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아하암! 잘 잤어요?”
“지현 씨도 잘 잤죠?”
“네에. 우리 아침 산책하고 나서 밥 먹어요.”
“이빨도 안 닦고요?”
“전 벌써 닦았는데 아직 안 닦으셨어요?”
“그래요? 나도 닦았어요. 자아, 그럼 갑시다. 아침 산책!”
“네에.”
지현이 냉큼 달려들어 팔짱을 낀다. 그리곤 현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하룻밤 사이에 엄청 친숙해진 느낌이다.
주산지의 아침 안개는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했다. 너무도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우리 나중에 여기 또 와요.”
“네……?”
“나중에요. 여기 한 번 더 오자구요.”
“그, 그래요.”
둘은 식사 후 곧장 동대구역 부근으로 가서 왕실여관을 찾았다. 지현은 지청에 연락하여 곽 검사라는 사람에게 출동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는 사이에 도주할 것이 우려된 현수는 지현으로 하여금 역전지구대를 방문토록 하였다. 법원 5급 공무원이기에 경찰의 협조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현수는 여관으로 잠입했다. 전능의 팔찌를 이용한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마법이 구현된 상태이다.
많은 객실에 손님들이 있었다. 하여 언락 마법으로 객실을 일일이 확인했다. 그러다 둘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강철이 말한 40대 중반과 후반이라곤 딱 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슬립 마법을 걸어 웬만해선 깨지 않도록 하곤 밖으로 나왔다.
그러는 사이에 왕실여관 주변엔 경찰관들이 깔려 도주로를 차단한 상태였다.
오전 아홉 시쯤 영장을 들고 나타난 곽 검사는 서른 살쯤 된 사내였다. 그의 지시에 따라 수사관들이 투입되어 어렵지 않게 고인철과 고진철 형제를 체포했다.
그리곤 후문 입구에 있던 쓰레기 배출구를 털어냈다.
과연 비닐에 싼 범행 도구들이 담겨 있었다. 이것들은 즉시 감식반으로 보내졌다.
일련의 과정은 모두 캠코더로 녹화되었다. 이는 재판 과정에서 증거 자료로 제출될 것이다.
고인철, 진철 형제가 끌려간 뒤에도 경찰은 포위망을 풀지 않았다. 그리곤 투숙객 가운데 성매매를 한 남녀 모두를 연행해 갔다.
그런데 고강철의 아내인 이숙희만 보이지 않았다.
곽 검사의 협조를 얻어 그녀를 발견한 곳은 지하실이다. 창고 비슷한 곳에 눕혀져 있었던 것이다.
서둘러 119에 연락했다. 뼈만 앙상할 정도로 말라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선 극심한 영양 실조와 과로라는 진단을 내렸다.
잘 먹고 쉬기만 하면 낫는다기에 그런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진단이 내려졌다. 매독이다. 그런데 너무 쇠약하여 당장은 치료하기 어렵겠다고 한다.
현수는 회복 포션 한 병을 꺼내서 먹였다. 마나를 너무 많이 소모시켜서 회복 마법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현은 법원으로 출근하여 상황을 알아보겠다며 갔다.
할 일이 없어진 현수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곤 고인철, 진철 형제를 어찌할 것인지를 고심했다.
인간답지 못한 놈들이기에 단순히 교도소에 수감하는 것만으론 처벌이 적당치 않다 판단한 것이다.
“여보세요. 오광섭 씨 핸드폰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아……! 맞군요. 나 김현수라 합니다.”
“김현수요……? 앗! 도, 도사님! 아니 형님!”
오광섭의 당황한 표정을 떠올린 현수는 피식 실소를 지었다.
“지금 대구에 와 있는데 잠깐 볼 수 있을까요?”
“무, 물론입니다. 어디 계십니까? 형님.”
“여기 동대구역 근처예요.”
“그럼 그 근처의 아무데나 편한 데 계십시오. 지금 즉시 나가겠습니다.”
“흐음, 그러지요.”
기다린 지 불과 10분도 되지 않아 전화가 걸려온다.
“형님, 동대구역 앞인데 어디 계십니까?”
“으음, 여긴 크라운 관광호텔 커피숍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오광섭은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덩치가 크기는 하지만 말끔한 정장 차림이다.
“형님! 안녕하셨습니까? 아프리카로 출장 가신다 하셨는데 언제 귀국하셨습니까?”
“며칠 되었습니다.”
“아이고, 형님! 말 놓으십시오. 제가 아우 아닙니까?”
“에구, 나보다 오광섭 씨가 한 살 더 많은 걸 아는데 어찌 말을 놓습니까?”
“형님, 정신연령은 형님이 저보다 훨씬 위에 계십니다. 그러니 속세 나이는 따지지 마십시오.”
“에구…….”
오광섭의 표정을 보니 정말 형님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나저나 대구엔 웬일이십니까? 아, 형수님 만나러 오셨군요? 아직 못 만나셨습니까?”
“지현 씬 어제 만났어요.”
“형님! 말 놓으시라니까요. 제가 불편해 미칩니다. 어떻게 하늘같은 형님에게 존댓말을 듣습니까? 그러니 제발 말을 놓아주십시오.”
“끄으응! 알겠네.”
현수는 할 수 없이 말을 놓았다. 하나 완전한 반말은 할 수 없었다. 하여 어투가 다소 이상한 것이다.
“알겠네가 뭡니까, 노인처럼! 아, 아니다. 형님이 저보다 훨씬 정신연령이 높으시니……. 네, 좋습니다. 계속하십시오.”
“아버님은 좀 어떠신가?”
“헤에, 형님 덕에 완쾌되셨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가 언제 한번 꼭 뵙자고 하셨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근데 형님, 뭐 안 좋은 일 있으십니까?”
“대구에 말이네. 성매매 업소들이 꽤 있지?”
“네, 제법 많죠. 이 근처에도 많고, 대구역 앞이나 자갈마당도 유명하죠. 근데 갑자기 왜……? 혹시 형수님 몰래 객고를 푸시려고 하는 겁니까? 그렇담 그런 데 가지 마십시오. 제가 아는 후배들이 하는 업소에 괜찮은 애들이…….”
“에구, 내가 그런 델 왜 가나? 그게 아니라 성매매 업소들이 줄어들어야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 아우님 휘하에도 그런 업소들이 있나?”
“아이고, 어데예……! 저흰 그런 유흥업에서 손을 싹 씻었습니다. 아버지가 앞으론 절대 그런 업종에 손대지 말라고 해서 안 합니다.”
“다행이군. 아우님 영향력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대구에서라도 성매매 업소들이 사라지도록 힘 좀 써주게.”
“으음,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한번 해보겠습니다.”
“내가 지현 씨에게 말을 해놓을 테니 필요하면 검찰과 협조하는 것도 좋을 것이네.”
“네에……? 검찰과 협조하라고요?”
조폭 출신이라 그런지 당황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제 음지에서 양지로 발돋움했으니 평범한 시민처럼 살아야지. 안 그런가?”
“그, 그렇습니다. 그래도…….”
“당장 그러라는 게 아니니 천천히 그렇게 하게.”
“네, 형님!”
“그리고 내가 한 여인을 아우님에게 부탁하고 싶은데 보살펴 줄 수 있겠는가?”
“그럼 권지현 형수님말고 또 다른 아가씨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아우님 혹시 고강철이라고 아나?”
“고강철이라면……. 어제 청송교도소를 탈옥했다고 떠들썩했던, 예전에 세 놈 머리통을 잘라냈던 그…….”
“그래, 그 사람의 부인을 부탁하고 싶네.”
“그, 그래요?”
화들짝 놀라는 표정이다. 대체 어떤 인연이기에 살인마를 아는가 싶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더군. 오늘 진범들이 잡혀갔는데 녀석들이 그녀에게 성매매를 시켰어.”
“……!”
“현재 심신 쇠약 상태인 데다가 매독까지 걸려 있어서 운신조차 힘드네. 근데 난 서울로 올라가 봐야 하니 아우님에게 부탁하고 싶어서 전화했네.”
“알겠습니다. 형님! 제가 보살피지요.”
“고강철도 얼마 후면 풀려날 것이네. 그 사람도 데리고 있어주게. 이야길 들어보니 의지할 데라곤 없나 보네.”
“형님, 그 친구 나오면 저희 직원으로 채용하여 데리고 있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십시오.”
“고맙네.”
“아이구, 고맙기는요. 형님 말씀이시니 당연히 따라야 하죠.”
“참, 그 사람의 아이들이 고아원에 맡겨졌다는데 어디로 갔는지도 알아봐 주게. 지현 씨에게도 부탁하겠지만 아우님도 나름대로 알아봐 주면 좋겠네.”
“네, 형님! 꼭 찾아내겠습니다. 근데 어제 그 소동, 형님이 그러신 겁니까?”
“무슨 소동……?”
“고강철을 도로 교도소에 데려다놓은 거 말씀입니다.”
“신문에 그렇게 났나?”
“네, 탈옥이 분명한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다시 교도소 안에 있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거 형님이 그러신 거죠? 신통방통한 도술로……!”
오광섭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다. 하여 진실을 밝혔다.
“그렇네. 내가 데려다 주었지.”
“우와!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 학교는 담 넘기가 불가능한 곳이라 했는데…….”
오광섭은 진실로 존경한다는 표정이다.
“에구, 학교가 뭔가?”
“아차! 죄송합니다. 버릇이 돼서……. 하하!”
현수는 병원에서 이숙희를 오광섭에게 인계했다. 회복 포션을 복용해서 그런지 안색이 눈에 뜨이게 좋아진 듯하다.
그리곤 지현에게 전화했다. 고강철의 아이들을 꼭 찾아주라고 했고, 이제 서울로 올라간다고 했다.
지현은 몹시 아쉬워했다. 하루만 더 있어주면 안 되겠느냐는 말에 잠시 망설였다. 하나 이내 마음을 정했다.
급작스레 너무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든 때문이다.
남들 같으면 김태희처럼 예쁜 아가씨와 있는 것에 환장하겠지만 현수의 뇌리엔 강연희 대리가 화인처럼 박혀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괜스레 죄스런 마음이 들어 거절한 것이다.
통화 말미에 언제 출국하느냐는 물음에 앞으로 두 달 정도는 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마음이 편치 못했다.
양심도 없는 나쁜 놈들 때문에 너무도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낀 것이다.
평일인지라 고속도로는 붐비지 않아 시원스런 질주가 가능했다. 현수는 라디오를 켰다.
고강철 탈옥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분명히 탈옥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교도소 안에서 발견되었다. 나가는 것보다 몰래 들어가는 것이 더 어려운 곳인데도 그렇게 된 것이다.
본인에게 물어봤지만 나간 적이 없다는 말만 하곤 함구하고 있어 사건의 전말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곧이어 고강철 사건의 진범이 잡혔다는 보도가 있었다.
예전에 고강철을 진범으로 지목했던 경찰은 당황했고, 진범을 잡은 검찰은 체면치레를 했다는 식의 보도였다.
현수는 피식 웃음 짓고는 앞을 향해 달렸다.
부우우웅! 부우우웅!
전화가 어서 받아달라는 듯 진저리를 친다.
“아, 이은정 씨! 무슨 일 있어요?”
“네, 사장님! 사무실로 손님이 오셨는데 사장님을 꼭 만나 뵙고 싶다고 해서요.”
“손님……? 우리 사무실에 올 사람이 누가 있지? 혹시 제약사 직원입니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튼 사장님을 뵙기 전에는 가지 않겠다며 앉아 있는데 어쩌지요?”
“휴가 중이라 하고 일단 돌려보내세요.”
“네에, 그랬는데도 안 가고 있네요. 어떻게 하죠?”
“흐음, 오늘이 5월 30일이죠?”
“네.”
“그럼 6월 3일에 다시 오라고 하세요.”
“6월 3일이요?”
“그래요. 월요일 오전 열 시쯤 오면 만날 수 있다고 하고 돌려보내세요. 그리고 그날까진 사무실 문 열지 말고요.”
“네에. 알겠습니다.”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무작정 기다린다 해서 만나줄 이유가 없다. 그렇기에 이렇게 한 것이다.
대구에서 출발한 현수는 계룡산으로 향했다.
한반도엔 산이 많다. 그 많은 산 가운데 무당들이 제일 많이 찾는 산이 계룡산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왜 그런지 궁금했었다. 이 기회에 확인해 보려는 것이다. 당도해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나의 농도가 다른 곳보다도 훨씬 농후했던 것이다.
현수는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는 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결계를 치고 안에 들어가 마나를 모았다. 당연히 타임 딜레이 마법이 걸렸고, 마나 집적진 위에 앉은 채이다.
결계 밖 시간으로 만 24시간, 결계 안 시간으론 180일간 마나를 모은 결과 마나는 가득했다.
전능의 팔찌를 확인해 보니 차원이동이 가능했다. 하여 아르센 대륙으로 향했다. 그쪽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마나여, 나를 아르센 대륙으로……. 트랜스퍼 디멘션!”
쉬리리리리링 !
* * *
테세린 외곽에 도착한 현수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흐으으으음! 역시……!”
계룡산은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기가 맑은 곳이다. 그럼에도 이곳 아르센 대륙의 공기에는 훨씬 못 미친다.
물론 늦봄이라 따뜻한 한국과 이제 초봄에 접어든 이곳의 싸늘한 날씨의 기온 차 때문이기도 하다.
하나 마법사인 현수에게 있어 마나의 양이 훨씬 풍부한 이곳의 공기가 훨씬 좋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여 기회만 닿으면 이곳으로 오고픈 마음이 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유기사 복장으로 갈아입고는 코찔찔이 세실리아 여관으로 향했다. 그리곤 이곳에서 어찌 처신할지를 생각해 두었다.
직장인 김현수가 아니라 마법사라는 것과 코리아 제국의 백작 임을 자각시킨 것이다.
“흐음, 이번엔 날짜가 어떻게 되었을까? 지구에 머문 기간이 한 세 달쯤 되지만 진짜 한 달만 지났을까? 그렇다면 오늘이 3월 20일이겠지? 뭐,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