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귀하디귀한 미스릴도 미스릴이지만 내 생전에 저토록 맑은 거울은 처음 봅니다. 아마 우리 왕궁에도 저런 진귀한 물건은 없을 겁니다.”
“네에, 이 거울 정말 좋네요. 어머, 어머! 내 얼굴에 이런 잡티가 있었어? 어머, 이 눈가의 주름! 꺄악……! 주름이라니?”
눈가의 주름을 확실하게 확인한 세실리아 자작부인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자글자글한지는 몰랐던 것이다.
“부인, 아까 드린 그걸 한번 발라 보시지요.”
“아, 그거요? 잠시만요.”
세실리아는 손수건에 감쌌던 이자녹스 링클 디클라인 엠엑스 280을 눈곱만큼 짜서 발랐다.
그리곤 거울을 뚫어져라고 바라본다.
“어머! 어머! 이 정도라니……!”
효과 만점이다. 하긴 화장품이란 것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피부이니 얼마나 효능이 좋겠는가!
“정말 고맙습니다. 백작님!”
로니안 자작은 아내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오르자 따라 웃으며 사의를 표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로잘린! 넌 아침에 눈을 뜨면 즉시 하인스 상점으로 가서 하루 종일 장부 정리를 하도록 해라. 알았지?”
“네에, 아빠!”
로잘린은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천사의 웃음이다.
“로잘린 영애, 상점의 문은 며칠 후에나 열릴 것이니 내일 아침엔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에, 언제든 기별만 넣어주시면 출근토록 하겠습니다.”
치마의 양쪽을 잡고 정중히 허리 숙여 인사하는 로잘린은 너무도 아름다워 보였다.
“백작님, 가셨던 일은 잘 되셨습니까?”
얀센의 물음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니안 자작이 상점으로 쓸 건물을 제공해 주기로 했네. 아울러 로잘린 양이 서기로 근무하기로 했고.”
“네에……? 영주님의 영애께서 상점에서 근무를 한다고요?”
얀센은 더 이상 놀랄 수 없다는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귀족의 영애가 어찌 그런 일을 하려 하겠는가!
아르센 대륙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놀랄 일이다. 하나 현수는 태연자약하다.
“그렇네. 그래서 취급 품목을 조금 늘려야겠어.”
“품목을 늘린다 하심은……?”
“우선은 이, 벼룩, 빈대를 구제할 연막탄을 팔아야겠네.”
“네에……? 연막탄이라니요? 그게 뭡니까?”
“흐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였으니 자네 부부의 방으로 가세. 안내하게.”
“네. 이쪽으로…….”
현수는 얀센 부부 방에 많은 이와 벼룩, 그리고 빈대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곤 모든 구멍을 막게 하고 연막탄을 터뜨렸다.
두어 시간이 지난 후, 방에 들어간 얀센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엄청난 수효의 벌레들이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빈대, 그리고 벼룩뿐만 아니라 바퀴벌레, 그리마, 쥐며느리까지 죽어 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집 먼지 진드기나 좀도 대부분 죽었을 것이다.
심지어 쥐까지 2마리나 죽어 있었다. 이곳 벌레나 짐승들에겐 연막탄이 너무 강력했던 모양이다.
환기를 마치고 사용하던 이불 등을 세탁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세탁비누 한 장과 락스 약간이 제공되었다.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제공된 것은 섬유유연제 샤프란이다. 너무도 향기로워 얀센의 부인은 이 물을 마시려고까지 했다.
세탁과 청소를 마친 둘은 세실리아와 마찬가지로 거품입욕제를 넣은 욕조에 들어가 때를 불리고 씻도록 했다.
장사하느라 바빠 몇 달 동안 목욕을 못해서 그런지 꽤 오랜 시간 동안 목욕을 했다.
오늘 하루 세실리아 여관이 휴업한다는 쪽지를 붙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문을 두들겼다.
글을 읽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현수의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투덜거리면서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얀센 부부는 감사의 인사를 수십 번이나 했다. 이날 이후 현수는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다음날, 테세린의 시가지를 구경하면서 여러 풍문들을 들어보았다. 케이상단의 알론이 소문을 잘 내주었기에 세 왕국의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아드리안 공국의 위기가 원천적으로 제거되진 않았지만 상당한 시간을 벌었다 판단하였기에 아르센 대륙의 이모저모를 알기 위한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 여러 가지를 파악하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도둑 길드와 정보 길드, 그리고 어쌔신 길드에 관한 것이다.
돈만 주면 어떤 일이든 해준다는 이들에 대한 선입견은 그리 좋지 못하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과 돈 받고 생판 모르는 사람을 죽여주는 어쌔신을 어찌 좋게 보겠는가!
하나 아무런 기반도 없는 당장엔 이들을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여 연줄을 만들기 위한 행보를 했으나 마땅하지 않았다.
아르센 대륙으로 온 지 4일째 되는 날 현수는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 부장이 자신의 텐트로 사람을 보내다가 없는 걸 알면 난리가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에이, 언제쯤이면 편한 마음으로 오갈 수 있을까? 여기가 훨씬 좋은데. 제기랄……!”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 속에 있다가 후텁지근한 곳으로 가려니 내키지 않았다. 하나 어쩌겠는가!
삶의 기반은 지구에 있다. 부모와 친척, 그리고 친구와 회사 동료들이 있는 지구를 외면할 수는 없다.
적당한 곳에 결계를 치고 들어앉아 마나를 모았다. 확실히 지구보다 빨리 마나가 집적된다.
“가기 싫지만 어쩔 수 없지. 지구로 가자. 이번엔 3월 3일에 데려다 줘. 트랜스퍼 디멘션!”
쉬리리리리리링 !
8장 괴물 사냥
“역시……!”
동굴 안이라 밖과 달리 온도가 낮아 시원하기는 하다. 하나 습도가 너무 높다.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현수가 나직이 투덜거리는 바로 그 순간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가 소리친다.
“김현수 씨! 김현수 씨! 어디 있어요?”
“네, 저 여기 있습니다.”
“어서 나오세요. 후발대가 와서 이제 나와도 된답니다.”
“네에, 알겠습니다.”
‘역시 예감이 무섭군.’
조금만 늦었어도 대대적인 수색 작업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상하게 맞아떨어지는 예지 능력에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하나 이는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7서클 마스터 이상만 가질 수 있다는 고도의 감지 능력을 저도 모르게 얻은 때문이다. 마스터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그 능력의 20분의 1도 쓰지 못한다. 하나 마법이 보다 능숙해지면 차츰 늘어나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현수는 텐트를 걷고, 취사도구를 챙겼다. 남은 식량은 아공간에 넣었다. 그리곤 밖으로 나왔다.
정 부장이 기다리고 있다 한 걸음에 다가온다.
“혼자 있게 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제 안위를 위해 배려해 주신 건데요. 그나저나 놈들은 어찌되었습니까?”
“글쎄, 아무 일도 없어서 오히려 싱거웠네.”
“다행입니다.”
“김현수 씨!”
“아니, 사장님! 사장님께서 어떻게 여길…….”
박준태 전무는 킨샤사에 남고 신형섭 사장이 온 것이다.
“사장인 내가 왔어야 하는데 직원들만 보내 마음에 걸렸었네. 한데 이런 일이 있어서……. 지금부턴 내가 앞장서겠네.”
“……!”
“자자, 이제 힘내서 다시 출발합시다.”
“네에.”
동굴 밖으로 나온 일행은 어마어마한 인원에 깜짝 놀랐다. 내무장관의 특별 지시로 일개 대대 병력이 온 것이다.
11명의 호위 병력이 갑자기 600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개인별 소화기는 물론이고, MG―50 같은 경기관총도 보인다. 대대장인 듯한 사내가 나와서 말을 했다.
“Ne vous inquiétez pas `a ce sujet. Vous serez responsable de notre sécurité”
한국인에겐 다소 생소한 프랑스어이다. 당연히 모두의 시선이 현수에게 쏠리자 이를 통역하였다.
“걱정마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안위는 우리가 책임집니다.”
“Si quelqu’un nous attaque, ménera une tournée d’enfer.”
“누구든 우리를 공격하면 지옥을 구경하게 해주겠습니다.”
“Alors s’il vous plaît nous le faire croire.”
“그러니 우릴 믿어주십시오.”
대대장의 말이 끝나자 신형섭 사장이 입을 연다.
“김현수 씨!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잘 부탁한다는 말도 해주게.”
“알겠습니다.”
“Je vous remercie. Je l’apprécie.”
현수의 말에 대대장이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일행이 대화하는 동안 콩고민주공화국의 인원들은 숲을 샅샅이 뒤졌다. 하나 아무런 흔적도 없다.
저격수들이 사용한 총기는 현수의 아공간에 들어 있고, 두 놈의 시체는 벌써 짐승들의 밥이 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울창한 밀림을 헤치며 힘겨운 행군을 시작하자 등에서 땀이 샘솟듯 솟는다.
신형섭 사장은 진짜 모범을 보이려는지 행군의 맨 앞에 있다. 반면 현수는 콩고민주공화국 군인들로 완전히 둘러싸인 채 움직이는 중이다.
“이 근처에 모켈레 무벰베가 산다고 들었는데 자넨 아는가?”
“그래? 여기가 거기야?”
“그래, 그놈 안 만나야 하는데…….”
“으으, 말하지 말게. 말만 들어도 무섭네.”
“그러게 말일세. 나도 왠지 오싹하는데 기분이 이상하네.”
이들의 대화를 듣던 현수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 물었다.
“저어, 모켈레 무벰베라는 게 뭡니까?”
“그건 이 근처에 산다는 괴물의 이름입니다.”
“괴물이요?”
“그렇습니다. 머리와 꼬리를 뺀 몸통 길이만 따져도 15m가 넘는 엄청나게 큰 괴물이라고 합니다.”
“그놈이 마을 하나를 완전히 작살 냈다는 소문도 있었죠.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고 합니다.”
“놈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걸 무척 싫어한다고 합니다.”
딱 한 마디 물었을 뿐인데 수많은 정보가 입력된다. 이들의 말을 종합한 현수의 뇌리로 영상 하나가 떠오른다.
중생대에 번성하다 어느 순간 멸망당했다는 공룡이다.
‘여기에 공룡 살아남은 놈이 있단 말인가? 하긴 이곳 정글은 중생대의 생활환경과 비슷한 곳이니 없다고 단정할 순 없지.’
현수가 상념에 잠겨 있을 때 콩고민주공화국의 군인들이 새삼스런 눈으로 바라본다. 동양 사람들은 거의 모르는 스와힐리어로 대화를 했기 때문이다.
“우린 놈의 영역을 절대 침범해선 안 됩니다. 만일 그랬다가 놈이 공격을 하게 되면 많은 희생이 발생될 겁니다.”
“그래요? 우리 쪽 인원이 많은데도 그렇습니까?
“네, 아주 무서운 괴물입니다.”
총을 가진 군인이건만 극도의 두려움 내지는 공포심을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토속신앙의 영향인 듯하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놈의 영역이라는 걸 어떻게 알죠?”
“나무를 보면 됩니다. 놈은 목이 길어서 높은 곳의 잎사귀도 먹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 나무처럼 키가 큰 나무의……. 허억! 저, 저건……? 이, 이보게, 저, 저길 보게!”
“으헉! 저, 저건… 모켈레 무벰베의……! 지, 지금 우리가 놈의 영역에 들어온 거야? 크, 큰일이다.”
손가락으로 어떤 나무를 가리키던 군인과 그 곁에 있던 자의 몸이 눈에 뜨이게 떨리고 있다.
불과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공포가 엄습한 때문일 것이다. 곧이어 콩고민주공화국 병력 전체에 이러한 반응이 번져 갔다.
모켈레 무벰베의 흔적을 보는 것과 동시에 멈칫하고는 달달 떨었다. 몇 발자국이나 떨어진 곳에 있어도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이다.
총을 가진 군인이라고 할 수 없는 모습이다.
“김현수 씨! 이 사람들 왜 이러는 건가? 왜 잘 가다가 딱 멈춰 서서 사방을 훑어보는 거지?”
“혹시 근처에 반군 기지라도 있는 거 아닙니까?”
신형섭 사장과 정 부장의 말에 현수는 사실을 이야기할까 말까 망설였다. 한국에서 온 기술진에게 이곳에 공룡이 있다고 말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하기 때문이다.
“글쎄요? 한번 물어는 볼게요. Pourquoi ne pas apparu depuis le monstre?”
괴물이 나타난 것도 아닌데 왜 이러느냐고 물은 것이다.
“우, 우린 이제 다 죽었어. 여긴 놈의 영역이야. 빠,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해. 그런데 어느 곳이 놈의 영역 밖으로 나가는지를 모르겠어.”
“그럼 우리가 지금 놈의 영역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고 있는 거일 수도 있잖아? 그, 그럼 우리 어떻게 하지?”
완전히 겁에 질린 표정이다. 조금만 더 겁을 주면 아예 오줌까지 질질 쌀 판이다.
“우리에게도 총을 줘라. 놈이 나타나면 같이 싸워주마.”
“마, 말은 고맙다. 하, 하지만 놈을 죽이진 못할 거야. 소문에 의하면 총으론 어림도 없는 놈이라고 들었어.”
살아 있는 생명체에 총이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근거없는 소문을 그대로 믿는 모양이다.
그러니 이렇게 겁을 먹고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대체 뭐라고 하는 건가?”
“근처에 정체불명의 괴생명체가 있다고 합니다. 그놈이 무서워서 떠는 겁니다.”
“괴생명체라니……?”
“이 사람들 이야길 종합해 보면 중생대에 살았던 공룡의 일종인 듯합니다.”
“뭐어? 공룡……? 하하, 말도 안 돼! 공룡이 멸망한 지 얼마인데. 안 그런가?”
“그렇긴 한데……. 네시8)도 있잖습니까?”
정 부장의 말에 사장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