수는 동굴 안쪽에 불룩 솟은 바위 위로 올라갔다. 플라이 마법을 쓰지 않는 한 올라설 수 없는 곳이며,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면 보이지도 않을 곳이다.

“좋아, 이 정도면 쓸 만하군.”

주변을 둘러보고는 아공간에 손을 넣었다.

“일단 마나부터 보충해야 해. 그러니 마나 집적진 먼저 꺼내 놓고……. 그래, 이건 되었어.”

마나 집적진 위에 편한 자세로 앉은 다음엔 전능의 팔찌에 마나를 모았다.

“앱솔루트 배리어! 그리고, 타임 딜레이!”

결계가 쳐지고 외부와의 시간비율이 180대 1이 되자 현수는 마나심법을 운용하곤 이내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외부 시간으로 3시간이 조금 넘었을 때 필요로 하는 마나가 모두 모여들었다.

팔찌에 박힌 검은 보석도 둘 다 제 색깔을 찾고 있었다.

“자아, 이제 아르센 대륙으로 가볼까? 참, 여기 온 지 며칠 지났지?”

아직 차원이동의 시간차를 능숙하게 조절할 수 없었기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오늘은 2월 27일이고, 지구에 온 게 2월 16일이었으니까 벌써 11일이나 지났구나.’

참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후춧가루를 가져다준다고 했었지? 올테른의 영주와도 만나야 하니까 아르센 달력으론 2월 4일이나 5일이 되어야 하는군.’

생각을 정리한 현수는 전능의 팔찌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평상시엔 보이지 않던 팔찌가 제 모습을 드러내자 초록색과 파랑색, 그리고 보라색 마나석에 손가락을 얹었다.

“나를 아르센 대륙으로 데려가라. 트랜스퍼 디멘션!”

쉬리리리리링―!

참고:모켈레 무벰베는 2011년 현재 콩고민주공화국의 열대우림 어딘가에 살고있다는 괴생명체입니다. 학자들은 이를 용각아목 공룡의 하나로 여기고 있습니다.

6장 다시 아르센 대륙으로

“여긴……? 테세린의 외곽이 맞군.”

지구로 귀환했던 바로 그 장소에 나타난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흐으으음! 역시 이곳 공기는 너무 상쾌해. 그나저나 조금 춥군.”

아공간에서 자유기사 복장을 꺼내 갈아입고는 얀센에게 주기로 했던 후춧가루를 꺼내 자루에 담았다.

준비를 마치곤 곧장 코찔찔이 세실리아 여관으로 향했다.

“아……! 하인스 기사님, 이제 오십니까?”

“그래, 시간이 좀 걸렸지?”

아직 이곳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를 모르기에 물은 것이다.

“네, 사흘 걸리셨습니다.”

‘이런 하루가 또 틀렸군. 그럼 오늘은 2월 6일인가? 흐음, 나중에 마법서를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구나.’

“잘 다녀오신 거지요?”

현수가 뭔가를 들고 있기는 하나 그것이 그것인지 확인하려 말을 돌린 것이다.

“그럼.”

“참, 그저께 아침에 영주님이신 로니안 자작님의 시종으로부터 전갈이 있었습니다. 언제든 방문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알겠네. 자아, 우선 이거부터 받게.”

어깨에 메고 있던 자루에서 후춧가루를 꺼내 건네주자 얀센은 황송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밖에서 놀던 코찔찔이 세실리아가 들어왔다가 현수를 보고는 반색을 하며 달려들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흘렀다.

삐이꺽―!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제법 근사한 복장을 한 사내가 들어선다. 육십쯤 되어 보이는데 꼬장꼬장한 느낌이 난다.

이때 현수는 세실리아의 이모저모를 살피느라 등을 돌리고 있어 이 사내를 볼 수 없었다.

“이보게, 얀센! 안에 있는가?”

사내의 부름에 얀센이 얼른 튀어나온다.

“네에, 나갑니다요. 아! 우지스 시종님! 오셨습니까?”

“그래, 하인스님이 오셨는가 알아보려 왔네.”

“네, 오셨습죠. 이쪽이 그분이십니다.”

현수가 등을 돌려 우지스 시종이란 사내를 보자 즉각 90도로 허리를 꺾는다.

“안녕하십니까? 소인 우지스라 합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저희 영주이신 로니안 자작님께서 만나 뵙기를 청하셨습니다.”

기왕에 백작 노릇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철저해야 하기에 현수는 자신보다 최소 30살은 더 먹은 시종에게 하대했다.

“흐음, 이곳 영주께서 초청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백작님!”

정중히 허리를 숙이는 로니안 자작의 시종을 본 얀센은 눈을 크게 떴다.

현수가 신묘한 물건을 소지하고 있기에 범상치 않은 신분일 것이라 짐작하곤 있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20대 초반 정도 되는 젊은이가 작위를 가진 귀족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귀족가의 자제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고위 귀족인 백작 본인이라 한다.

그렇기에 입이 한껏 벌어졌다. 보통 손님과 똑같이 대했다면 큰 실수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흠……! 언제까지 가면 되지?”

“밖에 백작님을 모시기 위한 마차가 대기 중에 있습니다. 예복을 갖춰 입으시도록 기다리겠습니다.”

“예복을……?”

“네. 영주님의 가족 모두 참석하시는 정식 오찬입니다.”

“흐으음! 그렇다면…….”

한 번도 귀족 예복을 생각지 못한 현수이기에 당황했다. 하나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네. 그러니 조금 기다리게.”

“알겠사옵니다. 소인은 마차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시종이 물러간 뒤 현수는 얀센의 따가운 시선을 뒤로 하고 자신의 방으로 갔다.

아공간을 뒤져보니 멀린 아드리안 반 나이젤 후작의 예복이 있다. 그런데 조금 크다. 누가 봐도 남의 옷이라 할 정도로 큰 옷이다. 멀린이 한때 되게 뚱뚱했었던 듯하다.

“흐음……! 리덕션(Reduction)! 어라! 너무 줄였나? 조금 늘려야지. 인라지(Enlarge)! 에구! 너무 늘었다. 다시 리덕션! 으음, 인라지! 젠장, 다시 리덕션! 흐음, 이 정도면…….”

드디어 적당한 크기가 되어 걸쳐도 될 듯하다. 하여 팔을 끼우던 중 중얼거렸다.

“에구, 냄새가 좀 나는군. 이 양반 옷 좀 빨아 입지. 하긴……. 크린징(Cleansing)! 어라, 그래도 냄새가 안 빠져? 그렇담 좋아. 페브리즈를 어디다 두었더라?”

예복의 냄새를 제거한 현수가 방을 나왔다.

“후와아……!”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현수를 본 얀센의 눈은 커졌다.

왕국도 아니고 제국의 후작이 걸치던 예복이다.

어찌 화려하지 않겠는가!

앞 가슴단추는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초록색 에메랄드이고, 견장 위의 보석은 파란색 사파이어이다.

게다가 휘장은 금과 은으로 만든 실로 엮여 있다.

“대단하십시다. 백작님!”

얀센은 새삼 허리를 꺾어 예를 올렸다.

현수는 기호지세가 되었는지라 짐짓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당으로 나섰다.

허름한 여관에서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예복을 걸친 준수한 청년이 나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린다.

현수를 기다리던 로니안 자작의 시종 역시 눈을 크게 뜬다.

귀족가에서 평생을 보냈지만 이처럼 화려한 예복은 생전 처음 보기 때문이다.

이 예복 하나만으로도 현수가 백작이 아닐 것이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백작님! 소인이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마차는 제법 안락했다. 다른 영지와 달리 이곳은 항구가 있다. 자연히 드나드는 사람이 많고, 상행위도 많이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길이 잘 닦여 있어 덜컹거리지 않았다.

“로니안 자작은 어떤 인물이신가?”

“네, 저희 영주님은 인자하신 인품과 고매한 학식, 그리고 격식 따지는 귀족으로서 미판테 왕국에서도 손꼽히는 귀족이십니다.”

“그래……? 가족 사항은?”

현수의 말에 시종은 깍듯한 존대를 한다.

“네, 부인과 아드님 두 분, 그리고 따님이 한 분 계십니다.”

“흐음, 그래……? 부인의 취미는 뭔가?”

“네, 마님께서는 미용에 각별한 취미를 가지고 계십니다.”

가는 동안 로니안 자작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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