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7화 (87/1,307)

# 87

“어머, 이 방 참 깨끗하네요. 킁킁, 냄새도 안 나고…….”

현수는 대답 대신 마법 배낭 속의 아공간에 손을 넣어 머리집게 종류들을 끄집어냈다.

고른다고 골랐는데 머리집게 말고 다른 형태의 머리핀들도 딸려 나온다. 헤어밴드도 나왔다.

“어머! 이건……. 정말 예뻐요. 어머나! 이건……? 이렇게 하는 거죠? 어머머머! 이건 또 뭐래요? 어머, 어머머머! 와아아!”

카이로시아의 감탄사는 끝이 없었다.

현수는 백두마트 평촌점에서 가져온 머리 관련 액세서리를 거의 모두 꺼냈다.

방의 절반 이상 될 정도로 많은 분량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이로시아는 휘황찬란한 각종 액세서리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감탄사가 끝난 것은 거의 한 시간 가량 지나서이다.

“후후, 카이로시아 양! 이제 대충 감상이 끝났으면 슬슬 상담을 해야 하지 않겠소?”

“어머나! 죄송해요. 너무 너무 예쁜 것들이 많아 제가 잠시 제정신이 아니었네요. 근데 하인스님! 여기 있는 이거 전부 제가 팔 수 있게 해주실 거죠? 헤에……!”

‘흐음……! 뭐야? 애교까지 겸비한 거야?’

눈웃음치는 카이로시아를 본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본능이 시킨 것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의 청이라면 무조건 들어주라고!

“그렇게 하겠소. 그런데 가격이 문제가 아니겠소?”

“그, 그렇군요. 그럼 가격을 매겨볼게요. 근데 어휴……! 이렇게 많았어요? 정말 산더미 같네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니오?”

“호호, 그건 당연히 그렇지요.”

가지런히 쌓아 올리지 않았지만 부피가 엄청나긴 하다.

1톤 트럭으로 하나 가득 될 정도이다. 방이 크기에 망정이지 작은 방이었다면 발 디딜 틈조차 없을 뻔했다.

어느새 카이로시아는 물건 하나하나에 대한 감정을 하고 있다. 기록하는 것을 보니 장사꾼답게 꼼꼼하다.

그런데 언제 이 많은 물건을 감정하겠는가!

무어라 말을 걸려고 가까이 다가갔던 현수는 얼른 뒤돌아섰다. 물건 값 매기기에 정신없는 카이로시아의 발달된 가슴의 절반 이상을 본 때문이다.

마침 물건을 집어 드느라 약간 상체를 숙였기에 현수는 최대치까지 보고야 말았다.

같이 있다간 계속해서 몰래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다 걸리면 대망신이다. 하여 황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카이로시아는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방문하여 계속해서 가격을 결정했다. 물량이 너무 많았던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현수는 아래층에서 커피를 즐겼다. 얀센 부부 역시 녹차를 마셨다. 그리곤 앞으로의 상행위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카이로시아의 음성이 끼어든다.

“어머……! 이게 무슨 향기랍니까? 킁킁! 킁킁킁!”

사냥개도 아니건만 코를 벌름거리는 미녀를 본 현수는 피식 웃음 지었다. 웃겨 보인 것이다.

“왜……? 맛 좀 보시겠소?”

“저 주실 것도 있나요?”

“있긴 한데 이건 마시면 탈이 날 수도 있는 것이오.”

“그런데 하인스님은 왜 드십니까?”

“나야 마셔도 괜찮지만 카이로시아 양은 오늘 밤에 잠을 못 잘 수도 있소. 그래도 괜찮겠소?”

“바, 밤에 잠을 못 자요? 왜요?”

“흐음, 그건 설명하기가 조금 어렵소. 아무튼 이걸 마시면 오늘 밤 잠들기가 조금 어려울 것이오.”

현수는 커피와 녹차에 포함되어 있는 카페인1)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카이로시아는 셋을 차례로 바라본다. 물론 현수와 얀센, 그리고 그의 아내인 로사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다.

세상엔 아주 달콤함 냄새를 풍기는 음료가 있다고 한다.

요정들이 빚어냈다는 그것은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Scent of Womanizer)라는 민망한 이름을 가졌다.

‘오입쟁이의 향기’라는 뜻이다.

여자들이 향기에 이끌려 이것을 마시면 100에 95는 신세를 망친다는 풍문이 있다. 다만 남자에겐 풍미 그윽한 음료 그 이상은 아니라고 한다.

이 때문에 많은 귀족가의 여식들이 신세를 망쳤다고 한다.

보아하니 얀센과 로사는 부부이다. 당연히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를 얼마든지 마셔도 되는 사이이다.

현수는 남자니까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카이로시아는 말로만 듣던 그거라는 생각이 스치자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보았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그런데 들고 있는 커피잔이 예사롭지 않다. 재질이 뭔지 알 수는 없다.

유심히 보니 모양이며 무늬 등이 예술적이다. 장사꾼으로서 당연히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것이다.

사실 이레나 상단은 상당히 많은 품목을 거래한다.

그런데 현수가 들고 있는 커피잔은 본 적조차 없는 것이다.

머리집게와 마찬가지로 취급하기만 하면 단번에 대박을 칠 물건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에 도착한 이후 어찌 하면 미판테 지부를 최고의 지부로 성장시킬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기 위해선 남들에겐 없는 품목을 취급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머리집게와 커피잔 세트를 보게 되었다.

당연히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기에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저어, 괜찮으시다면 저도 한 잔 주시겠어요?”

“밤에 조금 곤란할 텐데 그래도 괜찮겠소?”

“그, 그럼요. 흠흠! 주세요. 전 괜찮을 겁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카이로시아는 단정적으로 자신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신이 나약한 귀족가의 여식들이나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 때문에 순결을 잃지 자신은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한 것이다.

100에 95만 당한다고 했으니 자신은 나머지 5에 속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 내심 두렵기는 했다.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에 취해 버리면 오늘 밤 순결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친 때문이다.

이런 속내를 모르는 현수는 선택권을 준다.

“이건 커피라는 것이고, 이것은 녹차라 하는 것이오. 카이로시아 양은 어떤 것을 드시겠소?”

‘흐음!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에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 그런데 내게 선택권을 준다? 잘못되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함인가?’

카이로시아는 순식간에 생각을 정리했다.

‘이쪽은 부부, 하인스 님은 혼자. 어떤 걸 골라야 하나?’

7장 커피와 녹차가 억울해!

잠시 생각에 잠겼던 카이로시아는 커피를 골랐다.

부부가 마시는 것이 보다 위험하다 판단한 것이다.

졸지에 위험물질로 취급당하는 커피와 녹차 입장에선 몹시 억울할 것이다.

“로사, 물을 또 데워야겠는데?”

“네에, 곧 대령하겠습니다. 백작님!”

“네에……? 백작님이라니요?”

카이로시아는 경악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껏해야 신기한 물건을 많이 가진 기사 정도로 생각했는데 고위 귀족이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내가 말하지 않았나? 코리아 제국의 백작이라고…….”

별일 아니라는 듯 무심히 말하는 현수를 본 카이로시아는 이제야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만났을 때 분명 라이셔 제국 백작가의 여식임을 밝혔다. 그럼에도 일개 기사 주제에 공대하지 않고 평대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슬쩍 불쾌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고개를 숙일 때도 속으론 조금 불만족스러웠었다.

그때에도 현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이레나 상단의 상단주인 에델만 백작과 동급이기에 그랬던 것이다.

로사가 물을 가져오고 현수가 커피믹스를 넣고 티스푼으로 이를 잘 저어 카이로시아에게 넘겼다.

“흐으음……!”

헤이즐넛의 그윽한 향취를 맡은 카이로시아는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맹세코 이런 냄새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묘한 향기를 뿜는 짙은 갈색 액체를 바라보는 카이로시아의 시선은 복잡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엔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이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뜻이다.

지금 카이로시아의 심정이 이러하다.

마셔야 할지, 마시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

100중 95라 했으니 적어도 다섯은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의 마수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막연히 자신은 나머지에 속할 것이라 생각하고 달라고는 했다. 그런데 그 나머지에 해당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겁이 덜컥 났던 것이다.

“식으면 맛이 덜한데…….”

아니라곤 하지만 하인스 백작은 자신의 가슴을 훔쳐봤다. 그런 사람이 나직이 속삭인다. 이건 사내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악마의 속삭임일 것이다.

그런데 이 악마는 자신에게 선택권을 줬다. 그리고 그 전에 분명히 경고도 했다. 밤에 잠 못 이룰 것이라고……!

이게 무엇을 뜻하겠는가?

어쨌든 자신 스스로 둘 중 하나를 골랐다. 두 명의 증인이 있으니 순결을 잃더라도 책임을 물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마실 것을 강요받았다. 물론 완곡한 표현이다. 하나 거절하기 어려우니 강요는 강요이다.

“마, 마실게요. 근데 이 잔 참 예쁘네요.”

어떻게든 위기를 모면하고 싶은 마음과 장사꾼으로서의 상품을 살피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낸 대사이다.

“어라! 이건 설마……?”

카이로시아의 눈은 커졌다. 더 놀라운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홀짝이며 자신의 커피잔을 비웠다. 얀센과 로사 역시 녹차의 찻잔을 비웠다.

둘은 남은 티백을 보며 어찌해야 하는가 싶다.

“그건 한 번 더 우려먹을 수 있으니 나중에 물을 더 부어도 되네. 다만 너무 오래되면 안 되네.”

“아, 그렇습니까?”

여관을 하니 먹고 나면 텁텁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스테이크 종류가 주식이다. 그런데 녹차를 마시니 입안은 물론이고 위와 창자까지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진 얀센 부부는 환하게 웃었다. 그러다 맞은편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카이로시아라는 상단 소속이지만 귀족가의 여인이다. 그런데 하인스 백작에게 호감을 가진 것 같다.

그렇다면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 눈치 빠른 얀센은 로사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작님, 소인들은 정리할 것도 있고 하니 물러가겠습니다요.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불러 주십시오.”

“그러지. 가서 좀 쉬게.”

“네에……!”

둘만 남겨지자 카이로시아는 괜스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뭔가 어색한 분위기이다.

“저어, 이거 말이에요.”

“말씀하시오.”

“이걸 뭐라고 부르나요?”

“그건 티스푼이오.”

시선이 모아진 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스테인리스 티스푼이다. 그런데 스테인리스라는 놈의 특징은 아주 밝은 은색이다. 그리고 반짝인다.

“이거 혹시 미스릴 합금으로 만든 건가요?”

“미스릴……? 그것보다 조금 더 강도가 셀 거요.”

현수는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티스푼의 재질인 스테인리스강의 강이 강철을 뜻한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테인리스강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오스텐나이트(Austennite)계, 페라이트(Ferrite)계, 마르텐사이트(Martensite)계가 그것이다.

각각의 계열엔 또 다시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크롬(Cr)이나 니켈(Ni)의 함유 정도에 따라 나뉘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강철보다도 더 강한 것도 있다.

따라서 현수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받아들이는 카이로시아에겐 이건 충격이다.

티스푼의 용도는 빤하다.

차를 만들 때 휘젓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물론 스푼 모양을 하고 있으니 뭔가 소량을 덜어낼 때에도 유용할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무기를 만들 때 최상의 강도를 보이는 미스릴보다도 더 강하다고 한다.

도대체 코리아 제국이라는 곳은 어떤 곳이기에 한낱 티스푼을 만드는데 이런 엄청난 재료를 사용한단 말인가!

놀라움의 연속이다. 하여 한참을 멍한 표정으로 있었다.

“혹시 이것도 여러 개 있으세요?”

“있소.”

“그것도 제가 팔 수 있도록 해주시겠어요?”

“뭐, 그럴 수도……. 근데 값은 다 매겼소?”

“아……! 그건 아니에요. 너무 많아요. 어떤 건 아주 가지런히 포개져 있어서 숫자를 세는 것조차 어려울 지경이거든요.”

“그럼 안 팔려고?”

포기하면 액세서리들을 얀센과 로잘린에게 맡겨볼 생각에 물은 것이다.

“어머, 그건 아니에요. 다만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서 말씀드리려고 내려왔던 거예요.”

“그렇구려.”

“근데 이것 말이에요.”

“티스푼 말하는 것이오?”

“네, 티스푼은 물론이구요. 이 찻잔도 제가 팔 수 있도록 해주시면 안 되나요?”

“찻잔까지……? 욕심이 너무 과한 거 아니오?”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이다. 상대가 욕심을 낼수록 아무것도 아닌 척해야 몸이 달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상인이에요. 당연히 많은 이문이 남을 상품을 탐내지요.”

“흐음, 시간을 두고 생각해 봅시다.”

현수는 별 뜻 없이 한 말이다. 그런데 카이로시아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완곡한 거절로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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