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휘하에 마법사들을 양성하는 것은 약간의 문제가 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전투를 수행할 검사들은 이에 비하면 시간이 덜 걸린다. 하나 이들을 역시 소드 익스퍼트 급 이상으로 성장시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렇다 하여 현대의 무기를 지급한 병사들을 양성하고 싶지는 않다. 일종의 반칙이기 때문이다.
결국 용병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어느 정도 수준에 있는 자들을 골라 조금만 더 코치해 주면 쓸 만한 전력이 될 것이다.
문제는 돈이 많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렇기에 하인스상단을 만들었다. 하나 그것만으론 부족하리라 여겨진다.
따라서 조금 더 많은 돈을 모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차암, 여기나 거기나 돈 벌기 정말 어렵군.”
현수는 머리를 흔들었다. 복잡한 상념을 털어내려는 무의식적인 몸짓이다.
* * *
삐이꺽―!
“아, 왔는가? 잘 왔어, 나 좀 도와주게.”
“네? 무슨 일 있어요?”
“아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고……. 여길 좀 보게.”
이춘만 차장이 보여준 곳엔 많은 상자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컨테이너 네 개를 붙여놓은 것만 한 공간이 가득 찰 정도이다.
“아니, 이게 다 뭡니까?”
“뭐긴, 용돈 벌이 하려고 한국에서 수입한 거지.”
“아, 그래요? 이번엔 뭘 가져오셨습니까?”
현수는 별 관심이 없었기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나 이 차장의 눈빛은 반짝이고 있었다.
“약일세.”
“약이요? 무슨 약을 이렇게 많이…….”
“여긴 병원도 변변치 않고, 약국 또한 찾기 힘든 곳이네. 하나 가난하게 살다 보면 다치는 사람도 많고, 응급상황도 많이 발생하지. 그런데 약을 구할 수가 없어.”
“그래서 약방 차리시려구요?”
“수입해 온 약에 대한 건 내가 제일 잘 아니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나? 이곳 사람들에게 맡기면 약 좋다고 남용하고, 약 모르고 오용하지 않겠어?”
“그렇긴 한데 약사 면허 있어요?”
“한국에서야 그게 필요하지만 여기선 그런 거 없어도 되네.”
“정말요?”
현수가 진짜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효능이 입증된 약을 조제 없이 파는 것이 조건이네.”
“아, 그래요?”
“그래. 그래서 이 옆의 건물을 빌렸네. 거기에 선반 같은 건 다 만들어놨는데 이 약들을 분류하려니까 너무 힘이 들어. 마투바는 아무리 설명해 줘도 이해를 못하네. 그러니 자네가 좀 도와주게.”
“그러죠. 제가 어떻게 도우면 되죠?”
“소화제는 소화제끼리, 항생제는 항생제끼리 뭐 이런 식으로 분류해 주면 되네.”
“네, 알겠습니다.”
현수는 이날부터 다다음날 늦은 시각까지 분류 작업을 했다.
작업하는 동안 몇몇 사람들이 소문을 들었다면서 약을 사러 왔다. 대부분 항생제와 진통제를 구입해 갔다.
이야길 듣자 하니 킨샤사엔 열 개의 약방이 있다.
일곱 군데는 벨기에인이 하는 곳이고, 다른 세 군데는 시누아가 운영하는 곳이라 한다.
시누아란 프랑스어로 ‘chinois’라 쓰는데 ‘지나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한국에서 ‘짱꼴라’라 칭하는 것처럼 비하하는 뜻이 담겨 있다.
지나인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벨기에인이 운영하는 곳은 모두 번화가인 곰베 지역에 몰려 있다.
이들은 주로 외국인 상대로 장사를 한다.
또한 곰베 지역 대형병원에 직접 납품하기 때문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판매에 적극적이지 않다.
콩고민주공화국은 1908년부터 1960년까지 벨기에의 식민지였다. 따라서 현지인들을 얕잡아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지인들과의 거래는 그리 활성화되지 않았다.
굳이 현지인들과 거래하지 않아도 막대한 이익이 발생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나인들이 운영하는 나머지 세 곳은 너무 비싸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 새로 생긴다는 소문이 마타디 항으로부터 흘러나왔다.
천지건설 킨샤사 지부장이 대량의 약을 수입했다. 물론 적법한 절차를 밟은 것이다.
현수가 정글 속에서 수련하는 동안 내무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어 간신히 얻은 허가이다.
당연히 현수에 대한 내무부 직원들의 호감이 작용했다.
안 그랬다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 10년간 단 한 건의 약방 허가도 없었다는 게 이를 반증하는 것이다.
아무튼 킨샤사의 인구만 1,500만 명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딱 열 군데 약방에서 약을 파니 수입이 어떻겠는가!
내무부 관리들은 그간 각각의 약방으로부터 적지 않은 뇌물을 챙겨왔다. 따라서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뇌물을 받았다는 투서라도 들어가면 쫓겨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차장에게 약방 허가를 내준 것은 내무부 고위 관료들이 적극적이었던 때문이다.
아무튼 약효가 입증된 약이라는 증명은 대한민국의 제약사들로부터 받은 서류를 제출함으로써 해결되었다.
통관작업을 할 때 이춘만 차장은 개인이 약방을 개설할 계획이라는 말을 무심코 했다. 이것이 소문의 근원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1970년대 초반까지 약방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는 약사 면허가 없더라도 약을 팔 수 있는 곳이다.
매약상 또는 약포라 하여 약국이 없는 곳에 허가를 받아 가게를 열 수 있었다. 물론 조제는 할 수 없다.
이 차장은 임의조제는 할 생각이 없다고 하였다.
약에 대해 아는 게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란다. 하여 명칭은 약국이지만 약방 역할을 하는 가게를 열 생각을 한 것이다.
정리를 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약을 사러 왔다. 소문이 조금만 더 번지면 아예 문전성시를 이룰 지경이다.
마투바의 동생들까지 동원해서 정리를 마친 것은 밤 12시 경이다. 꼬박 사흘을 정리한 셈이라고 한다.
워낙 종류도 많고 물량이 많았던 때문이다. 대충 살펴보니 소독약과 항생제, 그리고 소염제와 진통제가 많았다.
붕대도 많았고, 반창고도 엄청나게 많았다. 후시딘, 마데카솔 같은 약과 지혈제, 지사제, 해열제 등도 많다.
나름대로 이곳의 상황을 파악하고 물량 결정을 했다고 한다.
현수는 일을 하면서 어떻게 해서 약국의 문을 열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다. 거기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첫째, 이 차장 본인의 수입을 올리기 위함이다.
계산해 보니 신발이나 옷을 수입해서 파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팔러 다니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사러 오니 일석이조라 한다.
둘째, 회사 이미지 제고를 위함이다.
적어도 킨샤사에선 천지건설의 이미지가 상당히 좋아질 것은 분명하다.
물론 부작용이랄지 폭리 같은 것이 없을 때의 일이다.
셋째, 킨샤사 사람들을 돕기 위함이다.
세상엔 많은 약이 있지만 이곳은 의약품이 턱없이 부족한 곳이다. 게다가 엄청나게 비싸다.
그렇기에 약값을 저렴하게 책정하였다.
사실 한국에서의 소비자 가격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지나인들이 하는 약국의 절반, 벨기에인의 약국에 비해선 3분의 2 수준이다.
이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증거이다.
아무튼 이곳의 서민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박리다매를 통해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것이다.
이 순간 현수의 뇌리로 스치는 상념이 있었다.
‘그래……! 이거야.’
순식간에 서너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하나 이를 구체화시키지는 않았다. 아직은 더 상황을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은 있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행보할 것인지가 이 순간에 결정된 것이다.
다음 날, 약국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줄을 섰다.
새로 수입한 약이며, 가격 또한 매우 저렴하다는 소문이 밤새 번진 모양이다.
혹시 약이 떨어질까 싶어 그러는지 질서 문란 행위가 있었다.
이것은 우지 기관총을 든 네 명의 호위가 선글라스를 쓴 채 서 있는 것만으로 금방 해결되었다.
잘 나가는 품목을 보니 소독약과 항생제, 그리고 소염제와 진통제가 대부분이다.
아침 7시에 문을 연 약방은 밤 11시가 되어서야 닫았다. 하루 종일 그야말로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이춘만 차장은 싱글벙글이다.
문을 연 첫날 순수익만 한국돈으로 약 300만 원이기 때문이다. 이는 혹시 약이 떨어질까 싶어 뭉텅이로 사가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냉정하게 계산해 보았을 때 하루 수입은 대략 50만 원 꼴로 예상된다고 했다. 워낙 싸게 팔기 때문이다.
물론 가게 임대료 및 점원 급여, 가게 유지비 및 세금 등을 제외한 순수한 수입이다.
이 차장은 욕심부리지 않겠다면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러지 않는 것은 본래의 취지 때문이란다.
과연 복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어주었다.
다음 날은 아예 인산인해가 되었다.
소문이 번지고 번진 때문이다. 당연히 엄청나게 장사가 잘 되어 현수까지 나서서 도와주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마투바와 동생들까지 나와서 도왔다. 점심은 못 먹었고, 저녁 식사는 가게 문을 닫은 밤 11시 이후에 먹었다.
너무도 피곤한 하루였기에 이 차장은 돈을 세다 잠들어 버렸다. 하루 종일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고 묻고 거기에 알맞은 약을 찾아주는 일을 했으니 피곤할 만도 하다.
“마나여, 피곤한 몸에 활기를 불어넣어라. 바디 리프레쉬!”
마법이 시전되자 잠꼬대를 하며 웅크리고 있던 이 차장이 몸을 바로 하며 고른 숨을 내쉰다.
내일 아침은 아마 몹시 상쾌할 것이다.
현수는 컴퍼터블 템퍼러처 마법까지 구현시켜 실내 공기를 시원하고 상쾌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곤 가부좌를 틀고 운기행공을 시작했다. 바디체인지 이후 잠을 자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고요히 앉아 들숨과 날숨을 조율하며 대기 중의 기를 받아들였고, 이를 전신에 유포시켜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물론 마나 집적진 위에서의 행공이다.
환골탈태 이후 이런 운기행공은 아주 자연스럽게 되었다. 무협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전신 대맥은 모두 타통된 상태이다.
다시 말해 기경팔맥은 물론이고, 임독양맥과 생사현관마저 뚫려 있다. 이 밖에도 세맥과 잠맥 또한 타통되어 있다.
그럼에도 무협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강맹한 무력을 내지 못하는 것은 기의 활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그에 걸맞은 무공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잠 대신 운기행공을 시작한 것이다.
“아아! 상쾌해.”
“기분 좋으세요?”
“그래, 오랜만에 아주 푹 잔 기분이야.”
이춘만 차장은 환한 웃음을 지었다.
“네에, 오늘은 어떨까요?”
“오늘? 오늘도 미어터지겠지? 그나저나 예상보다 매출이 좋아서 수입 물량을 조금 더 늘려야겠어.”
“그래요? 그럼 그러세요.”
“아침 식사는 내가 준비하지. 자네가 문 좀 열어줄 텐가?”
“네에. 그러지요.”
밖으로 나온 현수는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와 약간 다른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게 문을 열려는 순간 군중 가운데 하나가 소리친다.
“네놈이 이 가게 주인이냐?”
“누구십니까?”
대뜸 반말로 말을 붙여온 자는 퉁퉁한 체구의 동양인이다.
“나……? 진 대인이라 한다.”
“진 대인……? 그럼, 지나12)인이시오?”
“이놈! 지나인이라니, 대중화민국을 뭘로 보고.”
“중화는 무슨……! 그리고 이놈이라니요? 제가 댁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우린 초면입니다. 예의를 갖추십시오.”
“네 이놈! 긴말할 것 없다. 지금 당장 가게 문 닫아라.”
“가게 문을 닫으라니요?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망할 놈의 이 가게 때문에 내 장사가 안 된다. 그러니 문을 닫으란 말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야. 진가야!”
“무어라? 진가……?”
“그래, 진가 네가 뭔데 남의 가게 문을 닫아라 마라야? 이 가겐 엄연히 당국으로부터 정식 허가를 받은 약국이야. 그런데 왜 니가 뭔데 문을 닫으라고 하냐?
“뭐, 뭐어……?”
스스로를 진 대인이라 칭한 놈은 오십 정도 되는 나이이다. 그런데 한눈에 보기에도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새파랗게 젊은 놈이 대놓고 말을 하니 바르르 떤다.
분노의 화염에 휩싸였다는 뜻일 것이다.
하나 현수가 이놈의 사정을 봐줄 이유가 뭐가 있는가!
“네 가게가 망할 것 같으니까 닫으라고?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잖아? 안 그래? 닫으려거든 장사 안 되는 네 가게나 닫아. 이 빌어먹을 개뼉다구야!”
말을 마친 현수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가게 문을 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서려 하지 않는다.
진 대인이라는 놈이 데리고 온 덩치들 때문인 듯하다. 보아하니 예닐곱 명쯤 되는 듯하다.
현수를 노려보고 있는데 명령만 떨어지면 득달처럼 달려들 기세이다. 현수는 이들을 바라보고는 피식 실소를 지었다.
그리곤 안에 있던 호위들을 불렀다.
“어이, 미스터 주렙! 여기 문제 생겼어.”
“네, 보스! 어떤 놈들입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아예 벌집을 만들어 버리겠습니다.”
철커덕―!
우지 기관총의 노리쇠를 후퇴, 전진시켰다.
장전을 한 채 사방을 둘러보자 현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놈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