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자아, 이제 출발!”
신형섭 사장은 헬기를 불러 킨샤사까지 갈 수 있음에도 도보를 택했다.
현수의 사냥 솜씨를 바로 곁에서 지켜볼 요량인 것이다.
가는 동안엔 별일이 없었다. 사슴 몇 마리를 더 잡았고, 숲멧돼지도 몇 마리 잡았다.
아나콘다의 습격도 없었으며, 악어도 보이질 않았다.
* * *
“사장님, 고생하셨습니다.”
“아……! 이 차장, 오랜만일세. 여기도 별일 없었지요?”
이춘만 과장은 사장 입에서 차장이라는 칭호가 나오자 눈에 뜨이게 밝은 안색이 된다.
“네에. 본사에서 현장 개설 준비를 위한 직원들이 더 온 것 빼고는 별일 없었습니다.”
“그랬군요. 아무튼 수고했어요.”
“수고라니요.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참, 이제 차장으로 진급했으니 본사로 들어와야지요?”
“아이고, 아닙니다. 사장님! 그렇지 않아도 뵈면 말씀드리려 했는데 저 차장 진급하더라도 여기 그냥 있게 해주십시오.”
“네에?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는 이 공사가 끝날 때까지는 이곳에 있고 싶습니다. 그러니 진급하더라도 귀환 발령은 내주지 마십시오.”
“아……! 이 공사의 끝을 보고 싶은 거군요. 오래 걸릴 텐데……. 알겠습니다. 좋은 자세입니다. 그리하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춘만 과장, 아니, 이춘만 차장의 내심은 다른 데 있다. 월급보다도 더 짭짤한 부수입을 올릴 기반을 겨우 닦았다. 그걸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킨샤사에 당도한 다음 날, 현수와 사장 일행은 내무장관과 회동했다. 이전에 펼쳐놓은 참 어펜시브 마법의 영향력 덕분에 대화는 화기애애했다.
측량할 것은 거의 다 측량되었고, 공사를 위한 기초 자료는 모두 준비되었다. 이제 견적을 내는 일만 남았다고 했다.
내무장관은 35억 달러를 넘지 않는 선에서 공사비를 제시해 달라는 당부를 했다.
그래야 대통령에게도 면이 서고,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다른 이들의 견제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했다.
뇌물은 바라지도 않는 눈치이다.
하긴 현수가 있는데 어찌 뇌물 달라는 생각을 하겠는가!
현재의 내무장관은 현수에게 되도록 많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뿐인 상태이다. 그렇기에 회담은 아주 순조롭게 끝났다.
나중의 일이지만 사장은 본사로 돌아가 공사비 견적을 받아보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35억 달러면 충분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이는 지나건축공정총공사가 공사비를 의도적으로 부풀려놓은 때문이다. 깎아달라고 할 것을 감안하여 값을 높여놓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콩고민주공화국 주요 인사들에게 갈 뇌물 액수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자신들이 취할 막대한 이득 또한 포함되어 있다.
벨기에 등 다른 나라에서 들어왔던 견적 또한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가난한 나라 콩고민주공화국을 벗겨먹을 심사인 듯하다. 그렇기에 공사비가 아무리 적게 들어도 35억 달러는 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사장은 고품질, 정밀 시공이 되도록 설계 변경을 지시한다.
그 결과 공사비는 결국 내무장관이 요구한 35억 달러 수준으로 맞춰진다. 그 결과 콩고민주공화국은 애초에 생각하던 것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발전소와 댐을 얻게 된다.
기존의 물막이 댐과 달리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발전소 역시 발전량이 대폭 증가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김현수 씨! 본사로 가면 곧 발령을 낼 것이니 여기서의 일을 잘 마무리하게.”
“네, 알겠습니다.”
“그럼 본사에서 만나세.”
“네, 살펴서 가십시오.”
사장 일행이 떠나고 난 킨샤사 지부는 썰렁했다. 북적이던 사람들이 마치 썰물처럼 물러간 것이다.
여기 왔던 기술진들 대부분은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될 것이다. 조금이라도 이곳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에서의 공사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사가 거의 확정되었으니 일단 귀국하였다가 챙길 것들을 챙긴 후 다시 오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킨샤사 지부엔 다시 둘만 남게 되었다.
사장 일행이 출국한 후 내무장관과 현수뿐인 단둘의 회담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내무장관은 콩고민주공화국의 건설에 현수가 중재자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돌려 말하자면 여기 와서 건설사를 차려서 운영하라는 것이다. 물론 뒤를 돌봐주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 현수는 이를 고사하였다.
마법으로 사람을 현혹시켜 놓은 상태에서 개인의 이득을 챙기는 것이 부도덕하다 여긴 때문이다.
그럼에도 천지건설에서 공사를 수주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국가 차원의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이곳의 공사를 수주함으로써 작게는 회사의 이익이 되겠지만 크게 보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득을 본다.
좁아터진 국토에서 건설사끼리 대가리 터지는 경쟁을 하지 않아도 충분한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예를 보였으니 다른 건설사들도 해외 공사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것이다.
당연히 고용이 늘어날 것이니 청년 실업 문제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수가 늘어날 것이니 국가 재정도 좋아진다. 하나 개인이 이렇게 하여 이득을 본다면 하는 생각을 해보니 조금 양심에 찔려 고사한 것이다.
10장 뭘 해서 돈을 벌까?
다음 날, 그리고 또 다음 날도 내무장관은 현수를 불러들였다. 그리곤 콩고민주공화국의 이모저모를 보여주었다.
많은 외국인들이 킨샤사에서 돈을 벌어들인다. 그들보다는 현수가 버는 것이 더 좋으니 돈 될 만한 것을 찾으라는 뜻이다. 그리곤 시작만 하면 밀어주겠다고 큰소리쳤다.
하나 현수가 본 것은 돈 될 만한 것이 아니다. 어두운 콩고민주공화국의 현실을 본 것이다.
부익부 빈익빈이 너무 심하다. 극히 일부만 잘 먹고 잘 살 뿐 대다수 국민들은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게다가 대통령의 독재도 문제이다.
인권 따윈 애초부터 없다는 듯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권력에 빌붙은 빈대 같은 인간들이 국민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것이 보였다.
게다가 다른 종족에 대한 심한 반감이 문제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대대적인 수술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곪아서 터질 종양이 곳곳에서 자라고 있음이 보인 것이다.
그러니 어찌 돈 될 만한 것이 보이겠는가!
어쨌거나 신형섭 사장은 출국하기 직전 이 차장에게 곰
베(Gombe) 지역으로 지사를 이전하라는 뜻을 내비쳤다.
곰베 지역은 킨샤사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로 큰 회사나 외교 단지 등이 있는 곳이다. 또한 한국의 이마트 비슷한 킨 마트도 있고 삼성 대리점도 있다.
뿐만 아니라 광물자원부 청사 같은 관공서들도 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상당히 안전한 곳이라 외국인들은 주로 이곳에서 머문다.
사장의 뜻이기에 이 차장은 곰베 지역에 사무실을 얻었다. 하나 숙식마저 그곳에서 하는 것은 아니다.
그간 거래하던 사람 대부분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사무에 필요한 집기를 모두 옮기고 밤이 깊어갈 무렵 현수와 이 차장, 그리고 마투바는 맥주를 마셨다.
이 차장은 프리무스(Primus)라는 맥주를 좋아하고, 현수는 뮤칭그(Mutzig)라는 맥주를 주로 마신다. 둘 다 르완다에서 만든 맥주인데 맛이 매우 좋다.
마투바 역시 뮤칭그를 더 좋아한다.
프리무스보다 프리미엄맥주로 맛이 깔끔하면서도 쓴맛이 조금 더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투바! 마투바는 어떤 종족에 속해? 후투족이야? 아님 투치족이야?”
“왜요?”
“그냥 궁금해서.”
“킨샤사에 사는 사람 가운데 대부분은 투치족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 밖이에요. 특히 후투족은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고 있지요. 미스터 킴이 보기에 난 어때요?”
“뭐가?”
“부자인지, 가난한지 묻는 거예요.”
“마투바는 가난하잖아.”
“우리 아빠와 오빠들은 반군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죽었어요. 그럼 제가 속한 종족이 뭔지 알겠어요?”
“그럼… 후투족이야?”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어요. 한 가지 확실한 건 투치족은 아니라는 거예요.”
현수는 대화를 하는 동안 왠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번뜩이는 생각이 스쳤다.
‘아……! 내가 내무장관 가에탄 카구지랑 친하게 지내서 그러는 거구나.’
마투바는 아마 후투족일 것이다. 그것도 그냥 후투족이 아니라 탄압받는 후투족일 것이다.
그런데 현수가 투치족의 핵심 인사 가운데 하나인 가에탄 카구지와 가까이 지내는 것이 못마땅하여 이처럼 냉랭하게 대하는 모양이다.
지금껏 좋았던 관계를 일부러 망가뜨릴 이유는 없기에 화제를 돌렸다. 그리곤 맥주를 마시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현수는 킨샤사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현수의 주변엔 네 명의 보디가드가 따라다녔다. 사장이 붙여준 호위들이다. 이들의 무장은 모두 우지 기관총이다.
몇몇 껄렁패들이 외국인인 현수를 먹잇감으로 생각하고 접근했다가 이들에게 호되게 당했다. 총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총을 들이댔다면 순식간에 벌집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킨샤사의 치안이 워낙 나쁘기 때문에 이럴 경우 대부분 정당방위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았다. 가장 좋은 것은 식량이다. 늘 식량이 부족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하나 먹는 걸로는 돈을 벌고 싶지 않았다.
굶주려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어찌 그런 생각을 하겠는가!
하루 종일 돌아다녔지만 소득이 없었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는 동안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어찌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다.
기왕에 벌 거면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하여 그 방법을 모색했으나 뾰족한 수가 나지는 않았다. 아직은 사회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아르센 대륙을 떠올렸다.
지구의 산물을 아르센 대륙으로 가져가 팔고, 그곳의 산물을 가져와 이곳에서 취급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뛰어난 효과를 보인 회복 포션이다. 그러려면 수없이 많은 트롤들을 죽여서 피를 받아내야 한다.
물론 아르센 대륙엔 상당히 많은 트롤들이 있다.
사람을 잡아먹기도 하는 놈이니 이놈들을 죽이는 것은 양심에 가책 받을 일은 아니다. 문제는 지구에서 필요로 하는 만큼을 얻을 수 있을지다. 그러려면 수백만 마리를 도축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뻑적지근하다.
하여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음으로 생각한 것은 지구에서 만든 물건들을 아르센 대륙으로 가져가 돈으로 바꾸는 것이다.
황금으로 바꿔서 가져오면 되는데 문제는 환전성이다.
대한민국에서 많은 양의 금을 처분하는 것은 세무당국의 시선을 받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건 포기했다.
그러던 중 아드리안 공국의 위기에 생각이 미쳤다.
스승인 아드리안 멀린 반 나이젤 후작의 부탁이었으니 공국의 위기는 반드시 해소시켜 줘야 한다.
문제는 그쪽의 상황도 아직 다 파악하지 못했고, 상대가 얼마만 한 힘을 지녔는지도 모른다.
적이라 할 만한 나라가 무려 셋이나 된다. 이런 상황임에도 우호적인 세력은커녕 사람조차 없다.
한 주먹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열 주먹을 감당하긴 어려운 법이다.
내 한 몸의 안위야 어찌할 수 있다 하지만 공국 왕가와 귀족들, 그리고 백성들까지 모두 책임지기는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여러 개의 주먹을 가질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미판테 왕국은 아드리안 공국을 공격하는 나라 중 하나이다.
그런 미판테의 귀족이지만 테세린의 영주인 로니안 자작부터 내 사람으로 만들 생각을 했었다.
하여 여러 물건을 아낌없이 꺼내 놓은 바 있다. 적국에 비수 한 자루를 준비해 두는 것이라 생각했다.
잘한 일인지 여부는 나중에 두고 봐야 알 것이다.
아르센 대륙에서 아는 사람이라곤 알베제 마을 사람들과 케이상단의 알론 및 상인 몇과 용병들, 그리고 올테른의 영주인 마이스진 백작과 테세린의 영주 로니안 자작 일가뿐이다.
굳이 더 꼽자면 얀센 부부가 있다.
불가(佛家)에선 인연을 매우 중요시한다.
전생에 일천겁을 같이 한 인연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게 만들고, 이천겁의 인연은 한 도시에서 태어나게 한다.
하루 동안 동행하는 것은 삼천겁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고, 사천겁의 인연이 쌓이면 하룻밤 동숙하게 된다.
오천겁의 인연이 쌓이면 1리(400m) 이내에 살게 되고, 육천겁의 인연은 친구지간이 되게 만든다.
형제는 무려 칠천겁이나 되는 인연이 있었어야 한다.
팔천겁은 부부지간, 구천 겁은 부모와 자식의 인연으로, 마지막 십천겁의 인연은 스승과 제자 사이로 만나게 된다.
여기서 1겁이란 가로, 세로, 높이 40리(16㎞)인 공간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10년마다 겨자씨 한 알씩 끄집어내어 텅 비게 되는 세월을 뜻한다. 참고로 겨자씨 하나의 크기는 지름이 1∼2㎜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튼 불가에선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완전히 다른 세상인 아르센 대륙을 방문하여 만난 사람들 모두 어떤 인연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부터 내 사람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아직 구체적인 복안은 없다. 하나 내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