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3화 (83/1,307)

# 83

복면을 뒤집어써서 얼굴은 알 수 없다. 하나 건장한 체격의 사내인 것만은 분명하다.

“움직이지 마!”

“앗! 누구냐?”

화장실에 사람 하나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한데 이렇듯 느닷없는 기습을 할 것이라곤 생각지 않았다. 몬스터도 아니고 이곳은 아르센 대륙도 아니기에 긴장을 푼 때문이다.

“아무것도 묻지 말고 지갑부터 내놔.”

“강도냐……? 지갑만 주면 사람은 놔줄 거지?”

“잔소리말고 지갑부터 내놔.”

“좋아, 지갑을 주지.”

현수가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던졌다.

사내는 지현으로 하여금 그 지갑을 집도록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지현의 목엔 칼이 닿아 있었다.

“좋아, 이제 뒤로 물러서라.”

“달라는 거 줬으니 여자는 놔줘라.”

“일단 물러서. 안 물러나면…….”

“알았다. 진정해라.”

“너는 날 따라와.”

현수가 물러나자 사내 역시 지현을 데리고 조금씩 거리를 벌렸다. 안전거리가 확보되면 산속으로 튀려는 모양이다.

“저, 저기요.”

“왜?”

지현의 물음에 강도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난 어제도 강도당했거든요?”

“그래서?”

“이틀 연속 강도당하는 여자는 나밖에 없을 거예요.”

“그래서? 대체 뭘 말하려는 거야?”

“놔달라는 이야기죠. 지갑도 받았잖아요.”

“안 돼!”

“스테츄!”

사내가 단호한 음성으로 지현을 끌어당기려던 그 순간 현수의 마법이 구현되었다.

사내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방금 전 지현의 귓가로 현수의 음성이 들렸다.

잠시 사내의 이목을 끌어달라는 것이었다. 하여 말문을 여는 순간 현수의 신형이 사라졌다.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가 시전된 것이다. 그리곤 곧장 거리를 좁혔다. 연후에 스테츄로 꼼짝 못하게 만든 것이다.

현수는 사내의 칼을 먼저 빼앗았다. 그와 동시에 지현의 신형을 잡아당겼다.

“이젠 상황이 역전되었군. 먼저 내 지갑부터 내놓으시지.”

사내의 품에서 지갑을 꺼낸 현수는 복면을 벗겼다.

40세쯤 된 평범한 사내이다.

그와 동시에 스테츄를 홀드퍼슨으로 바꿨다. 움직일 수는 없어도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당신은 누구요? 근데 내 몸이 왜 이러지?”

“지현 씨 핸드폰으로 경찰서에 연락해요. 노상강도 잡았다고.”

“네에.”

지현이 전화를 꺼내려는 순간 사내의 다급성이 터져 나왔다.

“저어, 제, 제발! 신고는 하지 마시오.”

“신고를 하지 말라고?”

“그렇소. 신고는 하지 마시오. 내, 내일 스스로 자수할 테니 제발 부탁이오.”

“무슨 소립니까?”

“나, 난 오늘 청송교도소에서 탈옥한 탈옥수요.”

“네에……? 청송교도소에서 탈옥을 했다고요? 그 경비 삼엄한 곳을요?”

지현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력범들이 많아 경비가 삼엄하고 규율도 엄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 그렇소.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제발 부탁이오. 하루만 꼭 하루만 움직일 수 있게 해주시오. 그리고 나면 내 발로 되돌아가겠소.”

“흐음, 무슨 일인지 먼저 들어봐야겠습니다. 사정을 말해주시겠습니까?”

사내에게서 더 이상의 위협감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을 하면 내게 하루의 시간을 줄 것이오?”

“먼저 들어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무슨 사정인지 말해보세요.”

“여, 여기서……?”

공중화장실 앞이라 드나드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 모양이다.

“좋습니다. 저쪽으로 들어가 보십시다. 미리 경고하는데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지금 당신은 내 도술에 걸려서 움직일 수 없는 거니까요.”

“도, 도술이오?”

“그렇소. 사람이 움직일 수 없도록 하는 도술이오.”

지현은 현수가 두 번이나 죽을 위기에 처한 환자를 구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일부러 도술이란 표현을 쓴 것이다.

“고, 고맙소! 근데 도술이라니…….”

움직일 수 있게 된 사내는 몸에 이상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술이라는 것이 진짜 존재한다는 걸 체감했기 때문이다.

“이보시오, 도사 양반! 아침부터 먹은 게 없어 배가 몹시 고픈데 혹시 먹을 게 있소?”

“배가 고파요?”

“그렇소. 아깐 너무 허기져서 절대 실례를 하면 안 될 아가씨에게 실례를 한 것이오. 미안하오.”

“……!”

“지현 씨! 가서 빵이랑 우유 좀 사다 줄래요?”

“네에. 금방 갔다 올게요.”

“우린 이 안쪽에 있겠습니다.”

잠시 후, 사내는 지현이 사온 빵과 우유를 허겁지겁 먹고 마셨다.

“자아, 이제 말씀하시오.”

“난 7년 전에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잡혀 들어갔던 고강철이라 하네.”

“고강철 씨라면 도끼파 보복사건 말씀하시는 거예요?”

“어라? 아직 어린 아가씨가 그건 어찌 아오?”

“법무부 직원이거든요.”

“아……! 도끼파 보복사건 맞소.”

“고강철 씬 제가 알기론 무기징역형을 언도받았는데 맞지요?”

“그것도 맞소.”

“교도소가 지긋지긋해서 탈옥한 건가요?”

“아니, 이젠 교도소가 내 집 같이 편해졌다오.”

“그런데 왜 탈옥을 하셨죠?”

“내 아내와 아직 어린 두 딸 때문에…….”

“무슨 말씀이십니까?”

고강철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약 7년 전 대구를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조폭들의 전쟁 결과라 기록된 이 사건은 세 명의 조폭이 목이 잘린 채 하수구에서 발견되면서 알려졌다.

사고가 있고 불과 열흘 만에 범인이 잡혔다. 고강철은 자신이 범인이며 단독 범행이었다고 진술했다.

평상시 알고 지내던 상대에게 술을 마시자고 접근한 뒤 수면제를 탄 것을 먹였다. 그리곤 잠든 사내들의 목을 차례로 베었다고 진술했다.

검찰 조사 결과 고강철의 진술은 사건 정황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곧이어 재판이 벌어졌고, 1, 2심에서 사형, 3심에선 무기징역형이 언도되었다.

그리곤 수감되었고, 세인들의 뇌리에선 이 사건이 지워졌다.

수감된 고강철은 편안한 표정이었다. 마치 죽음을 앞둔 사형수와 비슷한지라 같은 감방 죄수들이 감히 범접하지 못했다.

자다가 목 잘려 죽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고강철은 자신이 그 사건의 범인이 아니라 하였다. 사촌형인 고인철과 그의 동생인 고진철이 진범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죄를 뒤집어썼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들 때문에 그랬다고 한다.

교도소에 대신 들어가면 그들이 잘 성장하도록 돌봐준다는 약속을 믿은 것이다. 당시의 고강철은 아무런 희망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사형 당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죄를 뒤집어 쓴 것이다.

처음엔 아내가 면회를 왔었다고 한다. 하나 그것도 처음 일 년뿐이었다. 그 이후론 아내도 아이도 볼 수 없었다.

당연히 궁금했다. 하여 만기 출소하는 이들에게 아내와 자식의 상황을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들로부터 들어온 이야기가 충격적이다.

아내는 사창가에 팔려가 창녀가 되었고, 어린 아이들은 어딘지 알 수 없는 고아원으로 보내졌다는 것이다.

고인철과 고진철 형제는 아내가 몸을 팔아 버는 돈까지 뜯어다 쓴다고 한다.

하여 이를 갈고 탈옥을 결심했다. 그리고 오늘, 탈옥을 결심한 날로부터 무려 5년하고도 7개월 만에 성공했다.

그런데 어디가 어딘지를 알 수 없다. 하여 하루 종일 산속을 헤맸다. 큰길로 나가면 길을 알 수 있겠지만 그럴 순 없다.

경찰들이 쫙 깔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벽에 탈옥하여 저녁이 될 때까지 굶었기에 너무 배가 고파 화장실의 물이라도 먹으려 들어갔다.

그때 지현이 화장실로 들어갔던 것이다.

5장 교도소를 탈출한 흉악범

현수는 트루스 베러피케이션(Truth Verification) 마법을 구현시켰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마법이다.

사실일 때엔 아무렇지도 않지만 거짓말을 했을 경우엔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고강철은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그 사건이 그들 형제의 짓이라는 증거가 혹시 있습니까?”

“당시 사용했던 도끼와 피 묻은 옷가지들을 감춰두었소.”

고개를 끄덕이던 현수가 지현을 바라본다.

“지현 씨. 7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증거가 될까요?”

“지문이 지워지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옷에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남아 있다면 증거를 확보할 수 있어요.”

현수는 고강철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자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시오?”

“동대구역 근처에 놈들의 건물이 있소.”

“그 근처에 사창가들이 좀 있어요.”

지현의 부연설명에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소를 아시오?”

“주소는 모르지만 7년 전까진 왕실여관이란 여관이었소.”

“풀어주면 어쩔 것이오?”

“가서 놈들을 처단하고…….”

“그럼 진짜 살인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아내를 보호해 준다던 놈들이 아내를 창녀로 만들어……. 흐흑! 내 손으로 반드시 죽여 버리고야 말겠소. 흐흑!”

고강철이 오열했지만 현수의 눈빛은 냉정했다.

“도끼와 피 묻은 옷가지가 있는 곳은 어딥니까?”

“왕실여관 후문 쪽에 예전에 쓰레기를 버리던 곳이 있소. 그걸 비닐에 싼 뒤 거기에 넣고 시멘트로 발라 버렸으니 그걸 깨면 나올 것이오.”

“흐으음, 알겠습니다. 일단 좀 쉬십시오.”

현수는 고강철의 목덜미의 한 부분을 누르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서 나직이 중얼거렸다.

“슬립!”

쓰러지자 고강철의 몸을 누인 현수는 지현을 바라보았다.

“내가 볼 때 이 사람은 괜한 옥살이를 하는 것 같은데……. 지현 씨 생각은 어때요?”

“증거만 보존되어 있다면 진실을 밝힐 가능성은 충분해요. 문제는 이 사람이 탈옥했다는 거죠.”

“무사히 감방 안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괜찮다는 겁니까?”

“그럴 수도 있어요. 근데 어떻게 그렇게 해요? 청송교도소는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는 곳이란 말이에요.”

“그건 내게 맡겨주시오.”

“그럼 하실 수 있단 말이에요?”

지현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반짝였다.

“일단 갑시다.”

“어디로요?”

“청송교도소까지 가야지요.”

“정말 하시게요?”

“명색이 도사 아닙니까? 할 수 없이 도술을 부려봐야죠.”

현수가 장난처럼 싱긋 웃음 지었다. 하나 지현은 걱정스럽다는 표정이다.

“하여간 갑시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사방에 경찰들이 쫙 깔렸을 거예요. 근데 어떻게 거기까지 들키지 않고 가죠?”

“모르긴 몰라도 경찰들은 청송에서 벗어나는 곳을 중점적으로 확인할 거예요. 다시 되돌아갈 것이라곤 생각지 못할 테니까요.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 알죠?”

“알아요. 그래도 걱정 되요. 이건 범인은닉죄가 될 수도 있단 말이에요.”

“뭐, 그럼 우리가 잡아서 데리고 가던 중이라고 하면 되지 않나요? 지현 씨는 법무부 직원이니까 지현 씨가 설득했다고 하면 될 것 같은데…….”

“그건 그러네요. 알았어요. 일단 가봐요.”

현수가 차를 끌고 나와 고강철을 뒷좌석에 태웠다. 여전히 잠든 상태이다. 현수는 마법으로 술기운을 날리곤 곧장 청송교도소로 향했다.

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길 나눴는데 지현의 착한 마음씨를 알 수 있었다.

청송교도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당도한 현수는 지현만 남겨놓고 고강철을 어깨에 걸쳤다.

“조심하세요.”

“걱정 말아요.”

현수는 지현의 시야로부터 멀어지자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마법을 시전했다. 둘 다 보이지 않음을 확인하곤 플라이 마법으로 교도소의 담장을 넘었다.

그리곤 가장 귀퉁이에 고강철을 눕혀 놓았다.

플라이 마법으로 되돌아오니 지현이 발을 동동 구르며 자신이 온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숲으로 들어가 마법을 풀고 밖으로 나오니 지현이 달려든다.

“현수 씨! 정말 다행이에요.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가슴 부분에서 뭉클한 무엇인가가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고 안아주었다. 진심으로 걱정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이다.

여관으로 되돌아오는 동안 라디오에선 흉악범이 탈주했으니 조심하라는 말과 발견 즉시 신고하라는 뉴스가 긴급 속보로 방송되고 있었다.

고강철을 체포하는 경찰은 일계급 특진이 되고, 체포하는 데 결정적인 제보를 한 사람에겐 3,000만원의 포상금을 지불한다는 부분에서 둘은 마주보고 웃었다.

여관으로 돌아온 지현은 한바탕 활극을 치르고 온 듯하다며 맥주 한 잔을 마시자고 한다.

식당이 문을 닫았기에 둘은 현수의 방에서 술을 마셨다. 안동 하회마을은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이다.

짹짹! 짹짹짹!

“끄으응……! 으응……?”

산새 우는 소리를 들으며 깨어난 현수는 팔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느낌에 눈을 떴다.

지현이 현수의 팔을 베고 잠들어 있다.

“이런……!”

살며시 일어나 보니 빈 맥주 캔들이 굴러다닌다. 둘이서 열 개 이상 해치운 것이다.

다행히 별일은 없었던 듯하다. 현수는 살며시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곤 나직이 중얼거렸다.

“잠든 모습이 천사 같네.”

현수가 나가자 지현의 눈이 뜨였다. 그리곤 배시시 미소 지었다. 지현은 현수보다 일찍 깼다. 새벽 네 시면 일어나서 공부하던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 현수 얼굴을 바라보다 그의 팔을 베고 다시 누웠다. 품속으로 파고들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진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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