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탤런트 뺨칠 빼어난 미모, 미스코리아 저리 가라 할 육감적인 몸매의 소유자다. 게다가 행정고시를 차석으로 통과할 만큼 명석한 두뇌까지 지녔다.
이밖에도 대구지방검찰청의 수장인 부친의 후광까지 동시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누구에게나 친절한 마음씨와 물려받을 막대한 재산까지 예상되니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것이다.
앞에 있는 이 검사와 김 검사 역시 그들 중 일부다.
그런데 새벽 댓바람부터 지현이 웬 사내새끼와 같이 있다. 어찌 질투가 나지 않겠는가!
지현이 커피를 사오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우자 이 검사라는 사내가 다가와 묻는다.
“이봐, 당신 누구야?”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고운 법이다.
상당히 고압적으로 느껴지는 말이다. 마치 범죄자 취급을 받은 느낌이 드니 어찌 기분이 좋겠는가!
“뭐요? 이 양반이……! 어따 대고 당신이라 하는 거요?”
이전 같으면 꾹 눌러 참아야 했을 것이다. 하나 지구에 하나뿐인 7써클 대마법사가 어찌 약한 꼴을 보이겠는가!
“뭐어? 어쭈……?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야! 너, 우리가 누군지 알아?”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하는데? 좋다. 그러는 니들은 뭐냐?”
“뭐어……? 그래, 좋다. 우린 대구지청 검사들이다.”
“검사가 뭐하는 것들인데? 기껏해야 범인이나 잡으러 다니는 잡것들이 어디서 감히……. 재수 없으니까 저리 꺼져.”
“뭐라고? 잡것……? 너, 이 자식! 너 이리 와봐.”
“내가 왜? 내가 죄 지은 거 있어? 있음 증거 대. 아님 영장을 들고 오든지. 왜 선량한 사람한테 와서 반말로 찍찍 갈겨? 검사면 그래도 되는 거야?”
“어휴……! 뭐 이런 개자식이 다 있어?”
화가 나지만 차마 주먹을 휘두를 수 없다는 듯 양복 아랫자락을 뒤로 확 제낀다.
현수 역시 얼굴이 붉어져 있다.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다가와 시비를 걸었으니 어찌 화가 안 나겠는가!
“개자식……? 너 힘 세? 계급장 떼고 한판 붙어볼래?”
“야! 너어…….”
지금껏 가만히 있던 김 검사까지 끼어든다.
“둘이 한꺼번에 덤벼도 좋으니까 한번 해볼 거야?”
이 검사는 학창시절 유도선수였다. 김 검사 역시 태권도로 단련된 몸이다. 그런데 호리호리한 놈이 싸우자고 덤빈다.
“맞아 죽어도 할 말 없기다.”
“글쎄, 그건 두고 봐야지. 니들이나 검사 체면에 맞았다고 징징대며 울지나 마.”
“좋아, 따라 나와.”
“그래, 좋다! 가자면 못 갈 줄 알고?”
앞서 나온 이 검사는 커피숍 뒤쪽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문득 상대의 신분이 궁금해졌다.
검사라고 하면 죄가 없는 사람들도 벌벌 떠는데 그러기는커녕 대놓고 패겠다고 덤벼든다.
검사를 우습게 볼 정도로 고관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엄청난 세력을 지닌 가문의 자식일 수도 있다.
생각해 보니 지현이 평범한 사내를 만나줄 이유가 없다. 그녀 주변엔 널리고 널린 게 검사, 판사, 변호사다.
그러니 분명 뭔가 있는 놈이다. 그런데 잘못 건드렸다가 벌통이면 출세하는 데 지장있다.
“김 검사! 저 자식 세게 나오는데 혹시 뭐 있는 거 아냐?”
“글쎄……? 나도 그게 궁금해.”
요즘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드라마가 있다.
한국인이지만 미국으로 이민 가서 재벌이 된 아버지를 둔 아들이 주인공이다.
결혼만은 한국 여자와 하라는 할아버지의 유명을 따르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오는 것이 1화의 내용이었다.
입국한 사내의 주변엔 여섯 명의 보디가드들이 따라다닌다. 이밖에도 20여 명의 비서진들이 졸졸 쫓아다닌다.
주인공은 한국 사회를 경험하겠다면서 식당 종업원으로 위장 취업한다. 크지도 않은 그 식당의 딸이 너무 예뻐서 꼬시기 위함이다.
왕국의 왕자보다도 더 떠받드는 세상에서 살다 왔기에 많은 어려움이 발생된다.
이것을 해소해 주는 것은 스무 명에 달하는 비서들이다.
밤새 대신 빨래를 해주거나, 설거지를 하고, 양파와 감자 껍질을 벗겨준다. 여기까지는 소소한 웃음을 주는 드라마였다.
중반부가 넘어갈 무렵 이 식당을 찾은 조폭들이 나타난다.
제법 유명한 식당을 빼앗으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믿는 구석이 있는 주인공이 나서서 막으려 한다.
조폭들은 주인공을 협박하다가 보디가드들에게 끌려가서 반병신이 된다. 경찰이 사태를 파악하고 폭력을 행사한 보디가드들을 잡으려 한다. 이때 NSI 요원들이 나타난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세계 최고의 재벌이다.
그가 운영하는 회사 가운데에는 핵융합발전소도 있다. 이것에 필요한 초전도 소자를 개발한 사람이 바로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한국에 입국하면서 치외법권을 요구했다. 대신 이것에 대한 설계도를 넘겨주기로 했다.
그래서 최상급 국가기관이 등장한 것이다. 결국 조폭들은 일망타진 당한다.
드라마가 후반부로 접어들자 국내 재벌가의 망나니 자식이 등장한다. 돈은 많지만 평판은 좋지 않은 재벌가이다.
우연히 식당을 들렀던 재벌가의 자식은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 식당집 딸을 어떻게 해보려고 한다.
당연하게도 식당집 딸은 그것을 거절한다. 이미 가난하지만 착해 빠진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 뒤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폭력을 동원했다. 가게의 장사가 어렵도록 식재료 구입까지 방해했다. 결정적인 순간 주인공과 보디가드들이 그들 모두를 처리한다. 그리곤 질질 끌려가 복날 개 패듯이 팬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준다.
며칠 뒤, 기세등등하던 재벌가는 공중분해된다. 주인공이 그 회사 주식 전체의 51%를 소유한 대주주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막장 드라마라 욕하면서도 본방을 사수한다. 다음엔 어떤 놈이 당할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또 언제 어떤 방법으로 청혼을 할지 궁금했던 것이다.
이 검사와 김 검사도 이 드라마를 본다.
검사지만 재벌가의 위세는 이길 수 없어 시기심이 이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재벌들이 퍽퍽 나자빠지는 게 통쾌했던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재미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수의 태도는 조금 이상하다. 검사들을 상대로 너무 당당하다. 뭔가 있지 않고는 이럴 수 없을 것이다.
“김 검사, 이거 우리가 잘못 건드리는 거 아닐까?”
문득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다.
“그래. 안 그러는 게 좋을 거 같다.”
김 검사가 동의하자 이 검사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짐짓 두어 마디 내뱉는다.
“에이, 그래. 많이 배운 우리가 참자. 김 검사, 우리가 참자. 저깟 놈 때려서 뭐하겠냐? 안 그래?”
“그, 그래. 그러지 뭐. 이봐! 아니 형씨!”
현수는 여전히 화가 난 상태이다. 그렇기에 툴툴거렸다.
“왜? 싸우다 맞을까 겁나냐?”
“형씨! 이러지 말고 말로 합시다.”
“왜? 조금 전엔 너라고 그러더니 왜 갑자기 형씨야?”
현수는 이들 뒤를 따라오면서 어떻게 작살을 낼지 고심했다.
주먹으로 때리면 분명 문제가 된다. 그래서 생각해 낸 마법이 있다. 브레인 믹싱(Brain Mixing)이 그것이다.
뇌를 휘젓는 것이 아니라 뇌 속의 모든 기억을 휘저어 백치로 만드는 마법이다.
물론 영구한 마법은 아니다. 하나 최소 한 달은 백치가 된다. 그럼 당연히 검사 자리에서 잘리게 될 것이다.
하여 마나 배열을 검토했다. 잘못된 마법으로 영구한 백치를 만들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반말해서 미안합니다.”
“……!”
“솔직히 형씨랑 지현 씨가 아침부터 같이 있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 욱했습니다.”
“지금 그거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
현수는 끝까지 반말이다. 하나 검사들은 갑작스럽게 주눅 들었는지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
“알았어. 앞으론 조심해. 아무한테나 반말하지 말고.”
“……!”
“난 지현 씨랑 커피 마셔야 하니까 니들은 다른 데로 가줬음 좋겠어. 그럴 거지?”
“네에.”
둘은 축 늘어진 어깨로 사라졌다.
‘짜식들……! 조금만 더 나대지. 확 바보로 만들어 버리려 했는데. 쩝……!’
현수가 커피숍으로 들어가니 지현이 기다리고 있다.
“어디 갔다 오셔요?”
“화장실엘 좀…….”
“그러셨구나. 자, 여기 커피요.”
“네, 고맙습니다.”
“고맙기는요.”
“우리 이거 마시고 얼른 가요. 호호! 호호호!”
“왜 웃어요?”
“신나서요. 그 영화 나온 게 2003년이니까 벌써 10년 전이에요. 그때 고2였어요. 가보고 싶은데 공부하느라 꿈도 못 꿨죠. 근데 드디어 오늘 가잖아요. 그러니 안 신나겠어요?”
“그렇군요. 벌써 10년이나 흘렀어요.”
“그때 현수 씬 몇 학년이었어요? 대학생이었나요?”
“아뇨, 고3이었어요.”
“그럼 저보다 한 학년 위였군요. 호호, 오빠야가 맞네요.”
“그게 그렇게 되나요? 하하, 하하하!”
커피를 마신 둘은 주왕산으로 직행했다. 가는 도중 휴게실에 들렀을 때 현수는 트렁크에서 등산화와 등산복을 꺼내왔다.
지현을 위한 것이고, 아공간에서 꺼낸 것이다.
“어머, 이건 웬 등산복이에요?”
“어머니 드리려고 산 건데 임자는 따로 있나 봐요. 그리고 이거 신으세요. 구두 신고 산에 오를 수는 없잖아요.”
“제가… 그래도 돼요?”
“네, 돼요. 등산화랑 옷은 또 사면 되니까요.”
“제가 똑같은 걸로 사 드릴게요. 아무튼 고마워요.”
지현은 굳이 사양하지 않고 옷을 갈아입었다.
이런저런 이야길 하며 산에 오른 것은 점심나절이다.
“어라……! 여기 절 어디 갔지요?”
“그러네요. 지금도 멋있지만 그 절이 있으면 더 고즈넉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텐데…….”
영화에서 보았던 저수지 한가운데의 절은 철거되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기에 그 절을 보러 왔던 것이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한가로운 한때를 보냈다. 지현은 현수의 연인이라도 되었다는 듯 스스럼없이 팔짱까지 끼웠다.
내심 뿌리쳐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지현이 상처받을까 싶어 모르는 척했다.
하산을 하고 내려와선 식당엘 들렸다. 여관을 겸업으로 하는 집인데 깔끔해 보여서 들어갔다.
찜닭과 더덕구이를 주문해서 먹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런 도중에 지현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길 들었다.
무심코 아버지는 뭐하시는 분이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지현은 법조계 계통에 계시는 분이라고만 말했다. 하여 현수는 법무사 정도 되나 보다 생각했다.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지현의 표정이 바뀐다.
얼마나 사랑하며,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배가 터지도록 먹고는 산책이나 하자며 슬슬 돌아다녔다. 그러다 산책로라 쓰인 팻말이 보여 그 길로 들어갔다.
해가 떨어지려면 멀었기 때문이다.
지현은 지저귀는 산새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학교 다닐 때 이야기, 이상형 이야기, 최근에 본 영화 이야기 등등이다. 주로 지현이 말하고 현수는 짧게 대꾸하는 정도였다. 그런데도 무엇이 그리 좋은지 까르르 웃기를 반복했다.
지현은 주산지 구경을 했으니 다음은 어디로 갈 것이냐며 물었다. 하여 좋은 데 있으면 추천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대뜸 지청으로 전화를 건다. 그리곤 하루 더 휴가를 내겠다고 한다. 그리곤 안동 하회마을로 가자고 한다.
내친 김에 가보고 싶었던 곳을 가자는 것이다.
대구로 되돌아갔다가 다시 와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있는데 지현이 여관에 방을 잡는다.
그리곤 아예 이곳에서 묵고 새벽에 주산지를 한 번 더 올라가자고 한다. 새벽안개 꼈을 때의 풍경이 기막히다는 누군가의 말을 들은 모양이다.
성수기가 아니기에 방은 많았다. 하여 두 개의 방을 얻었고, 비용까지 모두 치렀으므로 물리지 말자고 한다.
현수로선 나쁠 것 없다.
하회마을도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이기 때문이고, 굳이 대구까지 갔다가 되돌아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방도 따로 쓰니 부담도 되지 않는다.
하루 더 청송에 머무는 것으로 결정되자 아까 동동주를 마실 걸 그랬다며 깔깔댄다.
그렇게 천천히 이곳저곳을 거닐며 별의별 이야길 다했다. 그런데 둘은 어느새 손을 잡고 있다.
산행을 하는 동안 끌어줘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 자연스럽게 잡게 된 것이다.
현수는 마나를 통하여 지현의 내부를 살펴보았다.
산행을 하는 동안 피로해지게 되는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 건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저녁나절 식당으로 돌아온 둘은 옻닭과 도토리묵, 그리고 파전을 주문했다. 술은 동동주를 마셨다.
지현의 미모가 워낙 특출났기에 주인 아주머니가 와서 보고는 한참이나 예쁘다는 소리를 했다.
저녁을 먹고 둘은 밖으로 나왔다. 잠들기엔 너무 일렀기 때문이다. 달이 떠서 그리 어둡지도 않았다.
천천히 길을 따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기로 했다. 지현은 현수에게 매달리듯 붙어서 쫑알거렸다. 지치지도 않는 귀여운 산새 같은 여인이란 생각에 문득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산책을 마치고 천천히 걸어 올라갈 때였다. 문득 요의를 느낀 지현이 공중화장실로 들어갔다.
지현이 손을 씻고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남자화장실에 있던 사내가 갑작스레 튀어나오더니 지현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