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야스히로는 60대 후반으로 뿔테 안경을 썼고, 약간 돌출된 입, 그리고 왜소한 체구이다. 전형적인 일본인 모습이다.
“에, 야스쿠니 신사와 고쿄에 국한된 이번 지진은 학계에 보고된 적이 없는 국지성 천발지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진동이 기록된 지진계에 따르면 지하 30m에서 발생된 L파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지진은 유례없는 것으로…….”
야스히로는 여러 전문적인 도표를 꺼내놓고 설명을 이어갔다. 먼저 이렇듯 지표면 가까이에서 발생된 지진은 지금껏 없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야스쿠니와 고쿄에서 일어난 지진의 다른 점은 고쿄의 지진이 훨씬 더 강력했다는 것, 그리고 진앙이 여러 곳으로 분산되었다는 것임을 설명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는 했지만 마법일 것이라곤 전혀 의심치 않는 표정이다. 하긴 마법이 없는 세상이니 상상조차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쨌거나 그래놓고는 자신이 알고 있는 한도 내에 어떻게든 꿰어 맞추려 애를 썼다.
“크크, 국지성 천발지진? 이름 한번 잘 붙이네. 그리고 학회에 보고된 적이 없다고? 마치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하네.”
현수가 피식 실소를 머금었을 때 종업원이 다가온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손님!”
“아, 네에.”
현수가 수저를 들자 종업원이 빙긋 웃음 짓는다. 그리곤 한국말로 바꿔 이야기 했다.
“일본말은 아주 능숙한데 한국분이신가 봐요.”
종업원의 한국어는 매우 유창했다. 재일한국인인 듯하다.
“어……! 어떻게 알았어요?”
“수저를 한 손에 드셨잖아요. 그건 한국인만 가능하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네, 출장 온 거예요? 아님 관광 오신 거예요?”
“뭐, 두루두루……. 출장 겸 관광인 셈입니다.”
“그렇군요. 근데 어쩌죠? 야스쿠니 신사와 고쿄에 지진이 발생하여 교통도 그렇고, 여러 가지가 불편하시겠어요.”
“아, 네에. 뭐어, 괜찮습니다. 한국에서도 교통 체증이야 매양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현수가 수저로 밥을 먹기 시작했건만 여종업원은 곁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듯하다.
‘뭐야? 내게 반한 거야?’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식사에 열중했다.
하나 여종원원은 그게 아니다. 한국 드라마를 보다보면 모르는 어휘가 튀어나오곤 했기에 그걸 묻고자 함이다.
잠시 머뭇거리던 종업원은 절묘한 순간에 물음을 던진다.
“저어, 손님. 식사 중에 죄송한데 먹튀가 무슨 뜻인가요?”
“먹튀……? 아, 그건 어떤 사람이 높은 계약금이나 연봉을 받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보일 때 그 사람을 일컫는 말로 먹고 튀었다는 뜻이에요.”
“아, 그랬군요. 그럼, 지름신이란 말은 무슨 뜻이죠?”
“그건 신제품이나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면 일단 사도록 부추기는 가상의 신을 일컫는 말이에요.”
“고맙습니다. 하나만 더요. 지못미는 무슨 뜻이지요?”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의 첫 글자예요.”
“아, 그게 그거였군요.”
그간 궁금했던 게 해결되었다는 듯 환한 표정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식사하시는데……. 대신 제가 서비스로 반찬을 더 드릴게요.”
“하하, 그래주면 저야 고맙죠.”
생각보다 미역 줄거리 무침과 김치가 맛이 있었다. 튀각도 아주 맛깔나게 튀겨져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맛을 냈다.
하지만 일본은 반찬을 더 달라고 할 때마다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말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돈 내고 반찬을 더 달라고 하는 것이 억울한 기분이 들어서이다.
추가 반찬을 가져온 종업원이 그릇들을 놓는다.
“야스쿠니 신사랑 고쿄가 무너져서 속이 시원해요.”
식당에 둘만 있기에 한 말일 것이다. 만일 일본인들이 이 말을 들었다면 틀림없이 개판을 쳤을 것이다.
“네에. 저도 뉴스 봤습니다. 지진이 아주 좋은 데만 골라서 일어났더군요.”
“네, 그러고 보면 진짜 신은 있나 봐요. 천벌을 받은 거죠.”
여종업원은 아주 신난다는 표정이다.
“일본에 살면서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네, 그동안 우리 재일한국인들이 당한 차별을 생각해 보면 아주 이가 갈리거든요.”
“으음, 그랬군요.”
현수는 입안 가득히 밥을 넣고도 말을 이었다.
“근데 어떤 차별을 받나요?”
문득 궁금해서 물어본 말이다.
“어휴! 그걸 말로 하려면 하루 종일 해도 다 못해요. 정말 치사한 놈들이에요, 일본놈들은……!”
종업원을 말끝을 흐리며 부르르 떨었다. 치가 떨린다는 표정이다. 그러다 간신히 말을 잇는다.
“내라는 세금 다 내도 우리는 여전히 외국인이에요. 갈 데만 있다면 떠나고 싶어요. 근데…….”
종업원이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린다. 현수는 의아했지만 아무런 말 없이 있었다.
“흐흑! 죄송해요. 식사하시는데…….”
종업원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카운터로 갔다.
그리곤 탁자에 엎어졌다. 어깨가 들썩이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오열하는 듯하다.
현수는 천천히 식사를 했다. 남의 일이라 내버려 둔 게 아니라 지금은 가만히 있는 게 돕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식사를 마쳤지만 현수는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카운터에 머리를 박은 채 오열하는 종업원 아가씨 때문이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현수도 사람인 이상 궁금했던 것이다.
“흐흑! 아빠가, 아빠가 병원에 입원해 계세요. 그래서 일본을 떠날 수가 없어요.”
“……!”
“매일 보호비 뜯으러 오는 야쿠자가 있어요. 그놈이 저한테 집적거려서 여길 뜨려고 했어요. 근데…….”
여종업원의 말이 이어졌다.
재일교포 3세인 여종업원의 이름은 김나윤이다.
돌아가신 증조할아버지는 항일독립운동을 하다 투옥되어 돌아가셨다. 그리고 할아버진 강제 징용에 끌려왔던 분이다.
그렇기에 일본식 이름은 없다. 한국인임을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귀화하지 않았다.
사방이 일본인이지만 당당한 한국인으로 살고자 했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차별을 당했고, 억울한 일도 많이 겪었다.
그 모든 것을 견뎌내면서도 나윤은 교사가 되고자 하는 뜻을 꺾지 않았다. 하여 열심히 공부하여 사범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일본 사회는 한국인 교사를 반기지 않는다.
공립 고등학교에 배치되어 어떻게든 적응하려 했지만 일본인 교사들의 조직적인 왕따를 당하게 되었다.
학생들로부터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척받았다.
결국 일 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리곤 가업인 식당의 종업원이 되었다. 프랑스어를 가르치던 교사가 주문받고 식탁 닦는 여종업원이 된 것이다.
모친은 어려서 교통사고로 사망했기에 부친과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보호비를 뜯으러 오던 야쿠자가 나윤에게 집적대기 시작했다.
한때이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던 실력있는 교사였다. 그러니 어찌 야쿠자 따위와 시시덕거릴 수 있겠는가!
하여 사귈 마음이 없다면서 다시는 말도 꺼내지 말라는 정중한 거절의사를 수차례나 밝혔다.
그럼에도 놈은 점점 더 강하게 추근댔다. 나윤의 의사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놈은 거의 매일 들렀다. 그리곤 어깨를 두드리는 척하면서 가슴을 만지는 것이 예사가 되어버렸다.
견디다 못해 가게를 팔기로 했다.
교포들이 많이 사는 오사카 쪽으로 이사할 계획이었다.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한국으로 귀국할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가게가 팔리지 않았다. 이 가게는 유동인구가 많은 자리에 있어서 장사가 제법 잘 되는 곳이다.
하여 가게 터를 팔라는 요청이 제법 많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보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웬일인가 싶어 알아보니 그놈이 수작을 부려놨다.
가게를 팔지 못하면 나윤이 동경을 떠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듯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윤의 부친이 생일을 맞이했다. 하여 친지들을 초청하여 밤 늦도록 술을 마셨다.
그날, 늦은 밤이건만 그놈이 또 왔다. 얼굴이 뻘건 게 술을 마신 듯하다.
나윤의 부친은 마침 잘 만났다는 듯 왜 남의 가게를 팔지 못하도록 했느냐면서 화를 냈다.
처음엔 웃는 낯이었다. 속내는 어떤지 모르지만 장인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하나 계속된 추궁에 그놈은 결국 본성을 드러냈다.
항의하는 나윤의 부친을 주먹으로 때리고, 강하게 밀친 것이다. 어찌 힘없는 노인이 0.1톤이 넘을 거구의 힘을 당해내겠는가!
하여 뒤로 밀려 쓰러지면서 탁자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다. 그리고 바닥으로 쓰러지면서 또 한 번 머리에 충격을 주었다.
그 결과, 역전회 회주 오대준과 비슷한 상황이 되었다.
다시 말해 뇌사와 유사한 상태가 된 것이다.
이제 동경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상황이다. 생명 유지장치를 떼어내면 즉시 숨을 거두기 때문이다.
폭력을 행사한 야쿠자는 그날 이후 행방을 감췄다.
경시청에 신고했지만 가해자가 일본인이고 피해자가 한국인인 이런 경우의 수사는 늘 그렇듯 흐지부지되고 있다.
결국 병원비는 본인 부담이 되었다.
그간 모아놓았던 돈으로 감당해 내고 있지만 점점 잔고가 줄어들기에 장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천성이 밝은 아가씨이기에 그늘없는 얼굴로 장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현수와의 대화에서 문득 억울한 심정이 북받쳐 눈물이 났다. 그런데 울다보니 그 감정이 점점 더 심해져 오열했던 것이다.
말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울먹이던 나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현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생판 처음 보는 완전한 남이지만 왠지 그냥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든 때문이다.
현수는 일본에 대해 결코 좋은 감정이 없다.
그런데 그 속에서 핍박과 차별을 받으며 살아온 아가씨의 처지가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기분이 들었다.
자세히 물어보니 피해를 입힌 녀석은 야마구치구미 다음으로 큰 세력을 지닌 스미요시카이의 조직원이다.
스미요시카이는 경시청 추산 12,600여 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거대 야쿠자 조직이다.
이중 동경의 동부를 관할하는 조직의 휘하인 스즈끼조의 말단 조직원이 사고를 친 것이다.
“그놈이 입힌 피해는 뭡니까?”
“그날 집기 일부를 부쉈고, 손님들을 위협해서…….”
나윤은 그날의 악몽이 떠오르는 듯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껏 들어간 병원비와 가게에서 입은 피해액을 합치면 어느 정도 됩니까?”
“네? 그걸 왜……?”
왜 이런 걸 묻느냐는 표정이다.
“아, 그냥 궁금해서요.”
“글쎄요? 한 번도 계산해 보지 않아서…….”
나윤의 입을 빌어 파악한 야쿠자는 신장 173㎝에 몸무게 100㎏쯤 되는 야비하게 생긴 놈이다.
“고맙습니다. 제 얘기 다 들어주셔서……. 다음에 또 오세요.”
“하하, 네에.”
현수가 나윤의 가게를 나선 것은 점심 무렵이다. 많은 사람이 오갔기에 그중 하나를 잡고 길을 물었다.
“실례합니다. 이와세 종합병원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아, 그 병원이라면 이쪽으로 조금 가다가 왼쪽 골목으로 접어들면 보일 겁니다.”
“네에, 감사합니다.”
나윤의 말대로 병원은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을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상당히 낡아 보인다.
한국으로 치면 동네에 있는 아주 오래된 후진 병원이다.
병원에 도착해서는 능숙한 일본어로 나윤의 부친 김상용 씨가 머무는 병상을 찾았다.
나윤의 말대로 뇌사 비슷한 상태임에도 중환자실이 아닌 일반 병실에 방치되어 있었다.
각종 생명유지 장치가 부착되어 있는데 뇌파기를 보니 완전한 정지 상태는 아닌 듯 간헐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환자의 경우엔 두어 시간에 한 번씩 몸을 뒤집어주어야 한다.
안 그러면 욕창이라는 것이 생긴다.
그럼에도 간병인이 보이지 않는다. 그럴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곪는 냄새는 나지 않는다. 장사하는 틈틈이 바쁜 걸음으로 이곳까지 와서 몸을 뒤집어주는 모양이다.
후진 병원이라 그런지 6인실이지만 환자는 셋뿐이다. 모두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인지 가족도 간병인도 보이지 않았다.
“마나여, 이들을 잠들게 하라. 슬립!”
깨어 있던 환자 둘이 잠든 것을 확인한 현수는 김상용 씨 곁으로 다가섰다.
“흐음, 이제 시작해 볼까? 마나 디텍션!”
병실로 들어서면서 입구에 알람 마법을 구현시켜 둔 상태인지라 내놓고 마법을 쓴 것이다.
예상대로 뇌에서의 마나 움직임이 거의 없다. 살펴보니 마나의 통로가 될 부분의 두개골이 함몰된 듯하다.
“흐음, 왜 뇌수술을 안 했지? 수술하기 어려운 부분인가?”
고개를 갸웃거린 현수는 환자의 상태를 살폈다.
한눈에 보기에도 온갖 고생을 다한 얼굴이다.
병상에 걸려 있는 표찰을 보니 올해 나이 53세이다. 그런데 백발이 많아 그런지 족히 일흔 살은 되어 보인다.
“하긴, 일본 땅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게 쉽지는 않았겠지. 마나여, 모든 상처를 치유시켜라. 컴플리트 힐!”
부드러운 황금빛이 환자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얼마 후 뇌파기에서 반응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