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65화 (65/1,307)

# 65

“그거 사진 조작이라고 들었는데 아닌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도 있긴 했습니다.”

자신감있는 대답은 아니었다.

“허어, 참……! 21세기에 공룡이라니?”

현수의 이야기를 들은 한국인들은 하나같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어제꼈다.

반면 콩고민주공화국의 군인들은 모두 덜덜 떨고 있었다. 그냥 놔두면 모든 걸 포기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을 판이다.

“사장님, 이대론 안 되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우리가 이들을 인솔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 부장의 말에 신형섭 사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흐음, 그런 듯하군. 한데 누가 앞장서겠는가?”

“제가 앞장서지요.”

사장의 말에 한 발짝 앞으로 나온 사람은 현수이다.

“자네가……? 자넨 안 되네.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어찌 말속에 담겨 있는 뜻을 모르겠는가!

그렇다 하여 다른 사람에게 위험한 일을 맡겨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도 모르지만 자신이 이들 중 가장 강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단호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사장님! 저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목숨은 소중한 겁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전 특수부대 출신입니다.”

“특수부대? 자네가……?”

사장은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라는 듯 반문한다.

인사기록 병역란에 적혀 있기엔 육군 만기 제대라 쓰여 있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네, 대한민국에서도 몇 되지 않은 특수부대 출신입니다.”

“오……! 자네가……?”

“네, 그러니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사장은 특수부대라는 말에 특전사라 불리던 공수특전대를 생각했다. 곁에 있던 정 부장은 북파공작원을 양성한 HID 출신이 아닌가 생각했다. 해군 출신은 UDT를 생각했고, 공군 출신은 CCT를 떠올렸다.

현수는 국방과학연구소 소화기개발팀이라는 진짜 특수부대를 제대했다. 사병이라곤 사격 특기자 2명뿐인 특수부대 중의 특수부대인 것 맞다.

그전에 있던 부대는 27사단 이기자 부대의 수색대였다. 당연히 보통의 육군보다는 조금 고된 훈련을 받기는 했다.

어쨌거나 특수부대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선두에 현수가 서고 한참 뒤를 오뚜기 부대 출신인 정 부장이 따르기로 했다. 신형섭 사장과 일행은 그 뒤를 따른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겁에 질린 콩고민주공화국 군인들이 따르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이의 제기를 한다.

자신들이 신형섭 사장 일행보다 앞에 가게 해달라는 것이다. 맨 뒤를 따르다 공격당할까 두렵다는 것이다.

결국 그들의 뜻대로 하였다.

선두인 현수는 정 부장보다 훨씬 앞서 밀림을 헤치며 나아갔다. 단독으로 척후 노릇을 한 것이다.

이런 이유는 일행을 안전한 곳으로 이끌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을 때마다 플라이 마법을 써서 주변을 살폈다.

군대에 있는 동안 배운 독도법9)을 활용하니 길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행이 비교적 안전하다 판단되는 곳에 당도한 것은 해가 뉘엿뉘엿 지려는 무렵이었다.

“정말 수고했네.”

“네에. 감사합니다.”

사장의 치사에 겸양을 부리진 않았다. 긴 말 하고 싶지 않음이다. 이는 피곤해서가 아니다.

이곳에 당도하기 전 플라이 마법으로 사방을 살필 때 모켈레 무벰베라는 놈을 본 듯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곳에서 야영을 하시죠.”

“그러겠네.”

이제 상황을 주도하는 것은 콩고민주공화국의 군인들이 아니다. 한국인들이 나서서 그들을 다독여서 이곳까지 왔다.

오는 동안 별다른 사건이 없어서인지 공포로부터 상당히 많이 풀려난 듯하다. 하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한국인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정 부장이 나서서 경계 근무자들을 배치했다.

여섯 방위 중 하나를 맡아 경계를 서는 것이다. 콩고민주공화국 군인들도 여섯으로 나눠 배치하였다.

그리곤 식사 준비를 했다. 부산한 움직임이 계속되는 동안 현수는 슬그머니 일어섰다. 그리곤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어디 어떤 놈인지 구경이나 한번 해볼까?’

“퍼텍트 트랜스페어런시! 플라이!”

투명 마법과 비행 마법을 동시에 구현시키고는 아까 보았던 곳으로 날아갔다. 일행이 야영하려는 곳으로부터 적어도 3㎞ 이상 떨어진 곳이다.

‘어라? 웬 연기지?’

한참을 날아가는데 앞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런 밀림 속에도 마을이 있나?’

의아한 표정을 지은 현수가 허공에서 몸을 세웠다.

캬아앙! 크르르르응! 캬아아웅! 크르르릉!

우지직! 빠각! 빠지지직! 콰당탕탕! 와르르르! 쿠웅!

“아악! 케엑! 끄윽! 으아악! 켁!”

목불인견이란 말은 이런 때 쓰는 것이 합당하다는 예를 보여주는 듯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 군인들의 말처럼 머리에서 꼬리까지 길이가 30m쯤 되는 괴물 한 마리가 난동을 부리고 있다.

거대한 덩치 아래엔 놈의 무자비한 공격을 피해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사람들이 보인다.

바닥엔 배가 터져 죽은 사람, 두개골이 깨져 허연 뇌수가 터져 나온 사람들이 즐비하였다. 대강 훑어봐도 30명이 넘는다.

희생자의 대부분 노인이거나 연약한 여인들이다. 바라보는 순간 또 하나의 사람이 놈에게 밟혀서 죽는다.

빠각!

두개골 깨지는 소리이다.

“뭐야? 이런 쳐죽일……!”

현수는 얼른 땅으로 내려섰다.

두 가지 마법을 구현시키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마법을 삼중으로 구현시키기엔 마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만일 이곳이 아르센 대륙이었다면 어쩌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나 이곳은 마나가 희박한 지구이다.

그렇기에 남아 있는 마나로 놈을 제압하려 마법을 푼 것이다.

그리곤 아공간에서 멀린의 스태프를 꺼냈다. 마법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2m 50㎝쯤 되는 스태프의 끝에는 초록빛을 내는 마나석이 끼워져 있다. 현수는 이것을 들고 마법을 구현했다.

“마나여, 놈의 움직임에 제약을 가하라. 모션 스톱!”

캬르르르릉! 캬릉! 캬르릉! 크와아아악! 캬르르르르릉!

마법이 구현되자 괴물의 움직임이 현저하게 둔화되었다.

갑작스럽게 움직임이 제 뜻대로 되지 않자 괴물은 괴성을 지르며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 머리를 흔들었다.

잠시 후, 놈의 움직임은 다시 원상으로 되돌아갔다. 덩치가 워낙 커서 힘이 좋아 이런가 보다.

“어쭈……! 이놈 봐라?”

마법으로부터 벗어나는 모습을 보자 호승심이 인 현수가 보다 높은 써클의 마법을 준비했다.

“마나여, 놈에게 혹독한 추위를 선사하라. 블리자드!”

휘이이이잉―!

블리자드가 시전되자 풍속 55노트(약 시속 100㎞)의 강풍이 괴물에게 쏘아져 갔다. 바람이 쏘아져 가는 곳은 시야 거리가 10m도 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괴물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영하 60。 이하가 되었을 것이다.

캬악! 캬악! 캭!

놈은 혹독한 추위가 엄습하자 얼른 몸을 웅크렸다. 하나 어찌 영하 60。 의 추위를 얇은 비늘로 막아낼 수 있겠는가!

“이놈아! 그건 시작이었다. 더블 블리자드!”

고오오오오―!

“캭! 캬악! 캭!”

몸통을 두 부분으로 나눴을 때 머리와 꼬리 쪽으로 각기 하나의 블리자드가 시전되었다.

놈은 꿈틀거리며 어떻게든 맹추위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하나 갑작스레 둔해진 몸은 여전히 마법의 범위 안에 있었다.

“한 번 더! 블리자드!”

휘이이이잉―!

“캬악! 케엑! 켁!”

모켈레 무벰베라 이름 붙은 괴물은 피할 수 없는 혹한에 서서히 얼어들었다. 입김을 내뿜던 입가에 고드름이 맺힌다. 그와 동시에 두 개의 눈알 또한 얼어붙기 시작했다.

“캬르릉! 캬릉!”

괴물은 기력이 쇠한 노인의 가래 끓는 소리 비슷한 힘없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빠직! 빠지직!

두 개의 눈알 안에 있던 수분이 얼면서 팽창을 했고, 이로 인해 눈알이 얼어 터지는 소리가 난다.

엄청난 통증을 느꼈을 법한데 괴물은 발버둥을 치거나 별다른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는 놈의 내부까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발버둥을 칠 수 있도록 힘을 쓸 근육까지 얼어붙었다. 소리를 내는 성대 또한 얼어붙었다.

“이게 마지막이다. 블리자드!”

휘이이이잉―!

“……!”

이번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현수의 마법이 구현되는 동안 괴물의 공격을 받던 사람들은 몸을 숨긴 채 현장을 목격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멍한 시선이다.

남위 5。 이내인 곳인지라 일 년 내내 여름인 이곳의 정글이 허옇게 얼어붙어 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흐음! 이놈의 사체도 아르센에 가져가면 혹시 돈이 될까?”

열대우림 기후지대인 이곳이라면 며칠도 지나지 않아 부패하면서 악취를 뿜어댈 것이다.

그렇기에 모켈레 무벰베의 사체를 챙길 생각을 한 것이다.

“흐음, 덩치가 너무 커서 아공간에 넣으려면 조금 올라가야겠군. 플라이!”

현수의 신형이 둥실 떠오르자 원주민들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날개도 없는 사람이 손발도 휘젓지 않았건만 하늘로 날아오르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그러거나 말거나 전능의 팔찌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가져가서 안 산다면 버리면 되겠지. 이놈아, 아공간으로 들어가렷다! 아공간 오픈!”

엄청난 덩치를 지닌 괴물이 허공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본 원주민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모양이다.

정보 습득을 위한 서로간의 대화도 없이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어느 순간 누군가가 바닥에 엎드리며 소리친다.

“아아, 신이시여……!”

“오오! 신이시여……! 고맙습니다.”

“신이시여……! 감사하나이다.”

오십여 명이 엎어지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10초 남짓하다.

극도의 경외심을 담았는지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신이여, 우릴 구원해 주셔서 감사하나이다’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하긴 이 사람들 눈엔 내가 신으로 보이겠지. 후후!’

현수는 부상자가 있나 확인했다. 죽은 이들은 있으나 어디가 부러져서 신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너무 심하게 짓밟혀 아예 몸이 땅 속에 박힌 채 죽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현수는 도움 줄 일이 없기에 말없이 허공을 날아 일행이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이 일로 인해 아프리카 전역엔 ‘얼음의 신’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빠르게 번져 간다. 공용어인 프랑스어로 ‘Dieu de la glace’라 불리는 신이 나타난 것이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신은 길다란 지팡이 같은 것을 휘두르며 중얼거리는데 그럴 때마다 차디찬 냉기가 엄습한다.

이로 인하여 오랜 세월 동안 재앙 덩어리였던 모켈레 무벰베가 얼어 죽었다.

또한, 신묘한 솜씨로 놈의 사체를 허공에서 사라지게 하였다. 그리곤 하늘을 훨훨 날아 어디론가 사라졌다.

신이 하늘로 오르고 난 뒤 확인해 보니 마을 하나 정도에 차디찬 냉기가 가득하였다. 너무도 추워서 아랫니와 윗니가 달그닥거리는 소리를 낼 정도로 덜덜 떨어야 했다.

누가 들어도 황당한 이야기이다.

더구나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원주민들의 말이니 외국인들은 이를 믿지 않고 웃어 넘겼다.

일부 호기심을 가진 이들이 이 마을을 방문했을 때는 소문이 나기 시작한 지 이미 한 달쯤 지난 뒤이다.

따라서 모든 것이 정상인지라 헛걸음했다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무식하기로 따지면 아프리카 원주민 못지 않은 종족이 이 세상엔 하나가 더 있지 않은가!

이놈들은 골판지를 불려 만두소를 만들고, 오리고기를 염소 오줌에 적셔 가짜 염소고기를 만들어낸다.

뿐만 아니라 가죽 우유, 멜라민 분유, 석회 달걀, 농약 만두, 부동액 치약을 만들어내는 진짜 무식한 놈들이다.

그렇기에 콩고민주공화국에 진출한 지나인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자기들 방식으로 신의 이름을 번역한다.

빙신(氷神)!

이놈들 때문에 현수는 앞 글자 발음을 조금 길게 하면 욕이 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어쨌거나 모켈레 무벰베가 이곳에 출현한 것은 현수 때문이다. 현수가 지나인 저격수 둘을 죽이고 난 뒤 일행에게 이동했을 때부터 그 뒤를 따라온 것이다.

야영장에 도착한 현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먹을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하였기에 어느 누구도 현수에게 관심가지지 않았다.

다음 날, 일행은 또 다시 길을 나섰다. 이번에도 선두엔 현수가 있었다. 가는 동안 아나콘다 세 마리와 악어 여섯 마리를 죽였다. 이번엔 마법이 아닌 총을 사용했다.

그렇게 전진하여 목적지에 당도한 이후엔 딱히 할 일이 없다. 나머진 기술진들이 알아서 할 일이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주변을 돌면서 위험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공사장 인근엔 위험한 맹수가 없는 듯하다.

며칠을 이렇게 지내자 좀이 쑤신다.

“사장님, 사냥을 나갔다 와도 되는지요?”

“사냥……? 누구랑 같이 갈 건데? 나도 갈까?”

“아닙니다. 사장님은 여기서 하실 일이 많지 않습니까? 저 혼자 가겠습니다.”

“그래? 그럼, 그러게. 다만 조심하는 것 잊지 말고.”

“네에, 물론입니다.”

신형섭 사장이 보물인 현수가 홀로 사냥하러 가겠다는 걸 흔쾌히 허락한 것은 지난 며칠 동안 있었던 일 때문이다.

그날은 신형섭 사장도 선두에 있었다. 뒤에서 따라만 오니 왠지 피곤하다는 느낌이 들어 앞으로 온 것이다. 또한 앞에 있어도 큰 위험이 없다 판단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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