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20화 (120/1,307)

# 120

“어라, 수연 씨도 왔네요?”

수정과 통화할 때 수연에 관한 말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곳에 와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네, 여기 우리 아빠가 하는 커피숍이거든요.”

“아! 그렇군요.”

이제야 왜 이곳으로 와달라고 했는지 이해가 된다.

보아하니 자신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하여 손님을 받지 않은 모양이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일 때 중후한 분위기를 내는 초로의 중년인이 다가온다.

“현수 씨! 우리 아빠세요.”

“네에……? 아, 안녕하세요. 김현수라 합니다.”

전혀 생각지 못한 부친의 등장에 현수는 당황했다.

“반갑습니다. 수정이 수연이 애비되는 이재혁이라 합니다. 우리 아이를 구해주어 고맙습니다.”

“아! 네에……. 어쩌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현수는 대강 말끝을 얼버무렸다. 그렇다 하기에도 그렇지 않다 하기에도 어색했던 때문이다.

“자, 이럴 게 아니라 자리에 앉으십시다.”

“네, 아버님! 그런데 말씀 낮춰주십시오. 어른께 존대를 받으니 조금 불편합니다.”

“그럼, 그럽시다. 아니, 그러세.”

자리에 앉았으나 현수는 준비했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른이 끼어 있는 분위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정과 수연의 부친이라 더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매는 너무도 스스럼없게 이야길 이끌어간다.

“호호, 아빠! 현수 씨가 얼마나 용감했는지 아세요? 야쿠자들을 아주 늘씬하게 패서 기절까지 시켰어요.”

“어머, 그랬어? 현수 씨, 정말 그렇게 싸움을 잘해요? 몸만 보면 호리호리한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어머, 얘! 내가 말했잖아. 현수 오빠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기억 안 나?”

“아, 그랬나? 맞아, 그러고 보니 그랬네. 근데 어떤 특수부대 출신이세요? 해병대? 공수특전대? 네? 말 좀 해봐요.”

여자들의 수다 속에서 현수는 진땀을 뺐다. 그러는 동안 수연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은정과 수진, 그리고 지혜의 것만 있으면 되지만 자신의 것도 추가로 하나 더 부탁을 했다.

그때 수연이 자신이 발표한 음반들을 꺼냈다.

물론 사인이 되어 있었고,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늠름하고 용감하신 현수 오빠께!

수연이 온 마음을 담아 드립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음반을 받은 현수는 눈을 크게 떴다.

사인 바로 아래 음반의 타이틀 곡명이 쓰여 있는데 ‘날 사랑해 줘요’였던 것이다.

놀라는 표정을 짓자 기다렸다는 듯 수연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혀를 날름 내민다. 현수는 알아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뜻으로 슬쩍 고개를 숙여줬다.

11장 회복 포션의 효능

저녁으론 호텔식 정찬을 먹었다. 들어보니 자매의 부친은 오성급 호텔의 총 지배인이었다고 한다.

정년퇴직하여 고급 커피숍을 냈다. 워낙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했기에 그걸 끊을 수 없어 차린 커피숍이라고 한다.

인근에 재직하던 호텔이 있기에 요리사를 초빙하여 음식 일체를 준비했다고 저녁을 먹자고 한다.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넷은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모두 편한 얼굴이지만 현수만은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마치 사윗감으로 적합한지 여부를 심사하는 자리에 앉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떡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치국물 먼저 마시는 것 같았지만 차마 그 이야긴 할 수 없었다.

수정이 상처 입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 이야기에서 점차 수연의 연예가 쪽으로 화제가 옮겨갔다. 그러는 동안 수정, 수연 자매가 잘 교육되었다는 것과 예의바르고 상냥하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현우 녀석이 졸랐는데 한번 다리를 놔줄까? 에이, 아니다. 평범한 현우 녀석이 어찌 톱스타와…….’

현수는 애써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냈다. 이현우와 이수정, 조경빈과 이수연을 소개해 주는 상상을 했던 것이다.

늦은 밤, 현수는 자매의 배웅을 받으며 커피숍을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는다.

눈이 먼 것이 아니라 기습적으로 터진 플래쉬 세례 때문이다. 어찌 알았는지 상당히 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우글대고 있었던 것이다.

“김현수 씨! 오늘은 이수정 씨 부친에게 결혼 승낙을 받으러 온 겁니까?”

“정말 이수연 씨 자매와 등산만 한 겁니까?”

“이수연 씨의 언니인 이수정 씨와는 언제부터 만났습니까?”

현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고 천천히 전진하는 동안에도 수십 명의 기자가 차창에 대고 자신들의 궁금한 점을 소리쳐 물었다.

‘끄응! 이수연 씨가 톱스타는 톱스타인 모양이군.’

나지막이 투덜댄 현수는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집 근처에 당도해 보니 많은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하여 이실리프 무역상사 사무실로 차를 돌렸다.

“어휴! 유명한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사는 걸까?”

목을 조이고 있던 넥타이를 풀어헤친 현수는 컴퓨터를 켰다.

문득 낮에 만났던 대한약품 민윤서 사장이 생각이 났다. 하여 대한약품 홈페이지와 그에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대한약품은 역사가 오랜 제약사이다.

조부가 창업하여 3대째 대물림 하고 있다. 창립연월일을 따져보니 60년이 넘은 기업이다.

처음엔 그저 그런 제약사였으나 민 사장의 부친대에서 백신을 주로 생산하게 되었다.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간염 백신 등을 제조한다.

실적을 확인해 보니 보건소에 상당량을 납품한 사실이 있다.

이는 관계 부처의 정밀한 조건을 통과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백신의 품질은 보증이 된다는 것이다.

평판을 찾아보니 나쁘지 않다. 제약사를 운영하면서 문어발식 기업 확장을 꾀했다던지 하는 일도 없다.

속사정이야 어떤지 몰라도 건실한 기업이라는 뜻이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것이 보여 클릭을 했다.

거기엔 대한약품이 왜 동물 약품까지 생산하는지 그 이유가 명확히 드러나 있었다.

동물 약품을 제조하는 순수 국내 자본 제약사 가운데 백암가축전염병 연구소라는 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는 물밀 듯 밀려드는 외국계 제약사에 대항하며 신약 개발에 몰두하던 곳이다. 하나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어버렸다. 많은 연구비를 들였지만 신약 개발에 실패한 것이다.

결국 경영난을 이유로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민윤서 사장이 이 회사를 사들였다.

백암가축전염병 연구소는 이익이 전혀 발생되지 않는 기업이었다. 그렇기에 주주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쳤다.

이에 민윤서 사장은 개인 사재를 털어 인수했다. 그리곤 사명을 대한동물약품으로 개칭했다. 그렇기에 이 회사는 현재 민윤서 사장 개인이 소유한 기업이다.

이를 취재하여 보도한 자료를 보니 민 사장은 국내 동물 약품 산업의 보호를 위한 조치였다고 인터뷰했다.

그냥 놔두면 외국 제약사들의 공세에 국내 기업 모두 고사하게 되는데 그럴 경우 그 분야는 식민지가 된다.

이걸 좌시할 수 없어 과감하게 투자했다는 소리이다. 하나 전망이 밝다는 소리는 어디에도 없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뜻이 존경받을 만했기 때문이다.

그리곤 밤새 필요한 정보들을 수집했다.

다음날 아침, 가장 먼저 출근한 사람은 이은정 실장이다. 하긴 바로 위층이 집이니 늦을 이유가 없다.

“어머, 사장님! 여기서 주무셨어요? 왜 안 올라오셨어요? 빈 방 하나 있는 거 아시잖아요.”

“하하, 아닙니다. 잔 건 아니고 뭔가 알아볼 것이 있어서요.”

“아침 식사 아직 안 하셨죠? 불편하지 않으면 저희 집으로 올라가셔요.”

“아니, 아닙니다. 괜찮아요.”

“아니긴요. 식사는 하셔야죠. 올라가셔요. 어머닌 출근해서 안 계시고 할머니만 계시니까요.”

현수는 거듭해서 고사했으나 은정은 의외로 고집이 셌다. 결국 밥 한 술 뜨기 위해 은정의 집으로 올라갔다.

“할머니, 안녕하셨어요?”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우리 집의 은인이 오셨구랴.”

“할머니, 사장님이 아침 식사를 못하셨대요.”

“아, 그래? 그럼 잠시만 기다리셔. 금방 밥을 지어내겠네.”

“감사합니다. 할머니!”

밥 먹으러 올라온 것이기에 그러마 고개를 끄덕이곤 실내를 둘러보았다. 새집에 새 가구들이라 그런지 깔끔한 느낌이다.

구질구질했던 예전 물건들이 간간히 눈에 뜨이긴 했으나 대체적으로 깨끗하고 쾌적해 보인다.

할머니 곁에서 반찬을 담아내느라 여념이 없는 은정의 뒷모습을 보니 괜히 흐뭇해진다. 착한 일을 해서 나중에 죽으면 죄 지은 거 하나쯤 지워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든 것이다.

‘흐음, 할머닌 다 나으셨나?’

“마나 디텍션!”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마나로 할머니의 몸을 검색해 보았다. 교통사고로 골절되었던 것들은 모두 정상이다.

하긴 컴플리트 힐과 리커버리 마법을 구현시켰었다. 웬만한 것들은 완치에 가까울 정도가 되어야 정상이다.

‘당뇨병도 많이 좋아지시긴 했지만 완쾌된 것은 아니구나.’

마법을 구현한 직후 꼬맹이 하나가 현수의 손에서 뿜어져 나간 푸른빛이 뭐냐며 묻던 것이 기억난다.

말은 안 했지만 그때 엄청 당황했었다. 딱히 둘러댈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득 당뇨병 합병증에 관한 기억이 떠오른다.

당뇨병 환자 가운데 30%는 가려움증과 무좀 같은 피부 감염에 시달린다. 75%는 복통, 변비, 구토, 구역, 설사 등 소화기 장애를 경험하게 된다.

콩팥에도 이상이 발생되며, 남성의 경우엔 자율신경 실조로 성기능 장애가 발생될 수 있다.

발에도 궤양이 생길 수 있는데 15% 정도는 절단을 고려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증세를 보일 수 있다.

뿐만이 아니다.

당뇨 환자의 30∼50%는 당뇨병성 망막증이 발생된다. 그리고 70% 정도는 상, 하지의 말초 신경 부위가 저리거나, 감각이 둔해지고, 통증이 생기는 당뇨병성 신경 합병증을 앓게 된다.

그리고 간경변 환자의 30∼40%가 당뇨병 환자이다.

또한 뇌중풍, 협심증, 심근경색 같은 혈관 합병증으로

60∼70%가 사망할 수도 있다.

‘현대로 접어들면서 당뇨병 환자가 상당히 많이 늘어났지? 이걸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하면 떼돈을 벌겠군.’

어젯밤, 상당 시간 동안 제약과 관련된 사이트를 돌아다녔기에 생각난 것이다. 그러다 문득 스치는 상념이 있었다.

‘혹시 회복 포션이 당뇨에도 작용하지 않을까? 근데 대구의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좋아지긴 했다고 들었는데 완쾌되지 않았을까?

지현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가 중환자실로 실려 갔던 대구 동부경찰서 형사계 소속 경사를 떠올려 보았다.

마법이 없었다면 죽었을 사람을 간신히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도 당뇨병 환자였다. 그런데 그에게는 회복 포션을 복용시킨 바 있다. 이후에 어찌 되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하나 지금은 너무 이른 아침이다. 따라서 지현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볼 수 없다.

‘흐음, 조금 있다 물어보든지. 아니면 한번 만나봐야겠구나. 그 역시 컴플리트 힐과 리커버리 마법으로 치료를 받았어. 은정 씨 할머니와 다른 점이라면 회복 포션을 복용했다는 거지.’

할머니의 외상은 전부 나았다. 당뇨병 역시 많이 좋아진 상태인 듯하다. 하나 완치된 것은 아니다.

만일 그 경찰의 당뇨병이 나았다면 회복 포션은 당뇨병의 특효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만 가지곤 알 수 없지. 그런데 얼마만 한 양이 적합한지는 아직 알 수가 없네. 일단 반 병만 드려보자.’

현수는 화장실에서 회복 포션 반병을 따라두었다. 아까워서가 아니라 적정량을 알고 싶은 것이다.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을 보니 은정의 가정 형편이 눈에 뜨이게 좋아진 듯하다. 생선도 보이고, 육류도 있다.

식사 후엔 과일까지 나왔다.

현수는 또 한 번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하여 연신 입가에 웃음기를 띄고 있었다.

“우리 사장 총각! 은정이가 은혜를 잊고 잘못하고 그러면 많이 야단쳐도 됩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을……! 은정 씨가 있어서 되게 편해요, 할머니! 은정 씨, 일 되게 잘하고 싹싹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고맙소. 내가 전생에 무슨 공을 세웠다고 이처럼 착하고 잘생긴 사장님을 만났을까……. 고맙소, 정말 고맙소.”

할머니는 여전히 거친 손으로 현수의 손을 한없이 쓰다듬었다. 힐끔 바라보니 은정이 한쪽 구석에서 눈물을 찍어내고 있다. 고생했던 때가 기억났고, 현재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실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흐음, 현우 녀석에겐 은정 씨 같이 착하고 예쁜 아가씨가 딱인데. 한번 소개시켜 줄까? 에이, 아니다. 괜히 은정 씨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 수도 있으니 조금 더 두고 보자.’

은정이 커피까지 내왔다. 어차피 내려가서 마실 것이니 사양치 않고 마셨다.

커피를 마신 후 은정더러 먼저 내려가라 하였다. 혹시 전화 올 데가 있을지 모른다는 말에 후다닥 내려간다.

은정이 내려가자 회복 포션을 꺼냈다.

“할머니, 이거 몸에 좋은 거예요. 한번 잡숴 보세요.”

“사장 총각, 이게 뭔디?”

“제 친구가 준 건데요. 인삼이랑 녹용 이런 거 달여서 만든 거라고 해요. 몸에 좋은 거라니까 잡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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