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19화 (119/1,307)

# 119

“네에, 알겠습니다. 다음에 만나면 꼭 사인받아다 드릴게요.”

“네에, 고맙습니다. 사장님!”

안 받아줄 수 없도록 허리를 깊숙이 숙여 절을 한다.

“바쁜 업무 없어요?”

“치이, 사장님께 여쭤보려고 어젠 잠도 못 잤단 말이에요.”

“에구……!”

현수는 여자들의 괜한 관심 때문에 못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핸드폰이 몸서리를 친다.

부우우우웅! 부우우우우웅!

“흐음, 현우냐?”

“형님, 재주도 좋아요.”

“무슨 소리야?”

“이수연의 언니를 사귄다면서요? 오늘 인터넷에 이수정 씨 프로필 다 떴어요. 엄청난 미인이던데요?”

“끄으응!”

나지막한 침음을 냈지만 현수의 말은 끊이지 않았다.

“형님, 이수정 씨랑 잘 됐으니까 다음 타자는 저죠?”

“뭔 소릴 하고 싶은 건데?”

“형님, 형님이 원하는 만큼 술 사드릴게요. 이수연 씨 좀 소개해 줘요.”

“에라, 이놈아! 너 안 바쁘냐?”

“형님, 괜히 튕기지 말고 소개 좀 해줘요. 저 이수연 씨 광팬이란 말이에요.”

“야, 시답잖은 소리 그만하고 이만 전화 끊자.”

전화를 끊은 현수는 잠시 인터넷 검색을 더 했다. 하나 끊이지 않는 상념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때 핸드폰이 또 몸살을 한다.

부우우웅! 부우우우웅!

“네, 어머니!”

“현수야, 텔레비전에 나온 거 사실이니? 너 진짜 이수연의 언니랑 사귀냐고?”

“아이고, 어머니! 그거 사실 아니에요. 그냥 우연히 알게 된 건데 기자들이 오버해서 그러는 거예요.”

“진짜냐?”

“어머니, 생각해 보세요, 전 아프리카에 있다가 온 지 얼마 안 되잖아요. 근데 어느 세월에 그 여자랑 사귀었겠어요?”

“하긴… 그렇기는 하다.”

“어머니, 그러니 괜한 오해하지 마세요. 아셨죠?”

“에구……! 아버지하고 난 드디어 널 장가보낼 수 있다 생각해서 좋아했는데…….”

“바빠서 이만 끊습니다.”

“그래, 그래라.”

전화를 끊은 현수는 골치 아픈 문제에 직면한 사람처럼 이맛살을 찌푸렸다. 근데 또 전화가 온다.

부우우웅! 부우웅!

“여보세요.”

“오빠?”

들어보니 이수정의 목소리이다.

“……!”

“저예요. 수정이 오늘 비행 없는데 만나요.”

“나, 지금 조금 바쁜데?”

“그래요? 참, 그렇구나. 오빠는 직장인이지. 그럼 이따 퇴근 후에 만나요. 그건 괜찮죠?”

“……!”

“수연이도 오늘 저녁 때 스케줄을 비웠대요. 그러니 시간 없어도 시간 좀 내봐요. 네?”

“그래. 그렇게 할게.”

현수는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들이대는 수정이 부담스러웠다. 키 크고, 날씬하고, 상냥하며, 예쁘기는 하다.

여자친구가 없다면, 또는 마음에 둔 여인이 없다면 무조건 대쉬해야 할 최상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하나 현수가 어찌 딴 눈을 팔 수 있겠는가!

영국 출장 중인 강연희 대리가 가슴속에 박혀 있기에 권지현이 관심 보이지만 부러 못 본 척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이수정을 만나는 것이 저어되었다.

그럼에도 만나기로 한 것은 선을 그을 건 긋고, 수연으로부터 사인도 받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휴우, 언론이 무섭긴 무겁구나.”

현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리곤 다시 인터넷으로 빠져들었다. 한국과 콩고민주공화국 모두에 도움이 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을 찾으려는 것이다.

하나 누이 좋고 매부도 좋은 일은 드문 법이다. 마당 쓸고 동전까지 줍는 일도 별로 없다.

그렇기에 일석이조인 일을 찾아 한참 동안 서핑을 했다.

똑똑똑!

“사장님!”

“응? 아, 이 실장? 들어와요.”

“사장님, 대한약품에서 사장님을 뵙고자 손님이 오셨습니다.”

“대한약품이요? 이 실장, 우리가 현재 거래하는 제약사 중 하나인가요?”

“아뇨. 아직은 거래 없는 제약사인데요.”

“흐음, 그런데 왜……? 아무튼 오셨으니 들어오시라 하세요.”

“네에.”

은정이 물러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말쑥한 양복 차림의 젊은 사내가 들어선다. 서른을 갓 넘긴 듯한 나이이다.

“어서 오십시오. 이실리프 무역상사 대표 김현수입니다.”

“반갑습니다. 대한약품 민윤서 사장입니다.”

“네, 일단 자리에 앉으시지요.”

“감사합니다.”

둘이 자리에 앉자 언제 따라들어 왔는지 이지혜가 묻는다.

“사장님, 차는 무얼로 준비할까요?”

“난 사과 주스 주세요. 민 사장님은 어떤 걸 드시겠습니까?”

“아, 저도 사과 주스 좋아합니다.”

“네에, 사과 주스 두 잔 준비하겠습니다.”

이지혜가 나가자 민 사장이 명함을 꺼내 건넨다.

“이실리프 무역상사 사장님이 젊은 분이란 이야긴 들었는데 이처럼 젊은지는 몰랐습니다. 다시 인사드립니다. 대한약품 대표 민윤서입니다.”

“네에, 이건 제 명함입니다.”

현수가 명함을 건네자 민윤서는 볼펜을 꺼내 뒷면에 무언가를 기록한다. 만난 날짜와 시간을 쓰는 듯하다.

“어떤 용무로 절 찾으셨는지요?”

“우연히 태극약품 등과 대규모로 거래하신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네, 현재 여러 제약사와 거래 중이지요.”

“솔직히 말씀드려 저희도 납품하고 싶어서 찾아뵈었습니다.”

민 사장과 시선이 마주친 현수는 빙그레 웃어주었다.

“고맙습니다. 일부러 발걸음을 해주셔서……. 한데 어떤 약들을 생산하시는지요? 납품받는 것과 겹치지 않는 품목이 있다면 고려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현재 저희도 태극약품처럼 항생제랄지 소염제, 진통제 등을 생산합니다만 주력은 백신류입니다.”

“흐음, 백신이요?”

현수가 관심을 보인다 생각했는지 민 사장이 반색하며 다가앉는다.

“그렇습니다. 현재 아프리카에서 발생된 전염병은 콜레라와 홍역, 그리고 이질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흐음, 동아프리카 지역이 가뭄과 기근 때문에 전염병 창궐 우려가 높다는 기사는 보았습니다.”

“네, 소말리아는 콜레라, 에디오피아에서는 홍역이 번지고 있지요. 남아프리카 쪽에선 이질이 창궐해 있습니다.”

“그래서 UNHCR(유엔난민기구) 소속 의사들이 15세 미만 아동들에게 예방접종을 실시한다고 하더군요.”

현수의 대답은 신문에서 언뜻 본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맞습니다. 하지만 김 사장님이 수출하시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선 예방접종이 실시되고 있지 않지요.”

“아마도 그렇겠지요.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니니까요.”

상당히 많은 부분을 파악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젊기만 한 사장이 아니라 뭔가를 해보려 애쓴다는 느낌이다.

“저희 회사에서 만들지만 저희 백신의 품질은 공신력을 얻은 겁니다. 이걸 취급해 주십사 해서 방문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일단 콩고민주공화국 현지와 연락하여 상황을 알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민윤서 사장이 정중히 고개 숙여 사의를 표했기에 현수 역시 고개 숙여 예를 표했다.

“그리고 말 나온 김에 한 말씀 더 드려도 되겠습니까?”

거래를 트기 위해 온 것이라 그런지 민 사장의 태도는 상당히 정중하다. 현수가 25세 정도로 보여 얕볼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말씀하십시오.”

“이건 저희 회사에서 생산하는 약품 목록입니다. 그리고 이건 저희가 납품해 드릴 수 있는 최소단가이기도 하구요.”

브로셔와 인쇄물을 받아든 현수는 잠시 내용을 살폈다.

아까 말한 대로 거의 모든 일반 의약품을 생산하고 있다. 납품 가격을 보니 기존 거래처보다 %가 약간 낮다.

하나 거래처를 바꿀 생각은 없다. 태극약품 등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 지금 당장 거래처를 바꾸시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도 이 정도는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리기 위함입니다.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민윤서 사장은 또 다른 카탈로그를 건네주었다.

“어라! 동물 약품도 생산하십니까?”

현수가 받아든 카탈로그엔 소, 돼지, 닭 등에 사용되는 약품들이 있었던 것이다.

“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민 사장은 계면쩍은 웃음만 띄웠을 뿐 구체적인 설명이나 이야긴 하지 않았다.

일반 제약사에서 동물 약품까지 생산하는 일이 드물 것이란 생각을 했지만 아예 없을 일도 아니기에 현수는 더 묻지 않았다.

“동물 약품은 아직 거래하는 곳이 없습니다. 검토해 보지요.”

“감사합니다.”

민윤서 사장이 가고 난 뒤 현수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문득 떠오른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것이다.

이는 전에 읽었던 어떤 기사 때문이다.

고형분과 뻘을 제거한 돼지 분뇨에 호기성 미생물을 투여하면 악취가 제거된 유기질 비료를 얻을 수 있다.

분뇨는 분뇨대로 처리하고, 양질의 비료까지 얻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기술이다.

커피를 생산해 내기 위해선 강렬한 햇볕을 어느 정도 가려줄 바나나 또는 야자수를 심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커피농장을 시작하면 바나나나 야자도 함께 수확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선 적당량의 비료가 필요한데 아다시피 화학 비료는 환경에 좋지 못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는 인근에 양돈장과 양계장, 또는 육우나 비육우 축사를 대단위로 설치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인근에서 손쉽게 채취할 수 있는 천연재료로 사료를 만들 공장 또한 지어져야 할 것이다.

일련의 사업 모두 사람들의 손이 많이 필요한 일이다.

따라서 고용된 사람들의 후생복지를 위한 기숙사와 병원 등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에너지를 얻기 위한 발전 설비가 필수불가결이다. 촛불 켜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화석 연료를 태우는 화력발전, 또는 원자력의 힘을 비는 원전은 초기 비용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비용이 든다.

뿐만 아니라 환경에도 좋지 못하다.

이밖에 수력발전도 있고, 지열발전도 있지만 이는 환경적 요인이 매우 중요하다. 다시 말해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다.

대안 중 하나로 발전 설비를 갖추는 데 있어 가장 적은 비용이 드는 것은 당연히 태양광발전을 꼽을 수 있다.

초기 자금이 많이 든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일단 설치가 끝나면 그 다음부터는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환경 오염율이 제로에 가깝다.

이런 발전 설비를 갖추려면 한국으로부터 각종 기자재 등을 모두 가져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태양광발전과 관련된 업체를 방문하여 비용과 방법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일련의 생각을 A4 용지에 순차적으로 기록한 현수는 다시 인터넷 서핑을 시작했다.

커피와 바나나 묘목도 구해야 하고, 종돈, 종우에 관한 것도 알아봐야 한다.

다음엔 사료 공장을 건립하는 데 필요한 것도 찾아보아야 한다. 또한 호기성 미생물을 다루는 업체와도 접촉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발전 설비 업체와 전력 배선 공사를 해줄 사람들도 만나야 한다.

점점 일이 커지고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마음만은 즐거웠다.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혼자선 할 수 없다. 전문가도 아닐 뿐더러 관련 지식 부족으로 인한 심각한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 하여 사람들을 뽑아서 쓸 생각을 했다.

또한 엄청나게 많은 돈이 필요하다.

이실리프 무역상사의 수입만으론 어림도 없을 거금이다. 하나 이에 대한 명쾌한 해결 방안이 있다. 히데요시가 감춰두었던 상당히 많은 금괴와 금화를 처분하면 된다.

국내에서는 출처를 댈 수 없는 것이기에 처분이 곤란하다. 하나 콩고민주공화국에서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곳에서 처분한 돈을 한국으로 송금을 하여 처리하면 깔끔하게 끝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합법적인 해외법인이 있어야 한다.

마침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타는 불길에 휘발유를 부은 듯 번창하고 있는 해외법인이 있다. 천지약품이다.

이는 한국의 법으로는 결코 어쩌지 못할 존재이다.

합법적일 뿐더러 문제가 생긴다 할지라도 내무장관인 가에탄 카구지가 모두 막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근차근 일을 벌일 일만 남은 셈이다.

현수는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해서 추려놓았다. 무엇이 필요한지 우선 순위를 매겨놓은 것이다.

그러다 저녁나절이 되자 수정이 정한 약속 장소로 향했다.

도착해서 확인해 보니 인테리어가 매우 훌륭한 커피숍이다.

원목으로 만들어진 바닥은 도시의 차가움보다는 온화한 느낌을 주었고, 벽에 전시된 그림을 조명하는 부드러운 불빛은 화사한 편안함을 연출해 줬다.

곳곳에 놓인 화분과 소품들은 아주 잘 어우러져 고급스러우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겨내고 있었다.

그런데 커피 특유의 냄새가 은은한 이곳에 손님이 없다. 혹시 값이 비싸서 그런가 싶어 메뉴판을 슬쩍 보았다.

비싸지도 않다. 그런데도 손님의 씨가 말라 아무도 없다. 하여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정도면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딱인데 왜 손님이 하나도 없을까? 이상하군.’

그때 화장실에서 나오던 이수정이 반색하며 다가온다.

“현수 씨! 여기에요.”

“아, 이수정 씨!”

이 순간 이수연이 코너를 돌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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