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
이 돈은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 사용될 것이다.
그래도 완치되진 않는다. 지은 죄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브레인 서킷 브레이크 마법을 풀어주는 대신 벙어리가 된다. 말도 못하면서 정치하겠다고 나서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혼내줄 대상은 부정부패한 공무원 등이다.
이들에겐 피큘리어 퍼멘테이션(Peculiar Fermentation) 마법이 구현될 것이다.
이것은 장(腸) 내에 이상 발효를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이전엔 이 마법을 스컹크 파트(Skunk Fart) 마법이라 했었다.
스컹크처럼 지독한 냄새를 풀기는 방귀를 시간당 열 번 이상 뀌게 하는 마법이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정상적인 공직 생활을 하기엔 여러 모로 불편할 것이다.
이밖에도 혼낼 놈들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생각해 보니 선한 사람보다는 악인들이 더 많은 사회인 듯하다.
하나 현수는 혼자서 킬킬거리며 운전을 했다. 눈에 뜨이는 대로 징벌을 가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 * *
“선생님! 우보 선생님! 안에 계세요?”
소리 내 불렀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다.
폐교는 질식할 것만 같은 침묵 속에 잠겨 있다. 예전엔 학교 운동장이었을 앞마당엔 풀들이 잔뜩 우거져 있다.
그러고 보니 매년 풀과 씨름한다던 말이 떠오른다. 베어내는 속도보다 자라나는 속도가 더 빠르다면서 투덜거렸던 것이다.
현수가 말하는 우보(牛步)는 소처럼 느릿느릿한 걸음을 걷는 동양화가의 외호이다.
“선생님! 안 계세요?”
두 번이나 거푸 불렀음에도 대답이 없다.
드르르르륵―!
문을 밀쳐보니 열리긴 한다. 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 주인은 귀가 어두워 소리를 못 들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선생님! 선생님……!”
여전히 대답이 없다. 인기척도 없어 되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친분이 있다지만 사사로운 공간까지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학교 옆 푸세식 화장실까지 가보았으나 인기척이 없다. 하필이면 주인이 없을 때 온 건가 싶어 터덜터덜 걸어나왔다.
이 동네는 약 20여 호밖에 없다. 그리고 평균 연령이 일흔 살이 넘는 곳이다. 다시 말해 노인들만 사는 동네이다.
외지인이 이곳에 당도하려면 비싼 배삯을 내고 소양호를 건너오거나, 큰길에서 갈라진 임도로 30분 이상 차를 타고 들어오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서 웬만해선 문을 잠그지 않는다. 가져갈 것도 없지만 훔쳐갈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이 열려 있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에구, 주인도 없는데 들어가 있을 수도 없고……. 그냥 집으로 가야 하나?”
홀로 중얼거리며 나오는데 관사 쪽에서 사람이 내려온다. 오십대 중반 정도 되는 어른이다.
“누구시오?”
“네……? 아, 저는 서울에서 온 김현수라 합니다. 우보 선생님을 뵈려고 왔는데 외출하셨는지요?”
“우보 선생……? 흐음, 아침에 시내 표구점에 들렀다 온다고 나갔으니 한 두어 시간은 더 있어야 들어올 겝니다.”
“그래요? 그럼 안에서 기다려도 될까요?”
오늘따라 햇볕이 따가웠기 때문이다.
“그럴 게 아니라 나랑 차나 한잔합시다. 심심하던 터인데 잘 되었소.”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저야 좋지요. 감사합니다.”
혼자 멍하니 앉아 있는 것보다는 말상대가 있는 편이 훨씬 낫다. 그렇기에 두말없이 따라갔다.
“자아, 이쪽에 앉으시오.”
초로의 사내가 안내한 곳은 관사 앞 원두막이다.
풍경도 구경하고, 오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으며, 그윽한 정취까지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네, 감사합니다.”
“시원한 막걸리도 있는데 어떠시오? 오늘 운전해서 나갈 게 아니라면 한잔하겠소? 풋고추도 있고 멸치도 있소. 고추장 찍어서 먹으면 별미인데 어쩌겠소?”
“하하, 저야 좋지요.”
현수는 부러 너스레를 떨었다. 보아하니 우보 선생님과 친분이 있어 잠시 관사에서 쉬시는 분 같다.
“통성명부터 합시다. 나는 홍진표라 하오. 대학에서 정치학을 강의했는데 안식년을 맞아 쉬는 중이라오.”
“아! 그러세요? 전 천지건설에 재직 중인 김현수라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자자, 자리에 앉읍시다. 아는지 모르겠소만 여긴 사람보기 힘든 동네 아니오?”
“네에, 그렇지요.”
“그래서 김현수 씨가 오늘 처음 본 사람이라오. 하하하!”
“그러셨군요. 여긴 그렇지요.”
노인들만 사는 곳인지라 동적인 동네가 아니라 정적인 동네이다. 그렇기에 동네 사람 얼굴 보기도 힘든 곳이다.
홍진표 교수는 50대 중후반쯤으로 보였는데 눈매는 날카롭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푸근한 느낌이다.
이런 인상을 가진 사람은 똑똑하면서 너그럽다.
현수가 평상에 앉아 있는 동안 관사를 들락거리면서 시원한 막걸리와 신김치 등을 꺼내온다. 그리곤 텃밭의 풋고추를 따고, 고추장을 푸는 등 술상을 차린다.
그런데 다리를 약간 저는 듯하다.
“흐으음, 마나 디택션!”
홍진표 교수가 알아차릴 수 없게 작은 소리로 마법을 구현시켰다. 그리곤 홍 교수의 전신을 살펴보았다.
전체적으로 큰 이상은 없는 듯하다. 다리의 근육도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약간씩 절고 있다.
‘그렇다면 혹시……?’
현수는 홍 교수의 머리 부분을 살펴보았다.
예상대로 이상이 발견된다. 전에 읽었던 의서의 내용대로라면 홍 교수는 현재 중풍 전조 증상을 보이는 중이다.
중풍이란 신체의 어느 부분이 갑자기 기능을 상실하는 질환이다. 이는 뇌혈관 이상으로 인해 뇌기능 중 일부가 마비되어 중추신경계에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선 금연과 절주를 해야 하며, 꾸준한 운동을 병행하여야 한다.
“자아, 준비가 다 되었구려. 그럼, 한잔하시겠소?”
“네에, 고맙습니다. 근데 교수님! 제 나이 이제 겨우 스물아홉입니다. 그러니 편히 말씀하십시오.”
“스물아홉? 스물다섯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데? 아무튼, 그럼 그러세.”
홍 교수가 먼저 술을 따라주었다.
이를 공손히 받은 현수는 술병을 받아 한잔 따라드렸다.
“자아, 건배하세.”
“네에.”
현수는 고개를 반쯤 돌리곤 시원한 막걸리를 원샷했다. 그리곤 신김치 한 조각을 안주로 먹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맛이 좋았다.
“허어, 아주 잘 마시는구먼…….”
“네에, 막걸리가 아주 맛이 있어서……. 그런데 어느 대학에서 강의를 하셨습니까?”
“나……? 강원대학에 있었네.”
“안식년 제도는 6년마다 1년씩 주어지는 거죠?”
“그렇긴 하네. 한데 아무래도 복직은 못할 듯 싶으이.”
“왜요?”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몸이 조금 불편하네. 병원에 갔더니 중풍 초기라 하더군. 이런 몸으로 어찌 강의를 하겠는가!”
“그러셨군요. 여긴 공기가 좋으니 요양을 잘 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들어와 있다네. 여기 온 지 석 달쯤 되었는데 너무 좋네.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고 한가로운 삶을 살고 있지.”
“네, 여긴 그렇지요.”
“매일 독서와 산책, 그리고 적당한 노동을 하고 있네. 이만하면 사람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만은 행복하다네.”
“네에, 그러시군요.”
“한데 자네는 어찌 이곳에 왔는가? 오늘은 평일인데.”
“저는 현재 휴가 중입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할 게 있어서 이곳을 찾아온 겁니다.”
“애인과 이별을 했나? 아님 승진해야 하는데 아직 못해서 그러는가?”
“아닙니다, 그런 건! 그냥 골치 아픈 일이 있어서요.”
레드 마피아로부터 협박받았다는 이야길 어찌 하겠는가!
현수는 홍 교수와 더불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쯤 지났을 때 우보 선생이 나타난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김현수 씨 아닌가? 어쩐 일로 여기에……. 핫핫! 오랜만일세.”
“네에. 저도 반갑습니다. 그간 안녕하셨지요?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을……. 지금쯤 사회생활 하느라 바쁘겠거니 했다네. 아무튼 잘 왔네. 우리 홍 교수하곤 통성명을 했지?”
“네에, 막걸리를 주셔서 한잔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말씀 많이 듣는 중입니다.”
“그래그래! 우리 홍 교수 인품이야 강원도 사람이 다 아는 인품이지. 게다가 박람강기해서 아주 박학다식하지. 자네의 멘토가 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친구이네.”
“예끼, 이 사람아! 면전에서 그리 칭찬하면 내 어찌 얼굴을 들겠는가! 뻥 좀 작작 치시게.”
“뻥은 무슨……! 사실인 걸 내가 알고 자네도 아는 거 아닌가, 홍 박사!”
“박사님이셨어요?”
“당연하지 않나? 국립대학 정치외교학과 학과장 자리에 아무나 앉겠는가? 홍 교수는 국내와 국외 두 군데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소위 엄친아라네.”
“에구, 엄친아라니요. 연세가 있으신데…….”
현수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자 우보 선생이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엄친아 맞네. 정신연령이 아직 어리거든.”
“에구, 고맙네. 정신이라도 젊게 봐줘서.”
“하하! 하하하!”
홍 교수와 우보 선생은 서로를 바라보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곧바로 술자리가 이어졌다.
이번엔 우보 선생의 냉장고에서 술과 안주가 나왔다.
주종은 여전히 막걸리지만 안주가 바뀌었다. 고추장에 재워놓았던 돼지갈비이다.
좋은 사람들과 마시면 근심걱정을 잊고 즐거워진다는 말이 있다. 지금의 현수가 그랬다.
홍 교수와 우보 선생 모두 25살 이상 연상인 어른들이다. 그런데 마치 천진난만한 아이들처럼 즐거워한다.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는 뜻이다.
술을 마시던 중 현수는 우보 선생도 마나 디텍션으로 살펴보았다. 역시 청신경이 있는 부분에 문제가 있다.
마나의 양도 적었고, 움직임 또한 제한적으로 보였다. 하여 이때부터 술을 조금씩 줄여서 마셨다.
밤 아홉 시가 넘자 두 분 모두 얼큰한 취기를 느끼는 듯하다.
산속이라 해가 일찍 떨어지는 곳이고, 두 분 모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라 하였다. 하여 서둘러 상을 치우고 우보 선생의 거처로 옮겨 자리를 폈다.
“오늘은 우리 셋이 같이 자는 건가? 하하, 기분 좋다.”
우보 선생의 말에 홍 교수가 맞장구를 친다.
“오늘 젊은 친구랑 마셔서 그런지 하루쯤 젊어진 느낌일세.”
“암만, 요즘 보기 드문 건실한 청년이지. 자, 이만 자세.”
현수가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분 정도이다. 그런데 술 때문인지 두 사람은 잠들어 있었다.
“흐음, 일단 내가 먼저 정신을 차려야지.”
우보 선생의 작업실로 간 현수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단전호흡을 하며 운기를 했다.
대략 30분 정도 지나자 취기가 가신다.
“흐음, 여기 온 김에 의서들 좀 읽어봐야겠군.”
사놓기만 하고 보지 않았던 한의서들을 읽다보면 반쪽짜리가 아닌 제대로 된 단전호흡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계를 치고 그 안에서 의서들을 섭렵했다. 외부 시간으론 6시간이지만 결계 안 시간으론 45일간 읽어댔다.
전능의 팔찌에 새겨진 브레인 리프레쉬 마법 덕분에 많은 부분을 쉽게 깨우치게 되었다.
드르르렁, 쿠울! 드르르르렁!
두 분 모두 깊은 잠에 취한 듯하다. 현수는 먼저 우보 선생의 머리 위쪽에 자리를 잡았다.
“마나여, 이상있는 곳을 회복시켜라. 리커버리!”
서늘한 푸른빛이 현수의 손을 떠나 우보 선생의 양쪽 귀로 갈라져 들어갔다.
다음엔 홍 교수의 머리맡이다.
“마나여, 이상있는 곳을 회복시켜라. 리커버리!”
이번에도 서늘한 푸른빛이 홍 교수의 머리 부분을 감쌌다.
“죄송하지만 조금 더 주무셔야겠습니다. 딥 슬립!”
마법이 구현되자 코고는 소리마저 잦아들었다.
아공간을 뒤진 현수는 회복 포션을 꺼내 두 사람의 입안에 넣어주었다. 그윽한 향기가 실내를 맴돌다 서서히 사라졌다.
“하룻밤 푹 주무시고 나면 내일 아침엔 오늘과 조금 다를 겁니다. 후후후!”
흐뭇하다는 표정을 지은 현수는 원두막으로 가서 다시 앱솔루트 배리어를 쳤다. 그리곤 타임 딜레이 마법을 구현시켰다.
그리곤 읽다만 의서들을 꺼내 밤새 뒤적였다. 그 덕에 모르던 것들을 상당히 많이 깨우치게 되었다.
짹짹! 째째짹!
“흐아암! 아아, 잘 잤다.”
산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한 새벽에 홍 교수가 먼저 깼다.
“흐으음……! 어라……?”
기지개를 켜던 홍 교수가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몸이 너무도 가뿐했기 때문이다. 전에는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고 찌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여 점심을 먹고 꼭 낮잠을 잤다. 안 그러면 저녁 때 몹시 피곤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상하네. 어제 술이 조금 과했는데…….”
홍 교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술을 마시면 다음날 몸이 안 좋아야 정상이다. 시계를 보니 여덟 시간쯤 잔 것 같다.
그런데 실컷 자고 일어난 것처럼 활력이 넘치니 어찌 이상하지 않겠는가!
“내 몸이 미친 건가? 혹시 이런 게 회광반조……?”
홍 교수는 몸이 완전히 망가지기 직전에 잠시 멀쩡해진 건 아닌가 싶은 마음에 이맛살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