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눈만 깜박이던 히로야마는 갑자기 길이 10㎝쯤 되는 송곳 수십 개가 동시에 전신을 푹푹 쑤시는 듯한 격통을 느꼈다.
“으으으! 으으으으으!”
너무도 고통스러웠지만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현실에 경악한 듯 눈만 크게 뜨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법 송곳이 전신을 쑤셨고 이내 선혈이 낭자한 모습으로 변모했다.
잠깐이지만 최소한 1,000번은 찔린 듯한 모습이다.
현수는 그냥 죽어버리면 안 된다 생각했다. 유진기 일당이 어떤 일을 저지르는지 확실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직 캔슬!”
끔찍했던 고통이 사라지자 히로야마의 눈이 스르르 감긴다. 가히 혈인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온몸이 피투성이이다.
잠시 후, 다시 눈을 뜨자 팔짱 낀 현수가 냉랭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야마구치구미의 한국 지부장이 되도록 수없이 많은 혈전을 벌였다. 상대를 반병신으로 만들거나 죽인 경우도 많았지만 거꾸로 당한 적도 많았다.
물론 갓 야쿠자가 되었던 때의 일이다.
1986년, 히로야마는 야마구치구미 계열의 이즈(伊豆) 조직의 신입이었다. 그해 12월, 규슈 지역 토박이 조직인 도진카이(道仁會)를 상대로 처절한 전쟁을 벌였다. 그때 히로야마는 도진카이 조직원들에게 잡혀 집단 린치를 당했다.
이후 간부로 승진하면서 부하들에게 그때의 기억을 가끔 이야기해 줬다. 그러면서 말하길 지옥과 같은 사흘이라는 표현을 했다. 엄청나게 맞고, 고문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그 기록이 깨졌다. 불과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당한 고통이 그때의 열 배, 아니, 스무 배는 될 정도였다.
그러니 눈앞의 현수가 저승사자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로 느껴진다. 그렇기에 시선만 받았을 뿐이지만 가늘게 떨었다.
“두 번 묻지 않을 거다. 한국에 와서 무슨 일을 했는지 이야기해라. 들어봐서 거짓말이다 싶으면 조금 전의 그 고통이 장난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해줄 테니. 알겠나?”
“으으! 으으으으!”
“아, 신음 소리 내지 마라. 귀에 거슬리니. 그리고 말해도 된다. 할 수 있으니까. 그 전에 부하들 먼저 불러라.”
현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리를 친다.
“사또! 우치다! 다나까! 혼다!”
현수의 명령이 없었더라도 부하들을 불렀을 것이다. 어쩌면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스가 갑자기 큰 소리를 질러서 그러는지 졸개들이 쿵쾅거리며 계단으로 올라온다.
“흘드 퍼슨! 홀드 퍼슨! 홀드 퍼슨! 홀드 퍼슨!”
“헉! 보스, 이 자는 누구……?”
“으윽! 내 몸이 왜 이래?”
“야아아앗! 끄으응!”
“허억!”
야쿠자 네 놈이 마법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쓴다.
하나 어찌 한낱 인간이 7써클 마스터가 시전한 마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겠는가!
아무리 용을 써도 두 다리가 땅에 박힌 듯 꼼짝도 할 수 없자 놈들의 얼굴엔 공포가 어리고 있었다.
“모두 입 다물어. 누구든 먼저 입을 열면 아가리를 콱 찢어버린다. 알겠나?”
“……!”
현수의 살벌한 표정과 말투 때문인지 졸개들은 눈만 깜박였다. 대답했다가 말했다고 맞을까 싶은 모양이다.
“자아, 히로야마라 했지? 지금부터 한국에 와서 무슨 일을 얼마만큼 했는지 소상하게 말해봐. 참, 나 인내심 별로 없다. 맘에 안 들면 아까 그거 알지? 그 고통을 밤새 겪는 영광을 주겠다. 알았나?”
“네……? 네에.”
히로야마는 한가락 하는 부하들 모두 꼼짝도 못하는 것을 보았다. 눈앞의 사내는 분명 손가락 하나 까딱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그렇기에 방금 전에 먹었던 악독한 마음을 지웠다.
대항할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자아, 유진기와 무슨 일을 했는지 말을 하도록!”
“……!”
“호오, 네놈이 덜 고통스러웠나 보구나. 그래? 그렇다면 더 큰 고통을 맛보게…….”
“헉! 아, 아닙니다. 말합니다. 아니,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수의 표정이 굳어지자 히로야마의 얼굴에 공포가 어린다. 그리곤 이내 속사포처럼 행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야마구치구미는 세정파와 손을 잡고 한국의 밤을 장악하려는 노력을 했다.
그러기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는 것을 인정하였기에 가장 먼저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벌였다.
유흥업소 운영, 마약밀매, 인신매매, 고리대금업 등이 그것이다. 야마구치구미에서 보내온 초기 자금은 유국상이 나이트클럽 및 단란주점 등 유흥업소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물론 고리대금업이 가장 먼저였다.
그러는 동안 한국여자들을 일본 유흥가로 수출했다.
가짜 연예 매니지먼트사를 세웠고, 길거리 캐스팅을 하여 멀쩡한 여고생이나 여대생들을 유인했다.
그리곤 일본 연예계 구경을 하자며 데리고 가서 유흥업소에 돈 받고 팔아넘긴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야동의 주인공이 되었다. 평범한 것이 아니라 잔혹물의 주연이다.
세력이 커지자 마약에도 손을 댔다. 하여 강남에서 나도는 필로폰이나 엑스터시 대부분이 세정파에서 나온 것이다.
아무튼 히로야마는 세정파가 자리 잡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한국에 와서 여러 조직들 가운데 세정파를 골라냈고, 먼저 손을 내밀었기에 연합이 가능했던 것이다.
아무리 조폭이지만 유진기 역시 고마움이 뭔지는 안다.
하여 무엇이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만 하라는 소리를 여러 번 했다.
그때마다 히로야마는 웃음만 지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만 3년 만에 자신의 뜻을 밝혔다.
한류스타 가운데에서도 발군의 미모와 섹시한 댄스, 그리고 뛰어난 가창력으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이수연을 갖고 싶다고 한 것이다.
이에 유진기가 서슴없이 납치를 지시했던 것이다.
현수는 그간 오갔던 거래 내역 등을 상세히 물어보았다.
자신의 발언이 모두 녹음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히로야마는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만 머뭇거리면 부하들 넷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고, 전신에서 선혈이 낭자하게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비명을 질러도 이곳은 인가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게다가 유진기 일당은 물론이고 그의 부하인 이곳의 관리인 역시 현재 외출 중이다. 마음껏 즐기라는 배려를 한 것이다.
하여 공포에 질린 비명을 지르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래야 히로야마를 더욱 겁줄 수 있고, 그것은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히로야마가 말을 하면 유진기의 비망록과 대조하였다.
조금이라도 틀리는 부분이 나오면 물었고, 아니다 싶으면 그 즉시 고통스럽게 해줬다. 그랬더니 그 뒤부터는 비망록의 내용과 거의 같은 진술을 했다.
“이거 완전히 미친 놈들 아냐?”
세정파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들은 현수는 눈썹을 찌푸렸다. 장부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사실들 때문이다.
세정파는 자신들의 뜻에 부합되지 않으면 살인도 서슴지 않았다. 히로야마로부터 들은 것만 열아홉 명이다.
상대 조직원들도 있지만 공무원도 있고 일반인도 있다.
그들의 소지품 및 시신은 모두 화장되었다.
운영권을 강제로 빼앗은 쓰레기 소각장을 이용하여 완전한 증거인멸을 한 것이다.
일반인 희생자 가운데 셋은 재산 많은 노인들이다. 그들의 전 재산을 강탈하고 목숨마저 빼앗은 것이다.
모든 이야기를 마친 히로야마는 조심스런 눈길로 현수를 바라보았다. 이제 처분만 남은 때문이다.
그것은 부하들도 마찬가지이다. 네 놈 모두 바지에 오줌을 싸서 지린내가 난다. 극심한 공포 때문이다.
“딥 슬립!”
쿵! 쿠쿵! 콰당! 쿵! 쿵!
다섯 놈 모두 잠에 취해 엎어지거나 자빠졌다. 잠시 이들을 내려다보던 현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놈들은 불법적인 일을 자행한 놈들이다.
더구나 두목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이수연을 겁탈하려던 놈이다. 게다가 쪽발이이다.
당연히 그냥 놔줄 수는 없다.
일단 품을 뒤져 모든 소지품들을 꺼냈다. 그것들은 3써클 마법 화이트 파이어로 한줌 재가 되었다. 물론 금붙이와 돈은 전부 빼놓았다.
다음엔 이들이 타고 온 차로 갔다. 연예인들이 주로 타고 나니는 스타크래프트 밴이다. 번호를 보니 렌트카이다.
스르릉, 쿵―!
“어휴, 이 더러운 새끼들!”
차 안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과자 봉지, 빵 봉지, 이지러진 우유곽, 주스병, 구겨진 담배곽, 꽁초 등으로 지저분했다.
운전석 뒤에 007 가방 두 개가 있었다.
“언락!”
촤르륵! 촤륵! 촤르르륵! 딸깍! 딸깍!
가방 안에는 만 엔짜리 지폐로 가득했다. 가방 하나당 5천만 엔씩 담겨 있다. 한화로 환산하면 약 15억 원이다.
“이런 눈먼 돈은 먼저 가지는 사람이 임자지. 아공간 오픈!”
현수는 가방 두 개와 놈들의 지갑 속에 있던 200만 엔까지 아공간에 넣었다.
다시 펜션으로 돌아왔다. 놈들은 여전히 잠 든 상태이다.
“플라잉 브랜켓(Flying Blanket)!”
마법이 구현되자 공기로 이루어진 비행 담요가 생성되었다. 이 위에 히로야마를 비롯한 야쿠자들을 올려놓았다.
각기 0.1톤은 족히 될 거구들이지만 현수에겐 그리 무거운 무게가 아니다.
“클린! 워싱! 클린! 워싱!”
바닥에 묻어 있던 선혈이 말끔히 청소되자 이수연에게 다가갔다. 그녀 역시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어웨이크!”
“끄으응……! 여기가 어디……? 헉! 사, 살려주세요.”
이수연이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앉는다. 잠들기 직전의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비키니 수영복이나 마찬가지인 안무복을 걸치고 있었기에 민망한 모습이 연출되어 있었다.
쪼그린 채 무릎을 당겨 안고 있었던 것이다.
“이수연 씨! 겁먹지 마세요. 해치지 않을 테니……. 다 끝났어요. 그리고 아까 그놈들은 저기 있습니다.”
“……! 우아앙, 흐흑! 흐흐흐흑!”
포개진 채 놓여 있는 야쿠자들을 본 이수연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 하긴 엄청난 공포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냥 놔두면 틀림없이 정신적 외상이 발생될 것이다. 그렇기에 슬며시 다가가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기다렸다는 듯 품속으로 파고든다. 현수가 좋아서가 아니라 본능적인 반응이었을 것이다.
한 손으론 다독였지만 다른 한 손은 이수연의 등에 댔다. 그리곤 마나를 불어넣었다.
5장 크리스탈과 생파
‘으음……! 역시, 예상대로구나.’
정신적 충격 때문인지 뇌 부분의 마나 움직임이 지극히 정체되어 있다. 달리 표현하자면 마나가 잔뜩 쪼그라들어 있다.
이런 현상 때문에 정신적 외상인 트라우마가 발생되는 것인 듯하다. 하여 부드럽게 쓰다듬고 다독여 원래처럼 되도록 애를 썼다. 하나 응집된 마나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하긴 이런 게 쉽게 치료되면 이상한 거지. 흐음, 그래도 뭔가 방법이 없을까?’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스타에게 공포스럽고 우울한 기억이 있다면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만일 이것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면 국민적인 충격이 될 것이다.
“흐흑! 흐흐흐흑! 어어엉! 무서웠어요. 흐흑! 너무 무서워서 죽을 뻔했단 말이에요. 어어어엉! 흐흑! 흐흐흐흑!”
현수는 어깨가 젖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긴 눈물을 엄청나게 흘렸는데 젖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몸을 떼지 않고 등을 천천히 다독였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마나여, 모든 걸 원상으로 회복시켜라. 리커버리!”
서늘한 푸른 빛 마나가 이수연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손상된 장기나 세포를 원상으로 회복시키는 마법이 혹시 뇌에도 작용하나 싶어 밑져야 본전이라는 기분으로 시전한 것이다.
컴플리트 힐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어디가 째지거나 터진 상처가 발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흐흑! 흐흐흐흑! 흐흑! 흐흐흐흑!”
여전히 울고 있지만 들썩임이 조금씩 잦아든다는 느낌이다.
현수는 천천히 이수연의 등을 다독여 주었다. 그렇게 5분쯤 더 지나자 드디어 울음을 그쳤다. 그리곤 나직이 속삭인다.
“절 구해주셔서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흐흑! 아깐 너무 무서워서……. 고마워요. 이 은혜 절대 잊지 않을게요.”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었는데……. 다행이에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저도 이수연 씨 팬이거든요.”
물론 팬이라는 말은 거짓이다.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기에 이수연이란 연예인이 있다는 것만 알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말을 한 것은 험한 일을 겪은 상대의 마음까지 다독여 주기 위함이다.
“……! 훌쩍!”
여전히 현수에게 안겨 있던 이수연이 슬그머니 품에서 벗어난다. 그리곤 눈물을 닦아내곤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 네에.”
현수는 부러 환한 웃음을 짓고는 겉옷을 벗었다. 그리곤 이수연의 어깨에 걸쳐줬다. 이런 행동을 지켜보던 이수연이 왜 그러느냐는 눈빛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