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관공서 및 주택엔 조기가 내걸리기도 했다.
하루 동안 술 판매가 금지되었고 모든 클럽이 문을 닫았다. 다시 말해 술 먹고 춤추며 노는 일이 금지되었던 것이다.
유흥주점이나 클럽 등이 멋모르고 문을 열면 극우 꼴통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라는 살벌한 경고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이 일에 관한 보도가 이어졌다.
일부 친일언론에선 사안의 중요성을 따져 신중한 보도를 했다. 아무런 논평 없이 사실만을 간략히 내보낸 것이다.
하나 일본의 눈치를 보지 않는 언론사들도 있다. 다음은 어떤 언론사에서 보도한 내용 중 일부이다.
이것은 분명한 천벌!
일본이 저지른 죄악에 분노한 하늘이 벌을 내렸다.
어젯밤 11시 30분경,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 강력한 지진과 화재가 발생되어 모든 건축물과 동상 등 전시물들이 파괴되었다. 재건은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말살이다.
그 결과 단 하나의 건축물도 무너지지 않거나 화마를 피한 것이 없을 정도로 완전한 폐허가 되었다.
하지만 야스쿠니 신사 바깥은 손톱만큼의 피해도 없었다. 하늘이 일본에 내린 강력한 경고라 판단된다.
일본은 주변국에 입힌 피해에 대한 사죄를 하지 않았다. 또한 그에 합당한 보상과 관련된 어떤 논의조차 없었다.
즉각적이고 진심 어린 사죄와 피해 보상이 없다면 하늘은 다음 순서로 어디를 또 붕괴시킬지 아무도 모른다.
이 기사를 내보낸 신문은 화염병 투척이라는 불상사를 당했다. 다행히 큰 화재로 번지진 않았지만 직원들이 퇴근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극우인사들이 일본도를 소지한 채 삼엄한 기세로 신문사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사는 즉각 신고했다. 하여 경찰 2개 중대가 출동하기는 했다. 하지만 일본 극우파들을 해산시키지는 못했다.
말 몇 마디 하고는 스스로 물러났던 것이다. 하여 이 신문사의 인터넷판에 또 하나의 기사가 떴다.
이 나라는 아직도 일본의 식민지인가?
정부 및 경찰 관계자는 본인이 친일파임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굵은 제호 아래엔 작은 글씨로 된 기사가 떠 있다.
일본 야스쿠니 신사 붕괴 사건을 보도한 본사를 둘러싼 일본 극우세력들은 법으로 금지된 살상무기를 소지하고 있다.
이 문장 다음엔 새파랗게 날이 선 일본도를 뽑아 든 몇몇의 사진이 올려져 있다.
머리엔 욱일승천기가 그려진 두건을 쓰고 있고, 전통적인 일본 복식을 갖추고 있는 인물 사진이다.
이것의 아래에 다시 기사가 이어진다.
본사는 불법 살상무기를 소지한 채 본사 임직원을 위협하는 이들을 해산시켜 줄 것을 경찰에 요구하였다. 하지만 출동한 경찰은 이들과의 짧은 대치 끝에 포위망을 풀었다.
일본 대사관 직원들이라는 설명이 있었지만 대체 어떤 나라 대사관에 저토록 많은 인원이 있단 말인가!
이 글귀 아래 사진 하나가 올려져 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200여 명이나 된다. 일개 대사관에 소속된 직원이라 하기엔 너무 많은 숫자임이 분명하다.
아래엔 또 기사가 이어지고 있다.
경찰은 즉각 불법무기 소지죄로 전원 연행하고 엄벌에 처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경찰의 포위망을 풀도록 명령한 관계자를 색출하여 처벌하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대체 이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자국민을 위협하는 불량한 일본인들을 그냥 놔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기사를 본 시민들이 대거 몰려나가 항의를 시작했다.
놈들은 일본도를 뽑아드는 등의 위협을 가했다. 이 소식을 듣고 더 많은 시민들이 항의대열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불과 두 시간 만에 시위에 참여한 인원이 10만을 넘어섰고,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이다.
신변에 위협을 느꼈는지 일본 극우세력들이 슬그머니 포위망을 풀고는 전원 일본 대사관으로 들어갔다. 이에 시민들은 그들의 뒤를 따라가며 과거사를 사죄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일본 대사관에선 즉각 정부에 항의의 뜻을 표했다.
이에 정부는 또 다시 경찰을 출동시켰다.
전투경찰들이 항의하는 시민들을 둘러싸고 있다는 말이 번지자 시위대의 숫자는 금방 50만으로 늘어났다. 야스쿠니 신사의 붕괴 사건이 갑자기 반일 시위로 번진 것이다.
정부 및 경찰 관계자는 자신들의 미숙한 대처가 국민들의 분노를 야기시켰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국제 관례상 일본 대사관을 보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국무총리가 핸드마이크를 들고 시위대 앞에 나섰다.
“여러분들의 분노한 마음을 저는 압니다. 하지만 일본 대사관을 공격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니 조금만 진정하고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성난 민심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국무총리 자체가 인심을 얻지 못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곧이어 새로운 구호가 나타났다.
“친일 정부는 물러나라! 물러나라! 친일 국무총리와 친일 대통령은 즉각 하야하라! 하야하라!”
국무총리는 얼른 몸을 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칫 성난 군중들에 의해 반일 시위가 반정부 시위로 번질 것이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성난 시민들에 의해 곤욕을 치르는 것은 전투경찰들이다. 밀려드는 시위대를 밀어내느라 죽을 고생을 한 것이다.
이전 같으면 고위 경찰로부터 시위대를 제압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방패로 찍는 등의 못된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나 이번엔 그럴 수 없다.
반일이라는 의미가 담기면 대한민국 국민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방패로 찍어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히면 구호만 외치던 시위대가 폭력을 쓰게 될 것이다.
전경이 많이 출동해 있기는 하지만 어느새 100만 이상으로 늘어난 시위대를 어찌 감당해 내겠는가!
그렇기에 몸으로 막아내는 도리밖에 없었다.
하여 깊은 밤이건만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는 중이다.
한편,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르는 현수는 밤이 깊기를 기다렸다. 그리곤 고쿄라 불리는 황거 인근으로 이동했다.
고쿄는 옛 에도성 일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면적은 115만㎡로, 한국식으로 따지면 약 34만 9천 평이다. 해자로 둘러싸여 있으며 여덟 개의 문이 있다.
안에는 목조, 석조 및 철골철근 구조물 등 상당히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이 있다.
현수가 황거에 당도한 시간은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다. 당연히 인적이 끊겨 있다.
“마나여, 내 몸을 띄워라. 플라이!”
굳이 투명 은신 마법까진 필요없을 정도로 어두웠던 것이다.
“휘유……! 엄청나게 넓구나.”
35만 평 가까이 되는 황거를 본 현수는 입맛을 다셨다.
넓기는 하다. 하지만 어스퀘이크로 흔들려면 못 그럴 것은 없다. 그런데 면적이 너무 넓기에 어제와 같이 완벽한 피해를 입히기엔 힘들 듯하다.
특히 석축 위에 있는 후지미야구라 같은 것은 경미한 피해만 입을 수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히 견고했던 것이다.
“흐으음, 할 수 없군. 각개격파가 답이야.”
땅으로 내려온 현수는 건물의 중요도를 따졌다. 그리곤 우선순위를 매겼다.
첫째는 당연히 어소라 부르는 곳이다.
후키아게 정원 안에 있는 천황부부의 처소이다. 그 다음이 표어좌소동, 정전, 풍명전, 연취, 장화전 등이 있는 궁전이다.
“남의 나라에 침입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했으며, 부녀자들을 강간한 죄를 묻지 않을 수 없지. 어디 오늘 한번 당해봐라.”
현수는 잠시 후 시전한 마나 배열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최상의 결과를 얻어내기 위함이다.
시간이 흘러 12시 30분쯤 되었을 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곤 옷을 갈아입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두 검은색이다. 오늘 밤 격하게 마나를 써야 할 듯하다. 그렇기에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마법은 쓰지 않을 생각을 한 것이다.
“플라이!”
적당한 위치에 이른 현수는 어소 인근으로 범위를 좁혔다. 충격의 극대화를 노린 것이다.
“마나여, 땅거죽을 뒤흔들어 지상의 모든 걸 무너뜨려라. 어스퀘이크!”
우르릉! 우르르르릉! 콰르르릉!
어소라 불리던 건축물이 가장 먼저 무너졌다. 하나 그것으로 끝낼 생각은 없다.
“마나여, 모든 것을 불태워라. 파이어 스톰!”
화르르르륵! 쑤아아아앙!
화염의 폭풍우가 무너지는 건물 잔해를 덮치자 즉각 화마가 기승부리기 시작했다.
화르륵! 화르르르륵! 화르르르르!
쪽발이들의 정신적인 지주라 일컫던 자가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라 생각한 현수는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그리곤 곧장 어스퀘이크와 파이어 스톰 마법으로 폐허를 만들어냈다.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된 궁전은 철골철근 구조물이다. 하나 R파에 버금갈 L파를 견뎌내기엔 부족했다.
아무리 내진설계가 되어 있다지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지진 강도 10.5에 해당하는 강력한 움직임을 어찌 견뎌낼 수 있었겠는가!
콰앙! 콰아앙! 콰르르르릉!
자욱한 먼지를 뿜어내는 궁전의 모습을 잠시 지켜본 현수는 다음 건물을 부수러 이동했다.
잠시 후,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당연히 소방차와 구급차들이 긴급 출동하는 소리이다.
“빠르군! 하지만 누가 빠른지 시험해 볼까?”
현수는 순서를 바꿔 여덟 개의 문을 차례로 붕괴시켰다. 어떤 소방차도 진입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그리곤 차례대로 건축물들을 무너뜨리고 불태웠다. 사람들이 튀어나와 아우성쳤지만 그따위 것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새벽 4시, 모든 건축물이 거의 완벽하게 붕괴된 시각이다.
“흐음, 그냥 갈 수는 없지.”
하늘 높이 올라가 황거 전역을 조망한 현수는 남아 있는 마나량을 가늠했다. 많이 소모된 상태이지만 아직 한 번의 마법을 구현시킬 양은 되었다.
“좋아, 마지막 선물이다. 어스퀘이크!”
우르르릉! 우르르르릉! 우르르르르르르릉!
황거 전역이 뒤흔들리는 모습을 확인한 현수는 인근 건물 옥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곤 어제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시선이 미치기 힘든 구석에 결계를 쳤다.
안에 들어가자마자 침대를 꺼내곤 곧장 잠을 청했다. 피곤해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여덟 시간쯤 흐른 뒤 현수는 다시 쌩쌩한 모습이 되었다. 하긴 60일이나 지났는데 쌩쌩해지지 않았다면 이상할 것이다.
두 달이나 결계 안에 있어야 하는 현수로선 고역이었다. 어찌 지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전엔 새로운 마법을 깨우치고, 서클을 올리기 위함이었다. 하나 지금은 단지 고갈된 마나를 채우려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몹시 지루했던 것이다.
“으이그, 지겨워! 언제 이걸 벗어나지? 뭔가 특단의 대책을 세우던지 해야지. 마나가 고갈될 때마다 이 짓을 할 수도 없고. 제기랄!”
나직이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온 현수는 결계를 해제했다.
오전 10시 반이면 이미 출근을 마친 시간일 것이다.
그런데 황거 인근은 난리가 났다. 언론사의 차들이 모두 출동한 듯 길이 꽉 막혀 있다.
황거 쪽을 보니 생존자 확인 작업이 진행되는 듯하다. 하긴 하늘처럼 떠받들던 천황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난리법석을 떠는 모양이다.
“후후후……!”
조금 전에 투덜거렸다는 생각은 벌써 저만치 멀어졌다. 쪽발이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통쾌한 기분이 든 것이다.
“약간의 처벌은 되었군. 이제 슬슬 귀국해 볼까?”
2장 이런 겁없는 놈 같으니!
건물 아래로 내려온 현수는 천천히 걸어가며 음식점을 찾았다. 혹자는 일본에 왔으니 일본 음식을 먹어볼 생각을 할 것이다. 하나 현수는 그럴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
한참을 걸은 결과 불고기 집이 보인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현수가 발을 들여놓자 종업원이 고개를 숙이며 맞아들인다. 스물대여섯 살쯤 된 아가씨이다. 현수는 일본어로 대답했다.
“식사되지요?”
“물론입니다, 손님!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불고기 백반 일인분 주세요.”
“네에. 불고기 백반 일인분 주문 받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종업원 아가씨가 주방으로 간 사이 식당 내부를 둘러보았다. 일본에 있는 가게라 그런지 오밀조밀한 느낌이다.
텔레비전이 켜져 있기에 리모컨으로 음량을 키워보았다. 손님이라곤 자신밖에 없으니 거리낄 바가 없다.
화면엔 심각한 표정을 한 방송국 앵커가 보인다.
“다시 한 번 정리해서 말씀드립니다. 천황 폐하께서는 이번 지진이 발생되기 하루 전에 요양차 북해도 별궁으로 가셨습니다. 그러니 폐하의 안위는 심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에이, 하필이면……!’
현수는 나직이 혀를 찼다. 직접적인 살인 의도까지는 없었지만 무너지는 건물에 깔리기를 바라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당하지 않았다니 아쉬운 마음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앵커는 제 할 말을 이어간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진이 유례없는 것으로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유형이라 합니다. 지금 제 곁에는 재난방재센터의 센터장이신 오구치 야스히로 상이 와 있습니다. 동경대 지구물리학과 원로교수이자 지진에 관한 한 권위자입니다. 오구치 상! 이번 지진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