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11화 (111/1,307)

# 111

“아앗! 백작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그래. 자네도 잘 있었는가?”

“네, 물론입죠.”

“한데 이 시간에 여기 왜 있는가? 오늘은 장사 안 하나?”

“네, 안 합니다.”

얀센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벌써 다 팔린 겐가? 장사 수완이 좋군.”

“제 장사 수완이 좋은 게 아니라 백작님께서 주신 상품이 좋기 때문입니다.”

“후후, 그게 그렇게 되나? 그럼 로잘린 영애가 날마다 오겠군.”

“맞습니다. 조금 전에도 백작님 돌아오셨느냐고 묻고 가셨습니다. 아마 내일도 오실 겝니다.”

“그래? 로잘린 영애가 장사에 맛을 들인 모양이군.”

“하하! 네, 내놓는 즉시 팔리니 당연히 그렇겠지요.”

“이번에 팔린 금액은 얼마인가?”

“병에 든 것 200개는 5골드에 팔렸습니다. 통에 든 것 100개는 9골드 받았구요. 연막탄 가운데 50개는 50실버, 다른 50개는 75실버, 그리고 나머지 100개는 1골드씩 받았습니다.”

“그럼……?”

“네, 정확히 2,062골드하고 50실버입니다. 판매대금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로니안 자작께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보다 값을 더 받았군.”

“네, 후춧가루는 왕실에서 전량 수매했습니다. 연막탄의 경우엔 자작님이 50개를 구입하셨고, 이웃 영지의 칼루센 백작이 50개를 구입하셨습니다. 나머지 100개는 전부 왕실로 들어갔습니다.”

“미판테 왕국의 왕실에서 구매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참, 왕실 시종께서 백작님께 전해달라고 맡긴 물건이 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후 얀센이 가져온 것은 금박 입힌 초청장이다. 스크롤처럼 만들어 끈으로 묶어놓은 것이다.

함부로 뜯어볼 수 없도록 밀납으로 봉인되어 있다.

현수는 봉인을 뜯고 펼쳐보았다.

얇은 양피지에 금박으로 쓰인 글씨는 코리아 제국의 백작 하인스 멀린은 왕국으로 와서 미판테 왕국의 국왕을 알현해 달라는 정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아울러 미판테 왕국을 이동하는 동안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어느 영지든 이 초청장을 보면 정중히 접대하라는 내용도 쓰여 있다. 후춧가루와 연막탄에 호기심을 느낀 모양이다.

“카이로시아는? 돌아왔는가?”

“아뇨. 카이로시아 아가씨는 아직 귀환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백작님께 전해달라는 문서는 도착해 있습니다. 이겁니다.”

얀센이 전해준 문서 역시 봉인되어 있었다.

친애하는 하인스 멀린 백작님께.

먼저 카이로시아 에델만 드 로이어가 마음을 다한 존경과 사랑을 드립니다. 언제 어디서든 백작님을 향한 저의 마음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답니다.

평생토록 제 곁에 계셔주기를 간곡히 바라면서 소식 전합니다. 먼저 이곳에서의 담판이 여의치 않습니다.

하여 다소 많은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염려되는군요.

혹여 백작님의 마음을 심란하게 할까 싶군요. 그래도 걱정 마십시오. 어떠한 난관이라도 극복해 온 로시아입니다.

곧 백작님의 곁으로 돌아가고픈 마음뿐입니다.

늘 강건하시고, 마음이 편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당신의 사랑을 갈구하는 로시아 올림.

“흐음, 갔던 일이 잘 안 되는 모양이군.”

현수가 나직이 중얼거리자 얀센이 입을 열었다.

“카이로시아 아가씨께선 현재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백작님께서 관심 가져주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뭐라? 그게 무슨 소린가? 자세히 말해보게.”

얀센은 그렇지 않아도 이 말을 하려 기다렸다는 듯 즉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카이로시아는 소속된 상인들을 이끌고 테세린의 이웃 영지인 유카리안 영지로 향했다.

이번 상행의 목적은 최근 발견된 마나석 광산의 채굴권을 따기 위함이다.

유카리안 영지는 데니스 알만 드 유카리안 백작의 영지로서 미판테 왕국에선 보기 힘든 곡창지대를 품고 있다.

또한 많은 산과 호수도 있어 산림자원 및 수산물도 풍부한 곳이다. 아울러 구리 광산 두 개와 철광석이 나는 철광 또한 한 개가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마나석 광산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마나석은 금보다도 비싼 광석으로 마법사들이 돈을 아끼지 않고 사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광산 채굴권을 획득하면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다. 그렇기에 대륙의 거의 모든 상단이 유카리안 영지로 몰렸다.

한편, 데니스 백작은 느긋하기만 하다.

상단끼리 경합이 붙으면 붙을수록 점점 더 가치가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카이로시아가 부임하기 전 이레나 상단의 미판테 지부장은 오빠인 일루신 에델만 드 로이어였다.

지난해 그는 데니스 백작과의 만남 때 많은 금품을 뇌물로 바쳤다.

마나석 광산에서 나는 산물의 60%는 국왕이 소유한다. 나머지 40%가 데니스 백작 소유이기에 뇌물을 쓴 것이다.

그 결과 이레나 상단은 지구에서 말하는 우선협상 대상자로 지정될 수 있었다.

당시 일루신이 데니스 백작에게 넘긴 금품의 가치는 15,000골드이다. 한국 돈으로 150억 원이다.

그 결과 데니스는 이레나 상단에게 채굴권을 넘기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왕궁으로 보냈던 것이다.

이런 경우 거의 대부분 영주의 뜻을 따르는 것이 관례이다.

국왕으로선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채굴된 양의 60%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관은 파견된다. 채굴된 양을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왕실 출납부 소속 행정관인 나무센 자작이 파견되었다.

감독관이 파견되었다 함은 채굴권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도 결정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레나 상단엔 아무런 전갈도 없었다. 그렇기에 담판을 지으러 간다고 떠났던 것이다.

“그런데 로시아가 왜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거지?”

“데니스 백작이 카이로시아 아가씨에게 귀족 모독죄를 적용하여 구금하고 있다고 합니다.”

“뭐라?”

“같은 귀족인지라 감옥이 아닌 거처에 가둬두었을 것이지만 언제 구금에서 풀려날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카이로시아는 데니스 백작에게 이전의 약속대로 채굴권이 이레나 상단에 있음을 발표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

그런데 백작은 채굴권이 아렌시아 상단에 있다고 했다.

아렌시아 상단은 미판테 왕국에 근거를 둔 거대상단으로 이레나 상단과는 라이벌 관계이다.

카이로시아는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것을 이해하기에 별다른 항의 없이 물러났다. 그리곤 은밀히 지난해에 제공했던 뇌물을 되돌려 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그러자 병사들을 보내 구금토록 했다는 것이다.

받은 바 없는 뇌물을 받은 것처럼 꾸며 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잡아들인 것이다.

“이런 내용을 자네가 어찌 소상히 아는가?”

현수의 물음에 얀센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물음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레나 상단은 이곳 미판테 왕국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마나석 광산 채굴권을 아렌시아 상단이 가진 때문이지요.”

“흐음, 그래서?”

“로니안 자작님은 작위가 낮아 데니스 백작에게 자신의 의견조차 개진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백작님께 이 소식이 전해지길 바랐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연금되었다는 사실을 제게 알렸습니다.”

“흐음, 알겠네.”

현수는 이맛살을 좁혔다.

도와주고는 싶다. 그런데 아무런 세력도 없으니 문제이다.

그렇다고 7써클 대마법사의 능력을 쓸 수도 없다. 미판테와 쿠르스, 그리고 엘라이 왕국의 추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흐으음, 결국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된다는 뜻인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쩌긴, 가봐야지.”

“혼자서요……? 안 됩니다. 제가 백작님을 보좌하겠습니다.”

“그 전에 로니안 자작부터 찾아뵈어야겠네. 자넨 유카리안 영지의 최근 상황을 조사해 주게. 가능하겠는가?”

“네, 다녀오십시오.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원하시는 자료를 준비해 놓겠습니다.”

“좋네. 그리고 그곳까지 이동함에 있어 불편함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부탁하네. 만일을 대비한 용병들도 고용하고.”

“네, 알겠습니다.”

여관을 떠난 현수는 로니안 자작의 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흐으음, 로니안 자작이 과연 나를 도와줄 것인가?”

자문했지만 정답은 모른다.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는 자신과 어쩌면 대를 이어가며 친분을 나눴을지도 모를 이웃 영지의 백작, 둘의 무게를 달아 어느 쪽이 무겁냐는 물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수는 무모한 도움 요청이 되겠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했다.

“멈춰라! 이곳은 테세린의 영주이신 로니안 자작님의 성이다. 무슨 용무로 왔느냐?”

성문 앞에 당도하자 레더 아머로 무장한 병사가 삼엄한 표정으로 묻는다.

그 순간 현수는 후회했다. 평민 복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인식한 것이다. 화려한 예복을 입고 왔다면 말투 자체가 달랐을 것이다. 하나 이미 벌어진 일이다.

“흐음, 나는 코리아 제국의 하인스 백작이네. 영주님에게 용무가 있으니 안에 기별을 넣어주게.”

“말도 안 되는 소리! 감히 귀족을 사칭하다니 죽고 싶으냐?”

병사의 호통에 안에 있던 누군가가 고개를 밖으로 내밀었다.

“에밀리, 대체 왜 그래?”

“아! 크린스 기사님, 나와 보십시오. 여기 귀족을 사칭하는 무엄한 놈이 있습니다.”

“뭐어라? 어떤 미친 놈이 감히 귀족을 사칭해?”

듣는 것만으로도 화가 난다는 듯 누군가가 후다닥 튀어나온다. 그런 그의 뒤를 따라 또 다른 누군가가 나온다.

앞선 자는 모르겠으나 뒤따르는 자는 분명 견습기사 복장이다. 그렇다면 앞선 자의 신분은 기사일 것이다.

“네놈이냐? 감히 귀족을 사칭한 자가?”

크린스 기사라는 자가 준엄한 표정으로 호통을 쳤지만 현수의 얼굴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사칭이 아니네. 크린스 기사라 했는가? 안에 기별 좀 넣어주게. 코리아 제국의 하인스 백작이네. 영주님과 상의할 일이 있다고 해주게.”

“이런 미친 놈이……? 어디서 감히! 평민 주제에 감히 백작을 사칭해? 무엇들 하느냐? 놈을 체포하라.”

크린스 기사의 명이 떨어지자 여섯 명의 병사가 사방에서 포위망을 좁혀왔다. 하나 현수는 의연한 모습이다.

‘흐음, 이 정도면 평상시 훈련을 잘 해놓은 모양이다. 다행이야. 자작님이 도와준다 해도 오합지졸이면 문제가 컸을 텐데. 그래도 한 번은 시험해 봐야겠지?’

다가오는 병사들을 보던 현수가 검을 뽑아들었다. 보검은 아니고 평범한 철검이다.

스르르르릉-!

“뭣들 하느냐? 감히 귀족을 사칭한 놈이다. 팔다리가 잘려도 좋으니 즉각 제압하라.”

“네, 알겠습니다.”

여섯 명이 들고 있는 검에서 예기가 뿜어진다. 조금 전과 기세가 달라진 것이다.

“흐음, 이보게, 크린스 기사! 이들을 제압하면 안에 기별을 넣어주겠는가?”

“미친 놈! 누가 누굴 제압해? 무엇들 하느냐? 어서 제압해.”

크린스 기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셋이 검을 휘두르며 쇄도했다. 평상시 제대로 된 훈련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야압! 이야압! 챠앗!”

“이놈! 야압! 이이잇!”

여섯 가운데 셋이 먼저 검을 휘둘렀다. 현수는 상대의 느린 검로를 확인하곤 허리를 좌우로 움직여 이를 피해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나머지 셋의 검이 쇄도한다. 꽤 짜임새있는 공격이라는 느낌이다.

하나 이들 역시 공격에 실패했다.

현수가 좌우로 한 발씩 이동했다가 원래 위치로 되돌아오는 동안 모두 허사가 된 때문이다.

현수는 콩고민주공화국의 밀림 속에서 결계를 치고 마법을 연구한 바 있다. 그때 틈틈이 멀린이 남긴 검법서들을 꺼내놓고 수련했다.

기초부터 소드 마스터의 검법까지 그야말로 시작에서 끝까지 전 과정을 두루 섭렵하였다. 그 결과 검기를 뿜어내는 소드 익스퍼트 상급에 이르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제 실전 경험만 쌓으면 금방 최상급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으면 소드 마스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는 동안 동체시력 또한 매우 좋아졌다. 그렇기에 병사들의 공격이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리다 느껴진 것이다.

“후훗! 이제 전부인가? 이렇게 해서 어디 오크 한 마리라도 잡겠나? 안 그런가, 기사 크린스!”

“뭐, 뭐얏? 이런 육시를 할……! 뭐해? 어서 놈을 공격해.”

“챠앗! 이야압! 죽엇!”

“에잇! 이야아압! 이이익!”

이번에도 간단히 여섯의 공격을 피해냈다.

“다시들 덤비게. 이번엔 나도 공격할 것이니 지극히 조심해야 할 것이네.”

“이런 미친! 죽엇!”

“야아아아압!”

여섯이 각 방위를 점한 채 일제히 공격하였다. 땅으로 꺼지거나 허공으로 솟지 않는 이상 막아낼 수 없는 공격이다.

“세상엔 시간차라는 것이 존재하네. 이야아아아압!”

챙그랑! 챙! 우당탕! 퍼억! 챙그랑! 퍽! 챠창!

“헉! 캑! 크윽! 억! 으악! 크악!”

크린스는 동시에 쓰러지는 병사들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극히 짧은 순간 현수는 병사들의 모든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일일이 반격을 가했다.

그 결과 명치를 걷어채였고, 폼멜1)에 허벅지를 가격당했으며, 미들2)에 귀싸대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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