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그럼에도 약방이 거의 없었던 이유가 있다.
지금껏 벨기에인과 지나인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곤 약을 공급해 주지 않았다. 그래야 비싼 값에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득의 전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새로 생긴 한국인의 약방은 약효도 좋을 뿐만 아니라 값도 저렴하고 친절하다고 한다.
이곳으로부터 약을 공급받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이 차장을 만나고자 공항까지 온 것이다.
2011년이 기준인 통계자료를 보면 인구 1,000만인 서울엔 5,088개의 약국이 있다. 같은 비율이라면 킨샤사엔 7,633개의 약국이 필요하다.
어쨌거나 사람 좋은 이 차장이 어떤 선택을 했겠는가!
오랜 고심 끝에 약품을 공급하기로 한다. 하지만 약품은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자격 심사를 했다.
약을 취급해도 좋을 정도의 학식이 있는지를 가늠한 것이다.
그 결과 킨샤사의 주요 길목마다 약방이 생겨난다. 그 숫자가 무려 1,000여 개다.
처음엔 저가로 약을 풀 생각을 했다.
그런데 2007년 세계은행의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의 첫 번째가 콩고민주공화국이다.
법인세 및 총매출액에 대한 세금 등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법인세를 예로 들자면 40%이다. 한국 법인세율의 두 배이다. 이러니 기업들이 성장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이 차장은 들여온 원가가 100원이라면 소매 약방에겐 150원에 넘기는 것으로 결정했다.
예상치 못한 손해가 발생될 것을 감안한 가격이다.
소매 약방에겐 이걸 200원에 팔도록 했다. 다시 말해 어디든 값이 똑같도록 정가를 매긴 것이다.
값을 더 받거나 할인해서 팔다 걸리면 즉각 거래를 끊겠다고 했기에 이 약속은 아주 잘 지켜진다.
아무튼 이 차장은 총 매출액의 33.3%가 이득이고, 소매 약방들은 매출액의 25%가 이익금이다.
이 차장이 33.3% 가운데 40%에 해당하는 세금을 내고 나면 매출액 기준으로 순이익이 19.98%이다.
이중 40%인 7.98%는 현수의 몫이고, 나머지 12%가 이 차장 본인의 이익금이 된다.
이 차장이 직접 개설한 약국에서 팔리는 것은 별도이다.
매출액의 50%가 이득이니 이에 대한 것을 다시 계산해 보아야 한다. 여기서 법인세 등 제반 경비를 빼면 실제 소득이 될 것이다.
어쨌거나 이춘만 차장의 천지약방은 1,000여 개의 소매 약방을 거느린 도매 약방의 지위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각각의 약방에 진통제를 100알씩만 공급한다 해도 최소 100,000개 이상이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으로부터의 약품 수입은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석 달 뒤, 이실리프 무역상사에서 항공 화물로 부친 약품의 납품가가 70억 원이다. 수출단가는 112억 5천만 원이다.
단 한 번의 수출로 이실리프 무역상사에 떨어지는 마진이 무려 42억 5천만 원이다. 직원이라곤 딸랑 둘밖에 없는 무역회사에서 일궈낸 기적이다.
한편, 킨샤사에서도 기적이 일어난다.
관세 등을 물고 들여온 약품들은 사흘 만에 거의 모두 소매 약방으로 팔려가기 때문이다.
당연히 엄청난 이득금이 발생된다.
이중 현수의 몫만 13억 4,600만 원이다. 이 차장은 이보다 많은 20억 2,500만 원을 벌어들인다.
이것이 한 달 수익이다.
이 차장과 현수는 이중 절반 정도를 할애하여 끼니를 잇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쓴다.
무료 급식 시설을 짓고 유지하는 데 돈을 쓰는 것이다.
이곳에선 하루에 두 번 빵과 수프를 제공한다. 물론 신선한 고기와 채소, 그리고 품질 좋은 곡물로 만든 것이다.
이러니 천지약방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한편, 천지약방이 일으킨 돌풍을 예의 주시하던 관리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리곤 곧바로 이런 선행이 언론에 보도되게 된다.
그 덕에 천지약방은 더욱 유명해지게 되며, 소매 약방의 수효는 1,000여 군데에서 2,000여 군데로 늘어나게 된다.
관리들의 끊임없는 청탁 때문이다.
가족 및 일가친척으로 하여금 황금알을 낳는 소매 약방을 운영케 하고자 했던 것이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이를 거절하기란 사실상 힘든 일이다.
내무장관이 뒤를 보아주고 있지만 실무자들이 괴롭히려면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사업 초기에 좌초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여 이춘만 차장은 약품의 중요성을 설명하였다. 그리곤 심사를 하여 약품 취급자들을 선별했다.
그리고 나서야 소매 약방에 약품 공급 계약을 체결하였다. 어차피 약국이 더 많이 필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최종적인 목표는 5,000개 이상이다.
아무튼 관리들은 이 과정을 예의 주시하였고, 공명정대하며 치우침이 없었다는 판단을 내려 더욱 협조적으로 변한다.
어려운 일이 발생되면 스스로 문제를 찾아 해결해 주려 노력할 정도가 된 것이다.
세무당국 역시 천지약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많은 수익이 발생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외국인 사업가 가운데 먹튀가 종종 있었다. 하여 주시한 것이다. 하지만 천지약방은 투명하게 기업을 운영한다.
그리고 단 한 푼의 세금도 떼어먹지 않고 성실히 납부한다.
당연히 엄청난 액수를 세금으로 납부한다. 이것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천지약방은 또 한 번의 도약을 한다.
이때까지 보고만 있던 벨기에인이 운영하는 약방과 지나인이 운영하는 약방 역시 소매 약방 모집을 한다.
하나 지원자가 별로 없어 재미를 보지 못한다.
그간 비싼 약값과 고압적이고 냉랭한 태도를 유지한 결과 인심을 완전히 잃은 것이다.
어쨌거나 이실리프 무역상사에서 수출하는 양은 매달 신기록을 작성할 정도로 점점 많아진다.
당연히 제약사의 납품단가는 더욱 낮아진다.
지속적인 대량 구매와 한결같은 현금 결제는 모든 기업들이 바라마지 않는 최고의 거래 상대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미래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현재의 상담이 진행된 것이다.
은정은 순풍에 돛 단 듯 순조롭게 일처리가 됨에 기분이 좋아서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대화가 오갔다. 그중에는 개인 신상에 관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은정의 아버지는 조그만 공장을 운영하다 사기를 당했다. 그 결과 채권자들에게 집과 공장 모두를 잃었다.
평생토록 노력하여 간신히 일군 것들이 허망하게 스러지자 울화병에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 마신 술 때문에 간암에 걸려 고생하다 작고했다. 이때 은정은 중학생이었다.
아버지 사망 후, 은정의 어머니는 파출부, 청소부, 공장직원, 식당종업원 등을 하여 가계를 꾸려나갔다.
할머니 역시 보탬이 되겠다며 별의별 일을 다 했다고 한다.
인형에 눈 붙이는 것부터 시작하여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러다 일거리가 떨어져 파지를 주우러 다닌 것이다.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생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고정된 지출 이외에도 병원비 등으로 적지 않은 돈이 나가기 때문이다. 물론 벌이가 형편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는 와중에 어머니가 사고를 당해 몇 달 동안 쉬는 일이 있었다. 계단에서 헛디디는 바람에 두 다리 모두 골절상을 입은 때문이다.
그나마 조금 있던 수입마저 끊겼으나 병원비는 내야 했다.
그 결과 어머니와 할머니 모두 카드 빚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반 지하 월세방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궁여지책으로 주민센터에 가서 생활 보호 대상자 지정을 요청했지만 이때는 엄마가 벌어들이는 돈이 있어 안 된다고 했다.
은정은 장학금을 받고자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수업을 마치기 무섭게 알바하러 가야 하는 상황에서 어찌 공부만 하는 친구들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겠는가!
결국 장학금 혜택을 얻지 못했다면서 침울해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현수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부자들에겐 얼마 되지도 않을 돈 때문에 가난 속에 허덕이는 것이 딱했던 때문이다.
다음 날, 현수와 은정은 은행을 찾았다.
그리곤 엄마와 할머니의 카드빚을 정산했다. 또한 은정의 이름으로 융자받은 학자금도 전액 상환했다.
전부해서 3,000만 원쯤 되는 돈이다.
악착같이 돈을 벌어 학비를 보탰기에 이 정도라 한다.
하긴 대학교 등록금이 얼마나 비싼가!
모든 등록금을 융자받으면 매년 1,000만 원 이상씩 빚이 늘어난다. 졸업할 때가 되면 4,000만 원 이상의 빚쟁이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이 나라이다.
어쨌거나 모든 빚을 청산하고는 적금을 들었다.
이번엔 현수의 이름으로 든 적금이다. 은정이 5년 동안 부어서 빌린 돈을 갚기로 한 것이다.
적금은 급여계좌에서 자동이체시키기로 했다.
현수가 이 돈을 대납해 준 이유는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은정이 빚에 쪼들리게 되면 견물생심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조만간 해외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언제 들어올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은정은 많은 돈을 만져야 한다.
급한 김에 돈에 손을 댈 수도 있다.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그렇게 되면 점점 더 많은 돈에 손을 대게 될 것이다.
대구 역전회의 SB건설 경리는 17억이 넘는 돈을 횡령하였다. 처음부터 큰돈은 아니었을 것이다. 처음엔 작은 돈이었지만 점점 횡령하는 액수가 늘어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횡령은 범죄 행위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렇기에 마음 편히 근무하라는 의도에서 이런 배려를 한 것이다.
다음에 한 일은 집을 옮기는 것이다.
어쩌다 은정이 사는 집을 가보게 되었는데 해도 너무했다.
단칸 지하 셋방인데 습기 때문인지 문을 여는 순간 진한 곰팡이 냄새가 끼쳐온다. 멀쩡한 사람도 이런 곳에 머물면 병에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주변 환경은 지저분했다. 실내는 너무 좁고, 어둡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살았을지를 생각해 보니 측은했다.
하여 금괴를 처분했다. 이번엔 전북 익산까지 갔다. 그곳에 귀금속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돈으로 사무실 바로 위층 주택을 전세 냈다.
사무실과 같은 면적으로 방 세 칸에 화장실 두 개, 그리고 거실과 부엌이 있는 구조이다. 베란다도 있고, 보일러실도 있다.
전세입자의 명의는 현수이다. 적지 않은 보증금이 들어갔는데 그걸 그냥 넘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은정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고맙다며 눈물까지 흘렸다.
매달 30만 원이나 내던 월세로부터 해방되었다. 게다가 밤낮으로 빚 갚으라고 독촉하던 추심업체의 전화는 뚝 끊겼다.
뿐만이 아니다.
매월 내야 했던 은정의 학자금 융자에 대한 이자도 이젠 낼 필요가 없어졌다. 게다가 바람이 잘 통해 곰팡이 냄새도 나지 않고, 햇볕도 잘 들어오는 넓은 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또한 고대광실처럼 넓고, 새로 지은 집이라 깨끗하다.
당연히 매우 좋다.
현수는 전에 쓰던 낡은 가구는 다 버리도록 했다. 말이 가구지 거의 폐품이나 다를 바 없을 정도로 형편없었던 것이다.
대신 실용적이면서 디자인이 깔끔한 가구를 새로 사줬다.
장롱, 침대, 식탁, TV, 냉장고, 세탁기, 전기 압력 밥솥까지 모두 바꿔주었다.
적지 않은 돈이 나가는 일이지만 현수는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베푸는 즐거움을 느낀 것이다.
2장 월급 잘못 주신 거 아니에요?
어머니와 할머니가 빈 집에 소가 들어온 기분이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안쓰러울 정도였다.
은정 역시 이 은혜를 어찌 다 갚겠느냐면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뭐든 시키는 대로 다하겠다면서 손이 발이 되도록 열심히 일하겠다고 맹세까지 했다. 또한 가구 등을 바꾸느라 들어간 돈도 모두 갚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이후 현수를 대하는 은정의 태도는 더욱 정성스러워졌다. 마음을 다하는 충직한 직원을 얻게 된 것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바쁜 나날이 지나 월급날이 되었다.
이날은 첫 번째 선적을 마친 날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잔뜩 긴장하고 있다가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어 홀가분한 날이다.
현수는 점심 무렵 은정을 사장실로 불러들였다.
집기래 봤자 컴퓨터가 올려진 양수책상 하나와 소파 세트뿐인 단출한 사무실이다. 하나 그리 삭막하진 않다.
곳곳에 놓인 예쁜 화분들 덕이다.
“이은정 씨!”
“네, 사장님!”
“이실리프 무역상사가 만들어진 지 벌써 한 달입니다. 그간 열심히 일해줘서 고마워요. 자, 여기! 이번 달 급여입니다.”
현수가 내미는 봉투를 바라보는 은정의 눈에는 금방 습기가 찬다. 하나 글썽이는 눈물을 흘러내리게 하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은정 씨! 이렇게 해달라고 해서 봉투에 넣어 준비하긴 했는데 다음 달부터는 온라인으로 송금해 드릴게요. 이렇게 주려니 조금 남세스럽네요.”
“어머! 아니에요. 사장님이 계시는 동안엔 봉투에 넣어서 주세요. 저는 그렇게 받고 싶어요.”
“좋아요. 그건 그렇게 하죠. 자, 이거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