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1화 (81/1,307)

# 81

계속해서 마나를 불어넣어 살살 다독였다. 그러자 슬그머니 풀려 나온다. 그리곤 점차 정상이 되어갔다.

‘흐음, 혹시 신체적으론 정상임에도 불임이 되는 이유가 많다던데 혹시 이런 거 때문인가?’

문득 스치는 상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도 그럴 듯하다 느낀 때문이다.

“현수 씨! 이 분이에요.”

현수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하여 지현이 어느새 중환자실까지 인도한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아……! 그래요?”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완전히 엉망이 된 사내가 침상에 누워 있다. 온몸이 상처인지라 환자복이 아니라 붕대와 거즈를 입고 있었다. 얼굴부터 발까지 그야말로 다치지 않은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지현 씨! 아무도 못 오게 해주세요.”

“네에.”

찌이이익 !

지현 스스로 커튼을 쳐준다. 이미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다.

“마나 디텍션!”

마법을 구현시키자 환자의 몸 상태가 느껴진다.

현수는 문득 처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정도면 벌써 목숨을 잃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도록 하는 듯하다.

계기에 나타난 심장의 파동도 미약하고, 맥박도 약하다. 호흡은 강제로 시키는 듯하다.

“조금만 더 참아보세요. 제가 힘을 보태드릴 터이니. 마나여, 다친 부위를 고쳐다오. 컴플리트 힐!”

황금빛 마나가 환자의 전신으로 스며든다. 워낙 환부가 많아서인지 상당히 많은 마나가 빠져나감이 느껴진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컴플리트 힐은 주로 외과적인 부분에 적용되는 마법이고, 리커버리는 내과적인 부분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흐음, 마나가 많이 빠져나갔군. 그래도 할 수 없지. 마나여, 손상된 부위를 복원시켜다오. 리커버리!”

서늘한 푸른빛이 현수의 손에서 뿜어져 환자의 전신을 아우른다. 이번에도 상당히 많은 마나가 빠져나갔다.

거의 모든 장기에 이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휴우……!”

나직이 한숨을 쉰 현수는 아공간에 손을 넣어 회복 포션 한 병을 꺼냈다. 그러는 사이에 환자의 맥박 수치가 조금씩 올라간다. 계기에 나타나는 파동의 간격이 약간 짧아진 느낌이다.

‘이것을 더 드릴 테니 일어나십시오. 애들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뚜껑을 열어 환자의 입에 회복 포션을 넣어주었다. 그러면서 목울대를 손으로 살짝 눌렀다 떼기를 반복했다.

목으로 넘길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한편, 커튼 밖의 지현은 안의 상황이 몹시 궁금했다. 마음속에선 엿보자는 유혹이 들불처럼 번졌다.

하나 꼭 참았다.

성경을 읽어보면 롯의 아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빠져나오면서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는 하느님의 말을 어겼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는 구절이 나오지 않던가!

선녀와 나무꾼이란 설화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하늘로 다시 돌아오려면 용마에서 절대 내리지 말라고 했는데 나무꾼이 말을 놀라게 하여 떨어졌다. 그리곤 다시는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여 슬퍼하다 죽었다.

둘 다 하지 말라는데 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하여 궁금함을 꾹 참고 커튼 앞을 굳건히 지켰다. 어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문득 청아한 향이 느껴진다. 암에 걸렸던 할아버지가 복용했던 바로 그 신약(神藥)이다.

현수가 도술로써 병을 다 고치고 이제 화룡점정으로 신약을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긴장된 마음이 스르르 풀려 버린다.

같은 순간 현수는 환자의 용태를 살폈다.

외상은 거의 다 나은 것 같다. 마나 디텍션으로 살펴본 바에 의하면 골절되었던 뼈 전부가 제자리를 찾았다.

장기에 머무는 마나의 양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으며 안정되어 간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이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셈이다. 하여 커튼을 제치고 밖으로 나왔다.

“현수 씨!”

“이제 괜찮아진 거 같아요.”

“아! 고마워요. 잠깐만요.”

현수의 곁을 지나 침상으로 다가간 지현은 환자의 용태를 살폈다. 현수의 말대로 육안으로 보이는 부분은 확실히 나아진 것 같다.

“고마워요. 흐흑! 정말 고마워요.”

“자아, 이제 우린 나갑시다.”

“흐흑……! 네에.”

밖으로 나온 둘은 아까 그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그런데 지현이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기에 현수는 몸을 반쯤 돌려 그녀를 보듬어 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지현 씨, 이제 괜찮을 겁니다.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

대략 10분쯤 흐르자 물결치듯 흔들리던 지현의 어깨가 움직임을 멈췄다. 하여 잠시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쿠우우울……!”

“이런……! 후후후, 몹시 피곤했었나 보구나.”

긴장으로부터 해방된 지현은 잠이 들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현수는 지현의 등과 다리 사이에 손을 넣어 들어 올렸다. 그리곤 천천히 걸어 자동차로 갔다.

조심스럽게 옆 좌석에 눕혀 놓고는 운전석에 앉았다.

“밤이 늦었는데 이 시각에 청송까지 갈 수는 없겠군. 흐음, 호텔로 갈까? 근데 지현 씬 어쩌지? 으으음……!”

현수는 한참을 고심했다. 집을 모르니 데려다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여자 혼자 여관에 재워 놓고 나올 수도 없다. 종업원에 의한 성폭행 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호텔로 데리고 가는 것도 문제가 있다.

대구는 지현의 동네이다. 아직 시집도 가지 않은 처녀를 데리고 호텔로 들어갔다간 어떤 구설수에 오를지 모른다.

한참을 고심하던 현수는 차를 몰아 대구를 빠져나왔다. 그리곤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산으로 들어갔다.

길조차 끊긴 곳까지 들어가서는 공터를 찾았다. 누군가의 무덤이 있는데 잘 가꿔져 있다.

“흠, 이곳이 적당하겠군. 앱솔루트 배리어!”

전능의 팔찌에서 빛이 나오는가 싶더니 결계가 쳐진다.

안에선 밖이 보이지만 밖에선 안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여 침대를 꺼냈다. 그리곤 차 안의 지현을 조심스럽게 들어 옮겼다.

“깊은 잠에 빠질지어다. 딥 슬립!”

만약을 위해 마법을 구현시키곤 무덤 앞 풀밭에 마나 집적진이 그려진 스테인리스 철판을 꺼내놓고는 앉았다.

마나 심법을 운용하여 줄어든 마나를 보충했다. 산속이라 그런지 서울보다는 마나량이 많았다.

새벽 다섯 시가 되자 현수는 결계를 풀고 차를 몰아 경북대 병원 인근까지 갔다.

“잠에서 깨어나라. 웨이크 업!”

“아함……! 잘 잤다. 어머나!”

기지개를 켜던 지현은 운전석의 현수를 보곤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같은 순간 현수는 잠이 든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일어나는 모양이다. 그리곤 소리가 멈추더니 창문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지이이이잉―!

잠시 후 부시럭거리면서 지현이 창문 밖으로 나가는 듯하다. 왜 그러는지 알면서도 웃음이 나와 참느라 애를 썼다.

지이이잉―!

창문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내려갈 때보다 소리가 짧다. 넣었던 손을 빼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수 씨! 어디 가지 마요. 금방 다시 올 테니!”

현수는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잠시 후 눈을 떠보니 지현이 병원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화장실을 간 것이 아니라면 환자를 살피러 간 듯하다.

그냥 갈까 했다. 그런데 그러면 섭섭해할 것 같다. 하여 보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15분쯤 지났을 때 지현이 병원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손에 뭔가를 들고 있다. 먹을 걸 사오는 듯하다. 현수는 짐짓 잠든 척 눈을 감았다.

딸깍―!

조심스럽게 문 열리는 소리에 이어 지현이 조수석에 앉는 느낌이 든다. 그리곤 조용히 속삭인다.

“현수 씨! 덕분에 환자는 괜찮아졌어요. 정말 고마워요.”

쪼오옥!

갑자기 느껴지는 촉감에 현수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지현의 감은 눈이 보인다. 입맞춤을 한 것이다.

눈을 뜨면 놀랄 것 같아 슬그머니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지현이 떨어져 나갔다.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단순한 입맞춤인 뽀뽀였기에 망정이지 프렌치 키스였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느낌이 든 때문이다.

지현은 잠시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대체 뭘 하는지 궁금하다. 하여 슬그머니 눈을 떴다. 그런데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 이제 깼어요?”

“아……! 지현 씨!”

현수는 짐짓 방금 전의 사건을 모르는 척했다.

“어젠 고마웠어요. 그리고 미안해요. 저 때문에 편한 잠도 못 주무시고…….”

“아, 아니에요. 근데 언제 일어났어요?”

“방금 전에요.”

둘은 거짓말쟁이 남녀이다.

4장 주왕산에서 하룻밤

“그래요? 그나저나 우리 어떻게 하죠?”

“네……? 뭘 어떻게 해요?”

“세수도 안 하고, 이빨도 안 닦았잖아요.”

“이 근처에 사우나 있어요. 거기 가서 씻고 나와요. 우리!”

“그래요? 그럼 그럽시다.”

달리 할 말이 없기에 사우나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자아, 우선 이것부터 드세요.”

지현이 내민 것은 부드러운 카스테라와 바나나우유였다. 아마 아까 사온 것인 듯하다.

“지현 씬 안 먹어요?”

“전 벌써 먹었어요. 어서 드세요.”

빵을 먹고 둘은 병원으로 갔다. 환자는 확실히 나아져 있다.

중환자 보호실에서 잠들어 있던 아이들에게 빵과 우유를 주면서 아빠가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하니 우르르 달려간다.

먹는 것보다도 아빠의 안위를 걱정한 아이들의 마음이 예뻐 보여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옆에 있던 보호자에게 돈과 쪽지를 써 주었다. 아이들더러 아침밥을 사먹으라고 돈을 맡긴 것이다.

밖으로 나와선 아이들의 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설명해 주니 알았다고 한다.

“이 집 해장국이 맛있어요.”

“그래요? 그럼 이걸 먹읍시다.”

해장국을 먹으면서 지현은 이것저것을 묻는다. 콩고에서의 생활과 어려움을 물은 것이다.

푹푹 찌는 데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다, 생수는 돈 주고 사먹어야 하는데 한국보다 비싸다 등등을 이야기해 주었다.

지현은 마치 신기한 나라 이야기를 듣는다는 듯 눈빛을 빛내며 맞장구치곤 했다.

“어제 주왕산에 가신다고 했죠?”

“네.”

“저도 같이 가요.”

“네……? 직장 안 가고요?”

“월차 냈어요.”

“월차요?”

“네, 오늘 하루 쉬려구요. 그리고 저도 주왕산 말만 들었지 아직 한 번도 못 가봤어요. 영화를 보고 언젠가는 꼭 가봐야지 했는데 마침 잘 되었네요.”

“그럼, 지현 씨도 김 감독의 영화를 본 겁니까?”

“어머! 현수 씨도 그거 보셨어요?”

“네, 나도 그래서 거기 가려던 건데……. 까짓 거 그럽시다. 같이 가요. 우리!”

“호호, 좋아요.”

졸지에 의기투합한 둘은 서둘러 해장국을 해치웠다. 현수가 돈을 내려고 했으나 지현이 먼저 계산했다. 그래서 커피는 현수가 사겠다고 해서 둘은 가까운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어, 권지현 씨!”

“어머, 김 검사님. 응……? 이 검사님도 계셨네요?”

지현이 양복 차림 사내 둘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자 상대 역시 인사를 한다.

“근데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세요?”

“그러는 권지현 씨는 이 시간에 웬일이십니까?”

이 검사라 불린 사내가 현수의 아래위를 훑어본다.

아직 출근 시간 전이다. 그런데 남녀가 같이 있으니 수상하다는 표정이다. 이 시간에 같이 있으려면 꼭두새벽에 만났거나 밤새 같이 있는 경우뿐이다.

그런데 새벽부터 데이트하는 남녀가 얼마나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이 검사의 눈빛은 ‘죄 지은 거 있으면 좋은 말로 할 때 몽땅 털어 놔’라는 것과 비슷했다.

현수는 슬쩍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상대의 시선에 담긴 적의 때문이다. 하나 지현은 이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전 오늘 월차 냈어요. 그런데 검사님들은 출근 안 하셔요? 설마 지청장님 안 계시다고 땡땡이 치는 건 아니겠죠?”

“아! 물론입니다. 땡땡이라니요? 지난밤에 있었던 사건 때문에 밤샘 작업하고 커피나 한잔하려고 온 겁니다.”

“그럼요. 엉뚱한 상상하셔서 생사람 잡으시면 안 됩니다.”

둘은 과장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런데 검사 대부분은 권위 의식에 젖어 산다. 그럼에도 이처럼 정중한 것은 지현 때문일 것이다.

검사나 판사는 자신들이 평범한 소시민보다 훨씬 우월한 지위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이는 법정에서 잘 드러난다.

자질이 부족한 판사들은 원고이든 피고이든 무조건 반말이다. 나이가 많고 적음도 따지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말은 절대 끊어지면 안 되지만 남들이 하는 말은 아무 때나 잘라먹고 들어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2010년엔 서른다섯 살 먹은 판사가 자기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든 70대 노인에게 ‘버릇없다’고 호통을 친 일이 있었다.

검사들 역시 그러하다.

방송사 PD가 전화를 걸어 존댓말로 묻는 말에 대놓고 반말하는 검사가 있었다.

일개 평검사도 아닌 검사장 급이었는데도 그랬다.

아무튼 권위 의식에 젖어 있는 검사들이 지현에게 이렇게 대하는 것은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함이다.

지현 본인은 잘 모르지만 대구와 인근의 총각 검사 및 판사, 그리고 변호사들 모두 지현을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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