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쿠웅―!
“으으! 으으으으! 으으윽!”
내장재를 좋은 걸 써서 그러는지 나직한 신음만 들릴 뿐 밖의 시끄러운 음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마나여, 이들을 잠들게 하라. 슬립!”
하는 짓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폭력으로 남들을 괴롭히는 놈들이다. 따라서 그냥 놔두고 갈 마음은 없다.
현수는 이들을 어찌할까 생각해 보았다.
‘힘이 사라지면 그런 짓을 못하겠지?’
“인크리스 더블링 그래비티(Increase Doubling Gravity)!”
놈들은 이제 현수가 마법을 해제해 주지 않은 한 남들보다 두 배의 중력을 느끼며 살아야 할 것이다.
이는 행동이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폭력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이제 끝이다.
“흐음, 이것만으론 부족하지. 메탈 디텍션!”
마법이 구현되자 놈들이 소지한 흉기가 탐색된다. 먼저 쓰러진 네 놈의 품에도 회칼이 있다. 두목만 아무것도 없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겁을 줬는지 모르겠지만 이젠 끝이다. 페인 리플렉스(Pain Reflex)!”
마법이 구현됨과 동시에 놈들의 몸이 꿈틀거렸다.
처음엔 손목 근육을 잘라 버릴까 했다. 하지만 현대 의학은 이를 너무도 쉽게 해결한다.
그렇기에 상대를 때리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본인도 똑같은 고통을 느끼게 만든 것이다.
흘린 물건은 없나 주위를 둘러보곤 곧장 룸으로 향했다.
“아……! 사장님!”
울고 있던 은정의 곁에서 달래던 수진과 지혜가 반색한다. 위험에 처한 여직원을 위해 맨주먹으로 달려든 사장님이다.
말을 들어보니 상대는 일곱 명이나 되고, 조폭인데도 혼자 처리했다고 한다. 어찌 멋있어 보이지 않겠는가!
“이은정 씨는 괜찮아요?”
“네, 조금 놀란 것말고는 괜찮아요. 근데 정말 대단하세요. 어떻게 혼자서……. 특수부대 출신이세요?”
“네? 아, 네에. 그건 아니고…….”
“근데 어떻게 혼자서 일곱 명이나…….”
“우와, 사장님! 짱이세요.”
현수는 수진과 지혜의 호들갑에 머쓱한 표정만 지었다. 그러다 문득 놈들의 칼을 치우지 않고 온 것이 떠올랐다.
모두 깊은 잠에 취해 있기에 잘못 보면 칼싸움하다 죽은 것으로 오인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 경찰이 들이닥칠 것이고 귀찮아진다.
‘제기랄! 이젠 청소까지 해야 해?’
12장 뒤끝 작렬!
“잠깐 나갔다 올게요. 놀고 계세요.”
“네에, 사장님!
“근데 저희 술 더 마셔도 되요? 오늘 기분 너무 좋아요. 그치, 수진아?”
“그래, 우리 용감무쌍한 싸장님을 위하여……!”
벌써 취기가 올라 있음에도 또 술을 마시겠다고 하지만 말리지 않았다. 웨이터를 호출하여 맥주 몇 병을 더 주문하고는 룸을 빠져나왔다.
놈들은 여전히 깊은 잠에 취해 있었다.
현수는 회칼과 너클을 수거하여 아공간에 넣었다. 그리곤 놈들 하나하나를 일으켜 자리에 앉도록 했다.
누가 보면 술 마시다 취해서 잠든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앞으론 착하게 살아야 할 거다.”
잠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몸이 몹시 무거울 것이다.
70㎏이었던 놈은 갑자기 140㎏가 된 것처럼 걷는 게 힘들다. 그리고 모든 사물의 무게가 두 배가 된다.
문을 닫고 룸으로 되돌아오는데 근처에 있던 룸의 문이 열린다. 그리곤 사내 둘이 나왔다.
“아무튼 해결 방안 좀 잘 생각해 주라.”
“알았어. 근데 나한테 너무 기대하지 마. 너도 뾰족한 수가 없는데 나라고 뭔 수가 있겠냐?”
현수는 마주 오는 사내들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복도 한쪽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둘 중 하나가 눈에 익다.
“어……!”
“어라……! 김 병장님.”
“너 제대했냐?”
“하하, 김 병장님을 이런 데서 만나다니……. 반갑습니다.”
“반갑다. 이현우.”
“네에, 저도 무지하게 반갑습니다. 참, 이쪽은 제 친구입니다. 야, 조경빈! 인사해라. 내가 군대 있을 때 고참이었던 김현수 병장님이시다.”
“안녕하세요? 조경빈입니다.”
“네에, 김현수라 합니다.”
“김 병장님, 우리 이럴 게 아니라 룸으로 갑시다.”
현수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려던 거 아니었어?”
“그랬는데 그냥 갈 수 없잖습니까. 자, 가시죠.”
“그래. 그러자.”
나왔던 룸으로 되돌아가자 청소하던 웨이터 보조가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본다.
“뭐 잊으신 거라도 있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우리 다시 한잔하려고…….”
“저어, 죄송한데 거의 다 치워서…….”
먹다 남은 걸 마저 먹으러 온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이때 이현우가 입을 열었다.
“그냥 다시 주문할 거니까 걱정 말아요.”
“아! 네에.”
눈에 뜨이게 반색하는 표정이다.
“그럼 술을 뭐로 드릴까요?”
“김 병장님! 스카치 블루 어떻습니까? 다른 것보다는 조금 달달하면서 진하고 쓴맛도 덜하잖아요,”
“나는 상관없어. 그러니 그냥 그걸로 주문해.”
“네, 그럼 술은 되었네요. 안주는 뭐로 주문할까요?”
“제일 맛있는 걸로 달라고 해.”
“하하, 네에……. 들었지? 알아서 가져와.”
웨이터가 나가자 이현우가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김 병장님! 아니, 이제 병장이 아니지요. 그냥 형님이라고 부를게요.”
“그래, 나도 그게 편하다.”
둘은 세 살 차이이니 이현수의 나이는 스물여섯 살이다.
“그나저나 천지건설에 입사는 하셨어요?”
“그래. 운이 좋아서…….”
“우와! 축하해요. 아직 잘 다니시죠?”
“핫핫! 그럼. 잘 다니고 있지.”
“어느 부서에서 일하세요?”
“현재는 해외영업부 소속이야.”
“네에? 수학과 출신이잖아요? 근데 어떻게 해외영업을……?”
“그러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
불과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웨이터 보조가 들어와 익숙한 솜씨로 세팅하고는 나간다. 팁 달란 제스처도 없었다.
아무튼 이현우는 안 봐도 비디오라는 표정이다.
수학과 출신이 해외영업부에 있다면 잘난 놈들에게 밀리고 밀려서 간 것일 것이다. 그러니 선진국 같은 곳이 아닌 환경 열악한 나라에 배치되었을 것이다.
이를 확인하려는 듯 물었다.
“그래서 어느 나라로 발령받았는데요?”
“콩고민주공화국이라고 알아?”
“……!”
이현우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있자 곁에 있던 조경빈이 한마디 끼어든다.
“콩고민주공화국이라면 아프리카에서도 최빈국에 속하는 나라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못 사는 나라지요.”
“아이고, 형님! 말 놓으세요. 저 현우와 친구 사이이긴 해도 제가 현우보다 나이가 한 살 어려요.”
“무슨 말씀을……. 초면인데 어찌 그럽니까?”
“그건 그렇고, 그런 나라에서 뭘 해요? 나라도 가난하고 국민들도 가난한 그런 나라에서 뭘 건설하느냐는 거예요.”
“아무리 가난해도 건설 행위는 있어.”
그저 변명하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현우가 나직이 혀를 찼다.
“쯧쯧,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나저나 형님 혼자 왔어요?”
“아차……! 나 좀 나갔다 올게.”
현수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자신의 룸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다시 노는 분위기였다.
“어라! 이게 누구셔요? 우리 잘난 사장님이시잖아요? 그쵸?”
“헤에, 사장님 오셨구나.”
“헤헤, 우리 싸랑하는 사장님! 아깐 고마웠어요. 헤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셋 모두 와락 달려든다. 탁자를 보니 맥주는 물론이고 양주까지 모두 마신 듯하다.
‘그래, 아주 화끈하게 마시고 그간 쌓인 스트레스가 있거든 모두 푸는 게 낫지.’
“술 더 주문할까요?”
“헤에. 그렇지 않아도 알콜이 부족했어요. 싸장님, 맥주 좀 더 시켜줘요.”
“난 찬성!”
“헤헷, 일 인당 두 병씩만 더 시켜줘요!”
“네에, 알았습니다.”
현수는 웨이터 호출벨을 눌렀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조금 전 그 웨이터 보조가 들어온다.
“부르셨습니까?”
이때는 김수진이 발악하듯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이다. 그렇기에 손짓으로 불러 귓속말로 주문했다.
그리곤 아무도 이 방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봐 달라는 부탁을 했다. 만일의 경우엔 자신과 이현우가 있는 방으로 알려달라고 했다. 물론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이 건네졌다.
“술 더 시켰으니까 마음껏 마셔요.”
“네에, 우리 좋은 사장님!”
“감사합니다, 사장님!”
“우리 싸장님, 최고!”
현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노래에 열중할 때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이현우가 있는 룸을 열고 들어가니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하다 시선을 돌린다.
“일행은 모두 갔어요?”
“아니, 실컷 놀라고 하고 왔지. 근데 무슨 일 있냐? 왜 그렇게 표정이 심각해?”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니긴……! 뭔데? 말해봐. 내가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 속담에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잖아.”
“그건 그렇지요.”
“그래, 그러니 고민이 있으면 털어놔 봐. 해결이 안 되더라도 속은 시원해질 것 아냐? 혼자서 끙끙거리지 말고 말해.”
“형님, 제 고민이 아니라 여기 있는 경빈이 고민인데요?”
“그, 그래……?”
현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속내를 털어놓으란 소리를 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래, 경빈아. 형님에게도 말을 해봐. 혹시 아냐?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실지?”
“……!”
“내가 말했잖아. 군대에서 내 멘토가 될 만한 사람을 찾았다고. 그게 여기 있는 김현수 형님이야.”
“뭐어, 멘토? 내가 너의……? 아이구, 말도 안 돼. 내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아니에요. 제가 무사히 제대할 수 있었던 것은 형님의 공이 커요. 사실 파견 나갔을 때 탈영을 심각히 고민했었거든요.”
“그래……? 그랬어?”
“이제니까 말하지만 그때 있잖아요.”
“우리가 예비사로 6개월간 파견 나갔던 그때?”
“네, 그때 그 부대에 있던 최 병장 있잖아요.”
“최 병장이라면… 최찬식 병장?”
“네, 형님도 그 새끼한테 엄청 맞았잖아요. 안 그래요?”
“그랬지. 다른 부대 출신이라고 정말 지독하게 때렸지. 덕분에 엉덩이 얼얼한 날이 많았지.”
“다른 고참들은 그 새끼한테 맞고 모두 줄빳따 때렸는데 형님만 안 그랬잖아요.”
“내가 그랬나?”
“네에, 게다가 우리 부대로 복귀한 이후엔 제대하는 날까지 한 번도 구타하지 않았어요. 덕분에 탈영하지 않았지요.”
“그랬어?”
“네, 형님도 그 전까진 엄청 맞았다고 했잖아요. 근데 그때 왜 안 때렸어요? 내가 실수 참 많이 했잖아요. 말도 안 듣고.”
“그러고 보니 군대 있는 동안 기합도 많이 받고 매도 많이 맞았구나. 기억나니? 나 상병 왕고일 때 중대장한테 5파운드짜리 곡괭이 자루로 맞은 거.”
“그럼요. 그거 때문에 팬티 오리셨잖아요.”
“팬티를 오려?”
조경빈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슨 소린가 싶었던 것이다.
“그건 들어보면 알아.”
이현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수가 묻는다.
“그때 네가 오려준 거니?”
“네, 곡괭이 자루로 맞아서 엉덩이 살이 터졌는데도 지혈시키거나 치료할 시간도 안 주고 곧바로 군장 메고 연병장을 이십 바퀴나 돌게 했잖아요.”
“그래. 피가 엉겨 붙는 바람에 팬티를 벗을 수 없었지.”
“……!”
조경빈은 팬티를 오린다는 게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는 놀란 눈빛을 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현우의 말이 이어졌다.
“네, 그때 형님이 맞은 건 김 상병하고 박 상병이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도록 싸워서 그런 거였잖아요.”
“그랬지.”
“그랬는데도 형님은 김 상병과 박 상병에게 한 마디도 안 했어요? 그때 왜 그랬어요?”
“그런다고 내가 맞은 게 없어지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내가 맞는 동안 얼마나 미안했겠냐? 그러면 된 거지.”
“봐요. 형님은 다른 고참과 달랐어요. 만일 최 병장 그 새끼 같았으면 아마 우리들 모두 갈아먹었을 거예요. 안 그래요?”
“그래, 최 병장이 그랬던 건 정말 잘못된 일이야.”
“그리고 형님은 제대하고 난 뒤에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조언도 해주었잖아요.”
“아, 그거! 그때 너 휴가 나왔을 때지?”
현수는 직장을 구하지 못해 시내 한복판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만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날 둘은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 다음날 이현수가 전화하여 천지건설에 원서를 내라고 채근한 덕에 직장인이 된 것이다.
“네에, 그때 참 고마웠습니다. 제가 세상을 조금 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 형님 말을 듣고 많은 걸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전 그렇게 취직하는 게 어려운 건지 몰랐어요.”
“그래? 그래서 취직 준비는 잘하고 있냐?”
“학교 더 다녀야 하잖아요. 앞으로 1년간 열심히 할 거예요.”
“그래. 준비 철저히 해라. 내가 경험해 봐서 아는데 취직하기 정말 힘들다. 어쨌든 천지건설에 취직한 거 다 네 덕이다.”
곁에 있던 조경빈이 눈빛을 빛내며 뭔가를 말하려 했다. 하나 현우의 입이 먼저 열린다.
“그래요? 그럼 오늘 술 값 형님이 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