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30화 (130/1,307)

# 130

하긴 한의사도 아닌 녀석이 팔목 한번 붙잡아보고 이런 증상을 모두 맞추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주영은 자신이 겪고 있는 복합적인 증상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암일 확률이 대단히 높다고 한다.

하나 건강검진을 받으러 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만에 하나 암이라는 진단이 내려질까 두려워서이다.

“인마, 엉아가 명의한테 사사했다고 했잖아. 안 믿었냐?”

“그, 근데 내 병명은 뭐냐? 서, 설마 암은 아니지?”

‘그래’라고 말을 하면 입술이 좌우로 벌어진다. ‘아니’라고 말을 하려면 입술이 위아래로 벌어진다.

주영은 현수의 입술만 바라보았다. 이때 현수의 입술이 움직이려 한다. 그런데 좌우로 벌어진다.

순간 주영은 절망했다. 암을 치료할 돈도 없다. 게다가 증상이 심해지면 교습소도 운영할 수 없다.

세상의 낙오자가 된 것도 억울하다. 거기에 쓸쓸한 죽음이 코 앞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글썽였다.

종교는 없지만 문득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이런 불행을 연속적으로 주는지 원망스러울 뿐이다.

하여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 순간 현수의 말이 이어졌다.

“당연히 아니지. 암은 무슨……! 인마, 넌 우울증이야. 그것도 만성!”

주영의 고개가 당연히 번쩍 들린다.

“만성우울증? 치, 치료는 가능하냐?”

“인마, 내가 신의냐? 만성우울증을 침 몇 방으로 고치게?”

“그, 그럼…….”

현수의 말에 주영이 어떻게 하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이때 현수가 얼굴을 굳히며 나직이 속삭였다.

“그건 치료 못한다. 하지만 니 팔은 고쳐줄 수 있지.”

“……! 너, 너 방금 뭐라고 했냐?”

주영의 눈이 왕방울만 하다.

“만성우울증은 밥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고, 긍정적인 사고로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 고쳐진다.”

“그 말 말고!”

“니 왼팔은 내가 고쳐줄 수 있다고 했다.”

현수의 담담한 음성에 주영의 눈이 또 커진다.

“저, 정말이냐?”

“쨔식! 멀리서 일부러 찾아왔건만……. 내가 너한테 뭐하러 거짓말하겠냐?”

“……!”

“지금은 열심히 술 마시자. 팔은 내일 고쳐줄게.”

“……!”

주영은 결국 고주망태가 되었다. 현수는 주영을 업고 여관을 찾아다녔다. 하나 어느 곳 하나 입실을 허락지 않았다.

밤새 방을 돌려야 하는데 술이 떡이 된 놈이 방을 차지하면 안 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침대에 토해 놓을까 봐 그러는 모양이다.

“쳇, 인심 한번 더럽게 야박하네.”

현수가 주영을 내려놓은 곳은 조그마한 공원이다. 밤이 깊어 그러는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바디 리프레쉬!”

샤르르르르릉!

마나가 뿜어져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영이 정신을 차린다. 역시 멀린표 마법은 위대하다.

“끄으응! 여긴…….”

“웬 술을 그렇게 먹냐? 밤이 늦었다. 집이 어디냐?”

주영이 고개를 휘휘 둘러보더니 손짓을 한다.

“저기 저 집. 302호.”

“그래, 가자!”

터덜터덜 걸어서 도착한 원룸은 개판이었다.

“야……! 밥은 해먹고 사냐?”

가스렌지 곁에는 빈 라면 봉지가 수북하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단무지와 김치뿐이다.

주영은 현수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안다는 듯 왼팔을 보여준다.

“팔이 이래서…….”

사방이 어질러져 있어 현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다 세탁기를 보니 최소 열흘치 빨래가 쌓여 있다.

“빨래는 안 해?”

“하지. 열흘에 한 번.”

주영이 원래 이렇게 게으른 녀석이었는지를 생각하던 중 벌여놓은 좌탁을 보았다. 위엔 교재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데 붉고 푸른 글씨가 보인다.

안력을 높여 읽어보니 수업 준비를 한 모양이다.

“팔이 이래서 밥을 하는 것도, 빨래는 하는 것도 솔직히 힘들다. 그래도 열심히 살고 있으니 너무 타박 마라.”

“그러냐?”

“그래, 내일부터 힘내서 애들 가르칠 거다. 그러다 보면 애들도 늘고, 나도 돈을 벌겠지.”

주영은 아까 현수가 했던 말을 잊은 듯하다. 워낙 많이 마셔서 고주망태가 되는 바람에 필름이 끊긴 모양이다.

현수는 굳이 다시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다.”

“자, 이거 빨래해서 장롱 속에 넣었던 거라 더럽지 않다. 넌 이거 써라.”

주영이 이불 한 채를 꺼내놓고는 바닥에 늘어진 것들을 발로 쓱쓱 밀어낸다. 보다 못한 현수가 나서서 정리했다.

“자라!”

“안 씻고 자냐?”

“귀찮다.”

“에구, 드런 놈! 씻지도 않고 자리에 들어가?”

그러거나 말거나 주영이 자리에 눕는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를 곤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 듯하다.

“어휴! 이 자식……! 이게 사람 사는 데야? 돼지 소굴이지.”

요를 깔려고 바닥을 살핀 현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언제 흘렸는지 알 수 없을 라면 국물과 김치 국물이 말라붙어 있었던 때문이다. 하도 오래되어 끈끈하지도 않다.

현수가 잠든 주영을 바라보았다.

“그래, 인마! 그간 고생 많았다. 힘들게 살았으니 오늘은 오랜만에 푹 자라. 딥 슬립!”

마법이 구현되자 웅크렸던 몸이 스르르 펴진다. 스트레스 때문에 자는 자세조차 좋지 않았던 것이다.

“좋아, 그럼 한번 치워볼까? 클린! 어쭈, 안 지워져? 워싱!”

마법이 구현될 때마다 눈에 뜨이게 달라진다.

세탁기도 돌렸다. 현수 역시 원룸에서 살았기에 이런 청소에는 일가견이 있다.

싱크대에 수북하던 그릇들은 워싱 마법 한 방으로 끝냈다.

이웃집을 고려하여 논 노이즈(Non Noise) 마법이 구현되었는지라 일체의 소음 없이 청소되고 있었다.

분리수거할 것은 분리수거하고, 버릴 것은 내다 버렸다. 그러는 사이에 세탁이 끝났다.

그럼에도 워싱 마법과 클린 마법이 한 번 더 구현되었다. 덕분에 새로 산 것처럼 말끔해졌다.

“데시케이션(Desiccation)!”

건조 마법이 구현되자 바싹 마른다.

“타이디 디 오브젝트(Tidy the object)!”

영화 메리 포핀스5)를 보면 빨래가 개어져 서랍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현수의 마법에 의해 지금 그 장면이 재현되고 있었다.

서랍이 차례로 열리면서 상의는 상의끼리 하의는 하의끼리 정돈되었다. 팬티며 양말만 따로 한 칸이다.

옷장을 열어보니 때에 쩔어 있다. 다 꺼내서 세탁했다. 그 결과 이것들 역시 새 옷처럼 깨끗해졌다.

지저분하던 바닥은 초강력 세제로 닦아낸 듯 깨끗하다. 물론 워싱과 클린 마법의 결과이다. 여기저기 늘어져 있던 그릇들 역시 깨끗이 닦인 채 정돈되었다.

아르센 대륙의 마법사 역시 청소하기 싫어한다. 멀린이라 하여 어찌 다르겠는가!

현수가 몰라서 그렇지 유난히도 깔끔 떨던 위인이다. 그렇기에 멀린의 각종 청소 마법은 상당히 효율적이었다.

주영이 깔고 자는 이불과 요, 그리고 베개까지 모두 새것처럼 깨끗해진 것은 새벽 6시경이다.

“흐음, 그럼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잠든 주영의 곁에 앉은 현수는 그의 왼팔을 잡고 마나를 불어넣었다.

“마나여, 잘못된 곳을 원상 회복시켜라. 리커버리!”

샤르르르르릉―!

서늘한 푸른 빛 마나가 스며든다. 상당히 많은 양이 빠져나가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수술이 잘못되었던 것 같다.

하나 무한정 빠져나간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가 되자 점차 마나의 분출이 줄어든다.

현수는 아공간에서 회복 포션을 꺼냈다. 그리곤 반병을 주영의 입에 넣어주었다. 경각지경이 아니므로 반병이면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다음엔 왼팔을 마사지해 줬다. 마나가 보다 부드럽고 빠르게 유통되도록 길을 잡아주기 위함이다.

아침 7시경이 되자 마사지를 멈췄다. 대신 침통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주영의 손과 팔에 여러 개의 침을 시침했다.

대략 열 개쯤 찔러놓고는 마법을 해제했다.

“매직 캔슬!”

“끄으응!”

오랜만에 실컷 잠을 잔 주영이 깨어나려는 순간 들고 있던 침을 박았다.

“으으윽……!”

“주영아! 아파도 조금만 참아. 지금 침놓는 중이야.”

“……!”

느닷없는 통증에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주영의 움직임이 멈췄다. 감각이 없던 왼팔에서 느껴지는 통렬한 통증 때문이다.

현수가 침을 놓은 곳은 경혈이 아니다.

아르센 대륙에 있으면서 용병들을 대상으로 침을 놓았었다. 그러는 동안 압점과 통점이 어디에 많은지를 깨우쳤다.

압점이란 피부에 가해지는 압력을 느끼는 감각점(Sensory spot)이다. 통점은 고통을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각점이다.

통점의 경우 1㎠ 당 90∼150개가 분포되어 있다. 압점은 25개, 냉점은 6 23개, 온점이 0 3개로 가장 적다.

이러한 감각점은 손가락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렇기에 손가락에 침을 놓았던 것이다.

“아프지? 아픈 건 네 팔의 감각이 돌아왔다는 거야. 그러니까 죽을 만큼 아픈 게 아니면 꾹 참아. 알았지?”

주영의 고개가 힘차게 끄덕여진다. 팔의 감각만 돌아오면 어떤 일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주영은 5분 정도 더 고통에 시달렸다. 고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팔 움직여 봐.”

“움직여……! 현수야, 내 팔이 움직인다.”

“꼬집어도 봐.”

“그, 그래!”

주영은 제 팔의 여기저기를 힘껏 꼬집었다.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 고통이 오히려 반가웠다.

어느새 주영의 얼굴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자, 이제 팔은 고쳐졌어. 너, 앞으로 어떻게 살 거니? 계속해서 애들 가르치면서 살 거야?”

“……!”

“어제 말을 안 한 게 있는데, 나 회사 하나 차렸다. 잘 나가는 무역회사야. 너 숫자가 좋아 수학과에 입학했는데 정작 숫자는 안 다룬다고 투덜댔었지?”

“그래.”

“우리 회사로 와라. 숫자 엄청나게 다루게 해줄게.”

“애, 애들은? 가르치던 애들은 그냥 팽개치고……?”

“아니, 우리 회사 탄력근무제다. 일찍 출근해서 볼일 다 본 다음에 퇴근해서 가르치면 되잖아.”

“겸직금지 뭐 이런 거 없어?”

“내가 사장이다. 우리 회산 그런 거 없어. 다른 일을 더해서 돈을 더 번다면 좋은 일 아니냐?”

“고맙다. 깊이 생각해 볼게.”

“오냐! 하지만 너무 오래 생각지는 마라. 사람 다 뽑고 나면 너 있을 자리 없을 수도 있다.”

“그래, 고맙다. 잘 생각해 보고 대답할게.”

현수는 주영과 인근 식당에서 아침을 같이 먹었다. 집 안에 라면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 *

“사장님, 아까 전화하셨던 손님 오셨습니다.”

“그래요? 안으로 모시세요.”

비서의 안내를 받아 사장실에 들어가니 웬 조폭이 서 있다.

키는 175㎝ 정도 되는데 몸무게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0㎏은 족히 될 덩치 큰 사내이다. 머리카락도 짧은 편이다.

그나마 금테 안경을 써서 분위기가 많이 나아진 것이다.

“안녕하세요? 이실리프 무역상사의 김현수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울림 네트워크의 박동현 대표입니다.”

악수를 하고 명함을 주고받았다.

자리에 앉자 비서가 오렌지 주스를 가져온다.

“저희 회사엔 어떤 용무이신지요?”

“울림 네트워크의 스피드 수출 건 상담 때문에 왔습니다.”

“그래요? 어떤 나라에서 오퍼가 온 건가요?”

“오퍼가 온 건 아니고 제가 수출하고 싶어서 온 겁니다.”

“그래요? 저희 회사는 어떻게 아시고…….”

“김형윤 상무님이 제 고등학교 선배님이십니다.”

“아! 우리 김 상무님의 후배시군요. 근데 어쩌죠? 지금 미국 출장 중이신데. 전화 연결을 해드릴까요?”

박동현 사장이 전화기를 들기에 현수가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김 상무님하고는 나중에 이야기하면 됩니다.”

“네, 그럼 그러시죠. 한데 김 사장님이 수출하고 싶다는 말은 무슨 말씀이신지요?”

“동문회에서 김 상무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그때 스피드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지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그러시군요.”

“상당히 여러 나라에 수출하는 것으로 나오더군요.”

“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러시아 등 여러 나라와 계약을 체결했지요.”

박동현 사장은 자랑스럽다는 표정이다. 하긴 울림 네트워크는 중소기업이다. 이런 회사에서 수제 스포츠카를 생산해 냈다.

이 수제 스포츠카 스피드는 서킷에서 레이싱용 포르세 GT3를 이긴 적이 있다. 어설픈 GT3가 아니라 이레인이라는 명문팀을 상대로 한 경기였다. 차량 내구성 테스트를 위해 출전한 경기에서 이변을 일으킨 것이다.

“러시아엔 부품 형태로 수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CKD 형식 수출로 110대 분입니다.”

“저는 완제품으로 수출하려 합니다. 대상국은 러시아이구요.”

“대수는 얼마나……?”

박동현 사장은 흥미있다는 표정이다. 하긴 차 팔아주겠다고 왔는데 어찌 싫어하겠는가!

“그보다 먼저 스피드의 월 양산 대수가 얼마나 되는지요?”

“월 양산 대수는…….”

박동현 사장은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중소기업은 공통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이것 때문에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자금 조달이다.

울림 네트워크도 자금난 때문에 많은 대수를 생산해 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쉽게 말을 잇지 못한 것이다.

오늘 이곳에 오기 전 현수는 상당히 많은 자료 조사를 하고 왔다. 그렇기에 스피드의 가격과 제원을 모두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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