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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05화 (105/1,307)

# 105

잠시 후, 들이닥친 경찰들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야쿠자들간의 세력 다툼인 듯 하기 때문이다.

일으켜 세우려는데 어느 하나도 제 발로 땅을 딛고 서지 못한다. 하여 다리 근육이 잘렸나 싶어 바지를 걷어올렸다.

그런데 아무런 이상도 없다.

왜 이러는지 물었지만 만족할 만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자신들이 누구에게, 어떻게 당했는지 전혀 기억하고 있기 못하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마이니치 신문에 조그만 기사가 떴다.

물론 스미요시카이의 조직원들에 관한 내용이다.

누군가의 린치에 의해 스물네 명이 하반신 불수가 되었는데 의사들이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나와 있다.

이에 대해 스미요시카이 조직은 야마구치구미의 소행일 것이라 단정하고는 대대적인 보복을 준비 중이라는 내용이다.

“네에? 뭐라고요? 병원비를 안 내도 된다니요?”

나윤이 놀라는 표정을 짓자 수납처 여직원이 환히 웃는다.

“어제 오빠라는 분이 오셔서 병원비를 모두 계산했는데요? 그리고 이거…….”

“네에……? 오빠요?”

“네, 아주 잘 생기셨던데, 나중에 나 소개해 주면 안 돼요?”

“잘 생겨요?”

나윤은 의아하다는 표정의 연속이었다.

“네. 키도 훤칠하고 아주 미남이었어요. 아……!”

수납처 여직원은 어제 오후 300만 엔 가까운 병원비를 일시불로 내고 간 사내의 모습을 떠올렸다.

키도 크고, 몸매도 일품이었다. 게다가 얼굴은 한류스타 장근석을 닮았다. 그렇기에 뿅간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수가 시전한 이미지 체인지 마법 때문이다.

수납처 여직원이 본 대로 현수는 장근석의 얼굴로 나타나 병원비를 내고 갔던 것이다.

“근데 이건 뭐죠?”

“아! 그건 오빠가 김나윤 씨 오면 드리라고 맡겨놓으신 거예요. 그걸로 아버님 잘 보살펴 드리라고…….”

“……?”

오빠가 없는 나윤이기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두툼한 봉투를 열었다. 뭐가 들었나 싶었던 것이다.

“어머! 이건……?”

수납처 여직원이 아는 척하며 입을 연다.

“제가 돈을 많이 만져봐서 아는데 그 정도면 500만 엔쯤 될 거예요. 좋겠어요. 돈 많은 오빠가 있어서.”

“이거 분명히 날 주라고 했어요?”

“네, 김나윤 씨 맞죠? 의식불명이던 김상용 환자의 딸.”

“제가 김나윤이에요. 김상용 씨는 우리 아버지구요.”

“그럼 맞네요. 김상용 환자의 딸 김나윤 씨에게 전해주라고 신신당부하고 갔거든요. 이거 보세요.”

수납 여직원이 보여준 메모지엔 ‘김상용 환자의 딸 김나윤에게 봉투 전달’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메모 날짜는 어제 오후로 기록되어 있다.

“……!”

나윤은 부친을 제외하곤 일가친척 하나 없다.

그렇기에 도대체 누가 오빠라 했을까를 생각하느라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공부하느라 사귀었던 남자도 없기에 나윤은 고개만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납처 여직원이 덧니를 드러내며 웃는다.

“나윤 씨, 나중에 꼭 소개해 주세요. 꼭이요.”

“네……? 아, 네에.”

건성으로 대답한 나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누군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 탑승한 현수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만족감 때문이다.

일본이 차지했다면 세계평화에 문제가 생겼을 막대한 양의 금괴와 금화를 챙겼다.

그리고 핍박과 차별 속에서 살아온 나윤에게 도움을 주었다.

또한, 고쿄(皇居)라 불리는 서거(鼠居:쥐새끼 서식지)를 무너뜨려 완전한 폐허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쪽발이들이 신성시하던 야스쿠니 신사를 무너뜨리고 불태운 것에서 느껴진 통쾌함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받아든 신문을 펼친 현수는 굵은 글씨로 쓰여진 기사들을 보며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 좋은 소식이기에 얼굴엔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일본 전역은 현재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보다도 더한 난리법석 중이다.

천황이라 부르는 왜왕이 죽음을 모면한 것이 유일한 위안이라면 위안이라고 떠들고 있다.

비교적 온건하고 제대로 된 사고를 지닌 인사들은 일본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하늘의 벌이라는 표현에 고개를 끄덕인다. 반면 극우인사들은 열폭하고 있다.

이웃나라들의 냉소적인 언론 보도 때문이다.

‘후후, 히데요시의 금괴까지 몽땅 털렸다는 걸 알면 어떤 얼굴들을 할까?’

생각만 해도 흐뭇했기에 현수의 얼굴엔 웃음기가 가득했다.

이때 스튜어디스 하나가 웃음 띤 얼굴로 상냥하게 묻는다.

“손님,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네……? 아, 네에. 이 기사가 저를 웃게 만드네요.”

현수가 가리킨 것은 무너진 야스쿠니 신사를 찍은 사진이다.

“어머, 저도 그 기사 보고 기분 되게 좋았거든요.”

허리를 숙이곤 속삭이듯 말했다. 모르긴 몰라도 일본인 손님이 인근 좌석에 앉아 있는 모양이다.

현수 역시 나직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고쿄도 무너졌다지요? 그래서 기분이 좋아요.”

“호호, 네에. 근데 커피 드려요? 아님 주스 드려요?”

이름표를 보니 이수정이라 쓰여 있다. 분명 처음 보는 이름이다. 그런데 왠지 낯이 익다는 느낌이다.

하여 농담하듯 말했다.

“수정 씨 주고 싶은 걸로 주세요.”

“호호, 그래요? 그럼 주스 드릴게요. 그게 몸에 좋거든요.”

“네, 감사합니다.”

“에구, 농담이었구요. 커피는 내려서 같이 드시는 거 어때요? 저도 착륙하면 곧 바로 퇴근하는데…….”

“네에……? 지금 저한테 작업 거시는 겁니까?”

현수의 웃음 띤 얼굴에 이수정이 환한 웃음을 짓는다.

“맞아요, 작업 거는 거……. 왠지 그쪽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그러니 조금 기다려 주실 수 있죠?”

이수정이 현수에게 남다른 호감을 느끼게 된 것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디 체인지를 하면서 외모가 반듯하고 균형 잡혀 잘 생겨진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키도 크고, 몸매도 날렵하다.

하나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여자들에겐 본능적으로 좋은 남자를 차지하려는 욕구가 있다.

아르센 대륙에서의 현수는 7써클 마스터인 대마법사이다. 또한 코리아 제국의 백작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천지건설의 과장이며, 이실리프 무역상사의 대표이사이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선 내무장관의 각별한 비호를 받는 주요인물이며, 천지약품의 공동 대표이사이다.

콩고민주공화국 군인들에겐 Un homme sans peur 즉, ‘두려움이 없는 사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아우라가 은연중에 뿜어지고 있다.

기감 예민한 이수정의 본능이 이것을 느끼게 되었기에 먼저 접근한 것이다.

“그럽시다, 뭐!”

“네에, 착륙 후 로비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곧 갈게요.”

“네에. 그러지요.”

괜스레 기분이 좋았던 현수이기에 스튜어디스가 장난친다 생각하곤 장단을 맞춰준 것이다.

잠시 후, 공항에 도착한 현수는 길게 늘어선 행렬의 맨 뒤에 서게 되었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에 다른 비행기들이 도착한 모양이다.

“여기요. 여기에요.”

“……!”

누군가 손을 흔든다 싶어 고개를 돌렸던 현수는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이수정을 볼 수 있었다.

‘뭐야? 농담 아니었어?’

“헉헉! 좀 뛰었더니 숨이 차네요.”

이수정이 가슴에 손을 얹고 헐떡이는 숨을 골랐다.

그러고 보니 대단한 미인이다. 적어도 몇 번쯤은 길거리 캐스팅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정갈하게 빗어넘긴 머리카락, 단정한 제복, 그리고 날씬한 몸매와 늘씬하게 뻗은 각선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뭐가 그렇게 급해서 뛰셨어요?”

웃음 띤 현수의 물음에 이수정이 눈빛을 반짝인다.

“그쪽이 그냥 갈까 봐요. 저 진짜 그쪽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냥 가면 어떻게 해요? 그래서……! 헉헉!”

“네에……?”

“저 진짜 이런 마음 드는 거 처음이었거든요. 아까 비행기에 탑승할 때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어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쪽, 아니 김현수 씨를 처음 보는 순간 반했단 말이에요.”

“……!”

현수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어볼 것이라곤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탓이다.

“저 진짜 이런 맘 든 거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근데 그냥 가버리면 어떻게 해요? 그래서 윗사람에게 퇴근한다는 말도 안 하고 막 뛰어 왔어요.”

보아하니 진심인 듯하다.

“고, 고맙군요. 그렇게 봐줘서.”

“네에, 그나저나 지금 곧장 나가실 건가요?”

“그건 왜요?”

“저, 아직 밥을 못 먹어서……. 위로 올라가면 음식 맛있게 하는 집 있어요. 제가 살게요. 같이 가서 먹어요. 네?”

수정이 간절히 바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미녀에 약한 현수가 어찌 매몰찬 거절을 하겠는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뭐, 그러죠.”

“와아! 호호, 좋아요. 얼른 가요. 배가 많이 고팠거든요.”

현수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출발 전에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

“전 비행기 타기 전부터 내릴 때까지 음식을 먹을 수 없어요. 음료수도 그렇구요. 먹으면 다 토하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아침부터 굶은 상태에요.”

“흐음, 그거 이상한 증상이군요.”

“네, 저도 그래서 미치겠어요.”

둘은 위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수정은 자신의 말을 이었다.

“그래서 장거리 노선은 못 타요. 하여 늘 국내선만 탔었는데 오늘은 같이 일하는 언니가 갑자기 아프다고 해서 제가 땜방 나온 거거든요.”

“그렇군요.”

대화를 하던 현수는 문득 권지현을 떠올렸다.

괴한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할 뻔한 사건을 겪은 직후 자궁의 마나가 잔뜩 움츠러들어 있던 것이 생각난 것이다.

그때 검사를 해보면 멀쩡하다는 판정을 받지만 불임하는 여자들에 대한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그걸 확인해 보자고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오늘 이수정을 만나 또 하나의 특이한 케이스를 접하게 되었다. 갑작스레 인체에 대한 궁금증이 솟았다.

하여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비행 전부터 착륙할 때까지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것은 소화기관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게 아니라면 심리에 문제가 있다.

이를 확인해 보려면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 있어야 한다. 하나 처음 만난 아가씨의 손을 어찌 잡겠는가!

아무리 호감을 갖고 있는 상태라곤 해도 그렇게 되면 자칫 치한으로 몰릴 수 있다. 하여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러는 사이에 둘은 제주본가 부대찌개라는 가게 앞에 당도했다.

“호호, 저 이 집 되게 좋아해요. 가격 저렴하고 맛도 있거든요. 여기 부대찌개 잘하는데 그거 시킬까요?”

“뭐, 그러세요.”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기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여줬다.

“아줌마, 여기 부대찌개 2인분이요. 라면사리 하나 추가해 주시구요, 수제비도 조금 더 넣어주실 수 있죠?”

환한 표정으로 주문하는 수정을 본 현수는 참 밝고 명랑한 아가씨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미모 또한 상당하다. 강연희 대리나 권지현 사무관 못지않은 미인이다.

“근데 김현수 씨는 무슨 일을 하는 분이세요?”

컵에 물을 따라주며 묻는 말이다.

“그냥 회사 다녀요. 천지건설이라고…….”

“아, 저 그 회사 알아요.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재벌의 계열사잖아요.”

“네, 맞습니다. 그 회사.”

“어머, 그러셨구나. 좋은 대학 나오셨나 봐요.”

“아뇨, 그건 아니고, 그냥 운이 좋아 입사했습니다.”

“치이! 겸손은……. 아시다시피 전 A항공사 스튜어디스에요. 입사한 지는 2년 되었구요.”

“네에.”

별다른 대꾸를 할 수 없는 말이었기에 가볍게 고개만 끄덕여줬다. 그럼에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환한 미소를 짓는다.

“전화 있으시죠?”

“전화요?”

“네, 급히 써야 할 데가 있거든요. 잠깐 빌려주실 수 있죠?”

“뭐, 그러시죠.”

현수가 꺼져 있던 핸드폰을 건네자 수정이 재빠른 손길로 전원을 넣고는 뭔가를 조작한다.

“잘 썼어요. 자요.”

“어라! 통화한다면서요? 아, 문자 보내신 거예요?”

“호호, 아니에요. 제 전화로 전화를 걸었죠. 방금 김현수 씨 전화번호를 딴 거거든요.”

말을 하면서 자신의 전화를 꺼내 얼른 뭔가를 조작한다. 그리곤 입력된 것을 보여주었다.

전화번호부에 ‘김현수 씨’란 글씨와 전화번호가 보인다. 수정의 말대로 자신의 전화번호를 입력한 것이다.

현수는 요즘 신세대 여성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수정이 입을 연다.

“가르쳐 달라고 하면 망설이실 거잖아요. 그러다 거절당하면 전 어떻게 해요? 자존심 상하잖아요. 그쵸? 그래서 그랬어요. 이해해 주실 거죠?”

“하하, 네에. 그럼요. 근데 그냥 알려달라고 했어도 알려 드릴 수 있었는데…….”

“어머, 정말요? 호호, 그랬구나. 고마워요. 절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수정이 환한 웃음을 짓는 사이에 아주머니가 와서 음식 세팅을 끝내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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