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가만히 지켜보니 차례차례 열리고 있다. 하여 하나뿐인 도주로를 차단하고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리고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흐음, 오늘은 틀렸군.’
현수는 놈들의 머리 위를 지나 밖으로 빠져나갔다.
“약삭빠른 놈! 인디케이터를 설치해 놓다니.”
아래층을 지나치면서 보니 괘종시계 위에 인디케이터가 부착되어 있다. 현재는 다섯 개의 초록색 전등이 켜져 있다.
다섯 개 모두 닫혀 있다는 뜻일 것이다. 금고를 열면 이것이 꺼지면서 붉은색 전등이 들어오게 되어 있는 듯하다.
“오늘은 그냥 가지만 조만간 모두 가져가 주지.”
귀가한 현수는 복사해 온 장부를 살펴보았다.
“이런 쳐죽일……!”
첫 번째 장부는 지나인을 조선족으로 신분 세탁하여 한국에 밀입국시키는 것에 관한 것이다.
공해상에서 접선하여 이들을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 주는 데 일인당 400만원을 받았다.
장부에 기록된 인원을 보니 작년 한 해 동안 40여 차례에 걸쳐 입국시킨 인원만 1,400여 명이다.
이들로부터 받은 돈만 56억 원이다.
다음 장부엔 한국 여자들을 지나의 삼합회 조직에 넘긴 것에 관한 것이다. 지나나 조선족에 비해 세련되었기에 한 명을 넘길 때마다 한국 돈으로 600만 원을 받았다.
이 일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금껏 일곱 번 실시되었다. 장부에 기록된 인원을 보니 점점 숫자가 많아지고 있다.
돈이 된다 싶으니 마구잡이로 납치하여 팔아 넘기는 모양이다. 그렇기에 쳐죽일 놈이란 소릴 한 것이다.
아무튼 지금껏 팔아버린 여자의 숫자가 213명이다. 12억 7,800만원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음 장부는 생각했던 대로 마약 밀수에 관한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들여오는데 올해 가져온 양만 12㎏이다.
돈으로 따지면 282억 원어치이고, 무려 30만 명이 동시에 사용할 양이다. 거래 상대를 확인해 보니 삼합회이다.
‘냄새나는 지나 놈들이 문제군.’
다음 장부부터는 국내 나이트클럽과 단란주점 등을 직간접적으로 운영하면서 얻은 수익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니들은 조만간 정리당할 거야.”
장부를 덮은 현수는 나직이 이를 갈았다. 조폭들이라면 이가 갈린 때문이다. 대학교 2학년 때 현수의 친구 가운데 하나가 조폭들과 시비가 붙었다. 상대가 조폭인지 몰랐던 것이다.
그 결과 한쪽 팔을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일곱 번이나 쑤신 회칼 때문이다.
* * *
“흐음, 누구한테 물어볼까?”
오사카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효고현의 현청이 있다는 고베에 당도했다.
관할 구역인 가와베군 이나가와초에서 갱도가 발견되었지만 구체적인 장소는 알 수 없다.
인터넷으로도 검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택시를 탔다. 그리곤 능숙한 일본어로 행선지를 알렸다.
“효고현 현청으로 갑시다.”
말을 마치곤 시트에 등을 대고 눈을 감았다. 운전사가 말을 시키면 귀찮기 때문이다. 룸미러로 뒷좌석을 살핀 운전사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는 출발했다.
“다 왔습니다.”
돈을 내고 보니 전형적인 관공서 건물이 보인다.
“이미지 컨퓨징!”
이제부턴 얼굴을 알아서 좋을 게 없다. 그렇기에 누가 보더라도 금방 잊을 얼굴이 되게 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미도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현수가 현청 로비에 있는 안내 데스크로 다가가자 앉아 있던 아가씨가 상냥하게 묻는다.
“아, 나는 동경대 지질연구소에서 온 이시가와 히로시라고 합니다. 상부의 지시에 따라 다다은동광산의 갱도가 있는 곳에 파견되었는데 거기까지 안내해 줄 수 있겠습니까?”
말을 하면서 현수가 내민 것은 오면서 보았던 신문지 찢은 것이다. 하나 이 순간 미도리라는 아가씨의 눈엔 그것이 공문서로 보인다.
“이것이라면 3층 304호에 있는 와다 세이지 상을 찾아가십시오. 친절히 안내해 드릴 겁니다.”
“알겠습니다.”
현수는 신문지 쪼가리를 챙겼다. 그리곤 유유자적하게 3층으로 올라갔다.
“저어, 와다 세이지 상을 찾아왔습니다만 어느 분이신지요?”
“저기, 저분이세요.”
“감사합니다.”
현수가 찾아간 사람은 40대 중반쯤 되는 전형적인 일본인이다. 덩치는 작았고 뿔테 안경을 썼으며 약간 뻐드렁니이다.
“와다 세이지 상!”
“네, 제가 와다입니다. 한데 누구십니까?”
“나는 동경대 지질연구소에서 온 이시가와 히로시라고 합니다. 상부의 명에 따라 다다은동광산의 갱도가 있는 곳으로 파견되었는데 안내를 부탁드립니다.”
이번에도 신문지 쪼가리를 내놨다. 와다는 그것을 자세히 살폈다. 동경대 총장 명의로 발행된 공문서이다.
이시가와 히로시 동경대 지질연구소 연구원을 다다은동광산에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 금괴 발굴 작업에 파견한다는 내용이다.
“아! 멀리서 오신 분이시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현수가 앉자 어디선가 음료수를 꺼내온다.
“제가 지금 하는 업무만 끝나면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네에, 그러지요.”
와다 세이지의 업무는 불과 10분 만에 끝났다.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것은 곁의 동료에게 부탁했다.
동경에서 온 손님을 모시기 위함이다.
잠시 후, 현수는 와다 세이지가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았다. 공무에 사용되는 것이라 한다. 한참을 이동해 도착한 곳은 고속도로 건설공사 현장 부근이다.
“최초 발견 지역은 여기입니다. 현재 발굴 작업이 진행되는 곳은 저기 저쪽입니다.”
“그래요? 그럼 일단 여기에 세워주십시오. 이쪽부터 보고 발굴 본부에 합류하겠습니다.”
“네, 그러십시오.”
와다 세이지는 상당히 수다스런 사람이다. 그렇기에 차에 오르자마자 동경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해 어찌 이야기하겠는가!
하여 대강 얼버무리고는 피곤하다면서 눈을 감았다.
동경에서 고베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야간에도 열 시간 가량 걸린다. 그렇기에 와다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와다가 가고 난 후 현수는 주위를 면밀히 살폈다.
일본 정부에서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모든 발굴 지역을 가설 방음벽으로 막아놓았던 것이다.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플라이!”
투명화 마법과 비행 마법으로 주변을 살피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30분이다.
현장 입구마다 출입을 제한하는 초소를 거치게 되어 있다. 이것을 통과하기가 힘들어 그러는지 내부는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하여 발굴 현장 사무실까지 드나들 수 있었다.
벽에는 이미 조사된 갱도에 대한 상세한 지도가 있다.
“메모리!”
기억 마법으로 상세 부분까지 모두 파악한 현수는 이미 조사가 끝나 아무도 없는 공동으로 내려갔다.
비행 마법이 시전되는 중이라 내려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내려가 보니 상당히 오래된 버팀목이 보인다. 너무 오래되어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질 것만 같다.
“이래서 로봇으로 탐사한다고 한 거군.”
이쪽은 탐사가 끝난 지역이라 로봇이 재투입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투명 은신 마법은 해제했다.
플라이 마법을 해제하지 않은 것은 새로 생길 발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함이다.
현수는 기록에서 보았던 공동 부분까지 이동했다. 암석지대라 발자국을 우려하지 않아도 되기에 모든 마법을 해제했다.
그리곤 마법을 구현시켰다.
“마나여, 금속 성분을 찾아다오. 메탈 디텍션!”
주변을 살피던 현수는 침음을 냈다. 금속 성분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하긴 이곳은 은과 동이 나오는 광산이다.
그러니 은맥과 동맥이 있다. 그렇기에 사방이 온통 금속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흐음,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마법이 있지? 스페이스 디텍션!”
두 가지 마법을 중첩시켰더니 공간과 금속 성분이 매치되기 시작된다.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반경 200m 내에는 금괴가 없는 듯하다.
“첫술에 배부를 거라곤 생각지 않았어. 플라이!”
다시 몸을 띄우고는 갱도를 누볐다. 다음 공동에서도 메탈 디텍션과 스페이스 디텍션으로 찾았으나 금괴는 없었다.
하나 아무런 소득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이 아직 찾아내지 못한 갱도들을 여럿 발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도 금화는 없었다. 이렇게 갱도를 누비기 시작한 지 거의 다섯 시간쯤 흘렀을 때이다.
“스페이스 디텍션! 메탈 디텍션!”
제자리에 서서 조금씩 움직이며 사방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약 210도쯤 움직였을 때이다.
“저건……?”
제법 큰 공동 속에 금속 무더기가 느껴졌다. 그곳까지 갔는데 막혀 있다.
“흐음, 마나여, 어둠을 몰아내라. 라이트!”
주먹보다 조금 큰 화구에서 빛을 낸다.
현수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주먹만 한 돌들을 쌓은 뒤 사이사이를 진흙으로 메운 것이었다.
“빅 핸드!”
약간 물러선 뒤 손으로 긁어내는 시늉을 했다.
와르르! 와르르르!
엉성하게 쌓아서 그랬는지, 너무 오래되어 그랬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불과 두어 번만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현수는 멀찌감치 떨어져 한참을 기다렸다. 먼지가 너무 자욱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기 순환이 거의 없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먼지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하나 언제까지고 기다릴 순 없지 않은가!
“배리어(Barrier)!”
전신에 마나 장벽을 두르고는 먼지 속으로 들어갔다. 안쪽엔 수백 개의 상자가 포개져 있다.
뚜껑을 열려고 잡아당겨 보니 그냥 부서진다. 너무 오래되어 삭아버린 것이다. 기록대로라면 1598년에 제작된 상자이다.
지금이 2013년이니 무려 415년이나 된 것이다.
어쨌거나 안에 담긴 것은 금화였다. 현수는 각각의 상자를 개봉했다. 그리곤 안에 담겼던 모든 것들을 아공간에 넣었다.
“쪽발이들! 니들은 이걸 가질 자격이 없어!”
모든 것을 담은 뒤 가려던 순간 스치는 상념이 있었다.
부서진 상자 쪼가리들을 그냥 놔두고 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삭기는 했지만 부서진 것은 방금 전이다. 일본의 기술력은 이것을 규명해 낼 수 있음을 상기한 것이다.
“후후, 이럴 때 유용한 마법이 있지. 앱솔루트 배리어! 타임 패스트!”
결계를 치고 안의 시간만 180배 빠르게 흐르도록 해놓고는 다음 공간을 찾아 떠났다.
그리 멀지 않은 공간에 또 다른 금화들이 쌓여 있었다.
그것들 모두를 담고 마법을 구현시키려 하던 순간 스치는 상념이 있다.
“잠깐! 이런 게 스물한 군데라고 했지? 근데 모두 마법을 구현시키려면 마나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텐데……. 흐음, 어쩐다?”
잠시 고심하던 현수는 아공간에 담긴 스테인리스 판을 꺼냈다. 가로 세로 각각 1m 정도 되는 것이다. 이것을 4등분으로 잘랐다.
또 다른 철판 네 장을 더 꺼내 같은 크기로 나누었다.
그리곤 그중 하나에 앱솔루트 배리어 마법진을 새겼다.
다음엔 타임 패스트를 구현시킬 마법진을 새겼다. 같은 공간에 마법을 중첩시킨 것이다.
마지막에 새긴 것은 원소 분해 마법인 디콤퍼즈드 엘레먼츠(Decomposed Elements)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스테인리스 철판 자체를 원소로 분해해 버리는 일종의 소멸 마법이다.
마법진이 확실하게 되었는지를 꼼꼼하게 살피고는 준비해 두었던 스무 개의 철판을 위에 차곡차곡 쌓았다.
“퍼펙트 카피!”
순식간에 스무 개의 스테인리스 철판에 마법진들이 완벽하게 옮겨졌다.
다음엔 이 마법진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마나석을 끼웠다. 원소가 되어 분해될 것이므로 굳이 좋은 것을 쓸 필요가 없어 하급 마나석들을 사용했다.
마법진 하나당 세 개씩 189개의 마나석이 소요되었다.
이제 마법이 구현되면 200일간 유지될 것이다. 이는 결계 안의 시간이 100년 정도 흐르게 하는 효과가 있다.
나중에라도 부서진 상자가 발견되어도 100년 전에 이미 누군가가 가져간 것으로 알게 하기 위함이다.
현수는 나무 조각들이 있는 땅을 파고 그 안에 마법진이 새겨진 철판을 넣었다. 그리곤 흙으로 덮었다.
“θγφξβγζγ γζαηυρτ!гφτψ φξ!”
룬 문자로 이루어진 마법 구현 주문을 외우자 땅 속으로부터 푸르스름한 빛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마법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가장 먼저 발견한 곳으로 가서 마법을 해제하고 철판을 넣고 일련의 작업을 마쳤다. 그리곤 또 다른 금괴를 찾았다.
그러던 중 뭔가가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 지하에서 발생된 진동을 이상히 여겨 탐사 로봇을 투입한 것이다.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투명 은신 마법으로 몸을 숨기고는 로봇의 움직임을 살폈다. 방금 전 마법을 구현시킨 곳으로 이동하고 있는 중이다.
당연히 그냥 놔둘 수 없다.
“라이트닝!”
번쩍! 퍼퍼퍽―!
로봇의 움직임이 멈춘다. 전기적 충격에 회로가 탔기에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현수는 또 다른 공간을 찾아 나섰다. 그런 가운데 두 개의 탐사 로봇이 더 투입되었다. 하나는 진흙탕으로 가게 하여 그 속에 처박았다. 다른 하나는 한쪽 캐터필러를 벗겨냈다.
그랬더니 제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할 뿐이다.
『전능의 팔찌』 제5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