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
한우 고기가 맛이 있기는 하지만 비싸다. 반면 수입 고기는 맛은 떨어지지만 가격이 엄청 싸다. 가만 놔두면 국내 축산농가 거의 전부가 고사하게 될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면 한우는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
하회마을에서 느꼈듯 우리 고유의 것이 사라지고 나면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생각보다 엄청나게 커진 규모를 고려하고 있다. 물론 히데요시가 감춰둔 금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선은 한우 20만, 젖소 5만, 돼지 70만, 육계 1천만, 산란계 600만 마리를 사육할 예정이다.
이 모든 수치는 국내 사육두수의 약 10% 정도이다.
경험이 쌓이면 차츰 숫자를 늘려 한국과 콩고민주공화국의 모든 수요를 충당할 계획이라 하였다.
민 사장은 너무도 엄청난 규모에 여러 번 입을 벌렸다. 그러면서 혹시 사기 내지는 뻥이 아닌가 살폈다.
하나 현수에게선 분명 진실된 분위기가 흐른다.
이에 해당하는 동물 약품을 생각해 보니 어마어마한 양이다.
현재 민윤서 사장이 인수한 대한동물약품은 적자상태이다. 사재로 연구원들의 급여를 충당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현수가 생각하는 거대 축산단지에 동물 약품을 납품할 수만 있으면 단번에 흑자로 돌아서게 될 것이다.
하나 민윤서 사장은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될 일이라면 내버려둬도 될 것이지만, 안 될 일이라면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된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한 때문이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생각을 정리한 현수가 물었다.
“사장님! 대한동물약품을 운영하시느라 힘드시죠?”
“네, 조금……! 하나 벅찬 정도는 아닙니다.”
“괜찮으시다면 지분의 절반을 제게 파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럼 지금 부담하시는 것이 절반으로 줄어들 테니까요.”
“……!”
말을 꺼내놓고 현수는 다시 먹는 것에 집중했다.
민윤서 사장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기 위함이다.
두 번째 고기를 집어먹을 때 민 사장의 입이 열렸다.
“좋습니다. 김 사장님이 팔라 하시니 팔죠.”
“감사합니다. 그럼 얼마를 드리면 되나요?”
“제가 3년 전에 대한동물약품을 인수할 때 지불한 금액은 118억 원이었습니다. 솔직히 그동안 많이 망가졌습니다. 하여 현재의 가치로 따지면 약 80억 원 정도 될 겁니다.”
“흐음, 3분지 1 정도가 줄었군요.”
현수는 민 사장이 솔직한 성품이란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사람과는 일을 같이해도 다툴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절반인 40억을 주십시오. 지분의 50%를 드리겠습니다.”
“3년 사이에 40억이나 손해보셨는데…….”
“그건 제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손해는 봤지만 선택은 지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군소제약사들이 외국계 거대 제약사에 인수합병되어 사라졌다. 그걸 막고 싶었던 것이다.
“45억 내지요. 대한동물약품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분은 49%만 주십시오.”
민윤서 사장을 고기를 집으려던 젓가락질을 멈췄다. 그리곤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팔기로 하지요.”
“오늘 제가 좋은 값에 좋은 제약사를 샀을 뿐만 아니라 솔직하고 능력있는 동업자를 만났군요.”
“하하, 저도 괜찮은 동업자를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둘은 유쾌한 기분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계약서는 다음 날 저녁 때 쓰기로 했다.
서울로 올라온 현수는 유진기의 집으로 갔다. 그런데 이상하다. 모든 불이 꺼져 캄캄했던 것이다.
‘흐음, 전부 외출했나? 그럼 나만 좋지.’
마침 잘 되었다는 생각에 현수는 희미한 웃음을 베어 물었다. 그리곤 주의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했다.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플라이!”
담을 넘어갔는데 전에는 분명히 있던 도베르만 핀쳐 네 마리의 기척이 없다.
‘개까지 어디로 끌고 갔나?’
“언락!”
딸깍―!
전처럼 이층 서재의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현수는 어둠을 뚫고 볼 수 있는 마법을 구현시켰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 불을 켤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나여,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게 하라. 오올 아이!”
대낮까지는 안 되지만 사물을 식별하는 데 전혀 어려움 없게 되자 금고가 있던 방으로 갔다. 혹시나 해서이다.
그런데 금고가 보이지 않는다.
“으으음!”
그러고 보니 집기가 많이 없어진 것 같다. 하여 다른 방의 문을 열어보았는데 아무것도 없다.
아래층까지 내려온 결과 이사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기랄……! 전에 그걸 그냥 가져왔어야 하는데……!”
조경빈의 머리카락을 수집해 놓았던 앨범만 가져왔으면 이사를 가든 말든 상관없다. 그런데 걸레까지 몽땅 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여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유진기는 6월 6일에 사람은 없는데 2층의 금고가 차례로 열리는 희한한 사건을 경험했다.
나중에 다시 확인해 보았더니 금고는 분명히 열렸었다.
장부에 일련번호를 매겨놨는데 그것이 뒤집힌 채 놓여 있다는 것이 증거이다.
장부는 1∼23번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다, 그리고 늘 같은 순서로 보관했다. 물론 맨 위가 1번이다. 유진기에게 일종의 강박증이 있기 때문에 이는 거의 철칙이다.
그런데 다시 확인해 보니 23번이 엎어진 채 맨 위에 놓여 있었다. 분명 누군가의 손을 탔다는 증거이다.
이날 이후 모든 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그러다 6월 14일엔 금고문이 열릴 때 작동되는 인디케이터에서 회로 손상이 발견되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것이기에 저절로 떨어질 수 없는 땜납이 외부에서 가해진 힘에 의해 떼어진 것을 발견한 것이다.
다음날, 모든 짐을 싸들고 이사를 감행했다.
그리곤 누가 자신의 집에 귀신같이 드나들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부하 넷을 주변에 깔아두었다.
오늘 현수가 투명 은신 마법과 비행 마법을 쓰지 않고 들어갔다면 분명히 발견되었다.
그러면 은밀한 미행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다음 순서는 현수의 의도를 알아내기 위한 가족 납치이다. 인질을 잡아 현수를 불러들인 다음 끝장낼 계획이다.
소위 조폭들이 하는 말로 담가버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장부에 기록된 내용이 워낙 민감하기에 보았다면 살려둘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제기랄! 가족이 아니면 주민등록 이전 상황을 알 수도 없는데……. 백두마트 본사로 가서 놈의 뒤를 미행해야 하나?”
집까지 차를 몰고 오는 동안 유진기가 조경빈의 머리카락 수집 앨범을 감춰둔 장소를 어찌하면 알아낼 수 있을까를 고심했다. 결론은 마법이다.
“제기랄, 생각할 일도 많은데.”
현수는 집 근처 산에 올라 결계를 치고 밤새 마나심법을 운용했다. 결계 안에 타임 딜레이 마법을 걸고 마나 집적진을 깔고 앉는 것은 이제 습관이 되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네, 사장님!”
“이은정 씨, 아니 이 실장님! 오늘 업무는 뭐죠?”
“지시하신 일에 대한 자료 수집 및 보고서 작성이에요.”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조금 있다가 손님이 오실 거예요. 현재 계좌에 남아 있는 돈은 얼마죠?”
“39억 8천 3백만 원 정도 있습니다.”
“우리 계좌의 일일이체한도는 얼맙니까?”
“계좌별로 알일이체한도 2억 원입니다.”
“알겠습니다. 일 보세요.”
9시 정각이 되자 극동 솔라파워 주윤우 사장이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나타났다. 미스 김도 따라왔다.
“어서 오십시오. 미스 김도 왔네요.”
“네에.”
“네에, 사장님!”
주윤우 사장과의 계약은 거의 일사천리이다.
자료를 한번 읽음으로 해서 태양광발전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파악하기는 했다. 하나 이론과 실제는 다른 법이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엔 주윤우 사장이 베테랑이다. 그렇기에 대부분 그의 의견대로 계약서 작성이 되었다.
단 한 번뿐인 만남이지만 신뢰할 수 있다 판단하였기에 해달라는 대로 해준 것이다.
거의 네 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가계약서가 작성되었다. 도장을 찍은 직후 은정은 현수의 지시에 따라 계좌에 있던 현금을 송금해 주었다.
점심은 현수가 샀다.
주윤우 사장은 거듭해서 감사 표시를 했다.
어제 현수가 다녀간 직후 미스 김은 현수가 어쩌면 사기꾼일 수도 있음을 주지시키려 애썼다.
20억이나 되는 거금을 쓰기에 극동 솔라파워는 너무도 별 볼일 없는 기업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하나 주윤우 사장의 의견은 달랐다. 그렇기에 눈물을 머금고 퇴직시켰던 사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극동 솔라파워가 어쩌면 기사회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밀려 있던 급여까지 한꺼번에 해결될 희망이 생겼음을 알린 것이다.
전화를 받은 직원 대부분 극동 솔라파워로 몰려들었다. 워낙 취업하기 힘든 세상인지라 거의 대부분 백수였기 때문이다.
주윤우 사장의 성품을 알기에 월급이 밀려 있어도 항의 한 번 안 하던 직원들이다.
미스 김의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어쩌면 사기일 수도 있다는 그녀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만한 돈을 투자도, 기성고도 아닌데 내놓을 일이 없다 생각한 것이다.
오늘 아침, 극동 솔라파워 사무실이 모처럼 북적였다. 혹시나 해서 모두가 모여든 것이다.
돈을 받으면 무조건 회식이고, 못 받아도 오랜만에 옛 동료와 점심이나 같이 먹을 요량이다.
어쨌거나 이실리프 무역상사를 나온 주윤우 사장은 버스 정류장 인근 공지에서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띠리링! 띠리리리링!
“여보세요. 극동 솔라파워입니다.”
“아, 최 과장……? 나 사장이네.”
“네, 사장님! 가셨던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흐흑, 최 과장! 흐흐흑……!”
주윤우 사장이 말을 하다말고 갑자기 격하게 흐느끼자 최 과장이란 사람의 음성이 급격하게 올라간다.
“사, 사장님! 설마, 사기였습니까? 그놈이 사장님을 속인 거예요? 어떤 놈입니까? 대체 어떤 놈이 감히……!”
최 과장의 음성은 곁에 있던 직원들의 핏대 올린 소리에 파묻혔다.
“에이, 그럴 줄 알았어. 요즘 같은 세상에…….”
“대체 어떤 새끼가 우리 사장님 같은 분에게 사기를 치는 거야? 콱 죽여 버릴까?”
“그래, 나쁜 놈이네! 그렇지 않아도 곤란한 사장님한테…….”
“야, 우리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그 괘씸한 놈 사무실에 쳐들어가자.”
“그래! 가서 다 때려 부숴 버리자.”
“어떤 십장생 같은 놈이……! 카아아악, 퉤에……!”
직원들이 한바탕 분노하고 있을 때에도 수화기에서 귀를 떼지 않은 최 과장이 입을 열었다.
“사장님! 그냥 오세요. 저희가 쐬주 한 잔 올릴게요.”
누군가가 또 곁에서 소리를 지른다.
“그래요, 사장님! 오늘 제가 술 사드릴게요. 짠돌이 박 대리가 사장님께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흐흑! 최 과장. 흐흐흑……!”
“네, 사장님!”
“흐흑! 기뻐하게! 우린 이제 살았어. 살았다고……!”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흐흑! 흐흐흑……!”
“사장님 전화 줘보세요.”
주윤우 사장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쏟아지는 동안 미스 김 역시 엊저녁부터 밤새 술 먹은 여자처럼 벌건 눈이 되어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사장이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눈물을 흘렸기에 전화기를 빼앗아 든 것이다.
예의는 아니지만 시화공단에서 애를 태우고 있을 전직 선배사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다.
“최 과장님! 저 미스 김인데요.”
“그래, 미스 김! 대체 사장님이 뭐라 하시는 거야? 그리고 어서 모시고 내려와. 오늘은 우리가 살게.”
“최 과장님!”
미스 김이 소리를 빽 질렀다.
“그래. 왜?”
“방금 계약서 썼어요. 그리고 우리 회사로 현금 20억 원이 송금되었구요. 사기꾼이 아니었어요.”
“뭐, 뭐라고? 정말……?”
“네, 나중에 저 이실리프 무역상사 김현수 사장님한테 무릎 꿇고 빌어야 하는 거죠?”
“저, 정말이야? 계약서 썼어? 돈도 줬고?”
최 과장이 언성을 높이자 시끄럽던 주위가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대체 무슨 영문인가 싶은 것이다.
“네, 계약금 20억 원. 전액 현금으로 송금되었어요. 제가 확인했어요. 흐흑! 우리 이제 실업자 아니에요.”
“미, 미스 김……!”
“네. 이제 백수 생활 안 하셔도 돼요. 사장님이 전부 복직시키신다고 했어요. 흐흑! 흐흐흐흑……!”
미스 김 역시 오열하기 시작하자 지나던 사람들이 둘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40대 중년과 20대 꽃다운 처녀가 불륜을 저질렀는데 본 마누라에게 들켜 개박살 난 모양 같았기 때문이다.
하여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곤 나름대로 삼류소설을 쓰곤 손가락질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둘은 한참을 울었다.
삐익! 삐익! 삐이이익!
“뭡니까? 무슨 일 났습니까?”
교통정리를 하던 김 순경이 호각을 불며 다가서자 누군가 자신이 쓴 삼류소설을 이야기했다.
물론 자기 생각이라는 말을 빼지 않았다.
“선생님, 이분이 하신 말씀이 사실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