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75화 (75/1,307)

# 75

킨샤사엔 1,500만 명이 산다.

이곳 사람들이 대한민국과 똑같이 약을 소비한다고 가정해 보면 약 1조 9천억 원어치 약이 팔리게 될 것이다.

하나 콩고민주공화국엔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것이 없어 한국처럼 약을 남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감안하여 한국에 비해 10분의 1을 소비한다고 가정해도 연간 매출액이 1,900억 원이다.

월매출 158.3억이고, 일매출 5억 2천만 원이다.

이것의 10%만 이득을 본다고 가정하면 하루에 5,200만 원씩 벌 수 있다는 뜻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은 가난한 나라이다. 그렇기에 한국보다 100분의 1만 팔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루 수익이 500만 원이 넘는다.

약방 문을 연 첫날 수익이 300만 원을 넘었다. 이때는 소문이 크게 번지지 않았을 때이다.

따라서 현수의 계산은 실제적인 것이다. 어쨌거나 수학과 출신답게 순식간에 계산을 마친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제가 무역회사를 내지요. 비용은 제가 다 대겠습니다. 차장님도 돈이 있어야 약을 수입하지 않습니까?”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지금은 돈이 부족해서 원하는 만큼 수입하지 못하고 있으니……. 쩝! 조금 아쉽네. 이럴 때 집이라도 있으면 팔아서 보태겠건만 애들 엄마가 미국으로 갈 때 몽땅 팔아서 빈손이네.”

“그래요? 그럼 제가 무역회사 차리고 나서 남는 돈으로 투자를 하지요. 나중에 적당한 이익 분배만 해주십시오.”

“정말인가? 고맙네. 그렇지 않아도 돈이 많이 부족했어. 근데 어느 정도까지 투자할 수 있나?”

“글쎄요……? 집에 가서 부모님께 여쭤봐야 알겠지만 당장은 대략 5억 정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당장은 5억……? 그럼 추가로 더 투자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 그럴 겁니다. 아버지가 갖고 계신 게 얼마나 되는지 제가 정확히 몰라서요.”

현수는 부러 이렇게 말하였다.

자신에게 5억이나 되는 여유가 있다고 하면 어떻게 번 것이냐며 꼬치꼬치 물을 것 같았던 때문이다.

그리고 순순히 이만한 액수를 투자하겠다고 한 것에도 이유가 있다. 이 차장이 자신을 찾은 것에 여러 가지 목적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때문이다.

킨샤사에서의 약품 판매는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땅 짚고 헤엄치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경쟁 상대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막대한 이득이 남는다.

그런데 이것을 독식하는 것이 미안하다.

많은 부분이 현수 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눠먹기를 하려면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투자를 권유하려고 온 것이다.

둘째, 현수와의 연결 고리가 끊겨 버리면 내무부 관리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연결 고리를 튼튼하게 할 목적도 있다.

한국으로부터 킨샤사로 수출하는 무역회사를 현수가 차리게 되면 이 끈은 매우 튼튼해질 것이다.

셋째, 혹시 주변에 돈 있는 사람이 있는지를 가늠하고자 했다. 필요한 만큼 약을 수입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있다니 마음이 놓인다.

한편, 현수가 무역회사를 내겠다고 한 것엔 이유가 있다.

문득 조금 전에 헤어진 이은정이란 아가씨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든 것이다. 무역학과에 다니고 있으니 무역 실무는 조금만 배우면 금방 알 것이라 판단된다.

딱 두 번 만나보았지만 신의가 있는 듯하다. 좋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무역회사를 차리는 것에 동의했다.

사실 이건 별로 큰돈이 들지 않는다. 사무실 임대료와 집기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5억이나 되는 거금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은 향후 발생될 막대한 이익을 거두기 위함이다.

물론 이 차장이 보다 쉽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틔어주려는 의도도 있다. 착한 사람이기에 이제부터라도 부자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대화는 순조롭게 끝났다.

무역회사 설립에 관한 모든 권한은 현수가 갖기로 했다.

회사 설립이 마쳐지면 필요한 약품을 구입하여 수출한다.

수출되는 약품의 대금은 약품도매상들이 납품하는 가격에 10%를 가산한 금액으로 결정했다.

이것이 무역회사에서 얻는 이득이다.

현수는 5억 원을 현금으로 투자하고 킨샤사에서 발생되는 순이익의 40%를 갖기로 했다.

큰 테두리가 만들어지자 세부사항은 각자 생각하여 다시 상의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저어, 이은정 씨 댁이지요?”

“전데요, 누구시죠?”

“아, 점심 때 만났던 김현수입니다. 지금 통화 가능하죠?”

“네, 말씀하세요.”

“으음, 의논할 게 있는데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는지요?”

“지금이요? 알았어요. 말씀하시면 나갈게요.”

“네, 늦지 않게 보내 드릴 테니 학교 앞으로 오십시오.”

“근처까지 오신 거예요?”

“네, 학교 정문 근처에 있어요. 어디로 갈까요? 조용히 대화를 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그럼 거기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곧 나갈게요.”

이은정은 불과 5분도 되지 않아 정문 앞에 나타났다.

“집이 학교에서 가까운가 봐요.”

“네, 그래서 이 대학교를 선택한 거예요.”

“아! 그래요?”

현수는 무슨 뜻인지를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가난한 집안 형편을 고려하여 더 좋은 대학을 갈 수도 있지만 차비나 점심 값을 절약할 수 있는 천지대학교를 선택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학교 안에 들어가면 녹원이라는 데가 있어요.”

“녹원이요?”

“네, 여름엔 등나무 넝쿨이 그늘을 만들어줘 시원한 곳이에요. 이 시간엔 사람이 없으니 거기로 가요.”

“커피숍은 없어요?”

“있기는 한데 사람들도 많고, 비싸기도 하고 그래요.”

가난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몸에 밴 근검절약 정신이 엿보인다. 현수도 한때 은정과 똑같은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금방 금방 속뜻을 알아듣는 것이다.

“그럼 그러죠.”

잠시 후 둘은 녹원이라는 곳에 당도했다. 아직 잎사귀가 완연하게 돋아나지 않은 계절이라 조금은 을씨년스런 분위기였지만 대화하기엔 괜찮았다.

혹시 몰라 와이드 센스 마법으로 주위를 살펴보니 반경 100m 내엔 개미 한 마리 없을 정도로 고요했다.

녹원엔 혹시 있을지 모를 불미스런 사고를 막고자 수은등이 켜져 있고, CCTV가 작동되고 있었다.

둘은 자판기에서 300원짜리 커피 두 잔을 뽑아 들곤 마주 앉았다.

“우리 둘만 있으니까 조금 이상하네요. 그쵸?”

“네에.”

데리고 와보니 분위기가 이상하다. 하여 옷자락만 만지작거리면서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렇게 만나자고 한 것은 제의할 것이 있어서예요.”

“제의요?”

“네. 이은정 씨, 지금 무역학과에 재학 중이지요? 졸업 후 취직 준비는 잘되고 있어요?”

“나름대로 준비는 하고 있는데 요즘 그쪽에 빈자리가 없어서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고 해요.”

“그래요?”

“네. 올해 졸업한 선배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아직 일자리를 못 찾았어요. 취직한 선배들도 무역 쪽이 아닌 다른 사무직 쪽으로 간 사람들도 많구요.”

“그렇게나 어려워요?”

“네, 무역은 활발한데 자리가 없는 거죠.”

“은정씨는 인턴사원 이런 거 안 알아봐요?”

“왜 안 알아보겠어요? 여러 군데 지원서를 썼는데 모두 떨어졌어요.”

우울모드로 접어든 듯 살짝 이맛살을 찌푸린다.

“취직은 할 거지요?”

“물론이에요, 제가 취업을 해야 할머니랑 어머닐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드릴 수 있잖아요.”

“회사의 규모는 어느 정도 되는 델 원하나요?”

“아이고, 지금 제 입장에서 그런 걸 어떻게 따져요? 뽑아주기만 해도 감지덕지지요.”

“그래요?”

“네.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한다고 소문났던 선배들도 판판히 놀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좋아요. 그럼 제의를 하지요. 은정 씨!”

“네, 말씀하세요.”

은정은 이제 겨우 두 번 만나본 현수가 대체 무엇을 제의하려는 것인지 궁금하다는 듯 눈빛을 빛냈다.

“제가 무역회사를 하나 내려고 해요. 업무는 국내 제약사들이 만든 약품을 콩고민주공화국에 있는 킨샤사로 수출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약품을 수출한다고요?”

“네. 항생제, 진통제, 지사제, 소독약 등등 일상생활에서 쓰는 약품들을 수출하는 겁니다.”

“상대 회사는 정해져 있나 보죠?”

“킨샤사에 제가 투자하는 회사가 있어요.”

“아, 그래요?”

머리 좋은 은정은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들었다.

이쪽과 저쪽의 거래처가 동일인 소유라면 무역 사기랄지 이런 일은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다시 말해 아주 안전한 업무가 된다는 뜻이다.

“그건 알았어요. 근데 제가 할 일은 뭐죠?”

현수는 은정이 마음을 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마음 편히 이야기했다.

“당연히 무역 실무지요. 관련 법규가 뭔지는 알죠?”

“네. 대외무역법, 외국환 관리법, 통관법이 적용되죠. 그리고 취급하는 상품 종류에 따라 전기용품 안전 관리법, 자연환경 보전법, 유해 화학 물질 관리법 등도 참고해야 해요.”

“무역협회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는데 거기도 가입해야지요?”

“그건 필수사항은 아니에요. 하지만 수출입 실적을 인정받으려면 무역업 고유번호가 있어야 하죠.”

“그래요?”

“네, 제 생각엔 수출 품목이 늘어날 것 같으면 비용이 들더라도 무역협회에 가입하는 게 좋아요. 실무에 있어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군대 사격장에 가면 교관들이 하는 말 가운데 ‘준비된 사수부터 사격 개시!’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나갈 정도로 완전히 자세 잡은 병사를 뜻하는 말이다.

지금의 은정이 그렇다. 무역학과를 다니면서 언제든 실무에 투입될 수 있도록 많은 준비를 한 아가씨이다.

그럼에도 인턴사원으로 뽑히지 못한 것은 실력보다는 학벌 위주의 선발이 있었던 때문이다.

“그건 그렇게 합시다. 아무튼 이은정 씨가 수출입에 필요한 제반 업무를 맡아주시면 돼요.”

“저 말고 다른 직원은요?”

“지금은 없습니다.”

“그럼 제가 책임자가 되는 건가요?”

“당장은 그래요. 하다가 차츰 인원이 늘어나게 될 거예요. 아무래도 수출 품목이 조금씩 늘어날 것 같거든요.”

현수는 이 차장이 수입하던 아날로그 텔레비전과 싸구려 옷, 그리고 신발 등을 떠올린 것이다.

“저어, 우리 엄마와 할머닌 신용불량자고 저도 학자금 융자받은 걸 갚지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되는데 뭘 믿고 제게 이런 제안을 하신 거죠?”

“그냥요, 느낌이 좋았어요. 선한 사람이고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을 사람처럼 느껴졌거든요.”

“……!”

“저도 은정 씨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대학을 졸업했어요. 저도 학자금 융자를 받아서 썼거든요. 졸업 후엔 80번 넘게 입사 지원서를 썼지요. 그리고…….”

현수가 무슨 말을 할까 싶어 잠시 말을 끊은 동안 은정이 눈빛을 빛내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현수가 말을 잇기 전에 먼저 입을 연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네에? 아직 보수 문제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저도 느낌이 좋았어요. 김현수 씨, 아니, 이제부턴 사장님이라고 불러야 하죠? 아무튼 사장님도 선한 사람 같아요.”

“그래요?”

“네에. 선하신 분 맞지요? 그리고 제 급여는 알아서 넣어주세요. 알바하는 거보다는 낫겠지요. 그쵸?”

“그, 그럼요. 알바가 아니라 정규직이죠. 그것도 국내 업무를 총괄하는 책임자구요.”

“네에……? 제가요?”

“제 명함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해외영업부 소속이라 석 달 휴가가 끝나면 킨샤사로 되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저 혼자 어떻게……?”

“일단 회사를 창업하고 돌아가는 상황 봐서 인원을 추가하도록 하죠. 같은 과 친구도 괜찮으니 쓸 만한 사람들을 미리 물색해 두세요.”

“네에. 고맙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근데 언제부터 일을 시작하죠?”

“내일부터 해야 합니다. 우선 회사 설립에 필요한 것들을 알아봐 주세요. 잘 모르겠거나 너무 복잡하면 법무사 사무소를 찾아가서 대행을 의뢰해도 돼요.”

“어머, 아니에요. 그럼 비용 들잖아요. 제가 알아볼게요. 모르는 건 교수님들에게 여쭤봐도 되니까요.”

“교수님들보다는 관련 부처 공무원이나 무역협회 관계자에게 물어보는 게 더 빠를 수도 있을 겁니다.”

“아……! 그건 그렇겠군요.”

“전 사무실을 알아보겠습니다. 은정 씨가 일을 해야 하니 이 근처에 얻는 게 좋겠지요?”

“그래 주시면 저야 좋지만 사장님이 오가시기에 불편하지 않을까요?”

“전 상관없어요. 참, 내일 수업은 어때요?”

“오전에 모두 끝나요. 과사무실에 3시까지 있어야 하니까 오후부턴 시간이 돼요.”

“근로장학생이에요?”

“네, 학자금 융자받고 한 거 이자를 내려면…….”

“그렇군요. 알았습니다. 그럼 내일 오후 3시 반에 학교 앞으로 올게요. 사무실을 알아보러 다닙시다.”

“네, 전 그전에 사무실 규모 등과 관련된 규정이 있는지 알아볼게요.”

“그러세요.”

차를 몰고 집으로 오는 동안 현수의 뇌리로는 상념이 끊이지 않았다. 갑작스레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생각할 것이 많아진 때문이다.

덕분에 여행 계획은 뇌리에서 지워졌다.

『전능의 팔찌』 제4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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