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현수가 봉투를 조금 더 앞으로 내밀자 공손히 머리 숙여 인사를 하곤 두 손으로 받는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앞으로도 열심히 일해서 회사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네에, 그래주세요. 그리고 미안했습니다. 그간 이은정 씨 혼자 하는 업무의 양이 너무 많은 것 같았어요.”
“아, 아닙니다. 당연한 일인 걸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은정은 야근을 밥먹듯 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낮엔 여러 제약사들을 돌아다니며 가격 흥정을 했다. 밤이 되면 그걸 일일이 비교하여 표를 만들어 보고서 작성을 했다.
일련의 일이 끝나 제약사들이 정해진 이후엔 거의 매일 납품 들어오는 약을 일일이 확인한 것도 은정이다.
워낙 양이 많았기에 거의 매일 밤 10시가 넘어서 끝났다. 그만큼 꼼꼼하게 살핀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직원을 더 뽑아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이은정 씨 업무를 어시스트할 직원들을 뽑아야겠다는 말이에요. 아는 사람 있으면 추천하세요.”
“……!”
“한 사람은 무역 업무 어시스턴트고, 다른 하나는 검품이랄지 기타 업무를 봐줄 사람으로 뽑으세요.”
“제가요……?”
“네, 이은정 씨 업무를 보조할 사람을 뽑는 것이니 마음에 차는 사람을 골라서 뽑으세요.”
“알겠습니다. 근데 대졸 사원이어야 하나요?”
“꼭 그렇지 않아도 돼요. 고졸도 됩니다. 일이란 배우면서 익히는 거니까요.”
“네, 그럼 물색해 보고 추천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은정이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고 사장실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현수가 물었다.
“참, 운전 면허증 있어요?”
“아뇨, 아직……!”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았는데 면허증을 어찌 땄겠는가!
“일단 한 고비 넘겼으니 며칠은 한가할 겁니다. 그러니 내일 당장 운전 학원 등록해서 면허증부터 따세요.”
“네에, 알겠습니다.”
“학원비는 회사에서 지출하는 걸로 하구요.”
“……!”
은정의 눈에 또 눈물이 글썽인다. 너무 많은 것을 베풀어준다 느낀 때문이다.
“새로 뽑는 직원들도 면허증이 없으면 그렇게 할 거니까 마음 쓰지 말아요.”
“그래도요……. 흐흑!”
“에구, 왜 자꾸 그렇게 울어요. 이러다 정들겠습니다.”
“네에……?”
“하하, 농담입니다. 가서 일 보세요.”
“네에, 월급 감사합니다.”
은정이 나가자 현수는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이춘만 차장이 새로운 영역을 넓히려는지 여러 물품에 대한 문의를 한 때문이다.
그렇게 검색을 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린다.
똑, 똑, 똑!
“네, 들어오세요.”
“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들어가도 되나요?”
“그래요? 그럼 들어오세요. 근데 무슨 일이죠?”
“저어, 제 월급이 너무 많은 거 같아서요. 혹시 잘못 넣으신 거 아닌가 해서 들어왔습니다.”
“그래요? 명세표에 얼마라 쓰여 있죠?”
알면서도 짐짓 물어본 것이다.
“총액이 277만 7천 원이라고 쓰여 있어요.”
“그러고 보니 급여 체계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군요.”
“네에.”
“그럼 지금 설명해 주죠. 이은정 씨는 매달 그 금액을 급여로 지급받을 거예요. 그리고 두 달에 한 번, 그러니까 짝수 달엔 그만큼을 보너스로 더 받게 될 거구요.”
“네에……?”
은정을 알아듣지 못했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은정 씨 연봉은 5,000만원이에요. 이걸 18로 나눠 홀수 달엔 1을, 짝수 달엔 2를 받게 될 거예요.”
“사, 사장님……!”
“만일 보너스 제도가 싫다고 하면 매월 같은 액수로 나눠서 받을 수도 있어요. 그럼 매월 416만 6천 원 정도를 받을 겁니다. 어떻게 해줘요?”
“사, 사장님……! 사장님! 전 아직 대학 졸업자도 아닌데…….”
현수가 봉투에 넣어서 준 돈은 대기업인 천지건설의 연봉 수준보다도 높은 것이다.
현수의 연봉은 4천만 원이었다. 은정의 연봉은 이보다 1천만 원 많은 5천만 원으로 책정한 것이다.
그러니 여태 시간당 4천 얼마짜리 알바만 하던 여대생에겐 엄청난 액수로 느껴진 것이다.
현수가 이렇게 한 이유는 이실리프 무역상사가 자리 잡게 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창립 사원이기 때문이다.
또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서 이제 갖고 싶은 것 갖고, 입고 싶은 것 입으며, 먹고 싶은 것 먹는 삶을 살아보라는 선한 뜻도 담겨 있다.
본인이 그런 경험을 너무도 절실히 하였기에 그런 마음을 너무도 잘 이해해서 배려한 것이다.
“이은정 씨!”
“네, 사장님.”
“이은정 씨 명함에 직함이 뭐라고 되어 있죠?”
“제 명함이요?”
“네, 제가 알기론 이실리프 무역상사 무역 파트 실장으로 되어 있는데, 아닌가요?”
“아닙니다. 맞습니다.”
“신입사원이긴 하지만 평사원도 아닌 실장님인데 그 정도는 받으셔야지요. 안 그래요?”
“……!”
현수가 억지 부리고 있다는 것을 어찌 모르겠는가!
자신을 배려해 주는 마음이 너무 고마워 또 다시 눈물샘이 자극받은 모양이다.
“흐흑! 고맙습니다.”
“에구, 또 울어요? 눈물이 그렇게 흔해서야 어디…….”
“아, 안 울게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네에, 앞으로도 열심히 일해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정말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현수는 흐뭇하다는 의미의 웃음을 지었다. 남들에게 베풀 수 있다는 현실이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참, 우리 내일부터 며칠 쉽시다. 지난주와 지지난주 주말에도 검품하고 그러느라 출근했으니 내일부터 쉬었다가 다음 주 월요일에 출근하세요.”
“네……?”
“좀 쉬자구요. 우리 둘 다 조금 지쳤잖아요. 안 그래요?”
“전 괜찮은데……. 사장님은 쉬세요. 전 사무실 청소라도…….”
“아니에요. 집에서 좀 쉬어요. 리포트도 써야 할 거구 기말고사는 잘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중간고사 기간에도 출근하느라 제대로 공부를 못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황이 있었다. 하여 일찍 퇴근하여 공부를 하라 했으나 끝까지 근무하곤 했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를 주려는 의도였다.
“그, 그건…….”
“기말고사라도 잘 봐야 전 학년 평점이 B+를 유지한다면서요? 그 점수 받기 싫어요?”
“아, 아닙니다.”
“그래요. 그러니 며칠 쉬면서 시험 대비를 하세요. 기말고사 기간에 또 바빠질 수도 있으니…….”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매일 한 번씩은 사무실로 내려와 연락 온 것들 체크하겠습니다.”
“그래요. 급한 일 발생되면 핸드폰으로 전화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은정은 아주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퇴근 후에 삼겹살 파티라도 합시다. 첫 월급 탄 걸 축하하는 의미에서 내가 쏠게요.”
“어머, 아니에요. 제가 낼게요.”
“하하, 그럼 그러세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날 저녁에 먹은 식대도 당연히 현수가 냈다.
회식하는 동안 은정은 업무를 분담할 직원들을 추천하였다.
하나는 천지대학교 무역학과 4학년 여학생이다.
은정처럼 가정 형편이 어려워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실력은 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은정과 여고 동창으로 전문대 출신이다. 졸업 후 몇 군데 회사에 취업을 했는데 모두 그만두었다고 한다.
남자들의 음흉한 시선이 싫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며칠 후 이들에 대한 면접을 하기로 했다.
그리곤 급여를 제안했다.
전년도 대기업 신입사원 급여 평균인 3,300만원이 어떠냐고 물은 것이다. 물론 산재보험, 고용보험, 건강보험, 국민연금에도 가입된다. 은정은 당연히 찬성했다.
은정은 친구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줄 수 있게 되어 너무 기쁘다면서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무척 예쁜 얼굴이다.
퇴근해서 귀가하니 아버지가 부르셨다고 한다.
“부르셨어요?”
“그래, 요즘도 바쁘냐?”
“네, 오늘 드디어 화물을 발송했어요. 그래서 내일부터는 며칠 동안 여행이라도 다녀오려구요. 괜찮죠?”
“그럼, 기왕 놀러 가는 거 좋은 델 다녀오거라. 아직 제주도도 한 번 못 가 봤지? 거기 괜찮다는구나.”
“네, 그럼 그럴까요?”
“하하, 녀석은……. 그나저나 내일 아침에 공방으로 오너라.”
“왜요? 아, 그거 다 되었어요?”
“그래. 사장님이 특별히 심혈을 기울여 아예 작품을 만드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하더구나.”
“그래요? 그렇지 않아도 우리 회사 사장님도 언제 되느냐고 물어봤었는데 잘 되었군요.”
“그래. 오래되긴 오래되었지. 한 달 넘게 걸렸으니……. 아무튼 퇴근하면서 가져오려고 했는데 너무 비싼 거라 혹시 잃어버릴까 봐 못 가져왔구나.”
“네, 알겠습니다. 내일 제가 나가볼게요.”
“오냐. 그러려무나.”
아버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얼굴이 무척 편안한 듯하다.
아버진 평생토록 고생하셨다. 그리고 한 번도 마음 편히 살아본 적이 없다. 없는 집 자식으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결과이다.
물론 학창 시절에 이를 만회할 기회가 있긴 있었다.
학교에서라도 남들이 놀 때 죽어라고 공부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걸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하여 남들 공부할 때 철 모르고 놀았다.
그 결과 힘든 삶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부모들은 먹는 것, 입는 것을 줄여서라도 자식들 학비를 댄다.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학원에는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현수도 학원엘 다녔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평생토록 힘든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가 지금처럼 학벌 위주 경쟁 사회로 지속된다면 아마 이런 일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그렇기에 부모들이 아무리 없어도 자식 교육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학교는 이미 그 기능 대부분을 잃었다. 그 결과 아이들의 학습은 거의 전부 학원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학원에 다닌다 하여 모두 성적이 오르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한 녀석들은 당연히 성적이 오른다.
반면 땡땡이를 치거나 수업 시간에 헛소리나 지껄이던 녀석들은 성적이 떨어지거나 그대로이다.
이럴 경우 부모들은 학원을 옮기게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 학원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수업 태도와 마음가짐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녀석들 대부분 정말 불쌍하게 살아야 한다.
남들 놀러 다닐 때에도 일을 해야 하며, 자기보다 어린 사람의 지시에도 찍소리조차 못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이 들면 그에 대한 한탄을 하겠지만 그때는 이미 늦는다. 그리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있다.
그러니 학창시절에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하나 이런 것을 깨우친 학생이 얼마나 있겠는가!
어쨌거나 현수의 아버지는 요즘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다.
비록 전셋집이긴 하지만 주거가 안정되어 있다. 넓은 데다 깨끗하고, 경치까지 좋은 집이다.
공방에서 받는 급여는 여전히 적지만 사장님이 말씀하시길 일을 못하게 될 나이가 될 때까지는 다니라고 했으니 직장도 안정적이다.
부인은 트집 잡을 것이 없다. 남편을 귀하게 여기며, 살림을 하면서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소모시키지 않는 현모양처이다.
한국 나이로 스물아홉이 된 아들에게 여자친구 하나 없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한다.
하나 아들은 요즘 엄청 잘 나간다.
하는 말이 전부 진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잘만 되면 월수입이 1억은 넘을 것 같다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조만간 예쁜 여자친구가 하나쯤 생길 것이다.
하여 걱정 하나 없는 태평성대를 살고 있는 기분이다. 그렇기에 현수와 기분 좋게 맥주잔을 기울이다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현수는 공방에 들러 반지를 받았다.
4.17캐럿짜리 다이아몬드 주위에 1캐럿짜리 세 개가 박힌 것이다. 그것들의 주위엔 다시 작은 다이아들이 박혀 있어 호화찬란한 것이다.
물건을 건네 받자 공방 사장님이 말씀하시길 최하 3억이 넘는 것이니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라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G.I.A 감정서를 내민다.
추씨 공방의 사장이 심혈을 기울여 깎아낸 다이아몬드를 평가받고 싶어 자신의 비용으로 받은 감정서이다.
G.I.A는 Gemological Institute of America의 약자이다.
미국에 소재한 보석 감정 기관으로 다이아몬드 감정에 관한 한 세계 최상의 공신력을 인정받는 기관이다.
감정서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Shape and Cutting Style ……………………Round Brilliant
Carat Weight ……………… 4.17 Carat 1EA & 1 Carat 3EA
Color Grade …………………………………………………… D
Clarity Grade ………………………………………………… FL
Cut Grade …………………………………………… Excellent
Polish ……………………………………………… Very Good
Symmetry …………………………………………… Excellent
Fluorescence ……………………………………………… N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