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현수의 결계가 쳐진 이후 반경 1㎞ 내에는 짐승들이 다가오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우라 때문이다.
현수가 현장을 떠나온 지 24일 되던 날. 그러니까 결계 안 시간으로 13년 정도 되는 어느 날이다.
마나는 더 이상 찰 수 없을 정도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현수는 마나심법 삼매경에 빠져 있다.
이실리프의 마법서를 읽어본 바에 의하면 마나를 전부 사용하고 다시 채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마나 써클이 더 굵어진다고 되어 있다. 마나 홀로부터 마나 써클에 이르는 통로가 개척되기 때문이다.
마나 써클이 굵어진다 함은 마법의 위력이 더 강해짐을 의미하며, 매우 안정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잘못된 수식으로 마법을 사용하다가 불시에 발생될 수 있는 써클 붕괴 현상이 일어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 모든 마나를 뽑아서 쓰고, 다시 채우기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마나량이 많지 않아 모두 소진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마나 홀의 크기가 겨우 호두알만 했기 때문이다.
하나 수련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마나 홀의 체적이 점점 늘어났다. 덕분에 이를 모두 소진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늘어났다.
현재의 마나 홀은 송구공보다 약간 큰 정도이다.
이 안에 담긴 마나를 모두 소진하기 위해 현수는 5써클 마법인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투명 마법을 시전했다.
또한 2써클 와이드 센스와 4써클 플라이 마법까지 구현시켰다. 그리곤 두 시간이 넘도록 결계 안을 날아다녔다.
위력이 강한 공격 마법을 쓰면 보다 빨리 마나를 소진시킬 수 있지만 아프리카의 정글을 훼손할 순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마나를 모두 소진시키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6시간이다. 그리곤 다시 마나심법을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현수의 신형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인다.
신체의 곳곳이 동시다발적으로 불룩 솟았다 꺼지기를 반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더니 머리카락이 눈에 뜨이게 길어지기 시작한다. 마치 모공에서 밀어내는 듯한 모습이다.
게다가 땀샘이 열리면서 땀이 흘러나오는데 묘한 냄새를 풍긴다. 비릿하면서도 누린 냄새이고, 꼬리꼬리한 냄새이다.
뿐만이 아니다.
체내에서 우드득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꿈에도 바라던 바디체인지가 시작된 것이다. 무협 소설에선 이를 탈태환골, 또는 환골탈태라 이른다.
전신의 모든 세포가 새롭게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런 현상은 거의 72시간에 걸쳐서 아주 천천히 일어났다.
일련의 시간이 흐른 뒤 현수의 눈이 뜨였다.
별빛 같은 눈빛이 잠시 반짝이는가 싶더니 이내 평범하게 되돌아갔다.
“으으……! 이거 무슨 냄새야? 흐유, 더러운 냄새! 클린! 클린! 어쭈, 그래도 냄새가 안 빠져? 워싱! 워싱!”
청결 마법을 반복해서 사용했지만 30년 가까이 체내에 쌓여 있던 각종 노폐물 및 독소들이 풍기는 냄새까지 처리하기엔 역부족인 듯하다.
“어휴! 대체 이런 냄새가 왜 나는 거지?”
현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똥 또는 오줌을 지렸는지 확인했다. 그런데 이상이 없다.
하여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의복을 갈아입었다. 냄새나는 것은 3써클 화이트 파이어 마법으로 태워 버렸다.
이것은 대장간의 대장장이들이 쇠를 녹일 때 사용할 만큼 강력한 화력을 뿜어내는 마법이다.
따라서 연기조차 없이 완전 연소가 되었다.
“이제 진짜 7써클 마스터가 된 건가?”
체내의 마나를 확인한 현수의 얼굴엔 환한 웃음이 배어 있었다. 넘실거리는 마나가 너무도 흐뭇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젊어진 듯하다. 바디체인지를 함으로써 25살 남짓한 얼굴이 된 것이다. 게다가 약간 불균형이었던 것들이 거의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현수는 왼쪽 눈썹이 오른쪽 눈썹에 비해 약간 위에 있었다. 그리고 말을 하거나 표정을 지으면 한쪽만 유난히 많이 움직여 언발란스했다.
턱도 좌우가 달랐다. 썩은 이가 많았던 왼쪽은 오른쪽에 비해 갸름했다. 반면 오른쪽은 사각턱에 가까울 정도였다.
코의 구조에도 약간의 이상이 있었다. 그 결과 축농증 증상이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완벽에 가까운 균형을 이루게 된 것이다. 당연히 축농증은 없어졌다.
이밖에 간, 신장, 위, 폐, 담낭, 췌장, 심장 등 모든 장기가 컴퓨터로 치면 최적화 및 초기화되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신품처럼 된 것이다.
이렇듯 신체의 모든 기능은 최적화되었고, 불필요한 살은 빠져 버렸으며, 근육과 힘줄의 기능은 이전에 비해 거의 3배 이상 향상되었다.
피로 회복 속도도 눈에 뜨이게 달라졌다.
마라톤 풀코스를 뛰고도 불과 10분 정도만 쉬면 피로 물질을 모두 분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다른 효과는 노화가 억제되었다는 것이다.
현수의 얼굴은 현재 25세 정도로 보인다. 이전에 비해 몇 살은 어려 보이는 것이다.
45살이 되어도 이 얼굴에서 거의 변하는 바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수명까지 연장되었다.
인간의 평균 수명은 대략 80세 정도 된다.
태어나 조금씩 왕성해지던 기력은 20대에 절정을 이루고 조금씩 줄어든다. 그러다 60세가 넘으면 조금 더 빨리 기력이 쇠약해지다가 80세 정도가 되면 숨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현수의 경우는 다르다.
생명력이 절정에 있는 20대의 기력과 체력으로 120세까지 살게 될 것이다. 120이 넘으면 조금씩 쇠약해지게 된다.
만일 그 전에 깨달음을 얻어 8써클이 되고, 또 다시 바디체인지하는 기연을 얻게 되면 200년 정도 수명이 늘어난다.
다시 말해 400세까지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엔 300세까지 젊음을 유지한다. 나머지 100년 동안 서서히 늙는 것이다.
9써클에 이르러 또 한 번의 바디체인지를 겪으면 수명이 700세로 늘어난다. 600살까지는 젊음이고, 이후에 늙는다.
거의 10써클에 다다랐던 아드리안 멀린 반 나이젤이 662세의 나이로 죽음에 이른 것은 이런 깨달음으로 인한 바디체인지의 효율이 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실리프 마법서에 기록된 내용은 멀린이 늘그막에 깨달은 것들이다. 당연히 평생의 심득이 담겨 있다.
그러니 이전과 다른 결과를 빚는 것이다. 그 결과 중 하나가 바디체인지할 때마다 수명이 더 많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7써클 마스터가 된 뒤에도 마나심법을 수련하였으며, 마법 또한 하나하나 익혀갔다. 물론 검법 또한 수련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지구 시간으로 28일, 결계 안의 시간으론 거의 14년이 흘렀다.
“이제 거의 갈 때가 되었겠지?”
현수는 결계를 해제하곤 플라이 마법으로 현장까지 고속 이동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아……! 김현수 씨! 왔는가? 오래 걸렸네.”
어디 다친 데라도 없는지 살피는 모습이다. 진실로 걱정했다는 뜻이다. 당연히 기분이 좋아진다.
“네, 조금 멀리까지 갔었습니다. 자, 이거 받으십시오.”
“뭔가?”
“우연히 얻은 건데 어떤 보석의 원석 같습니다.”
“뭐어? 이게……?”
오는 도중에 제법 시원해 보이는 폭포가 있어 그곳에서 목욕을 했다. 14년 가까이 씻지 않았기에 물이 보이는 즉시 씻은 것이다. 목욕을 마치고 옷을 집어 들려는 순간 다 삭아버린 낡은 가방 하나가 보인다. 현수의 것은 분명히 아니다.
하여 대체 웬 가방인지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오래된 유해 한 구가 있다.
곁에는 녹이 슬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총이 한 자루 있다. 1차 세계대전 이전에나 썼을 법한 총이다.
권총도 한 자루 있었다. 이것 역시 무척 오래된 디자인이다.
가방은 유해를 남긴 사람의 소지품이었던 모양이다.
열어보니 몇 가지 잡동사니와 더불어 무언지 알 수 없는 원석 두 개가 보인다. 그런데 크기가 서로 다르다.
하나는 지름이 2㎝ 정도 되는 것이고, 다른 것은 8㎝ 정도 된다. 다시 말해 왕구슬만 한 것과 어린아이 주먹만 한 것이다.
큰 것은 거의 완전한 구형이다. 햇볕에 비춰보니 반짝이기에 혹시 다이아몬드 원석이 아닌가 싶어 챙겨왔다.
어쨌거나 사장에게 준 것은 둘 중 작은 것이다.
사장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다이아몬드 같다는 생각을 한 때문이다. 그리고 원석의 크기가 결코 작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귀국하시면 공방에 맡기십시오. 참, 제가 잘 아는 곳이 있으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현수는 아버지가 근무하게 된 추씨네 공방을 떠올렸다.
상호는 기억나지 않지만 신용있고, 솜씨가 매우 뛰어난 것으로 소문난 사람이다.
“잘 가공해서 사모님께 선물하면 좋아하시겠네요.”
“하하, 내가 이런 걸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네.”
“이리로 오다가 우연히 발견한 겁니다. 저야 아직 장가도 안 가서 그런 거 줄 아내도 없으니 사장님이 쓰십시오.”
“고, 고맙네.”
사장은 아주 소중히 원석을 갈무리했다.
“그나저나 이제 현장 조사는 끝났는지요?”
“거의 끝나가네. 정 부장 말로는 내일 모레면 끝이 난다고 하니 기다리는 중이네.”
“그간 별일은 없었지요?”
“그럼, 아무 일도 없었네. 가끔 짐승들이 나타났으나 군인들이 총을 쏘아 모두 쫓아냈네.”
“그랬군요. 그럼 모레 출발하는 겁니까?”
“아마도……. 근데 온 김에 사슴 몇 마리 잡아오면 안 되겠는가? 가져온 식량이 다 떨어져서 요즘 육식을 너무 못 했네.”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럼, 총 한번 쏴보겠습니다.”
“조심하게.”
“하하, 물론입니다.”
다시 숲으로 들어간 현수는 와이드 센스 마법으로 어렵지 않게 사슴을 발견하였다. 웬일인지 네 마리가 모여 있다.
현수는 이전에 사냥했던 때처럼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마법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네 마리 모두에게 마법을 걸었다.
“홀드 퍼슨! 홀드 퍼슨! 홀드 퍼슨! 홀드 퍼슨!”
잠시 후, 네 발의 총성이 연달아 울렸다. 멀리서 듣기엔 속사로 들렸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 줄기 연기가 하늘로 솟는다.
군인들이 왔는데 모두 놀란다. 사슴이란 놈은 매우 민감해서 총소리가 나면 무조건 뛴다.
그런데 한 군데서 네 마리를 사냥했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사슴들을 가져가고 난 뒤 숲을 조금 더 뒤졌다. 600명이 넘는 인원이 어찌 사슴 네 마리로 배를 채울 수 있겠는가!
와이드 센스 마법을 펼치니 멀지 않은 곳에서 숲멧돼지 두 마리가 휘젓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홀드 퍼슨으로 꼼짝 못하게 하고 총을 쏘았다.
사실 총이 없어도 이 정도 사냥은 우습다. 그럼에도 총을 쏜 것은 어찌 잡았느냐고 물었을 때 대답할 말이 옹색해서였다.
잡고 보니 덩치가 엄청 크다. 현수는 네 개의 연기를 피웠다. 군인들이 당도했고, 그들과 함께 귀환했다.
콩고민주공화국 군인들은 현수에게 극도의 존경심을 표했다.
혼자서 온갖 위험이 가득한 정글 속을 무려 한 달 동안이나 휘젓고 돌아온 것으로 소문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냥 솜씨는 또 어떤가!
가죽이 벗겨진 채로 운반되었지만 모두 미간을 쏘아 사냥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모르긴 몰라도 사격 대회를 나가면 세계챔피언 정도는 우습게 차지할 것이란 평가이다.
또한, 내무장관이 아주 특별한 호의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려졌다. 그렇기에 현수를 대함에 있어 아주 조심스럽다. 거의 자신들의 상관처럼 대접하고 있는 것이다.
“미스터 킴! 사냥 솜씨 최고다!”
“그래? 칭찬해 줘서 고맙다.”
“아니다. 진짜 대단한 사냥꾼이다. 한 자리에서 사슴을 네 마리나 잡는 사냥꾼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나는 미스터 킴을 진짜로 존경한다.”
“하하, 그래. 고맙다.”
“그래서 말인데, 귀환할 때에도 미스터 킴이 앞장을 서주면 안 되겠는가?”
“왜……? 모켈레 무벰베가 무서워서?”
“이런 말하면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해 생각만 해도 무섭다. 그러니 앞장을 서줘라. 모켈레 무벰베를 상대할 사람은 이 세상에 미스터 킴밖에 없다.”
“그래, 그래! 알았다. 내가 앞장을 서지!”
“고, 고맙다!”
이것이 귀환 과정에서 콩고민주공화국 군인들과 나눈 대화이다. 캠프로 오니 요리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신선한 육류를 섭취한 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네 마리 사슴과 두 마리 멧돼지는 굽고 찌고 삶는 데 사용되었다.
일부는 훈제되기도 했다.
요리하는 과정을 지켜보던 현수는 양념이 너무 부족함을 알게 되었다. 그간 너무 많이 써서 떨어진 것이 태반이다.
하여 슬쩍 다시다를 꺼내 삶는 국물에 넣었다.
마늘은 급속냉동을 시킨 뒤 이를 가루로 분쇄하여 넣었다. 물론 마법으로 한 것이다. 음식이 완성되자 사람들은 넣지도 않은 마늘 향이 난다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짹! 째짹! 짹짹짹!
아침이 밝았다. 천지건설의 기술진들은 물론이고 콩고민주공화국의 군인들 역시 텐트를 걷느라 분주하다.
그러고 보니 건설국장 조셉 투윙크가 보이지 않는다.
물어보니 이곳에 도착하고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 헬기를 타고 귀환했다고 한다. 하긴 일국의 건설국장인데 이런 곳에서 한 달이 넘도록 있을 순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