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07화 (107/1,307)

# 107

유국상의 애첩은 침실에 있고, 두 여자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골프채를 들고 잠시 스윙폼을 잡던 유진기가 2층 욕실로 갔다.

그 즉시 인디케이터 케이스를 열고는 회로를 살펴보았다. 아주 간단한 구조였기에 드라이버로 납땜 몇 군데를 떼어냈다.

센서로부터 오는 신호에 따라 전구의 불이 바뀌게 되어 있는데 그러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후후, 이제 슬슬 금고로 가볼까?”

2층으로 올라간 현수는 조경빈의 머리카락이 수집된 앨범이 있던 금고를 열었다.

“……!”

금고 속엔 아무것도 없었다. 서둘러 곁의 금고들도 열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빌어먹을! 지난 번 그 일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겼군. 제기랄! 대여금고 같은 데로 옮겼으면 열어보기 힘든데…….”

나직이 투덜거린 현수는 모든 것을 원상으로 회복시킨 후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머리의 물기를 털며 나오던 유진기의 핸드폰이 벨소리를 낸다.

“그래, 나다! 성공했다고? 다행이군. 좋아, 싱싱하지? 좋아, 언제 도착이야? 알았어.”

현수는 엿듣기 마법을 구현시키려다 말았다. 자칫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마법이 깨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 알았어. 그리로 가지. 그래! 계집애 몸엔 손대지 마. 그래, 그쪽에도 연락해 줘. 수고했다. 조금 있다 보자.”

‘흐음, 이 집이 아닌 모양이군.’

잠시 후 현수는 유진기가 운전하는 차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와이드 센스 마법을 구현시켰기에 둘 사이에 여러 대의 차가 끼어 있었지만 따라가는 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두 시간이 넘도록 운전해서 당도한 곳은 강화도에 소재한 펜션이다. 이것은 유진기가 조직원들을 교육시키거나 단합대회를 할 때 사용하기 위해 매입해 둔 것이다.

이를 위장하기 위해 평상시엔 일반인 손님도 받는다.

쿵! 쿵! 쿠쿵―!

두 대의 차에서 유진기와 그의 졸개 네 명이 내렸다.

“너희들은 여기 있어.”

“네, 형님!”

“어허……! 내가 그 형님 소리 하지 말라고 했지?”

“죄송합니다, 형님! 헉……!”

“너, 나중에 보자.”

“네, 형님!”

“끄응……!”

유진기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안으로 들어서자 형님 소리를 연발했던 놈이 전전긍긍한다.

유진기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전무님이라 부르라 했다. 주식회사 세정의 전무이사로 등재된 날이었다.

그날 이후 형님 소리를 하는 놈은 빠따를 맞았다.

그런데 그 강도가 장난이 아니다. 다시는 형님 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던 것이다.

하여 다들 형님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이곳에 동행한 놈 가운데 하나는 그간 학교에 있었던 놈이다.

물론 여기서의 학교는 교도소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놈은 세정파 행동대장 가운데 하나이다.

3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엊그제 복귀했다.

그날 동료 조폭들로부터 단단히 주의를 받았다. 절대 두목이나 형님이라는 소리를 쓰지 말라는 것이 그것이다.

유국상은 회장님, 유진기는 전무님이라 불러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어찌 제 버릇 남주겠는가!

당부를 잊고 형님 소리를 몇 번이나 했다. 이제 맞을 일만 남았기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들의 뒤를 따르던 현수는 펜션을 한참 지난 곳까지 이동했다. 그리곤 인적 없을 곳에 차를 세우곤 슬슬 걸어왔다.

도착하니 세 대의 차가 펜션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쿵! 쿠쿵! 쿠쿵! 쿵!

열 놈이 내린다. 그중 둘은 길쭉한 자루의 양쪽 끝을 잡고 있었다. 납치한 여인이 그 안에 담겨 있는 것 같다.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플라이!”

현수가 당도한 곳은 펜션 2층 거실의 창밖이다.

안을 보니 유진기와 사내 하나가 있을 뿐이다.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데 올백으로 머리를 넘긴 자이다.

특징이 있다면 뺨에 칼자국 비슷한 흉터가 있고, 스모 선수 저리가라 할 정도로 비대한 몸집이라는 것이다.

부하들은 모두 아래층에 있다.

확인해 보니 현재 이 펜션에 있는 사내의 수가 스물두 명이다.

이중 열일곱이 유진기와 관련있는 자이고, 나머지 다섯은 일본인이다.

현수는 엿듣기 마법을 구현시켰다.

“이브즈드랍!”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일본어로 대화하고 있다.

“하하하! 유 전무님, 이렇듯 배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무슨 말씀을……! 히로야마 상이 늘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잊지 않아 그중 일부를 보답하는 겁니다.”

“은혜라니요? 은혜는 오히려 우리 야마구치구미가 입었지요. 유 전무님은 좋은 고객이잖습니까?”

“하하,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요?”

“그럼요. 유 전무님과 거래를 하게 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네에,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갈 터이니 즐거운 시간 가지십시오.”

“감사합니다. 일본에 오시면 오늘의 접대 잊지 않겠습니다.”

“하하, 네에. 기대하지요.”

유진기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히로야마 역시 일어선다. 목욕을 하고 나왔는지 목욕 가운을 걸치고 있다.

현수는 잠시 망설였다. 유진기의 뒤를 쫓을 것인지 이곳에 남을 것인지를 가늠한 것이다.

‘놈은 집을 아니 나중에 어떻게 해도 되겠지. 그나저나 대체 누굴 납치해 온 거야? 여자인 것 같은데 저 쪽발이더러 어떻게 하라고 잡아온 건가? 개자식들!’

현수는 나직이 이를 갈았다. 멀쩡한 사람 잡아다 쪽발이에게 능욕당하게 하는 놈들을 어찌 용서할 수 있겠는가!

‘니들은 이 일만 끝나면 모두 뒈졌어.’

현수의 전신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실제로 유진기와 그 부하들을 죽일 생각을 한 것이다.

이를 느꼈는지 히로야마가 현수 쪽을 바라본다. 생각보다 기감이 예민한 놈인 듯하다. 하나 아무것도 눈에 뜨이지 않자 이내 시선을 돌린다.

그러는 사이에 유진기 일행이 내려갔다. 잠시 후, 야쿠자 넷이 자루를 들고 올라와 침대 위에 올려놓는다.

잠시 이를 지켜보던 히로야마가 입을 연다.

“푸는 건 내가 풀 테니 너희는 아래층에서 술이나 마셔.”

“네, 보스!”

“정 무엇하면 오늘 밤엔 나가서 술을 마시고 와도 좋다.”

“아닙니다, 보스! 아래층에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밤을 지내시려면 필요한 것도 있을 수 있으니…….”

“알았다.”

“필요한 것 있으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그리고 좋은 밤 보내십시오. 보스!”

“크흐흐! 알았다.”

야쿠자 넷이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보스라 불렸던 히로야마가 자루의 입구를 묶은 끈을 풀었다.

“으응! 으으윽! 으으응! 으으으윽!”

누군가의 손이 닿았다는 걸 알았는지 자루가 들썩이고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손발을 묶고, 입은 테이프 같은 걸로 막아놓은 듯한 소리이다.

끈이 상당히 단단히 묶여 있는지 히로야마는 한참을 끙끙거렸다. 그럼에도 잘 풀리지 않자 짜증나는 듯 이맛살을 좁혔다.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선 놈은 침대 옆에 세워두었던 천으로 둘둘 감겨 있는 것을 풀었다.

잠시 후, 잘 벼려져 날이 시퍼렇게 선 일본도 한 자루가 드러난다. 불법무기는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처벌받는 한국에 어찌 이런 무기를 반입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스스슥! 툭 !

나일론 끈이 힘없이 베어지자 히로야마의 입가에 괴소가 물린다. 만족스럽다는 뜻일 것이다.

그 사이에 창밖에 있던 현수가 안으로 들어섰다. 물론 투명 은신 마법이 구현되는 중이다.

히로야마 역시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루 속에 담겨 있던 여인을 꺼내놓은 것이다.

예상대로 손목과 발목이 끈으로 묶여 있고, 눈은 안대로 가려져 있다. 입에는 청테이프가 붙어 있다.

“으으! 으으으!”

자루에서 벗어나자 버둥거리며 소리치는 듯했지만 미약한 움직임이다. 손목과 발목이 너무도 세게 묶인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묶인 부근에 시뻘건 피멍 자국이 보인다.

사내가 발목의 끈을 잘라내자 벌떡 일어난다. 하나 바로 멈추어야 했다. 일본도의 차가운 날이 뺨에 닿았기 때문이다.

“크흐흐! 역시 잘 빠졌군.”

사내는 여인의 몸을 한 바퀴 돌며 몸매를 감상했다.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걸치고 있다. 수영복 비슷한 것이다. 그렇기에 들어갈 곳은 확실히 들어가고, 나올 곳 역시 제대로 나왔다는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군살이 거의 없는 명품 몸매이다.

여인은 뺨에 닿은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듯 별다른 움직임 없이 가늘게 떨고만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히로야마가 일본도를 움직여 여인의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의 끈을 잘라냈다.

사각! 툭―!

“흐윽……!”

갑자기 어둠이 사라지자 여인이 눈을 뜬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는 표정에 이어 잔뜩 겁먹은 얼굴로 물러선다.

물론 눈앞에 서 있는 음흉한 표정을 한 사내와 날이 시퍼렇게 선 일본도 때문이다.

“크흐흐! 드디어 네가 내 손에 들어왔어. 크흐흐흐!”

사내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현수가 얼른 여자의 얼굴을 살폈다. 정말 예쁜 얼굴이다.

짙고 곧은 눈썹, 커다란 눈망울, 크지도 작지도 않은 오똑한 콧날, 야리야리한 붉은 입술, 그리고 굽실굽실한 검은머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어디선가 본 듯하다. 왠지 낯이 매우 익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어라! 저 여자는……? 어디서 봤지? 아……! 이수연이구나!’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얼굴이다.

현수의 생각처럼 납치되어 온 여인은 이수연이다.

아이돌 그룹 출신임에도 뛰어난 가창력과 댄스 실력을 인정받아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가수이다.

또한 뮤지컬은 물론이고 쇼 프로그램에서도 발군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철철 흘러넘치는 애교와 예사롭지 않은 순발력,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와 다재다능한 능력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여 자연스런 연기를 펼쳐 연기력도 인정받은 만능 엔터테이너이다.

복장을 보아하니 안무 연습을 하다 끌려온 듯싶다. 발목에 끼워져 있는 토시가 이런 짐작을 가능케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누군가와 닮았어. 누구지?’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수연이 자신이 아는 누군가와 닮았다는 느낌 때문이다.

‘흐음, 텔레비전에서 많이 봐서 그런가? 하긴 뭐, 그럴 수도 있겠군. 근데 진짜 이쁘기는 하네.’

워낙 인기가 높기에 어느 채널을 틀어도 이수연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음악 프로그램, 쇼 프로그램, 드라마, 영화, 뮤지컬을 망라하고 있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사내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나직이 중얼거린다.

“크흐흐! 고년 참 날로 먹어도 비리지 않겠군. 역시! 예상대로야. 크흐흐흐! 크하하하!”

마치 보물이라도 된다는 듯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이수연을 감상하던 사내가 기분 좋다는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꿈에 그리던 육체의 향연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내가 웃음 터뜨리는 순간 이수연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닫고 바들바들 떨다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극도의 공포 때문에 일순 다리 근육이 풀린 모양이다.

사각사각!

일본도가 이수연의 손목을 묶은 나일론 끈마저 베어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다. 잠시 후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찌이익!

입을 막고 있던 청테이프까지 떼어냈다.

“흐흑! 活かしてください.”

“オ―! 日本語もできるのか? 크흐흐흐.”

이수연이 울먹이는 음성으로 살려 달라고 했다. 이에 히로야마가 일본어도 할 줄 아느냐면서 좋아한다.

그리곤 일본어로 말을 이었다.

“한류스타 이수연! 넌 오늘 밤 내 여자가 된다. 기대해도 좋다. 지상 최고의 황홀함을 안겨주지. 크흐흐흐!”

“네에……?”

“나, 히로야마가 얼마나 대단한 남자인지 확실하게 느끼게 해주겠다는 말이다. 크하하하!”

히로야마가 앙천광소를 터뜨릴 때 현수가 나직이 소리쳤다.

“미친 놈! 지랄 옆차기 하네. 홀드 퍼슨! 보이스 익스토션!”

“으으윽……!”

히로야마는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도 없고,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마나여, 이 여인을 잠들게 하라. 슬립!”

현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수연의 고개가 툭 떨어진다. 그리고 구겨지듯 쓰러졌다. 현수는 이수연의 몸을 받아 침대에 눕혔다. 그리곤 히로야마의 앞으로 갔다.

“흐음, 일단 흉기는 압수하고…….”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현수가 나타나자 히로야마의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일본도가 현수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보아하니 야마구치구미 소속 야쿠자 같은데 넌 오늘 정말 사람 잘못 만났다.”

“으으! 으으으으!”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히로야마의 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일단 매부터 맞자. 근데 귀찮다. 오토 매직 김렛!”

현수가 직접 주먹질을 하지 않는 이유는 비곗살을 때려서 뭐하겠는가 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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