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
‘이거 탐색을 시작한 지 1년 가까이 되는데 아직 못 찾은 거지? 근데 이거 찾으면 일본 재무장은 시간문제잖아?’
유난히도 영토 야욕이 심한 일본에게 충분한 돈이 공급되면 또 다시 침략 전쟁을 일으키려 할 것이다.
‘그런 꼴을 두고 볼 수 없지. 좋아, 일본엘 한번 가봐야겠군.’
현수는 꼼꼼하게 위치를 확인했다.
효고현에 소재한 다다은동 광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직할 광산으로 2,000여 개의 갱도가 뚫려 있다고 한다.
1971년에 붕괴 위험성 때문에 폐광된 이후 인적이 끊겼다.
지난해부터 일본은 안전을 고려하여 소형 센서와 카메라가 부착된 로봇으로 하여금 갱도 탐색을 하는 중이다.
‘니들보단 내가 먼저 찾아주지. 후후후!’
메탈 디텍션이란 아주 훌룡한 마법이 있지 않은가!
마나 공급만 충분하면 반경 500m 내의 금속들을 탐지해 낼 수 있는 마법이다.
서둘러 김포공항에서 오사카로 가는 항공편을 예약했다.
다다은동광산이 있는 효고현 가와베(川邊)군 이나가와초(猪名川町)까지는 버스와 택시를 이용할 계획이다.
쿵쿵! 쾅쾅! 쿵쾅쿵쾅!
태백호텔 나이트클럽 엑스터시(Ecstasy)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귀가 먹먹할 정도로 큰 소리가 들린다.
스테이지는 현란한 조명 아래 신나게 몸을 흔드는 젊은이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였다.
“휴우……! 엄청나군.”
대구의 C&C 나이트클럽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도 크고 사람도 많다.
“오서 옵셔! 찾으시는 웨이터 있습니까?”
“홍길동 있냐?”
“홍길동이요? 그런 웨이터는 없는뎁쇼?”
“그래? 그럼 네가 안내해.”
“아, 네에! 그럼 절 따라 오십시오. 그런데 테이블로 할까요? 부스로 할까요? 아님, 룸은 어떠십니까?”
“이은정 씨! 테이블과 부스, 룸 중 어디가 좋아요?”
“저는 이런 데 안 와봐서 몰라요. 잠깐만요. 수진아! 어디가 놀기 좋은 곳이니?”
“부스보단 룸이 덜 시끄러워. 사장님, 우리 룸으로 가요.”
일행은 저녁식사를 하면서 술을 마셨다.
넷이서 소주 한 병과 맥주 세 병을 해치웠다. 소주는 현수가, 맥주는 여직원들 몫이었다.
술이 약한 셋은 이미 약간의 취기가 있는 상태이다.
“룸이 좋다는데? 룸으로 안내해 줘.”
“네에,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현수는 맥주와 양주를 주문했다. 기왕에 술 마시면서 놀 거면 화끈하게 놀자는 여직원들의 성화 때문이다. 그간 취업 걱정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를 한 방에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웨이터는 피크 타임에 와서 화장실이 딸리지 않은 작은 방밖에 없어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직원들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잔을 비운다.
그리곤 서로 노래를 부르겠다면서 마이크 쟁탈전을 벌였다.
셋 중 노래를 가장 잘 부르는 사람은 단연 김수진이다. 소싯적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는 것이 믿어질 정도이다.
다음은 이지혜다. 꼴찌는 당연히 한 번도 못 놀아본 이은정이다. 그렇기에 아는 노래가 거의 없으면서도 마이크를 잡고 내놓지 않아 현수로 하여금 웃음 짓게 만들었다.
은정은 현수를 만난 이후 쌓이고 쌓였던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 그래서 요즘 자주 웃는다고 하였다. 그 때문인지 마치 피어나는 꽃처럼 화사하다.
술을 마셔 양 볼이 붉게 달아올라 있다. 그런 상태에서 광화문연가라는 노래를 부른다.
기교라곤 하나도 없는 밋밋한 노래 실력이다. 멜로디도 다 아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열심히 벙긋거리는 모습이 너무도 예쁘다.
김수진과 이지혜는 자리에 앉아 따라 부르고 있다.
현수는 슬그머니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왔다. 밖은 여전히 시끄럽고, 사람이 많았다.
룸으로 되돌아와 보니 은정이 보이지 않는다.
화장실에 갔다고 한다. 다시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수진과 지혜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었다.
확실히 은정보다 노래 솜씨가 좋아 듣는 귀가 즐거웠다. 여자들이라 주로 발라드 위주 선곡이었다.
그렇게 두어 곡이 지났음에도 은정이 오지 않는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밖으로 나가보았다. 룸을 나가 오른쪽으로 쭉 가면 맨 끝에 화장실이 있다. 따라서 길을 잃을 상황은 아니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보았지만 받지 않는다. 하여 여자 화장실 앞에서 와이드 센스 마법을 펼쳐보았다.
안에 두 명이 있다. 잠시 후, 한 명이 들어가고 둘이 나온다. 그중에 은정은 없다. 혹시 홀에 있나 싶어 살펴보았다.
하나 그들 중에도 은정은 보이지 않았다. 취기를 몰아내기 위해 밖으로 나갔나 싶어 바깥까지 확인했다.
다시 안으로 들어온 현수는 자신이 있던 룸으로부터 화장실 사이에 있는 모든 룸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와이드 센스 마법으로 음성 확인에 들어간 것이다.
그렇게 열여섯 개의 방을 뒤졌다. 열두 개의 방에선 신나는 노래 소리가 들렸고, 세 개에선 무슨 짓을 하는지 조용했다.
하나는 무슨 슬픈 일이 있는지 훌쩍이는 소리뿐이다.
이제 남은 방은 양쪽으로 두 개씩 네 개의 방이다. 첫 번째 방은 사내들끼리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두 번째 방에선 악을 쓰며 떼창하는 소리가 들린다. 세 번째 방에 귀를 기울였을 때이다.
“아이, 싫다니까 왜 이래요?”
“어쭈……!”
“대체 왜 이래요? 저 일행 있단 말이에요.”
“시끄러, 이년아! 떠들지 말고 일단 술이나 한잔 따라봐, 어서! 어쭈, 안 따라?”
“네, 싫어요. 내가 왜 그래야 하죠? 저, 나가게 비켜주세요.”
“싫어? 형님, 그년 좋은 말로는 안 될 것 같은데요?”
“넌 빠져 있어.”
“네, 형님!”
“자아, 좋은 말로 할 때 술 따라라.”
“싫어요. 나갈 거예요. 비켜주세요. 아악, 이 손 놔요! 아프단 말이에요.”
분명 은정의 목소리이다. 화장실을 다녀오다 안에 있는 녀석들에게 납치당한 듯하다. 즉시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쿵, 쿵, 쿵!
“누구야?”
누군가 신경질적으로 묻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열어젖혔다.
벌컥―!
열고 보니 큰 방이다. 사람이 여덟이나 있다. 여자라곤 은정 하나뿐이고 나머진 시커먼 사내들이다.
모두의 시선을 받았지만 현수는 은정만 바라보았다. 사내에게 손목을 잡혀 있다. 그리고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이다.
싸늘한 시선으로 사내들을 훑어보니 평범한 놈들은 아닌 것 같다. 덩치들도 있고, 인상도 좋지 않다.
“넌 뭐야?”
“그건 알 거 없고……. 이은정 씨! 뭐해요? 어서 나와요.”
“네, 사장님! 아아악……!”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은정이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다. 손목을 세게 움켜쥔 모양이다.
“너, 그 손 놔주는 게 좋을 거다.”
“야, 저거 뭐하는 십장생이야? 니들, 보고만 있을 거야?”
은정의 손목을 쥐고 있는 사내의 말에 가장자리에 있던 놈들 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넓은 룸이라 하지만 운동장만 한 것은 아니다. 현수는 일어서려는 놈들의 명치를 질렀다.
퍽! 퍽―!
“으윽! 윽……!”
명치를 맞아본 사람은 안다. 순간적으로 숨을 쉴 수 없으며 엄청난 고통이 느껴진다. 둘이 그랬다. 완전히 일어서려는 순간 명치를 가격당했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뭐야, 이 새끼!”
둘의 곁에 있던 또 다른 둘이 일어나 달려든다. 현수는 날아오는 주먹을 피함과 동시에 상대의 발목을 걷어찼다.
퍽! 빡―!
“아악! 으아악!”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과 함께 쪼그려 앉는다.
이제 이들 둘의 전투력은 제거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일어서면 엄청난 통증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통증을 견디고 공격하기란 웬만해선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이제 남은 것은 셋뿐이다.
“어쭈……?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이거지?”
두목인 듯한 자는 짐짓 여유를 부리는 것인지 여전히 자세 변화가 없다. 술잔에 술을 따르곤 단숨에 마신다. 그리곤 선언하듯 말을 이었다.
“나, 평화시장 김치성이다. 넌 어느 구역의 누구냐?”
“평화시장 김치성? 거기서 뭘 파는 놈인지 몰라도 지금 당장 그 손부터 놔라.”
“크크크, 안 놓으면……?”
“그야 네 신상에 안 좋은 일이 생기겠지.”
일곱이나 되는 상대를 앞에 두고도 전혀 위축된 감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전광석화 같은 몸놀림으로 부하들 넷을 간단히 처리했다.
그래서 겁없는 양아치는 아니다 싶어 김치성 스스로 신분을 밝힌 것이다.
동대문 근처에 위치한 평화시장 인근에서 활약하기에 평화파라 부른다. 이름은 평화스럽지만 행동은 결코 그렇지 못하다.
오늘은 모처럼 동생들을 데리고 멀리까지 놀러왔다. 태백호텔 인근에 자리 잡은 주차장파와의 친분을 쌓기 위함이다.
룸에도 화장실이 있지만 누군가가 쓰고 있어 밖의 화장실에서 볼일을 봤다.
그리고 룸으로 돌아오던 중 이은정을 보게 되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볼륨감있는 몸매, 그리고 한눈에 반해 버릴 정도로 청초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여대생이다.
하여 말을 붙였다. 그런데 별다른 대꾸도 없이 그냥 가려고 한다. 어찌 그냥 보내겠는가!
김치성의 어렸을 때 별명은 동대문 늑대이다.
사납고 흉포하다는 뜻에서의 늑대가 아니다. 그렇기에 은정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곤 곧장 룸으로 끌고 갔다.
한편 은정은 웬 사내가 손목을 잡아끌자 소리치며 저항했다. 하나 어찌 억센 사내의 힘을 당해낼 수 있겠는가!
룸 안에 발을 들여놓으니 사내 여섯이 일제히 바라본다. 한눈에 보기에도 불량기가 철철 흐르는 조폭들이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제 신세 망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스치자 저항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절망감이 먼저 생긴 것이다.
어쩌다보니 정가운데 자리에 앉게 되었다. 사내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술이나 한잔하자고 했다.
어찌 그 시커먼 속을 모르겠는가!
은정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인상을 쓰며 다가앉는다. 겁이 덜컥 났지만 애써 침착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게 어찌 되겠는가!
굶주린 늑대 앞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가련한 토끼처럼 눈치만 살폈다.
“좋은 말로 할 때 술을 따르는 게 좋을 거야. 너, 인신매매가 뭔지 알지? 그 전에 나는 물론이고 여기 있는 동생들 모두 상대하고 싶어?”
“아, 아뇨.”
“그럼 술을 따라,”
“그, 그건 안 돼요.”
“왜?”
“어, 엄마가 여자는 남편 될 사람한테만 술을 따라주는 거라고 했어요.”
떨리는 음성이었다. 그런데 김치성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모처럼 숙맥을 만났다. 이런 것들은 요리만 잘하면 평생 부려먹을 수 있다. 그렇기에 회심에 찬 미소를 지은 것이다.
“그래……? 그럼 내가 네 남편 해주지. 그럼 됐지? 자아, 이제 술이나 따라.”
말을 마친 김치성은 은정의 어깨를 잡아 당겨 품에 안았다.
“아이, 싫다니까 왜 이래요?”
이 순간 현수가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이다.
“좋은 말로 할 때 그 아가씨에게서 손을 떼라.”
“흥……! 웃기고 자빠졌네. 얘들아, 뭐하냐? 저 싸가지없는 새끼 손 좀 봐줘라.”
“네, 형님!”
“기분 나쁘니까 좀 심하게 만져줘라.”
“네, 형님!”
두 놈이 일어선다. 조금 전 네놈과는 눈빛부터 다르다.
“재수없는 새끼! 하필이면 우리 형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드냐? 최소한 석 달 열흘은 자빠져 있게 해주지.”
한 녀석이 품에서 뭔가 꺼내든다. 날이 시퍼렇게 서 있는 회칼이다. 길이는 30㎝ 정도 된다.
또 다른 녀석도 뭔가 꺼냈다. 너클이다.
그런데 평범한 것이 아니다. 뾰족한 침들이 박혀 있다. 게다가 새끼손가락 아랫부분엔 약 10㎝ 정도 되는 칼이 붙어 있다.
“……!”
살인흉기들이다. 이런 것을 들고 다닐 것이라 생각지 못했던 현수이기에 약간 움찔한 것이다.
“크흐흐흐!”
“이제 좀 무섭냐? 너 오늘 참 재수없다.”
두 사내는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 마냥 현수의 좌우로 다가왔다. 눈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흐음, 그냥 놔두면 안 될 새끼들이었군.’
공포감을 주려는 의도로 일부러 천천히 다가서는 놈들을 바라보던 현수의 입술이 달싹였다.
“아이언 스킨! 스트렝스! 헤이스트!”
마법을 구현시키자 체내의 마나들이 피부 쪽으로 급속 이동함이 느껴진다. 그와 동시에 현수의 신형이 움직였다.
휘익―! 퍼억! 퍽!
“케엑! 끄윽……!”
털썩! 털썩!
먼저 공격받은 놈은 회칼을 든 놈이었다.
눈알이 돌아갈 정도로 빠르게 달려들어 놈의 명치를 갈겼다. 그 순간 좌측 발로 너클을 낀 놈의 목을 걷어찼다.
불과 0.5초 만의 일이다.
“헉……! 너 뭐야?”
놀란 두목이 자리에서 일어섬과 동시에 현수의 신형이 득달처럼 달려들었다. 그리곤 녀석의 허벅지를 걷어찼다.
퍼억! 으드득!
“아아아아악!”
“은정 씨, 먼저 룸으로 가 있어요.”
“네……? 아, 네에. 아, 알았어요.”
“나갈 때 문 닫고 가세요.”
“아, 알겠습니다.”
위기에서 벗어난 은정은 후다닥거리며 룸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문은 닫히지 않았다. 깜박 잊은 듯하다. 하여 닫으러 나가려는 순간 문이 닫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