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혼절한 할머니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하여 커튼을 둘렀다. 바로 옆에도 환자와 보호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나여, 모든 상처를 치료하라. 컴플리트 힐!”
부드러운 황금빛이 할머니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마나 디텍션!”
또 한 번 마법을 구현시켜 할머니의 몸을 살펴보았다.
간에 손상이 있었는데 방금 전의 마법으로 조금씩 나아감이 느껴진다. 췌장에도 문제가 있는 듯하다. 다른 장기들과 달리 마나가 조금도 스며들지 않고 있었던 때문이다.
“당뇨병 환자이신가? 이런, 척추에도 문제가 있군.”
척추의 뼈들이 제자리를 이탈한 것이 느껴진다. 게다가 골반 뼈가 으스러진 상태이다. 정강뼈도 부러졌고, 왼쪽 팔목 뼈도 부러진 상태이다.
마나 디텍션으로 마나의 유동을 살피면서 부러진 뼈들을 맞췄다. 너무 심한 고통으로 혼절한 상태인지라 고통을 못 느끼는 듯하다.
“마나여, 부러진 뼈들을 원상으로 회복시켜라. 리커버리!”
스르르르르릉―!
이번엔 서늘한 푸른빛이 할머니의 몸속으로 스며든다.
현수는 부러진 뼈들이 원상으로 회복되어 감이 느껴져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이다.
“우와, 신기하다. 아저씬 누구예요?”
“헉……!”
화들짝 놀라 곁을 보니 일곱 살쯤 된 사내 녀석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넌 누구니?”
“저요? 전 김정국인데요? 아저씬 누구세요? 어떻게 해서 파란색 빛이 나는 거지요?”
“나? 나는 말이지…….”
현수가 어떻게든 둘러대려던 순간 커튼이 제쳐진다.
찌이이이익―!
“지금 수술실로 환자를 모실 겁니다. 비켜서 주시겠어요?”
“네에? 아, 네에. 그, 그럼요.”
당황한 현수가 한쪽 옆으로 비켜서자 간호사들이 병상을 끌고 간다. 은정이란 여대생 역시 병상을 따라 수술실 쪽으로 이동한다.
“아저씨! 조금 전에 그게 뭐였냐니까요. 그게 뭐예요? 어떻게 한 거예요? 나도 가르쳐 주시면 안 돼요?”
“그, 그게 말이지……. 꼬마야! 지금은 바쁘니 이따 말하자.”
현수는 얼른 자리를 떠서 수술실 쪽으로 갔다.
그런 그를 따라 김정국이란 꼬마가 따라갔지만 현수는 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수술 받으시면 괜찮으실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할머니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참, 카드 여기 있어요. 그리고 영수증도요. 연락처를 주시면 카드 대금을 송금해 드릴게요.”
“그러세요. 자, 이건 제 명함입니다.”
현수의 명함을 받은 은정이란 여대생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김현수님이시군요. 감사합니다. 전 이은정이라고 해요. 참, 잠시만요.”
가방을 뒤져 수첩을 꺼내더니 뭔가를 쓴다.
“이거 제 연락처예요.”
“네?”
“제가 돈을 안 갚으면 연락하시라구요.”
“아, 네에.”
종이를 받아 보니 이은정은 천지대학교 무역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고딩 때 공부를 잘한 모양이다.
그 아래엔 주민등록번호와 집 주소도 있다. 학교 근처이다.
전화번호도 있는데 070으로 시작되는 인터넷 전화번호이다.
그 밑엔 천지대학교 무역학과 사무실 전화번호도 쓰여 있다. 근데 흔하디흔한 휴대폰 번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은정의 설명이 있었다.
“전 핸드폰이 없어요. 낮에는 학교에 있으니 과사무실로 연락 주시면 되구요. 저녁 때는 학교 앞 라면집에서 알바해요. 근데 거긴 유선전화가 없어서 번호를 못 썼어요. 밤 9시 넘으면 집에 있으니까 집으로 전화 주시면 통화 가능해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카드 전표를 보니 금액이 그리 크지 않다. 하여 못 받아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며 종이를 접어 지갑에 넣었다.
회사에서 특별 보너스로 1억이란 거금을 송금해 주었기에 마음이 넉넉해진 것이다.
“할머니의 수술이 잘되길 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의 은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네에. 그럼……!”
현수는 다시 캠퍼스로 돌아왔다. 그리곤 거대한 강당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표창장을 수여받았다.
아울러 두 계급 특진하여 졸지에 과장님이 되셨다. 여기에 석 달짜리 유급 휴가가 추가되었다.
이춘만 과장 역시 표창장을 받았고, 정식 차장으로 진급하였다. 그리고 한 달간의 휴가가 주어졌다.
뿐만이 아니다. 현수에겐 3,000% 보너스가, 이춘만 차장에겐 2,000% 보너스가 상금으로 지불되었다.
그래 봤자 둘 다 1억 정도 되는 돈이다.
보통의 경우 같은 과 직원들과 회식을 해야 한다.
그런데 현수나 이 차장이나 둘 다 해외영업부로 배속됨과 동시에 킨샤사로 보내졌다. 따라서 해외영업부에 아는 사람이라곤 해외영업부장밖에 없다.
다행히 부장도 1,000%에 해당하는 보너스를 받았다. 아랫사람을 잘 둔 덕분일 것이다.
아무것도 한 일도 없으면서 보너스를 받았기에 그 돈 중 일부가 직원들 회식비로 지출될 것이다.
어쨌거나 수여식이 끝난 후 둘은 사장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실세 전무라는 박준태 전무조차 없는 자리이다.
“이 차장은 지부에 남기로 했으니 그렇고 김 과장은 원하는 부서가 있나? 있으면 보내줄 테니 말만 하게.”
“아이고, 아닙니다. 그냥 예전에 있었던 자재과로 보내주십시오. 그 정도면 만족합니다.”
“자재과……? 흐음, 그건 조금 어려울 듯싶으네.”
“네……? 왜요?”
“사수였던 곽 대리를 아래 직원으로 부릴 수 있겠는가?”
“아……! 그렇군요. 쩝, 그럼 할 수 없군요.”
“상황을 보아 기획실로 자리를 알아볼 것이니 그리 알게. 물론 현장에 문제가 생기면 나서주어야 할 것이네.”
천지건설의 핵심은 기획실이다. 다시 말해 기획실 직원은 다른 부서와 다르다.
같은 과장이라도 연봉이 반 정도 차이가 난다. 그렇기에 대부분 능력이나 인맥, 또는 학연이나 지연이 인정된 일류 대학 출신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네에, 알겠습니다. 처분대로 하겠습니다.”
“그러게. 참, 이거……!”
사장이 내민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보석의 원석이다.
“자네가 잘 아는 공방이 있다고 하니 이걸로 반지나 목걸이를 만들어주게. 공임은 달라는 대로 줄 테니 잘 부탁하네.”
“네, 걱정 마십시오.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분에게 맡기겠습니다.”
“고맙네. 그리고 자네가 잡아준 짐승의 가죽들도 고맙네.”
“무슨 말씀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쳤다. 그리곤 각자 갈 곳으로 나뉘어졌다.
* * *
“아버지!”
“왜?”
“이거 공방에 가져가셔서 반지나 목걸이로 만들어주세요.”
“이게 뭔데?”
“우리 회사 사장님이 사모님에게 선물하려고 하는 거라니까 추씨 아저씨에게 각별히 신경 써서 만들어 달라고 해주세요.”
“오냐, 알았다. 내일 나가보마.”
아버진 별말 없이 원석을 받아갔다.
다음날 오후, 전화기가 진동한다.
“혀, 현수야! 이거 정말 너희 회사 사장님이 맡긴 거 맞지?”
“그런데요. 왜요?”
“이, 이거 물건이다.”
“당연히 물건이죠. 그럼 무슨 과자나 이런 건 줄 아셨어요?”
“아니다. 내 말은……! 지금 우리 사장님이 작업실에서 깎고 있는데 엄청난 거라고 하는구나.”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네가 준 원석을 가공하면 4캐럿짜리가 나온다는구나.”
“그래요? 그거 비싼 거예요?”
“당연하지. 4캐럿짜리는 품질이 최상급이라 2억 8천만 원 정도 된다고 한다.”
“우와, 엄청 비싼 거군요.”
“그래. 그런 건 줄도 모르고 잠바 주머니에 넣고 나왔으니……. 휴우, 난 그냥 큐빅인 줄 알았다.”
“아무튼 신경 써서 만들어주세요. 근데 반지예요? 아님 목걸이예요?”
“반지가 낫겠다는구나. 사장님이 멋진 디자인으로 만들어준다니 그리 알아라. 참, 공임은 걱정 안 해도 되지?”
“그럼요. 만일 공임 안 주면 그거 떼어먹으면 되잖아요.”
“하긴……!”
아버지와의 통화를 끝낸 현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직경 2㎝ 정도 되는 것이 2억 8천만 원이란다.
그런데 아공간엔 그런 게 아예 한 포대나 들어 있다.
그것도 작은 포대가 아니가 톤백 포대이다. 몇 개나 들어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난 부자였군. 후후! 후후후!”
회사에서 준 3개월간의 휴가를 어찌 쓸 것인가를 고심했다. 예전 같으면 돈이 없어서 방에 콕 박혀 있었을 것이나 이제는 다르다. 통장에 들어 있는 돈만 1억이 넘는다.
출처를 댈 수 없어 아공간에 넣어둔 돈도 몇 억은 된다. 게다가 금괴며 보석들이 그야말로 부지기수이다.
평생 돈 걱정은 안 하고 살아도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일단 국내의 명승지들을 돌아보자. 동해안부터 돌까, 아님 서해안부터 돌까?”
차를 몰고 나가 구경하고픈 곳을 구경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생각이다. 그러다 날이 저물면 아무 여관이나 들어가서 자도 된다. 잠만 잘 것이니 굳이 비싼 호텔에 묵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애인이 없으면 이럴 때 편하다. 휴가 날짜를 조정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 데서나 자도 된다. 여관이 없으면 인적 드문 곳을 찾아 결계를 치고 그 안에서 머물러도 된다.
아드리안 공국의 위기는 당분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평상시에 해보지 못한 호사를 누릴 생각을 한 것이다.
하루 종일 전국의 명승지를 찾아 꼼꼼하게 기록했다.
언제 또 있을지 모를 여행이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에 몽땅 돌아볼 생각을 한 것이다.
그렇게 계획을 짜고 있었다.
부우우우웅! 부우우우웅!
전화가 어서 받아달라고 진동을 한다.
“누구지……? 모르는 번혼데?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김현수 씨, 전화 맞죠?”
“그렇습니다. 누구시죠?”
“저, 이은정이에요. 저 기억하시죠?”
“이은정씨요?”
“네, 천지대학병원에서 만났었잖아요.”
“아! 네, 기억합니다. 할머닌 좀 어떠세요?”
“저어, 그 문제로 좀 뵈었으면 하는데 시간 어떠세요?”
“무슨 문제라도……?”
“그건 아니에요. 아무튼 할머니 때문에 좀 뵈었으면 하는데 시간 내주실 수 있나요?”
“네에, 시간은 뭐어…….”
“그럼 제가 회사 앞으로 갈게요. 지금 가도 되죠?”
“지금이요?”
“네. 지하철 타고 가면 금방이에요.”
“좋습니다. 그럼 회사 앞으로 오지 마시고 광나루역으로 오세요. 3번 출구로 나오시면 제가 차를 가지고 나갈게요.”
“광나루역이면 광장사거리에 있는 곳이지요?”
“네.”
“알았어요. 그럼 30분쯤 후에 광나루역 3번 출구 앞에서 뵈어요.”
“네에.”
전화를 끊은 현수는 대체 왜 보자고 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마법이 잘못되어 할머니에게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스런 마음이 들어 몹시 불편했다.
부우우웅! 부우우우웅!
또 핸드폰이 진동을 한다. 번호도 확인하지 않고 통화를 시도했다.
“여보세요.”
“김 과장. 날세.”
“아! 이 차장님이세요?”
“그래. 자넬 잠시 만났으면 하는데 혹시 시간 있나?”
“저를요?”
“그래. 자네하고 상의할 일이 있네. 자네 어느 동네 산다고 했지? 워커힐 지나 구리시 쪽으로 가는 데 있다고 했지?”
“네.”
“마침 잘되었네. 회사에서 일이 끝나려면 앞으로 두 시간쯤 있어야 하니까 내가 워커힐 쪽으로 가겠네. 근처에서 만나세.”
“네……? 네에, 그러세요.”
전화를 끊은 현수는 대체 이 양반은 또 왜 만나자고 하는지 궁금했다. 하나 이내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냈다.
얼른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닙니다. 반갑습니다. 일단 차에 타세요. 제가 아는 찻집으로 모시겠습니다.”
“네에.”
이은정이 차에 타자 곧장 출발했다.
“근데 식사는 하셨어요? 점심시간 전인데…….”
“저도 아직이에요. 김현수 씨도 아직 식사 안 하셨죠? 어디 아는 데 있으면 그쪽으로 가세요. 오늘 점심은 제가 살게요.”
아직 정오도 안 된 시간이니 점심 먹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물은 것은 상대방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점심을 사준다고 하니 할머닌 괜찮은 모양이다. 하여 마음을 놓고 차를 몰아 손만두집으로 향했다.
동네 입구에 있는 가게인데 늘 손님이 북적이는 곳이다.
맛이 있겠다 싶어 언젠가 한번 가봐야지 하면서도 한 번도 못 가본 곳이다.
“할머닌 좀 어떠세요? 수술은 잘되었죠?”
“물론이에요. 김현수 씨 덕분에 괜찮으셔요.”
“무슨 말씀을……. 그나저나 다행입니다. 괜찮으셔서.”
“네에, 처음엔 저도 많이 놀랐는데 예상 밖으로 경상이래요.”
“경상이요?”
“네, 외상도 거의 없는 데다 가벼운 타박상 정도뿐이라 오늘 퇴원하셨어요.”
“아! 그래요? 정말 다행입니다.”
“저어, 여기요.”
이은정이 내민 하얀 봉투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짐작이 된다. 그럼에도 의례적으로 물었다.
“뭡니까? 그게…….”
“카드 빌려 쓴 금액이에요. 그날은 정말 고마웠어요.”
“아! 그렇군요.”
현수는 자연스럽게 봉투를 받아 들었다. 이은정은 봉투를 건네주고 나니 홀가분하다는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식당 앞에 당도하였다.
차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가니 벌써 손님들이 가득하다. 살펴보니 가장 안쪽에 딱 둘이 앉을 수 있는 자리만 비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