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76화 (76/1,307)

# 76

1장 부가세 면세였어?

다음 날, 둘은 여러 곳을 둘러본 뒤 사무실을 결정했다.

업무상 찾아올 사람이 드물 것이기에 큰길에서 한 블록 들어간 곳에 위치한 5층짜리 주상복합 3층 중 절반을 얻었다.

실면적만 35평 정도 되는 아담한 크기이다. 주인은 5층에서 거주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이다.

아직 입주하지 않아 주차장도 널널하다. 무엇보다 새로 지은 건물이라 깔끔해서 좋았다. 보증금은 2,000만원이고, 월 임대료가 부가세 포함하여 132만원이다.

사무실이 결정되자 곧장 전화 및 인터넷 신청을 했다. 그리곤 인테리어 업체를 방문하여 구획을 정리했다.

은정이 반드시 사장실이 따로 있어야 한다고 우겨서 칸막이를 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사장실과 탕비실, 그리고 창고와 업무 공간으로 나뉘게 되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가구 매장을 찾아 제반 집기들을 사들였다. 이곳에서 둘 사이에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 현수는 값이 좀 나가더라도 괜찮은 것을 구입하려 했다.

반면 은정은 굳이 비싼 것을 살 필요 없다면서 실용적인 것들을 선택하자는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이다.

현수의 의견은 의자와 모니터에서만 받아들여졌고, 나머진 모두 은정의 뜻대로 구입하였다.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 할지도 모르기에 의자만큼은 좋은 걸 구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모니터도 비슷한 의미로 결정되었다.

다음 날엔 회사 설립에 관한 서류들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후엔 이춘만 차장이 보낸 화분들이 당도했다.

사무실을 온실로 만들려는지 상당히 많은 화분이다. 덕분에 썰렁하고 삭막하던 사무실 분위기가 한결 좋아졌다.

은정의 꼼꼼하면서도 확실한 업무 처리 덕분에 회사 설립은 어렵지 않게 끝났다. 무역협회 가입도 순조로웠다.

그러는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내용은 굳이 약품 도매상들을 이용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킨샤사로 수출하는 약품은 종류가 적은 대신 양이 많다.

예를 들어 후시딘이나 마데카솔 같은 건 단일 품목만으로도 컨테이너 가득이다. 크기가 작기에 수량이 많다는 뜻이다.

진통제나 소염제, 항생제 등을 제조하는 제약사들은 많다. 그런데 굳이 한국처럼 여러 종류를 모두 갖출 필요는 없다.

따라서 몇 군데 제약사로부터 집중적으로 사들이는 편이 업무 편이에도 좋다. 그러니 제약사들과 직접 교섭해서 단가를 낮출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듣고 보니 그러하여 제약사를 직접 방문해 보기로 했다.

“은정 씨, 그럼 내일은 제약사들을 둘러볼까요?”

“네에, 사장님!”

* * *

“안녕하십니까? 아까 전화 드렸던 김현수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영업부 임동훈 과장입니다.”

“네, 이쪽은 저희 회사 이은정 실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은정입니다.”

“네, 어서 오십시오. 그런데 사장님도 그렇고 실장님도 상당히 젊은 분들이시군요.”

임 과장이 보기에 둘은 영락없는 대학생으로 보인 것이다.

“하하, 네에. 저희가 조금 그런 편입니다.”

“자아,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현수와 은정이 방문한 곳은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이다.

이곳에 오기 전 미리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약품 구매 상담을 받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다만 뭘 얼마만큼 사겠다는 내용은 아니었다.

한편, 임동훈 과장은 둘을 안내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나는 사장이라 하고 다른 하나는 실장이라 한다.

그런데 사장이라는 남자는 스물다섯 살쯤으로 보이고, 실장은 아직 학생티도 못 벗은 여대생인 것 같다.

‘흐음, 아직 어린 친구들인데 대체 뭐하겠다고 온 거지? 약사라고 하기엔 좀 그런데.’

자리에 앉자 임 과장이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온다. 이 회사에서 만든, 제법 잘나가는 드링크이다.

“고맙습니다.”

“네에. 그런데 어느 분이 약사이신지요?”

“약사요……? 우리 둘 다 아닌데요.”

“그래요? 그럼 어느 병원에서 오신 겁니까?”

“병원이요? 그것도 아닌데요? 우린 병원이랑 관련없어요.”

“그, 그래요? 그럼 어떻게 여길…….”

임동훈 과장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전화로 약품 구매 때문에 온다고 했다.

그런데 소비자가 두어 박스 사려고 직접 온 것이라면 어찌하나 하는 표정을 지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끔 이런 사람들이 있다. 본사에 오면 조금 더 싸게 살까 싶어 그런다고 한다.

그렇다면 완전한 시간 낭비이다.

밀린 업무 때문에 오늘도 야근해야 할 판인데 영양가없는 사람들이 온 거라면 진짜 짜증이 날 것 같다.

하나 얼굴로는 이런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다. 이때 은정이 묻는다.

“저어, 저흰 약을 구매하려고 온 거예요. 그런데 약국이나 병원 관계자가 아니면 약을 구매할 수 없는 건가요?”

“처방전이 있어야 하는 약품은 그렇습니다. 그런 건가요?”

“아뇨. 어디가 아픈 건 아니구요.”

“흐음, 그렇다면 어떤 용무로 오신 건지요?”

임 과장의 표정이 약간 풀렸다. 그러는 사이에 은정이 가방 속에서 파일을 꺼냈다.

“이게 저희가 필요로 하는 약품 목록과 수량입니다.”

파일을 펼쳐든 임 과장의 눈이 커진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제가 잠시 보지요. 허억……!”

임 과장은 혹시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눈을 비볐다.

어마어마한 물량 때문이다. 약품명 옆에 기록되어 있는 숫자는 예상보다 0이 세 개 또는 네 개씩 많았던 것이다.

“이렇게나 많이……?”

“네, 내수용이 아니라 수출하려는 거거든요.”

“수출이요?”

“네, 아프리카로 수출할 겁니다.”

“그, 그래요?”

“네, 일차로 그 정도가 필요하고 아마 거의 매달 비슷하거나 그보다 많은 양이 수출될 것입니다.”

“매달이요? 그리고 이보다 더 많은 양이라구요? 잠깐만요, 이건 제 선에서 어찌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 부장님을 모셔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임동훈 과장이 서둘러 상담실을 나가자 현수와 은정이 마주보고 웃음 지었다. 이런 반응이 있을 것이라 예상한 때문이다.

잠시 후, 영업부장과 영업이사라는 사람들이 들어온다.

그리곤 구체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킨샤사에서 약방 허가를 받은 이야기며, 인구 1,500만인 도시에 약방이 아홉 개밖에 없다는 것 등등이다.

그러면서 인구 1,000만인 서울에서 팔리는 양을 물어보았다.

자료를 봐야 안다면서 자세한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어찌 그 양이 적겠는가!

현수는 미소 지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국내의 제약사 중 몇 군데만 골라 집중적으로 약을 매입할 계획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한 회사에서 항생제, 소염제, 진통제, 소화제, 소독약 등을 몰아서 사겠다고 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영업이사와 영업부장은 저자세가 되었다.

진짜 수출할 곳이 있는지 여부는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상대에게 밉보여 좋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잠시 후, 각종 약품의 납품단가가 기록된 서류를 보여준다.

“솔직히 말씀드려 약값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저희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십시오.”

“네, 그러겠습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약이 있습니다.”

“아, 이 약은 저도 압니다. 복합 상처 치료 연고지요.”

“네, 이건 약국마다 조금씩 달리 가격을 정해서 팔지만 평균적으로 9천원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저흰 이 약을 약국에 3,800원에 납품합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계산기로 두들겨 보았다.

“흐음! 42.2% 가격으로 납품한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B라는 약품이 있습니다. 이건 시중에서 3천원에 팔리는데 저희가 납품하는 가격은 1,300원입니다.”

“이건 43.3%쯤 되는군요.”

“그렇습니다.”

“근데 저희가 구매하고자 하는 물량은 대형약국보다 훨씬 많은 것 같은데요. 안 그렇습니까?”

더 깎아달라는 뜻이었다. 어찌 이를 모르겠는가!

“물론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조금 더 할인하여 40%에 맞추면 어떻겠습니까?”

말은 안 하지만 영업이사의 머릿속은 계산이 분주한 듯하다. 눈동자가 심하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대형약국의 경우엔 주로 어음으로 결제 받으시죠?”

이은정이 나서서 물은 것이다.

“그렇습니다.”

영업이사와 영업부장 모두 업계의 통상적인 일인지라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2∼3개월짜리이거나 결제 기일이 6개월 이상 되는 어음도 받으시겠군요.”

“그, 그렇긴 한데 그건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

영업이사는 진땀이 난다는 듯 이마를 소매로 문질렀다.

“어음을 할인하시는지 여부는 여쭙지 않겠습니다.”

“네에.”

“저흰 물건이 납품되면 전액 현금으로 결제할 겁니다. 그럼, 더 할인해 주실 수 있는 거지요?”

“혀, 현금이요?”

영업이사는 허를 찔렸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영업이사는 계속해서 생각지도 않은 복병을 만난다는 듯 당황하고 있다. 아직 덥지도 않은 계절이건만 계속해서 이마에 솟는 땀이 그걸 반증하고 있다.

“액수가 상당히 큰데…….”

“저희 회사는 어음은 물론이고 당좌수표도 쓰지 않습니다. 정상적으로 납품되면 그날로 전액 현금으로 결제해 드릴 겁니다. 얼마나 더 할인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 그건 잠시만요……. 윗사람과 상의를 해야 할 듯합니다.”

“네, 그러시죠.”

영업이사와 영업부장이 나가자 임동훈 과장이 헛기침을 하며 어색해한다. 그리곤 의미없는 질문을 했다.

“납품은 언제 받으실 계획이신지요?”

“납품단가가 결정되면 곧바로 주문하려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뭔가 더 말을 하려는 순간 나갔던 둘이 다시 들어온다.

“죄송합니다. 현금 결제해 주실 거라곤 생각지 못해서…….”

“괜찮습니다.”

“다시 제안 드리겠습니다. 시중 판매가의 35% 선이면 어떻겠습니까?”

“35%요? 흐으음, 고려해 보지요. 참, 수출되는 품목엔 부가가치세가 부과되지 않으니 그걸 빼면 31.8%쯤 되는 거지요?”

“무, 물론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고려해 보고 결정하여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가, 가시게요?”

“네, 가볼 곳이 또 있어서요.”

현수는 다른 제약사를 방문할 것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눈에 뜨이게 허둥대는 듯하다. 이대로 가면 대어를 놓칠 것이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저어,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저희 사장님과 상의하여 납품가를 조금 더 낮춰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러세요? 그럼, 그렇게 하죠.”

“네, 감사합니다. 그럼 잠시만요.”

영업이사와 영업부장이 나가자 임 과장은 또 어색한 침묵을 깨려고 한다. 하여 은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과장님! 이 회사에서 만드는 약품 목록 좀 부탁드릴게요.”

“네, 잠시만요.”

임 과장마저 자리를 비우자 현수와 은정은 빙그레 웃음 지었다. 납품단가가 많이 내려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제안받은 것은 28%였다. 이런 방법으로 몇 군데 제약사를 돌아 가격을 결정하였다.

이춘만 차장이 알음알음하여 알아본 납품가격은 43%였다.

경험이 없어 수출되는 물량에는 부가가치세가 부과되지 않는다는 것도 모른 모양이다. 여기에 10%를 붙여서 53%에 보내주면 알아서 팔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납품되는 약은 28% 수준이다. 53%라면 25%나 남는다. 거의 절반이 남는다는 것이다.

현수는 이춘만 차장과 만나 이 문제를 상의했다. 감추고 자시고 하지 않고 툭 털어놓은 것이다.

이 차장은 상당히 저렴해진 납품가에 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하여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약을 납품받으려면 이것을 넣어둘 창고가 필요하다. 창고 임대료 및 보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수출 포장도 하여야 하고, 운송도 필요하다.

뿐만이 아니라 각종 세금과 사무실 유지 비용, 그리고 인건비 등도 필요하다.

이것 이외의 제반 경비를 고려하여 시중 판매가의 45% 가격으로 수출하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예를 들어 1억 원어치 수출을 하면 1,700만 원이 남는 것이다. 현재의 판매가 유지된다면 매달 6억 원 정도 매출이 오른다. 그럼 1억 하고도 200만 원이나 남는다.

여기서 제반 경비를 빼도 널널하게 남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예상하지 못한 중대한 문제가 있다.

그건 킨샤사에 이춘만 차장이 운영하는 약방에 대한 소문이 구석구석까지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며칠 후, 이 차장은 킨샤사로 출국한다.

약방 직원으로 채용한 교민부인들이 약이 다 팔려서 문을 못 열고 있다는 연락을 하기 때문이다.

이 차장이 온다는 소문이 번지자 킨샤사 공항에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다. 연예인이 방문할 때 모여드는 빠순이들처럼 바글바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다. 이들이 이 차장을 기다린 이유는 약방으로부터 약을 공급받기 위함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의료 체계는 아직 완전하지 않다. 다시 말해 의료 사각지대가 많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는 약방으로부터 약을 공급받을 수 있으면 누구든 위탁판매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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