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79화 (79/1,307)

# 79

감정 대상인 4.17캐럿짜리 한 개와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 세 개는 그야말로 최상급이다.

모든 항목에서 최고등급을 받은 것이다.

하나 현수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심지어 Color Grade가 D라는 것에 그저 그런 것으로 생각했다.

한국인은 D급보다는 A급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이아몬드를 만져볼 것이란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 확실히 알고 있는 사실은 있다. 다이아몬드가 크면 클수록 비싸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4.17 캐럿짜리 하나와 1캐럿짜리 3개로 이뤄진 반지에선 영롱한 빛을 뿜어냈다.

최고급 케이스에 담긴 이것을 받아든 현수는 곧장 회사로 향했다. 그리곤 비서실에 들러 사장님과의 면담을 청했다.

그런데 임원회의 중이라면서 기다리라고 한다.

하여 하릴없이 기다리던 중 요의를 느껴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배변을 하지 않아 문을 닫고 들어앉았다.

그렇게 본능적인 일을 하고 있는데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하나가 아니고 둘인 듯하다.

“이 차장님!”

“왜?”

“그 자식 어디로 발령 난답니까?”

“그 자식이라니? 누구 말하는 건가?”

“아, 있잖아요. 킨샤사 지부에 있던 김현순지 뭔지 하는 놈 있잖습니까.”

“아, 이번에 특진한 김현수 과장?”

“네, 그놈 어디로 발령 날 건지 확정되었습니까?”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사장 비서실이라는 말도 있네.”

“네에……? 비서실이요?”

놀랍다는 음성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장 비서실은 기획실보다도 상위로 인정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는 신형섭 사장의 리더쉽 때문이다.

밑에서 올라오는 안건에 대한 결재 위주의 경영이 아니라 사장 스스로 고심하여 기안을 만들어낸다.

현장에서의 풍부한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때론 기획실에서 상상조차 못할 만큼 혁신적일 때도 있다.

그런데 이것들 대부분 비서실 직원들의 손에 의해 처리된다. 그렇기에 여타 회사와 달리 비서실의 힘이 막강한 것이다.

엉덩이를 까고 앉아 있던 현수는 음성의 주인공을 유추할 수 있었다. 묻는 사람은 기획실 3팀장인 박진영 과장인 것 같다.

예전에 구조계산팀으로 불러서 얼마나 많은 트집을 잡아 괴롭혔던가! 그렇기에 박 과장의 음성을 금방 기억해 낸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사부 실세로 소문난 최 차장인 듯하다.

소문엔 신형섭 사장의 친척이라는 말도 있다. 그렇기에 최 차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거의 그대로 이루어진다.

현수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최 차장의 말이 이어졌다.

“아니면 기획 2팀으로 갈 수도 있고.”

“네에……? 기획 2팀이요?”

“그래, 자넨 기획 3팀 팀장이지?”

“네. 근데 그 자식이 기획 2팀장으로 온다구요?”

“그래. 사장님이 결정하실 거지만 김 과장은 비서실 아니면 기획실로 발령 날 것 같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흠흠, 나 먼저 나가겠네.”

“네, 차장님!”

최 차장이 나가고 화장실 문 닫히는 소리가 나자 박진영 과장의 음성이 있었다.

“안 돼! 그 자식은 절대……! 가만,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잠시 후 박진영 과장도 나갔다.

‘빌어먹을 인간. 내가 뭘 어쨌다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두고 보자, 내가 만일 너보다 먼저 진급해서 차장이 되면 그땐 죽었으……. 제기랄, 근데 내가 어떻게 먼저 진급해? 저 자식은 실세 전무의 아들인데…….’

현수의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가만, 내가 이번 공사 같은 걸 또 따면……? 후후, 박진영 과장, 두고 봐라. 네 입에서 김현수 부장님이란 소리가 꼭 나오게 해줄게. 근데 어디 가서 공사를 따지? 끄응!’

마지막으로 힘을 준 현수는 얼른 뒤처리를 하고 나왔다.

“아! 김현수 과장님. 사장님께서 들어오시랍니다.”

“네에. 알겠습니다.”

늘씬하고 예뻐 강연희 대리 다음으로 사원들의 사랑을 받는 비서실의 조인경 대리의 얼굴엔 화사한 미소가 어려 있다.

현수가 장차 천지건설의 중역으로 진급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장실의 문까지 열어주며 손짓으로 들어가라는 신호를 주었다.

“사장님! 김현수 과장입니다.”

“오오! 어서 오게. 오래 기다렸다고?”

“네……? 아, 네에. 회의 중이라는 걸 몰라서 그랬습니다.”

“그래, 그랬겠지. 자, 앉게. 참, 조 대리!”

“네, 사장님!”

“우리 김 과장이 마실 시원한 음료 좀 부탁해. 특별히 맛도 괜찮은 걸로…….”

“호호! 네에. 과장님! 어떤 걸로 준비해 드릴까요?”

“네? 전 아무거나…….”

“어머, 아무거나라는 음료는 없답니다. 웬만한 커피숍의 메뉴는 다 되니 말씀만 하세요.”

“그, 그래요? 그럼 오렌지 주스를…….”

“에이, 그건 너무 평범한데 제가 추천드려도 될까요?”

“네……? 아, 네에. 말씀하십시오.”

“Fire Fly라는 음료가 있어요. 근데 De tox와 Sharpen up, 그리고 Wake up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가 돼요. 각기 해독, 신체와 정신을 가다듦, 그리고 활력을 부여하는 기능성 음료예요.”

“그, 그래요? 그럼 Wake up으로 주세요.”

“난 어제 술을 좀 마셨으니 De tox로 주게.”

“네에, 알겠습니다.”

조 대리가 나가자 사장이 웃음 띤 얼굴로 입을 연다.

“참, 자네 애인 있나?”

“애인이요? 아, 아직 없는데요?”

강연희 대리에 대한 마음은 짝사랑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대답한 것이다.

“그래? 그럼 잘 되었군. 조 대리가 자네에게 마음이 있나봐.”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신형섭 사장의 얼굴엔 은근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우리 조 대리, 나말고는 쌀쌀맞기로 이름났거든.”

“그래요?”

“근데 자네에겐 유독 친절하군. 그게 마음에 있다는 뜻이겠지.”

“그, 그렇습니까?”

“하하, 잘해보게. 조 대리, 꽤 괜찮은 여성이야. 실력있고, 똑똑하고, 몸매도 한 몸매하고, 집안도 상당히 괜찮은 아가씨지.”

“사, 사장님!”

“하하, 농담일세. 그래도 흘려듣지는 말게. 인연이란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니.”

“네에.”

“참, 오늘 방문은 어떤 용무이지?”

정색한 표정이지만 입가의 미소는 여전히 어려 있었다.

“네, 맡기셨던 다이아몬드 반지가 완성되어 가져왔습니다.”

“그래? 그게 진짜 다이아몬드였나?”

놀랍다는 표정이다. 혹시나 했던 모양이다.

“네, 다아이몬드가 맞다고 하더군요.”

푸른색 벨벳이 씌워져 품격과 더불어 부드러운 느낌의 상자가 열렸다. 그 안에는 호화찬란한 반지가 고요히 자리 잡고 있다.

“으음! 대단하군.”

사장은 감히 만져볼 생각도 못하겠다는 듯 상자를 들고 빛을 반사시켜 본다.

“사장님, 여기 이건 보증서입니다.”

“G.I.A 보증서?”

사장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보증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모양이다.

“네, 공방 사장님이 의뢰하여 받아온 겁니다.”

“으음……!”

보증서를 읽는 사장의 손이 떨리고 있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최상급의 다이아몬드 반지이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이, 이보게, 김 과장!”

“네, 사장님!”

“이거 진짜로 내게 주는 건가? 4.17캐럿짜리 하나에 1캐럿짜리가 셋이면 3억이 넘는 물건이네.”

역시 가치를 아는가 보다.

“한번 드렸으면 그걸로 끝이지요.”

“으으음……! 근데 너무 비싸지 않은가.”

“그래도 드린 건 드린 겁니다.”

“알겠네. 고맙게 받겠네.”

“네에.”

사장은 서둘러 상자를 닫았다. 그리곤 서랍 속에 넣고 잠그기까지 했다.

다시 자리에 앉자 조 대리가 들어온다.

“이건 사장님 거구요. 이건 김 과장님 겁니다.”

“고맙습니다.”

“네에.”

조신하게 고개까지 숙이고는 또각거리며 나간다.

하나 현수의 눈에도, 사장의 눈에도 조 대리의 실룩이는 둔부는 보이지 않는다. 보았다면 심한 섹시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후 둘은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사장이 계속해서 생각에 잠기곤 했기 때문이다.

현수에게 어떤 보답을 할 것인지를 심사숙고한 것이다.

한참을 기다려도 신 사장은 상념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하여 이만 가보겠다고 말을 했다. 그럼에도 대꾸가 없어 꾸벅 절을 하곤 나섰다.

“어머, 가시게요?”

“네, 아까 그 음료수 잘 마셨습니다. 부드러운 게 목 넘김도 좋더군요. 고맙습니다. 조 대리님 덕분에 귀한 음료수를 마셨습니다.”

“호호, 그러셨어요? 그랬다니 다행입니다. 언제든 또 오세요.”

“네……?”

“아까 그 음료수, 영국에서 수입한 거예요. 100% 천연 재료로 만들어진 웰빙 음료거든요. 그래서 시중엔 별로 없어요.”

“네에,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현수는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하곤 비서실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힐 때까지 조인경 대리가 눈을 빛냈다는 것을 현수는 모른다.

“휴우……! 뭔 여자가 그렇게 예뻐?”

회사의 로비를 빠져나가는 현수의 뇌리엔 잠시 전 조인경 대리의 아름다운 얼굴이 떠올랐다.

탤런트 한가인과 닮은 아가씨이다. 그런 아가씨가 관심있다는 노골적인 눈빛을 보냈으니 싱숭생숭한 것이다.

‘조인경 대리도 예쁘지만 그래도 강연희 대리가 더 예뻐. 그나저나 영국에 있으면서 전화는 왜 꺼놓지?’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먹통이었던 것이다.

이는 박진영 과장 때문이다.

출장지인 런던에 도착한 날로부터 거의 매일 하루에도 두세 통씩 잘 지내느냐는 전화를 걸어 아예 꺼버린 것이다.

3장 기적을 만드는 도사

현수는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 중부고속도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목적지 없는 여행을 떠날 참이다. 그러고 보니 아버진 제주도를 추천했지만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김기덕 감독이 만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란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주산지가 문득 떠오른 것이다.

주산지는 주왕산에 있는 호수이다.

약 270년 전에 준공된 인공호수이다. 특이한 것은 저수지 속에서 자생하는 150년 된 능수버들과 왕버들 나무이다.

하여 다른 저수지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광이 있다.

네비게이션을 찍어보니 다섯 시간 정도 걸린다고 나온다.

하여 출발 전 캐주얼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이다.

라디오를 켜니 경쾌한 음악이 나온다. 모처럼 아무런 부담 없이 떠나는 여행인지라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한참을 달렸다.

광주를 지날 즈음 전화가 진동을 한다.

부우우웅! 부우우우웅!

‘누구지? 이은정 씨인가? 설마, 발송된 화물에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니겠지? 제발 그것만 아니길……!’

현수는 얼른 라디오를 끄고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어머, 전화를 받네요. 김현수 씨죠?”

“네. 맞습니다. 그런데 누구시죠?”

여자의 음성이다. 그런데 번호를 확인하지 않아 누군지 알 수가 없다. 요즘 제약사 여직원들로부터 자주 전화가 온다.

물론 업무 때문이다. 그렇기에 음성만으론 누군지 구별해 내지 못한 것이다.

“저예요. 대구의 권지현이요.”

“아, 권지현 씨! 오랜만입니다.”

“거기 이제 로밍도 돼요?”

“로밍이요? 아……! 여기 한국입니다.”

“그래요? 언제 귀국하셨어요?”

문득 킨샤사로 떠날 때 배웅하러 나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귀국하고 한 달이 넘도록 한 번도 생각지 않았다.

문득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기에 한 달도 더 된 기간을 대폭 줄여 대답했다.

“네에. 삼 일 전에 귀국했습니다.”

“아! 그랬군요. 그런데 왜 연락 한 번 안 주셨어요?”

“네? 아, 죄송합니다. 귀국한 이후 너무 바쁜 일이 많아서……. 그런데 웬일이십니까?”

“네에. 그러셨군요. 그동안 전화를 여러 번 했어요. 근데 해외로 가시면서 로밍을 안 하셨는지 통화가 안 되었네요.”

“아, 그래요? 제가 있던 곳은 전화 사정이 나빠 연결이 안 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로밍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 있습니까?”

“네, 괜찮으시다면 만나 뵈었으면 좋겠는데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나요?”

“제게 볼 일이 있다고요?”

“네에,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요. 바쁘시더라도 시간 좀 내주세요.”

“뭐, 그러지요. 근데 어디서 만납니까?”

“지금 어디 계시는데요?”

“고속도로 위에 있습니다.”

“경부요?”

“아닙니다. 중부고속도로 위에 있습니다.”

“아! 어디 출장 가시는 길인가요?”

“출장은 아니고……. 주왕산에 가는 길입니다.”

“주왕산이라면 청송에 있는 산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습니다. 휴가를 받아 여행 삼아 갑니다.”

“그래요? 그럼 죄송하지만 대구에 들러주실 수 있나요?”

권지현의 음성은 아주 조심스럽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이다.

“대구요?”

“네, 아주 급한 일이 있어서요.”

“잠깐만요.”

현수는 노견에 차를 세운 뒤 네비게이션에서 경로 탐색을 해보았다.

주산지는 경상북도 청송에 있다.

동서울→이천→여주→원주→제천→안동→청송 순으로 이동하라고 나와 있다.

지도 검색으로 들어가 확인해 보니 대구를 들러서 가면 빙 둘러가는 셈이다. 하나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