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71화 (71/1,307)

# 71

돈 몇 푼에 살인 청부를 하러 온 놈이니 관용을 베풀 이유가 없다. 게다가 마투바를 납치하여 넘기려 했다.

그렇기에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하여간 지나 놈들은…….”

자칭 진 대인이라 하던 놈을 죽였지만 현수는 손톱 끝만큼의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죽여도 싼 놈을 죽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살인은 살인이다. 그렇기에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을 꺼내 잔에 따랐다. 급히 마셔서 그런지 입가에 거품이 묻는다.

소매로 이것을 닦아내곤 잠시 무언가를 생각했다.

마투바는 동생들과 잠들었을 것이다. 이춘만 차장을 보니 오늘도 돈을 세다 잠들었다.

수북한 지폐 속에 머리를 처박고 잠들어 있다. 그래도 돈을 많이 벌어서 기분이 좋은지 세파에 찌든 표정은 아니다.

밖으로 나와 보니 킨샤사 거리는 여전히 암흑이다. 전기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 어둡군. 좋아, 마나여 내 눈을 밝혀라. 오울 아이!”

과연 멀린이 만든 마법이다. 마치 환한 대낮인 듯 사방이 훤히 다 보인다.

현수는 낮에 들었던 내용들을 더듬어 킨샤사의 거리를 누볐다. 오늘은 달도 없는 밤이다. 그래서 그런지 너무 어두워 거리엔 불량배들도 보이지 않는다.

곳곳에 촛불을 켜놓고 앉아 있는 놈들도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다가와 시비라도 걸라치면 몇 발짝만 뒤로 빠져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기 때문이다.

“흐음! 여기군.”

한참을 걸어 당도한 곳엔 왕가 약포라 쓰인 간판이 보인다. 이곳 역시 지나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문에는 정사각형 안에 ‘福’이란 글자를 써놓은 것이 거꾸로 붙어 있다. 이래야 복이 쏟아진다고 믿는 모양이다.

문은 굳게 닫혀 있다.

담장을 보니 높이가 3m를 훨씬 넘는 듯하다.

담장 꼭대기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도둑을 막겠다는 듯 철조망도 쳐져 있고, 맥주병 깨진 것들까지 박혀 있다.

멋모르고 손으로 짚으면 바로 피가 철철 흐르게 될 것이다.

“이런다고 못 넘어갈 줄 알았지? 플라이!”

담을 넘어가니 채소밭이다. 내려설까 하다가 마법을 그대로 유지시켰다. 발자국이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령처럼 허공을 날아오르니 집 안 구조가 환히 보인다.

채소밭 안쪽에 손님들이 드나드는 약방이 있다. 그리고 그 바로 뒤에 긴 창고 건물이 있다.

약을 보관하는 곳인 모양이다.

숨소리를 확인해 보니 약방 양쪽의 방에 각기 세 명씩 사내들 여섯이 잠들어 있다.

“너희들은 나중에 보자. 마나여, 얘들을 재워라. 슬립!”

잠들어 있던 사내들은 더욱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 정도면 천둥 번개가 쳐도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약방 안쪽에도 건물이 있다. 그중 하나의 방에서 빛이 새어나온다. 집 안에 발전기가 있다는 뜻이다.

가까이 다가가니 무슨 소리가 들린다. 하여 방충망 너머에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사내의 등이 보인다. 처음엔 돼지우리인 줄 알았다.

너무도 비대한 몸집의 사내가 훌러덩 벗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등판을 보니 하늘로 솟아오르려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다.

‘지나에서 조폭 하던 새끼인 모양이군.’

그런데 돼지 같은 놈이 뭐라고 뭐라고 중얼거린다. 귀를 기울여 보니 놈의 앞에 여자가 있는 모양이다.

워낙 비대하여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야! 이 빌어먹을 년아. 제대로 못해? 앙……?”

철썩―!

“아악! 자, 잘못했습니다. 흐흑!”

“그러니까 제대로 하란 말이야. 네년을 사려고 돈을 얼마나 들였는 줄 알아? 자그마치 100달러나 줬어. 100달러……! 그런데도 이따위로밖에 못해?”

철썩―!

“아악! 자, 잘못했습니다. 흐흐흑!”

“좋아, 더 맞기 싫으면 제대로 해. 이 몸을 황홀하게 만들어주란 말이야.”

“네, 네.”

보아하니 인신매매로 여자를 사서 잠자리 시중을 들게 하는 모양이다. 놈의 손에는 채찍이 쥐어져 있다. 여자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없이 내려친다.

그때마다 발작적인 비명에 이어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도대체 뭘 하는 거야?’

현수에게 관음증은 없다. 그럼에도 대체 뭘 하고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아 슬그머니 건너편으로 신형을 이동시켰다.

무협 소설에선 이런 이동을 이형환위라 한다.

유령처럼 반대쪽으로 옮겨가 방 안을 살핀 현수는 이를 악물었다. 돼지 같은 사내 앞에 발가벗은 채 벌벌 떨고 있는 여자 때문이다.

얼마나 맞았는지 등판이며 허벅지, 그리고 종아리에 시뻘건 자국이 남아 있다. 하나 현수가 화를 낸 것은 여자가 맞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깊은 잠에 빠져들지어다. 슬립!”

마법을 구현시키자 둘 다 그 자리에서 픽 쓰러진다.

주위를 살펴보니 옆방에도 사람들이 있다. 여섯 명이다. 숨소리를 들어보니 잠든 게 아닌 듯하다.

숨소리가 가늘고 긴 것이 미구에 닥쳐올 공포 때문에 숨죽이고 있는 듯했던 것이다.

“너희도 모두 잠들지어다. 슬립!”

마법을 걸자 모두 잠에 빠져든다.

먼저 여섯 명이 있던 방에 들어섰다.

“마나여, 빛을 밝혀라. 라이트!”

환한 빛 속의 광경을 본 현수는 또 한 번 욕지기가 치미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이런 개 같은……!”

여섯 명 모두 이제 겨우 열 살쯤 된 여자아이들이다. 모두 발가벗겨져 있는데 몸이 성한 아이가 하나도 없다.

조금 전 현수가 화를 낸 것도 사내 앞에서 울고 있던 열 살 남짓한 여아 때문이었다.

돼지 같이 살이 뒤룩뒤룩 찐 사내놈은 어린 여자아이들을 괴롭히면서 쾌락을 추구하는 변태 새끼인 듯하다.

“하여간 지나 새끼들은……!”

나직이 중얼거린 현수는 주위를 살폈다.

“에이, 개새끼……! 이런 새끼는 아예 알거지로 만들어야 해. 마나여, 숨겨진 금속을 찾아라. 메탈 디텍트!”

마법이 구현되자 방 안 여기저기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발생되었다. 금속이 있는 곳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빛들 가운데 가장 진한 곳은 돼지 같은 놈이 널브러져 있는 침상 아래였다. 현수는 먼저 여자아이를 들어 다른 아이들이 있는 곳에 내려놓았다.

“비켜, 이 돼지 새끼야!”

퍼억―!

“크윽!”

현수의 발길질에 걷어 차인 사내놈이 비명을 지르며 침상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보통 사람 같으면 엄청난 각력에 잠깐이라도 허공에 치솟았을 텐데 워낙 무거워서 그런지 그냥 굴러 떨어진 것이다.

“깨기는 왜 깨? 잠이나 자빠져 자! 이 돼지 새끼야. 슬립!”

통증 때문에 허리를 잔뜩 웅크리고 있던 사내가 다시 잠에 빠져든다. 과연 탁월한 마법이다.

“도대체 여기에 뭘 감춰둔 거야? 으윽! 이게 무슨 냄새야?”

침대보를 걷던 현수는 토할 것만 같은 냄새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침대보를 산 뒤에 한 번도 빨지 않은 듯하다.

“하여간 더러운 지나 새끼들이라니까. 에이! 더러운 놈!”

침대보를 걷어 잠든 놈을 덮어버렸다.

그리곤 침대를 옆으로 밀쳐 냈다. 나무로 된 바닥엔 구멍이 뚫려 있다. 손가락을 넣어 위로 들어 올리게 된 것이다.

뚜껑을 열자 여러 개의 상자가 눈에 뜨인다.

“여따가 뭘 감춰둔 거지?”

상자는 모두 자물쇠로 잠겨 있다.

“짜식! 이러면 못 열 줄 알았나 보지? 마나여, 잠긴 것을 모두 풀어라. 언락!”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상자에 걸려 있던 자물쇠들이 모두 풀리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수초이다.

“흐음, 돼지 같은 놈이 대체 뭘 감췄는지 한번 볼까?”

가장 큰 상자는 가로, 세로, 높이 모두 1m쯤 되는 것이다.

철커덩―!

“어! 이게 뭐야. 에이, 이런 변태 같은 놈!”

상자 안에 담긴 것은 변태성욕을 충족시킬 때나 사용할 법한 것들이다. 도색서적, 가면, 채찍, 수갑, 밧줄 등 각종 성인용품들이 하나 가득 담겨 있었다.

인상을 찌푸린 현수는 가장 작은 상자를 열어보았다.

“어라? 이건……!”

하얀 가루가 담긴 소포장 비닐봉지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이건 혹시 마약……? 이 새끼, 이거 인간 말종이었군.”

수백 개의 비닐봉지 안에 담긴 것 모두 자신이 쓰려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킨샤사에서 마약 장사를 했다는 뜻이다.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까지 마약에 중독시켜 빨아먹겠다는 심보였을 것이다.

“이런, 개새끼가……!”

화가 난 현수는 찌든 내 나는 침대보를 걷어냈다. 돼지 같은 놈은 여전히 깊은 잠에 취해 있다.

얼굴을 보니 탐욕이 덕지덕지 붙은 관상이다.

“네가 한번 당해봐라.”

현수는 비닐봉지에 담긴 마약들을 사내의 얼굴 위에 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삼십여 분쯤 지나자 얼굴 가득 마약 가루들이 쌓이게 되었다. 워낙 얼굴이 컸던 때문이다.

흔히들 히로뽕이라 칭하는 암페타민계 마약은 한꺼번에 많은 양을 흡입하게 되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얼굴 위에 뿌려댄 것이다.

불과 열 살짜리 여자아이들을 데려다 변태성욕을 채우려던 놈이기에 죽어도 싸다 생각한 것이다.

다음 상자를 열어보니 금괴가 들어 있다. 1㎏짜리 100개이다.

나머지 상자 가운데 세 개에도 금괴가 들어 있다.

황금 400㎏!

금값이 오르고 올라 한국의 금값은 1g당 6만 원 정도 된다. 따라서 240억 원 정도 된다.

아무리 폭리를 취한다 하지만 약을 팔아선 이 정도까지 모을 수 없다. 그렇다면 마약 판매대금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가만, 안 되겠어. 윈드!”

바람이 불자 사내의 얼굴에 있던 마약들이 스르르 날린다.

“넌, 그냥 죽일 수 없어. 자, 잠에서 깨어나라. 어웨이크!”

“컥컥! 누, 누구……? 어떤 새끼야?”

“이런 십장생이……! 어따 대고 욕이야? 홀드 퍼슨!”

퍼억―!

“케엑! 누, 누구야?”

“시끄러! 일단 매 좀 맞자.”

퍽! 퍽! 퍼억! 퍼퍽! 퍼퍼퍼퍽!

“으윽! 케엑! 끄윽! 아악! 켁! 끅! 악!”

걷어차일 때마다 비명을 지른다.

그런데 때리는 맛이 나지 않는다. 워낙 비대하여 마치 반쯤 바람 빠진 풍선을 치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안 되겠군. 오토 매직 김렛(Auto Magic Gimlet)!”

슉! 슈슉! 슈슈슈슈슈!

“아악! 아아악! 아악! 아아악!”

마법이 구현되자 길이 10㎝쯤 되는 마법 송곳이 놈의 온몸을 찌르기 시작한다. 당연히 비명이 터져 나온다.

팔짱을 낀 채 저항조차 못하며 비명만 지르는 돼지를 보는 현수의 눈에는 조금의 인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놈이 비명을 지르는 동안 다음 상자를 열어보았다.

각종 장부들이 들어 있다. 대강 내용을 살펴보니 이놈도 고리대금업을 했다. 또한 인신매매업을 겸업하고 있었다.

마지막 상자엔 현금과 더불어 차용증이 가득이다.

금괴와 현금은 모두 아공간에 넣었다. 그리곤 잠시 어찌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지나산 저질 약도 이곳에선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하여 모두 꺼내서 약방 앞 공터에 쌓아두었다.

그리곤 입간판 하나를 세워두었다. 누구든 필요한 양만큼 가져가도 좋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약방 옆에 잠든 놈들은 내일 해가 중천에 떠오르도록 깨어나지 못하게 다시 한 번 마법을 걸었다.

따라서 오전 10시 이전에 모든 약들이 사라질 것이다.

일련의 작업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수천 번이나 송곳에 찔린 상처에서 배어 나온 선혈이 흥건하다.

그래도 아직 숨을 거두진 않았다. 워낙 비계가 두꺼워 그러는 모양이다.

놈이 보관하던 현금 차용증은 모두 화로에 넣어 태워 버렸다.

하나 놈이 이곳 관리들에게 뇌물을 바쳤다는 증거자료인 장부는 놈의 배 위에 올려놓았다.

마지막 장부를 펼쳐 본 현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마약 거래장부였던 것이다. 마약을 가져온 곳은 지나이다. 그 공급책은 삼합회 광동지부로 되어 있다.

제법 꼼꼼한지 언제 누구에게 얼마나, 얼마를 받고 팔았는지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아는 이름이 보인다.

건설국장 아래에 있는 과장쯤 되는 사내이다.

“흐음, 이건 나중에 봐야겠군.”

아공간에 장부를 넣은 뒤 여자아이들이 잠든 방으로 갔다. 둘러보니 넝마에 가까운 옷들이 보여 대강 걸치게 하였다.

깨우지 않고 직접 옷을 입힌 것은 얼굴을 보여줘서 좋을 게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든 아이들을 수레에 실었다. 그리곤 경량화 마법과 투명 은신 마법, 그리고 플라이 마법을 동시에 구현시켰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함이다.

숙소 근처로 온 현수는 또다시 상념에 잠겼다.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힐 마법으로 상처 치료를 했다.

그리곤 아이들 각자의 옷 속에 돈을 넣어주었다. 킨샤사에서 한 가족이 2∼3년은 넉넉히 먹고살 만한 돈이다.

수레는 근처에서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을 보살피는 할머니의 집 앞에 세워두었다. 아침에 눈을 뜬 할머니가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거두게 할 요량인 것이다.

다시 놈이 있던 곳으로 가보니 많은 실혈과 다량의 암페타민 흡입으로 죽어 있었다.

문득 영화 제목 하나가 떠올랐다.

용서받지 못한 자!

영화를 보기는 했으나 뭔 내용인지는 기억나지 않는 영화이다. 그럼에도 이 제목이 떠오른 것은 돼지 같은 놈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변을 살펴 증거 될 만한 것들은 모두 제거하였다. 그리곤 유유히 숙소로 되돌아와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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