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25화 (125/1,307)

# 125

김 순경의 말에 주윤우 사장의 들썩이던 어깨가 잦아들었다. 하나 다시 크게 들썩이기 시작했다.

“흐흑! 여러분! 저 이제 살았습니다. 퇴직했던 우리 직원들도 전부 복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직원 가족들이 겪었을 고난을 생각하면……. 흐흑! 이제 살았습니다. 흐흐흑!”

몇 마디 말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결말에 맥이 빠진다는 표정을 지었다.

“뭡니까, 방금 전의 그 말은……? 이분이 이 아가씨와 불륜이라고 했습니까?”

“저어, 그, 그게 아니라. 제가 그랬잖아요. 순전히 내 생각이라고…….”

“뭐라구요……?”

그렇지 않아도 막히는 교통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쓸데없는 일까지 끼어들게 만든 것이 괘씸하다는 듯 김 순경이 언성을 높이자 소설을 썼던 30대 아주머니는 줄행랑을 놓았다.

이 순간 미스 김이 들고 있던 핸드폰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 만세! 만세! 와아아아아!”

“극동 솔라파워 만세! 만세! 와아아아아아!”

구경하던 사람들이 흩어질 때까지 미스 김은 전화를 끄지 않았다. 직원들의 환호성이 주윤우 사장의 귀에 들어가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직원들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현수는 품고 있던 복안을 털어놓았다.

이실리프 무역상사의 모든 수익과 천지약품에서 발생되는 이득금을 전부 투자하여 대단위 커피농장과 축산단지를 조성할 것이라는 사업 계획을 이야기한 것이다.

수진과 지혜, 그리고 은정은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콩고민주공화국과 한국 모두에게 이득이 될 일이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

또한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필리핀에는 델몬트사 소유인 파인애플 농장이 있다.

민다나오섬 중부 부키드논(Bukidnon) 지역에 있는 것이다.

농장 입구엔 노동자를 위한 캠프 필립스가 있다. 이곳을 지나면 527만 평 규모의 파인애플 숲이 펼쳐진다.

여의도 전체 면적의 두 배가 넘는 면적이다.

그런데 현수가 생각하는 커피농장의 시작은 이것의 두 배 정도 되는 1,000만 평 규모이다.

땅값이 거의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 콩고민주공화국 정부는 흔쾌히 무상 불하할 것이다. 자국민의 일자리가 엄청나게 늘어나는 일을 왜 마다하겠는가!

그 곁에 다시 1,000만평 규모의 우사, 돈사, 계사가 지어질 것이다. 어쩌면 더 넓은 면적이 될 수도 있다.

그곳은 한국과 콩고민주공화국 양국에 신선한 육류과 우유, 그리고 계란을 공급하는 기지가 될 곳이다.

뿐만 아니라 유가공 공장과 축산물 가공공장도 지어진다.

이것의 인근엔 축산분뇨를 처리하는 공장이 들어설 것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유기질 비료는 농장에 뿌려질 것이다.

여기에 종사할 종업원들은 농장 중심부에 위치한 곳에 거주하게 된다.

현대의 공법으로 작은 도시가 조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처럼 고층 아파트 단지는 결코 아니다.

4층 이하의 연립주택 단지들이 들어서게 된다. 이들을 위한 병원도 지어지고, 위락시설도 만들 생각이다.

교육을 위한 각급학교도 지을 생각이다.

식민지처럼 단물만 뽑아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

2,000만 평이면 여의도 전체 면적의 여덟 배 정도 된다.

대한민국의 인구밀도를 적용시킨다면 적어도 인구 3만짜리 소도시가 생기는 것이다.

한국에서처럼 이들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킬 시설을 갖추려 한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 것이다.

하나 콩고민주공화국은 한국과 다르다. 물가도 싸고, 인건비도 싸며, 부동산 값도 거의 없다.

그리고 사람들이 바라는 욕구도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에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이런 일을 해내고야 말겠다고 했다.

그곳에서의 산물은 콩고민주공화국 내수용을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 한국으로 수입될 것이다.

쇠고기, 돼지고기 등은 당당히 미국산과 경쟁한다.

물론 가격 경쟁력 면에서도 우월하고 맛에서도 이길 것이다. 미국보다 콩고민주공화국의 모든 것이 훨씬 싸기 때문이다.

그리곤 한국의 많은 것들이 수출될 예정이다. 그것은 콩고민주공화국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줄 것이다.

또한 아프리카 대륙에 무공해 내지는 저공해 산업이 발전될 토양이 되게 하겠다고 했다.

이야기가 끝날 즈음 은정과 수진, 그리고 지혜는 존경의 눈빛으로 현수를 바라보았다.

그저 운이 좋아서 돈을 왕창 벌 수 있는 루트를 뚫은 사람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뜻이 너무 원대하다.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서 오십시오. 민 사장님!”

“네에. 어제 보고 오늘 또 보는군요. 이쪽은 우리 회사 법률고문인 송승원 변호사입니다.”

“반갑습니다. 김현수라 합니다.”

“네에. 송승원입니다.”

송승원 변호사는 민윤서 사장 건너 쪽 소파에 앉았다. 셋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송 변호사였다.

“어제 민 사장님으로부터 투자에 관한 내용을 들었습니다. 김현수 사장님께서는 대한동물약품의 주식 49%를 인수하는 대신 45억 원을 지불하신다고 하셨다는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럼 이 서류를 살펴봐 주십시오.”

송 변호사가 넘긴 서류는 소유지분 분할계약서였다.

내용을 읽어보니 약정한 대로 되어 있기에 서명을 했다.

“서명을 하셨으니 약속한 대금을 지불해 주셔야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해주실 거지요?”

송 변호사의 말에 현수는 책상 아래에서 박스들을 꺼냈다. 안에는 1㎏ 단위로 주조된 금괴가 들어 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인증된 골드바라는 뜻인 GDB(Good Delivery Bar) 마크가 찍혀 있다.

이것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어린 소녀들을 상대로 변태짓을 하던 왕가 약포에서 가져온 것이다.

“오늘 아침에 확인해 보니 1g당 62,586원이 도매가이고, 소매가는 70,693원이더군요.”

싯누런 금괴들이 담긴 상자를 본 민윤서 사장과 송승원 변호사는 눈빛을 빛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계속 금괴가 담긴 상자를 꺼내 놓으며 입을 열었다.

“도매가 기준으로 따지면 71.901㎏이고, 소매가로 따지면 63.655㎏이 됩니다. 민 사장님, 이걸로 받으시겠습니까?”

“으음, 현물로 받겠습니다.”

요즘은 은행 정기예금 이율이 4% 미만이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금에 투자를 하는 시기이다.

“송 변호사님! 이럴 때는 어떻게 환산을 해야 합니까?”

“으음, 뭐라 의견 드리기 곤란한 질문이군요.”

송 변호사가 슬쩍 발을 뺀다.

원래는 민윤서 사장의 편을 들어주어야 한다. 대한약품의 고문변호사이자 민 사장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와서 보니 적대 관계가 아닌 상당히 우호적인 분위기이다. 이런 시점에 민 사장의 편을 들어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어찌 그 뜻을 모르겠는가! 현수가 싱긋 웃음 지었다.

“민 사장님은 대한동물약품을 인수한 이후 손해가 막심하였습니다. 그러니 일흔두 개를 드리지요.”

“네……? 그,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앞으로 회사를 잘 운영하셔서 제게 막대한 이익을 남겨주시면 됩니다. 하하하!”

“아, 네에…….”

민윤서 사장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안절부절못했다. 상대가 무조건적인 신뢰와 더불어 너무 많이 베풀기에 괜히 민폐 끼친 기분이 든 탓이다.

“참, 이런 거 여쭤봐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현수가 정색하자 민 사장이 시선을 맞췄다. 송 변호사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대한약품의 주식배분율은 어떤지요? 물론 민 사장님이 대주주시겠지요?”

“네에, 하지만 현재 제 지분은 12%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럼 39%쯤이 우호지분인가 보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주들의 알력은 없습니까?”

현수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사실을 말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든 민 사장이 입을 열었다.

“그런 게 없을 리가 없지요. 주식 9.5%를 소유한 박 전무를 비롯한 여러 이사들의 견제를 받고 있습니다.”

자기 입으로 말했지만 민 사장은 왠지 치부를 들킨 기분이 들었다. 하여 얼굴을 붉혔다.

“대한약품은 상장기업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소액주주들의 지분은 어떤지요?”

“제가 파악한 바론 22% 정도 됩니다.”

“그렇다면 제가 주식을 사도 되겠습니까?”

“그게 무슨……?”

“뜻대로 경영하려면 마음이 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대한동물약품을 인수할 때 주주들의 반대가 극심하여 개인 재산으로 그것을 사들였다 하셨습니다. 그때 대한약품 지분을 파신 거죠?”

“그렇습니다.”

현수의 예상대로 민윤서 사장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의 상당량을 지인들에게 넘겼다. 그렇기에 12% 지분만 있음에도 대표이사 직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받은 금괴는 계속해서 값이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주식이 어디 가는 것 아니며, 요즘 주식값이 조금씩 하락하고 있으니 금값이 오르면 그때 처분하여 되살 생각을 했다.

그런데 현수가 주식을 매집할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여 그 속뜻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금 시세의 도매가와 소매가의 중간 정도 가격인 65,000원으로 따졌을 때 대한약품 주식 100억 어치는 약 154㎏에 해당됩니다.”

대체 무슨 이야길 하려는지 다 들은 뒤에 대답하겠다는 듯 민윤서 사장은 눈빛만 빛냈다.

송승원 변호사도 말없이 현수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조금 전 현수는 일흔두 개의 금괴를 지불하면서 네 개의 상자를 꺼냈다. 그리곤 여덟 개를 꺼냈다.

상자당 1㎏짜리 금괴가 스무 개씩 들어 있다는 뜻이다.

그런 상자가 전부 열두 개가 있다.

순도 99.9%짜리 24K 금괴가 240개나 있었던 것이다.

일흔두 개를 지불했으니 이제 남은 건 168개이다.

“민 사장님께서 주식을 넘겼던 분들에게 연락하여 되팔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봐 주십시오.”

“……?”

“민 사장님이 넘기실 땐 118억 가치였지만 오늘 시세로 따져보면 100억 원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날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지요. 그러니 거래가 되지 않겠습니까?”

민윤서가 주식을 넘겼던 상대는 고등학교 동창들이다.

변호사, 의사 등 소위 돈 좀 번다는 친구들이기에 조금 깎아서 넘겨줬었다. 이들은 고수익을 기대했다.

그런데 주식 양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외국계 제약사의 대대적인 인수합병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 결과 국내 자본으로 설립된 자잘한 중소 제약사들 대부분이 넘어갔다. 그리곤 회사명 자체가 사라졌다.

다국적 기업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한동물약품도 본래는 그럴 운명이었다. 그런데 민윤서 사장이 사들였던 것이다.

“송 변호사! 네 생각은 어때?”

“나야 좋지. 시세대로 사주는데 금은 도매가에 가깝게 주신다니 이 기회에 내 지분도 팔았으면 해.”

“김 사장님! 잠깐만요.”

민윤서 사장의 뜻을 파악한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다녀오겠습니다. 충분히 상의하십시오.”

“감사합니다.”

현수가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에 송 변호사와 민 사장은 주식을 보유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의사를 타진했다.

“어떻게 결론이 났습니까?”

“네, 김 사장님의 뜻대로 주식을 양도하겠답니다.”

“아, 그래요? 송 변호사님!”

“네, 말씀하십시오.”

“주식양도양수에 관한 업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물론 수임료는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솔직히 제가 보유한 주식도 처분하는 겁니다. 좋은 값에 사주시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그렇다면 저야 감사하지요.”

송 변호사는 현수로부터 일체의 업무에 대한 위임장을 받았다. 금괴는 계약서가 모두 작성되면 지불하는 것으로 했다.

현수는 이제 대한약품의 최대주주가 되었다. 보유물량이 39%이니 민 사장의 지분과 합치면 51%가 된다.

이제 안정적으로 경영권이 확보된 것이다.

민 사장은 혹시라도 현수가 경영권을 탐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나 이는 기우라는 걸 금방 깨달았다.

콩고민주공화국에 설립될 대단위 커피농장과 축산단지, 그리고 유기질 비료 생산 공장을 떠올린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대한약품과 대한동물약품은 새발의 피밖에 되지 않는다.

민 사장과 송 변호사는 저녁까지 먹고 갔다.

식사비는 송 변호사가 냈다. 친구 때문에 처분조차 못하고 보유만 하고 있던 주식을 팔았기에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덕분에 은정과 수진, 그리고 지혜도 포식했다.

“흐으음, 커피 묘목은 국내엔 없으니 현지에서 알아봐야겠군. 그럼 이제부터 뭘 하지?”

창가에 턱을 괴고 앉아 창밖을 내다보던 현수의 눈에 택시 하나가 뜨였다.

자동차가 아니라 문에 붙어 있던 광고가 보인 것이다.

우리의 24시간은 고객들을 위한 시간입니다. 백두마트!

“그렇군! 놈들을 잊고 있었어.”

사무실을 나선 현수는 백두마트 서초점으로 향했다.

『전능의 팔찌』 제6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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