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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17화 (117/1,307)

# 117

“백작님! 오셨습니까? 이쪽입니다.”

“흐음,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모두 마차에 타시오. 자리가 부족하니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은 양보하고…….”

사람들은 현수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마차를 이끄는 말의 발굽은 두툼한 천으로 감싸여 있다. 그렇기에 별다른 소음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같은 순간 내성에선 난리가 벌어졌다.

내보냈던 영지 정예 병력들을 전멸시키고 진입한 테세린 영지군이 공격한 것으로 오인한 것이다.

데니스 백작은 평소엔 꺼내보지도 않던 검까지 꺼내 들었다. 그리곤 마법사들을 불렀다. 하나 마법사들의 연구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아무리 두드려도 반응이 없었다.

“이런 개자식들! 정작 필요한 때에 무섭다고 도망을 가?”

데니스 백작은 이를 갈았다. 그리곤 남은 병력들을 이끌고 성벽 위로 올랐다. 일부는 가족과 모아두었던 금은보화 등을 챙기러 보냈다. 사세 판단 후 불리하다 싶으면 비밀통로를 통해 빠져나갈 속셈인 것이다.

성문 앞에서 소란이 벌어지는 동안 현수 일행은 야호니 강 쪽으로 이동했다. 이제 강만 건너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야호니 강은 유속이 매우 빠르다. 수심도 깊기에 헤엄쳐서 건너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유카리안 영지 병력 거의 전부가 유일한 통행로인 다리 근처에 매복하고 있다.

‘흐음, 마법 없이는 안 되는 것인가?’

사람들이 기력을 회복하도록 잠시 쉬는 동안에도 현수의 뇌는 섬전처럼 기동했다. 묘안을 짜내기 위함이다.

그렇게 10분쯤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사람들에겐 유카리안 병력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대기하라 일렀다. 그리곤 영주성 쪽으로 황급히 이동했다.

아까 있었던 시위를 조사하기 위한 병력이 인근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까의 그것은 여관에서 술을 마시는 척하던 토마스를 비롯한 용병들의 위장공격이었다.

데니스 백작 쪽에서 감시인을 붙였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의 긴장을 늦추려 짐짓 술 마시는 척했던 것이다.

현수가 안쪽에서 불빛으로 신호를 하면 일제히 화살을 쏘아 적이 공격하는 것으로 오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건초를 잔뜩 실은 마차 역시 토마스를 비롯한 용병들이 준비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적당한 위치를 점한 현수는 아공간을 뒤져 마트 문방구 코너에 있던 폭죽들을 꺼냈다.

꺼내놓고 나니 양이 제법 많았다. 하여 적당히 땅에 박아놓고 일제히 불을 붙였다.

쑤우웅! 쐐에에엑! 쒸이이잉! 쎄에엥!

“아앗! 적의 화전 공격이다. 모두 대피하라! 대피하라!”

성벽 위를 순찰하던 병사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그러는 동안 무수한 로켓탄이 성벽을 향해 날아갔다.

펑! 퍼펑! 펑! 퍼퍼퍼펑!

매년 10월이면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되는 불꽃축제가 이곳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성벽 위의 병사들은 상당히 많은 병력이 일제사를 하는 것으로 오인하고 대가리를 처박고 있었다.

현수는 로켓탄들이 비산하는 것을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어두운 밤이기에 투명 은신 마법은 해제하고 플라이 마법으로 날아서 이동했다.

가다보니 야호니 강 인근에 매복해 있던 기사와 병사들이 헐레벌떡 이동하는 모습이 보인다.

세어보니 거의 전부가 이동하는 듯싶다.

“오셨습니까? 근데 대체 저게 뭐랍니까?”

허공에서 펑펑 터지는 폭죽을 본 이레나 상단 사람들의 물음에 현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보다 급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남은 병력은 없소?”

“아직 있습니다. 기사 둘과 병사 50여 명이 매복 중입니다.”

“으으음!”

혼자서 이들 모두를 처리하려면 마법을 쓰는 수밖에 없다. 하나 어찌 그럴 수 있는가!

현수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토마스!”

“네, 백작님!”

“내 뒤를 따라오시오. 내가 선두에서 공격할 것이오. 미처 공격하지 못한 자들을 처리할 수 있겠소?”

“기사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하나 병사들이라면…….”

“좋소. 내 뒤를 따르시오. 여러분들도 안전거리를 확보한 상태에서 우리의 뒤를 따르시오. 알겠습니까?”

“네.”

“로시아!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하시오.”

“네에.”

잠깐 사이지만 로시아는 기력을 많이 찾은 모습이다.

“자, 이제…….”

현수가 가자는 말을 하려 할 때 누군가가 나섰다.

“잠깐만요. 혹시 남는 활이 있습니까?”

“누구십니까?”

마법사의 로브라고 하기엔 손색이 있는 모포 같은 걸 뒤집어 쓴 사내였다.

“활을 다룰 수 있습니다. 활과 화살을 제공해 주시면 우리가 후미에서 일행을 보호하겠소.”

“몇 자루가 필요하십니까?”

“세 자루 주십시오.”

“토마스, 활과 화살 남은 거 이분들께 드려.”

“네.”

잠시 후 현수 일행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깊은 밤이었지만 월광이 교교하여 어렴풋이 사물이 식별되는 어둠이기에 엎어지는 사람은 없었다.

검을 뽑아 든 채 쾌속하게 이동한 현수는 수풀 속에 매복해 있던 병사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폼멜 부분으로 뒤통수를 가격하여 기절시킨 자도 있고, 슬립 마법으로 재워 버린 놈도 있다.

뒤따르던 토마스 등은 경악한 눈으로 현수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 웬만해선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교묘히 은신해 있는 자까지 남김없이 제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와이드 센스 마법 덕이다.

그렇게 30여 명을 제압했을 때 현수의 앞을 가로막는 두 그림자가 있었다. 데니스 백작의 신임을 받는 수석기사 제레미 경과 또 다른 기사 하나였다.

“거기까지……! 네놈은 대체 누구냐?”

“그건 알아서 뭐할 건데?”

순간 이미지 컨류징 마법을 써서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으음, 테세린의 개냐?”

“입으로 싸울 거냐? 어서 덤비기나 해라. 야압!”

뒤따르는 사람이 있기에 현수는 속전속결하려 선공을 했다.

뽑아 든 검을 시퍼런 오러가 감싸는 모습을 본 제레미는 만만치 않은 상대라 여기고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같은 순간, 곁에 있던 기사 역시 검을 뽑아 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그때 현수의 검이 제레미를 향해 쏘아져 갔다. 당황한 제레미가 이를 막으려던 순간 검로가 돌변했다.

그리곤 곧장 곁에 있던 기사의 허벅지를 파고들었다. 방비가 부족했던 기사는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이런 비겁한 놈!”

“나는 혼자. 너흰 둘! 누가 더 비겁한 거지?”

“……!”

“항복할 거 아니면 덤벼!”

“이야아압!”

제레미 경이 자신의 장기를 펼쳤다. 상대와의 거리가 약간 떨어졌을 때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먼저 한발을 크게 내디딘 뒤 그 발을 축으로 회전하며 검으로 베는 것이다.

방심하고 있던 적은 이 공격에 당하거나 피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때 처음 디뎠던 발로 걷어차면 대부분 당했다.

하나 상대는 김현수이다. 쇄도하는 검끝을 자신의 검으로 툭 건드리니 제레미가 균형을 잃는다.

그 순간 활개를 벌린 그의 명치를 힘껏 걷어찼다.

쐐에에엑! 팅! 퍼억!

“크어억!”

갑자기 숨을 쉴 수 없는 격통을 느낀 제레미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다음 순간 현수의 폼멜이 뒤통수를 가격했다.

퍽!

“끄윽!”

“좋아, 다음은……?”

고비라 생각했던 제레미 경이 너무 쉽게 제압되었기에 기분이 좋아진 현수는 비호처럼 사방을 휩쓸었다.

“진짜 사람인가?”

토마스는 멍한 표정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데니스의 병사들을 유린하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모두들 이동!”

어둠 속에 있던 마차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잠시 후 야호니 강에 놓인 다리에 당도했다.

“신속하게 넘어가시오.”

“백작님은 어쩌시려고요?”

“놈들의 추격이 시작되었네. 먼저 건너가게.”

“백작님!”

“명령이네. 어서 건너가게. 그게 날 도와주는 것이네.”

일행의 마지막이 다리를 건너가는 동안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다. 최소 200명 이상의 기병이 다가오는 소리이다.

현수는 아공간을 뒤졌다. 예상대로 생각했던 물건이 박스 속에 아직도 적지 않은 양이 담겨 있다.

“흐음,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현수가 꺼내 든 것은 연막탄이다. 그걸 피워 적의 이목을 교란하려 했던 것이다.

“흐음, 근데 이건 안 되겠군!”

하인스 상단의 독점 품목이기 때문이다. 연막탄을 회수한 현수는 맹렬한 기세로 묘안을 짜냈다.

죽이고자 마음을 먹는다면 차라리 편하다.

다리를 건너가느라 여념이 없으니 어스퀘이크로 마상에서 떨어뜨린 후 파이어 스톰 두어 방이면 끝날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 싫다. 주인을 잘못 만난 것뿐이기 때문이다.

방금 전의 기사와 병사들도 죽은 이는 하나도 없다.

“그래! 그게 있었어.”

아공간을 뒤져 꺼낸 것은 고춧가루이다. 라면 공장을 털 때 엄청나게 많이 가져왔다.

“그라인딩(Grinding)! 그라인딩!”

위이이잉! 위이이이이잉 !

불과 수초만에 고춧가루들은 아주 곱게 빻아졌다.

“후후, 고생 좀 하겠군.”

그릇에 담긴 고춧가루에 라이터 기름을 적당량 뿌렸다.

그러는 사이에 데니스 백작의 정예들이 쇄도했다.

“플라이!”

짙은 어둠 속에서 치솟은 현수는 그릇 속에 담긴 고춧가루 용액을 뿌렸다.

“와일드 스톰!”

화아아아악 !

삽시간에 사방으로 뻗은 고춧가루 용액은 허공으로 비산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휘발성분은 모두 날아갔다. 그러자 고운 고춧가루 분말 입자가 기사와 병사들을 휘감았다.

“으헥! 에에취! 커억! 매워!”

“으윽! 이건 뭐야? 아악, 눈이 따가워.”

“에에취! 커억! 아이고, 죽겠다.”

30명이 넘는 기사와 1,000명에 가까운 병사 전체가 재채기를, 기침을 했다.

또한 눈물, 콧물을 흘렸고, 침까지 질질 흘렸다.

따갑다고 얼굴을 문질렀던 병사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데굴데굴 굴렀다.

아르센 대륙 역사상 처음으로 화생방 훈련을 한 셈이다.

“후후, 니들이 최루탄 맛을 알아?”

현수는 의도대로 되었음에 웃음 짓고는 이내 다리를 건넜다.

“어서 오십시오, 백작님! 걱정 많이 했습니다.”

“오, 크린스 경! 경이 파견되었구려.”

“네, 이제 걱정 마십시오, 놈들이 분수도 모르고 다리를 건너면 가장 먼저 고슴도치를 만들 것입니다. 다음엔 제 검에 황천 구경을 하게 될 것입니다.”

“고맙네. 하나 건너오는 놈은 없을 것이네.”

대화를 하는 동안에도 야호니 강 건너에는 난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거의 모든 병사들이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던 것이다.

물속에 들어가면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하나 불행히도 야호니 강은 절벽 아래를 흐르고, 설사 들어간다 하더라도 떠내려 가게 된다. 그렇기에 끝나지 않는 화생방 훈련을 톡톡히 받고 있는 중이다.

“얀센! 음식 좀 준비하게. 그리고 사람들이 쉴 자리도 마련해 주고.”

코찔찔이 세실리아 여관은 이제 일반 손님은 받지 앓는다. 하인스 상단의 본점으로 사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어 있는 객실은 하인스 상단 사람과 이레나 상단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 된다.

그렇기에 얀센은 분주한 손길로 음식을 만들고, 목욕물을 데우기 시작했다. 하룻밤 자고 난 뒤 개운함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이다.

“로시아! 몸은 좀 어떻소?”

오뚜기 식품에서 만든 3분 쇠고기 죽을 세 개나 비운 카이로시아는 확연히 좋아 보인다.

“몸이 조금 무거운 걸 빼면 괜찮은 거 같아요.”

“손을 줘보시오.”

현수는 한의사도 아니면서 진맥하는 척 카이로시아의 손목에 손을 올려놓았다.

맥이 약한 것 같다. 하여 마나로 체내를 살펴보았다.

열흘 가까이 굶주린 데다가 춥고 습기 많은 곳에서 공포에 질려 있어서 그런지 마나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했다.

‘책에서 읽은 바에 의하면 이럴 때 마나 포션이 필요한 거군. 그런데 없으니…….’

잠시 생각하던 현수는 일단 편하게 재우는 게 우선이란 생각을 했다. 정신적으로도 지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나여,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게 하라. 딥 슬립!”

“아흠……!”

뭔가를 말하려던 카이로시아가 잠이 들었다.

밖으로 나온 현수는 이레나 상단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대체로 양호하다. 그리곤 동행했던 나머지 죄수들을 찾았다.

첫 번째 객실문을 열자 여기저기 앉아 있던 셋이 일어난다.

“은인의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베세른 산맥의 숲을 관리하는 숲의 일족! 레이찰 토들레아가 인사드립니다.”

“오마샤 토들레아가 감사 인사 드립니다.”

“하일라 토들레아입니다. 은공의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으음, 숲의 일족이라면… 엘프였소?”

“그렇습니다. 은공의 성함을 알려주시겠습니까?”

“그건 알아서 무엇하려 하십니까?”

“은공의 성함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함입니다.”

현수는 엘프들이 상당히 고지식하며 고집 또한 대단하다는 것을 안다. 이들은 숲과 평화를 사랑하는 족속이다.

하여 예의를 갖췄다.

“코리아 제국의 하인스 멀린 드 셰울이오.”

“저희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인스 백작님!”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 덤으로 구한 것입니다. 은혜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대단하지 않으니 마음 쓰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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