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16화 (116/1,307)

# 116

“그래? 알았다. 이름을 지어주지. 지금부터 네 이름은… 로즈라 부르겠다. 동생도 이름이 없나?”

“네.”

간결한 대답이다. 이로 미루어 짐작컨대 단호한 성격인 듯하다.

“좋아, 그 아이의 이름도 지어주지. 로즈, 네 동생의 이름은 릴리라 하겠어.”

“감사합니다. 주인님이 지어주신 이름 잊지 않겠습니다.”

“좋아, 식사를 가져오도록 해라.”

“네, 주인님!”

로즈가 나간 후 현수는 이들에 대한 처리를 고심했다. 이 세계엔 근거지가 없기에 맡길 데도 없기 때문이다.

잠시 후, 식사가 올려졌다. 현수는 의자에 앉아 먹었지만 로즈와 릴리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먹었다. 의자에 앉으라는 말을 해봤자 소용없을 것이기에 그냥 내버려 두었다.

식사 후, 오랜 침묵이 흘렀다.

로즈는 말없이 서서 하명을 기다리고 있었고, 릴리는 오랜만에 배가 부른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똑똑!

노크 소리에 창틀을 짚고 물끄러미 창밖 풍경을 바라보던 현수가 고개를 돌렸다.

“백작님, 토마스입니다.”

“흐음, 들어오게. 로즈는 릴리 데리고 옆방에 가 있도록!”

“네, 주인님!”

토마스는 로즈가 밖으로 나갈 때까지 말없이 기다렸다.

“그래, 근래에 영지를 벗어났는지를 확인해 보았나?”

“네, 지난 닷새 동안 이 영지를 벗어난 마차는 열세 대입니다. 그중 열하나는 짐마차였습니다. 나머지 둘은 아렌시아 상단 소유의 마차였습니다.”

“그래서?”

“상단 마차가 지난 길을 확인해 본 결과 카이로시아님이 탑승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그걸 어찌 확신하지?”

“바퀴 자국의 깊이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둘 다 마부 하나씩만 탄 것으로 여겨집니다.”

“확실한가?”

“네, 제 개인적인 소견으론 확실합니다.”

“좋아, 괜찮은 안목을 지녔군.”

토마스가 물러나고도 현수는 밤이 깊도록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끄덕였다. 그러다 구름이 달을 가려 사위가 어두워지던 때 누군가 창문을 두드린다.

톡톡! 토토토토톡! 톡톡! 토토토톡!

“들어오게.”

말이 떨어지자 온통 검은 복색을 한 사내가 들어선다.

“하인스 백작님! 로니안 자작님의 전령입니다.”

“그래, 로니안 자작께선 어떻게 하신다고 하나?”

“국왕 전하의 재가가 떨어지지 않아 영지전을 벌일 수는 없다고 합니다. 한시 바삐 볼일 보시라고 합니다.”

“흐음, 알겠네. 가거든 이 서찰을 전해 드리게.”

“네, 그럼 저는 이만!”

사내가 사라지자 현수가 종을 들어 흔들었다.

딸랑딸랑!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아래층에 내려가 술과 음식을 주문해라. 옆방 기사들과 내가 먹고 마실 것이니 충분한 양을 주문하도록!”

“네에.”

잠시 후, 현수와 용병 여덟 명의 술판이 벌어졌다. 시끌벅적하게 노래도 부르고, 전장에서의 경험담도 나눴다.

반 시간 정도 흐른 뒤 술을 마시는 인원은 여덟로 줄었다. 현수가 사라진 것이다. 하나 창밖에서 보이는 실루엣은 아홉이다. 다시 반 시간쯤 지났을 때 현수는 영주성 내부에 있었다.

“흐음, 마법으로 교묘히 감춰뒀군. 이 정도면 4써클 마법사가 있다는 뜻인데……. 흐음!”

현수는 마나 디텍션 마법으로 마법사의 위치를 탐색했다. 마법사는 영주성 2층에서도 가장 외진 구석에 있었다.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언락!”

딸깍!

잠겨 있던 문이 열렸다. 하나 현수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잠시 후 저절로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문이 저절로 열린다.

“누구얏? 어떤 새끼가 감히 마법사의 방을……!”

“슬립!”

감히 마법사의 방문을 몰래 연 도둑이 누군지 작살내겠다고 손바닥에 마나를 응집시켰던 마법사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흐음, 좀 오래 자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깨어나도 소리를 지르면 안 되겠지? 내가 불편하니까. 보이스 익스토션!”

음성 봉인 마법까지 걸어버렸다. 7써클 마스터가 건 마법인지라 4써클 마법사는 이를 해제시킬 수 없다.

따라서 깨어나도 당분간 마법을 쓸 수 없다. 마법을 구현시키려면 시동어를 영창하여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기간은 최하 7일일 것이다.

잠든 마법사를 들어 옮기려던 현수는 멈칫했다. 또 다른 마법사 하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헉! 누, 누구냐?”

깊은 잠에 취한 마법사가 축 늘어진 모습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오자 경악하는 표정이다.

“이런 제기랄! 슬립!”

콰당 !

고개를 돌려 놀란 표정을 짓던 마법사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너는 날 봤으니 기억까지 지워줄게. 메모리 일리머네이션! 그리고 목소리도 당분간 못 써. 보이스 익스토션!”

마법사 둘을 해결한 현수는 실내를 둘러보았다. 영주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마법 연구실은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흐음, 온 김에 뭐가 있나 볼까? 오오! 이건 회복 포션의 원료인 트롤의 피잖아.”

현대의 플라스크 비슷하게 생긴 병 속에 담긴 초록색 혈액을 본 현수가 반색했다.

“이건 만드라고라……! 후후, 드디어 마나 포션의 주원료를 얻었군. 어디 쓸 만한 게 더 있나 찾아볼까?”

현수는 이곳을 찾은 이유를 잊었다는 듯 연구실 내부를 샅샅이 뒤졌다. 그리곤 필요하다 여겨진 모든 것을 아공간에 담았다. 트롤 세 마리분의 혈액과 질 좋은 만드라고라 열세 뿌리, 그리고 포션 제조에 필요한 다른 원료들을 챙겼다.

9장 니들이 최루탄 맛을 알아?

“주인 잘못 만난 죄다. 하나 나중에라도 이곳을 떠나 나를 만나게 되면 한 가지 혜택은 주지.”

현수는 죽음처럼 깊은 잠에 취한 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현수는 방을 나섰다.

“락!”

철컥 !

문이 안에서 잠긴 것을 확인하고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앞으로 갔다.

“알람 마법을 해제시키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매직 캔슬!”

약 스무 계단쯤 내려가자 굳게 닫힌 철문이 있다.

“와이드 센스!”

기감을 넓혀보니 철문 안쪽에 두 놈이 있다.

“니들도 잠들어. 슬립!”

쿵! 콰당!

둘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리자 현수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언락!”

철컥―!

끼이익! 끼이이이익!

“짜식들! 놀 시간 있으면 기름칠이나 좀 하지.”

나직이 투덜거리고는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지하 1층엔 검과 창, 그리고 갑옷 등 각종 병장기들이 쌓여 있다.

현재 양성 중인 기사와 병사들에게 지급할 것이다.

몽땅 아공간에 넣었다. 로니안 자작에게 줄 선물이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가려니 또 하나의 문이 보인다.

마법으로 재우고 문을 여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12초이다.

“흐음, 로시아가 여기에 있어야 하는데…….”

기감을 넓혀 흐릿한 실내를 살펴보니 대략 서른 명이 있다. 모두 감금된 죄수들이다.

대소변을 가릴 곳이 없어 아무데나 배설을 했는지 지독한 악취가 난다. 그 속엔 상처 썩는 냄새도 포함되어 있다.

현수는 횃불 두 개를 들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메가 라이트!”

즉시 대낮처럼 환해졌다.

창살 속을 일일이 확인하던 현수의 걸음이 멈춘 곳은 웬 여인이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쓰러져 있던 곳이다.

“언락!”

철커덕!

“로시아!”

“으으! 으으으으! 으으으!”

서둘러 횃불을 벽에 건 현수는 여인을 일으켰다. 예상대로 카이로시아였다.

뇌옥에 갇힌 지 오늘로서 열흘이다.

처음 사흘은 하루에 빵 한 덩어리를 제공했지만, 지난 칠 일간은 물 한 모금 주지 않아 신음하고 있었던 것이다.

“로시아. 정신 차려!”

뺨을 두드렸지만 기식이 엄엄하다. 회복 포션을 먹였지만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로시아! 정신이 드시오? 아! 그렇지. 바디 리프레쉬! 그리고 어웨이크!”

마나가 스며들자 카이로시아가 감았던 눈을 뜬다. 그런데 힘이 하나도 없는 듯하다.

“으으! 하, 하인스……? 하, 하인스 백작님?”

“그래, 나요. 이제 정신이 드는 것이오?”

“네, 네에. 백작님!”

흐릿하던 시야가 점차 명확해지자 그렇게도 보고 싶던 하인스 백작이 보인다. 로시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의 눈가로 눈물이 흐른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안 되겠소. 일단 여기서 나갑니다.”

카이로시아를 업은 현수는 나머지 뇌옥의 문을 전부 열어주었다. 갇혀 있던 자들의 면면을 살핀 현수는 아공간에 담긴 빵과 우유를 꺼냈다.

너무 굶주려서 제대로 걸을까 의심스런 정도였던 것이다.

일인당 패스트리 두 개를 우유에 푹 적셔서 먹도록 했다. 급히 먹다 체할까 싶었던 것이다.

“이제 걸을 수 있겠소?”

“네.”

이곳이 어딘지를 잊지 않았기에 모두의 음성은 나지막했다.

“일단 여기를 벗어납시다. 소리 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카이로시아를 업은 현수가 앞장서고 이레나 상단 사람들, 그리고 나머지 죄수들이 뒤를 따랐다.

계단을 올라 1층에 다다른 현수는 오른손 주먹을 치켜들었다. 모두 멈추라는 신호이다.

잠시 후, 근무 교대하러 이동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멀어지자 보아두었던 곳으로 움직였다. 예상대로 근무하는 병사들이 없다. 모르긴 몰라도 야호니 강 저쪽에서 시위하고 있는 테세린 영지 병력의 준동을 막으러 출동했을 것이다.

일행은 현수의 도움 덕분에 무사히 내성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오는 동안 병사 둘이 기절했다. 이들은 꽁꽁 묶인 채 구석에 처박혔다. 혹시 깨어나 소리칠지 몰라 슬립 마법까지 걸었다. 그렇기에 아무도 모른다.

“자아, 이제 조금만 더 힘을 내게. 저곳만 나가면 자유일세.”

이제 남은 것은 영주성의 정문이다. 현재 여섯 명의 병사가 긴장된 시선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위쪽엔 혹시 있을지 모를 기습에 대비하기 위한 병력들이 웅크리고 있다. 궁병들이다.

“쉽지 않겠군. 그나저나 왜 소식이 없지?”

현수가 나직이 중얼거리는 순간 위에 있던 병사 가운데 하나가 소리친다.

“적이다! 적이 나타났다!”

“어디야? 어디!”

“적이 어디 나타난 거야?”

휙휙! 휘휙! 휙! 휙!

갑자기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하자 방패를 든 병사 뒤쪽의 궁병들이 시위를 잡아당긴다.

성문에 붙어 있던 병사들은 모두 긴장된 표정으로 문틈 밖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모두들 여기서 꼼짝 말고 있으시오. 내가 성문을 열고 신호를 보내면 일단 성문 아래에 집결하시오. 절대 밖으로 나가면 안 되오. 아시겠소?”

“저어,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이유가 뭡니까?”

“나가면 저 위의 궁병들이 쏜 화살에 맞을 것이오. 그러니 죽기 싫으면 절대 나가면 안 되오.”

“네, 알겠습니다.”

현수는 카이로시아를 안전한 곳에 내려놓았다.

“로시아! 절대 움직이지 마시오.”

“네, 백작님!”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카이로시아가 너무도 애처러워 보였다. 하여 이마에 입맞춤해 주고는 일어났다.

다음 순간 현수의 신형은 엄폐와 은폐를 하며 성문 쪽으로 이동해 갔다. 남은 사람들은 긴장된 시선으로 그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현수의 신형이 사라졌다.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마법이 구현된 것이지만 사람들은 은신한 것으로 오인하고 있었다.

퍽! 퍼퍽! 퍽! 퍽!

“윽! 켁! 악! 으윽!”

“슬립, 슬립!”

네 명은 현수가 휘두른 몽둥이에 뒤통수를 가격당해 기절했고, 둘은 마법에 걸려 잠들었다.

아래에서 나직하지만 타격음이 들렸음에도 위쪽 궁병들은 이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날아드는 화살 때문이다.

잠시 후, 성문이 열렸다. 평상시 같으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을 것이다. 하나 이번엔 그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공간에 담겨 있던 재봉틀 기름을 경첩 부위마다 충분히 뿌린 때문이다.

잠시 후, 일행은 번개처럼 성문 아래에 집결하였다.

“로시아 일행이 전부 몇 명이오?”

“저까지 열 명이 왔어요.”

“여러분 중 이레나 상단 소속은 이쪽으로 오시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홉 명이 현수의 뒤쪽으로 왔다.

“나머지 분들은 어쩌시겠소? 같이 나가겠소? 아니면 이곳에 남겠소?”

물어본 사람이 바보이다. 죄를 지어 갇혀 있던 이들이 어찌 자신들을 잡아가둔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겠는가!

“우리도 동행하게 해주십시오.”

“저희도 유카리안 영지 밖으로 나가고 싶소이다.”

“흐음, 알겠소. 그럼 내 뒤를 따르시오.”

현수는 랜턴을 꺼내 불빛을 두 번 켰다 껐다. 잠시 후 불길에 휩싸인 마차 세 대가 성벽 쪽으로 돌진한다. 그와 동시에 화살 또한 날아든다.

“모두 은신해라! 불빛 때문에 화살이 보이지 않는다!”

성벽 위의 궁병들이 몸을 숙이던 바로 그 순간 현수 일행은 성문 밖으로 나가 성벽을 따라 급속 이동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지푸라기가 잔뜩 실린 마차 몇 대가 성벽 쪽으로 밀려 내려갔다. 화염이 충천하다가 곧 사그라들었다.

적의 이목을 붙잡아놓기 위한 계책의 일환이다.

대략 10분쯤 이동했을 무렵 누군가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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