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33화 (133/1,307)

# 133

“오일러는 아이들에게 거지가 되는 걸 ‘꼭 모면’하라고 했지. 거지로 살아봤으니까 얼마나 비참한지 알잖아.”

“그래서요?”

“그리곤 또 한마디 했어.”

“뭐라고요?”

“거지가 되는 걸 꼭 모면하고 베푸는 이가 되라고 했지. 너희들 베푸는 이가 뭔지는 알지?”

“네에.”

아이들이 대답하는 동안 주영이 칠판에 무언가를 적었다.

“우와! 왕 사기!”

“선생님! 이거 선생님이 꾸며낸 이야기죠?”

“그쵸? 선생님 순 사기꾼! 우와, 우리가 속은 거야.”

순식간에 수업 내용으로 돌아가자 아이들이 난리를 친다. 배신감이라도 느낀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영의 입가엔 미소가 어려 있다. 오늘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때문이다.

“자, 오일러의 거지 같은 공식은 입체 도형에 빨대를 꽂은 다음 훅 불었을 때 공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에만 해당된다.”

“몰라요!”

“화장실의 두루마리 휴지 같은 입체 도형엔 오일러의 거지 같은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거 잊지 마라.”

“그것도 몰라요.”

“좋아, 그럼 오늘 수업 안 끝난다. 누구의 무슨 공식?”

“오일러의 거지 같은 공식이요.”

“그래, 어떤 도형에 적용된다고?”

“빨대를 꼽아 훅 불었을 때 공처럼 부풀어 오르는 거요.”

“그래! 오일러가 뭐하고 했다고?”

“거지가 되는 걸 꼭 모면하고 베푸는 이가 되라고 했어요.”

“오케이! 오늘 수업 끝!”

우당탕탕! 콰당! 와르르! 우당탕!

온갖 소리가 다 나는가 싶더니 교습소 문이 열림과 동시에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짜식! 오일러가 거지였다고?”

“내가 그랬잖아. 아이들은 그래야 공불 한다고.”

“하여간 기발하긴 하다. 크크크, 오일러의 거지 같은 공식!”

“와줘서 고맙다.”

“그래, 근데 무슨 일로 도와달라는 거야?”

“일단 앉아봐라.”

자리에 앉자 주영이 몹시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곤 입을 열어 사정을 이야기했다.

이곳에 처음 이사와 교습소를 열었을 때 첫 번째 학생은 곽호균이란 녀석이다. 이 녀석의 아버진 자그마한 공장을 운영했었는데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망하고 말았다.

그 후 호균의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별의별 일을 다 했다. 그러다 결국 공사판의 막노동까지 하게 되었다.

몸은 고되지만 특유의 성실성을 인정받아 붙박이 일꾼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계공 보조가 되었다.

비계(Scaffolding, 飛階)란 건축공사 때에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가설물이다.

이것은 건축에 필요한 재료 운반이나 작업원의 통로 및 작업을 위한 발판으로 사용된다.

아무튼 호균의 아버지는 비계를 설치하기 위해 파이프를 전달하던 중 어지럼증 때문에 균형을 잃고 추락하고 말았다.

그날 이후 하반신 마비가 되어 누워 있게 되었다.

가장의 갑작스런 사고로 호균은 교습비를 낼 형편이 못 되어 그만 다닌다고 했다.

일련의 상황을 알고 있던 주영은 돈은 안 내도 되니 더 다니라 하여 그 후 1년 정도를 더 배울 수 있도록 해줬다.

그러다 결국 그만두었다. 주영에게 너무 미안했던 때문이다.

그 이후 호균의 어머니 조연순 여사께서 많은 아이들을 소개해 줬다. 다이어리를 펼쳐보니 무려 스물세 명이다.

5장 우정이 깊어가는 밤

오늘 낮 호균의 어머니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시장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 상인의 아이들을 소개해 주는 것이다.

고마움을 느낀 주영은 현수의 당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호균의 어머니에게 팔을 고쳤음을 이야기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달려온 조연순 여사는 주영의 팔을 이리저리 만져보며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주영은 결국 현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조연순 여사는 안 나아도 좋으니 한 번만 와서 봐달라는 청을 넣어달라고 했다.

주영은 너무도 미안한 마음에 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목소리가 그랬던 것이다.

“야! 내가 분명히 말했지. 나 의사 아니라고. 이거 엄연히 치료 행위야. 의료법 위반으로 잡혀간다고.”

“미안하다. 이번 한 번만, 딱 한 번만 봐주라. 응?”

“야, 안 돼!”

“현수야, 나 그 어머니에게 신세를 너무 많이 졌어. 사실 우리 교습소가 간신히라도 적자를 면한 건 그 어머니가 애들을 많이 소개해 줬던 때문이야. 그러니까 딱 한 번만 봐주라. 응?”

주영의 표정을 본 현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에이, 알았다. 근데 이거 하나만 약속해! 이번이 마지막이야. 알았지? 나 의사 아니라는 거 니가 잘 알잖아.”

“그래, 알아.”

“나, 니 팔 고쳐주려고 마비된 거 치료하는 방법만 배운 거야. 근데 하반신 마비라니……. 가서 보기는 하지만 낫게 해준다는 보장 없다는 거 알지? 그거 꼭 말해야 해.”

“알았다. 알았어. 일단 가자.”

주영의 안내를 받아간 곳은 장미맨션 B―102호이다. 말이 맨션이지 허름한 연립주택이다. 그리고 B는 Base의 이니셜이다. 다시 말해 지하 1층 2호라는 뜻이다.

어두컴컴한 계단을 딛고 내려가 벨을 눌렀다.

띵똥―!

“누구세요?”

“아. 호균 어머니, 접니다. 민 선생!”

“네, 선생님!”

문이 열리자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다소 통통한 아주머니가 얼른 고개를 숙인다.

“어서 오세요. 선생님! 이분이 그…….”

어찌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가!

“네, 민 선생 친구 김현수입니다.”

“아이고, 먼 길 일부러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안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퀴퀴한 냄새가 난다.

하반신 마비 환자가 있기에 실내에서 대소변을 받아냈을 것이다. 환기가 잘 안 되는 지층이니 음식 냄새 등이 섞여 해괴망측한 악취가 된 것이다.

“선생님, 우리 그이 좀 꼭 고쳐주세요. 우리 그이는…….”

호균의 부모는 가족이 반대하는 결혼을 했다. 학벌도 재산도 보지 않고 오로지 사람 하나만 믿고 한 결혼이다.

하여 정말 성실히 살았으나 불의한 놈들이 많은 사회이다. 선량한 사람이 늑대 같은 놈의 속임수에 속아 가진 걸 모두 잃고 빈털터리가 되었어도 애정만은 식지 않았었다.

그러다 사고를 당해 극빈층에 가까운 수준이 되었다. 그럼에도 서로를 아끼고 애틋하게 여긴다고 한다.

물어보니 시장에서 조그만 신발 가게를 한다고 한다. 시간되면 한 켤레 사러 가겠다고 했다.

“이제 환자를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치료를 하려면 고도의 집중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문을 닫고 치료하겠습니다.”

“네에, 그러세요.”

조연순 여사의 안내를 받아 안방 문을 열자 지독한 악취가 폐부를 찌른다. 어찌 이런 냄새를 맡고 살 수 있을까 싶어 창문을 열어보니 웬 화물차 한 대가 매연을 뿜어낸다.

얼른 창문을 닫았다. 그리곤 즉각 마법을 구현시켰다.

“에어 퓨리파잉(Air―purifying)!”

즉각 아르센 대륙의 신선한 공기처럼 정화가 되었다. 현수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어휴……! 이런 데서 어떻게 살았지?’

환자를 보니 잠든 듯하다. 하나 중간에 깨어날 수도 있다. 하여 마법을 걸려고 가까이 가니 악취가 풍긴다.

몸을 뒤집으니 욕창이 보인다. 자주 뒤집어줘야 하는데 장사하느라 그럴 수 없어 생긴 듯하다.

“크으! 이거 먼저 치료해야겠군. 마나여, 전신을 마비시켜라. 퍼펙트 퍼렐러시스(Perfect Paralysis)!”

현수는 피침6)을 꺼내 욕창 부위를 전부 절개했다. 그리고 고름을 모두 짜냈다.

“힐(Heal)!”

마법이 구현되자 빠른 속도로 아무는 것이 보인다. 과연 마법은 마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에어 퓨리파잉!”

고약한 고름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공기 정화 마법을 구현시킨 현수는 환자의 곁에 다가가 앉았다.

“마나 디텍션!”

현수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환자의 내부로 스며든 마나의 움직임을 살렸다. 마치 입정한 고승 같은 모습이다.

‘흐음, 상반신과 하반신의 마나가 완전히 따로 노는구나.’

하반신은 마나의 양도 적고 움직임이 정체된 상태이다. 상체의 경우에도 마나가 존재하기는 하나 움직임이 제멋대로이다.

‘흐음, 이것도 고쳐질까?’

확인해 보니 6번 경추 골절로 인한 하반신 마비이다.

이럴 경우 상지는 척골신경 분지부터 마비가 온다.

따라서 손가락을 옆으로 움직이는 근육과 새끼손가락 부위의 근력 약화와 감각 저하가 나타난다.

그리고 하반신 전체에 마비가 온 것이다.

“흐으음…….”

제법 많은 의서들을 읽기는 했으나 전체보다는 부분만 아는 상황이다. 따라서 어떻게 해야 가장 효율적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정도면 중상이지? 그럼 회복 포션 한 병이면 되겠지?”

현수는 환자를 똑바로 눕히고 포션을 복용시켰다. 그리곤 정신을 모아 마법을 구현시켰다.

“마나여, 불완전한 부분을 완전케 하라. 리커버리!”

서늘한 푸른빛 마나가 뿜어졌다. 중상이라 그런지 상당히 많은 양이 빠져나갔다.

현수는 중간에 마나를 회수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가 되면 스스로 줄어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잠시 후, 현수는 마나 디텍션 마법으로 환자의 내부를 살펴보았다. 끊겼던 상반신과 하반신 간의 마나 교환이 적게나마 이루어지고 있었다.

환자를 엎어놓고 부드럽게 마사지를 해줬다.

그리곤 척추 부위에 힐 마법을 중첩하여 시전했다. 컴플리트 힐을 사용하기엔 마나 양이 부족하다 싶었던 때문이다.

다음엔 침통을 꺼내 마비가 해제될 수 있는 경혈을 찾아 시침했다.

얼마 전 현수는 척수가 손상된 동물에게 시침한 결과 침 치료가 척수 손상 후 하반신이 마비된 쥐의 회복에 탁월한 효능이 있음을 밝혀냈다는 논문을 읽은 바 있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저널인 질병신경생물학(Neurobiology of Disease)에 게재된 논문이다.

이 논문에는 척수 손상에 효과가 있는 혈 자리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그 자리에 시침해 놓은 것이다.

침을 모두 놓고 문을 열자 조연순 여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일단 시침은 다 했습니다. 마비가 풀릴지 여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압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고개를 숙여 감사해하는 조연순 여사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남편은 젊었을 때 보디빌딩을 했다.

하여 우람하던 근육을 자랑했는데 이젠 뼈다귀 위에 간신히 가죽을 씌워놓은 것 같은 모습이 되어 있기에 그러는 것이다.

잠시 기다리던 현수가 침을 모두 회수했다.

“잠시 안정을 취해야 하니 우린 밖에 나가 있습니다.”

“네, 선생님! 참, 내 정신 좀 봐. 잠깐만요.”

조연순 여사가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현수는 그제야 실내를 둘러볼 수 있었다. 이십 평 남짓한 공간이다. 온갖 살림살이로 채워진 집은 주인의 척박한 삶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미안하다. 힘들게 해서.”

“알면 되었다. 앞으론 이러지 마라. 알았지?”

“그래, 약속하마.”

주영으로부터 또 한 번 다짐을 받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쿵, 쿵, 쿵―!

“문 열렸습니다.”

“탕슉하고 양장피 배달 왔습니다. 어라? 선생님이 어떻게 여길……. 아, 호균이 과외 왔어요?”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탕수육과 양장피를 꺼내놓은 배달사원은 휑하니 가버렸다.

“뭐야?”

“이거 호균이 엄마가 조금 전에 시킨 거야. 먹자!”

주영이 랩을 벗겨내고 양장피를 뒤섞을 때 호균이 엄마가 검은 봉지를 들고 들어온다.

“선생님들 소주 한잔하세요.”

“네, 어머니도 앉으세요.”

셋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 여사는 남의 가게 한켠에 자리를 얻어 장사를 하는데 요즘 신발 사러 오는 사람이 너무 없다고 한다.

하여 업종을 바꿔야 한다는 답답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후로 셋은 한참 동안 말없이 먹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벨이 울린다.

띵똥! 띵똥!

“아이구, 이놈의 자식! 열쇠 들고 다니라고 그렇게 말해도 말을 안 듣네요. 끄으응!”

호균이 엄마가 문을 열자 예상대로 호균이가 들어선다.

“어라! 선생님이 우리 집에 왜……? 응? 저분은 누구……. 응? 아, 아빠! 아빠……!”

민주영이 늦은 밤에 자신의 집에서 술판을 벌이는 모습에 놀란 호균의 눈에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오는 현수의 모습이 보였다. 하여 누구냐고 물으려던 순간 호균의 눈이 커졌다.

안방 방문이 열리면서 병석에 누워만 있던 아빠의 모습을 본 때문이다. 그 순간 시선을 돌렸던 조 여사의 눈이 왕방울만 해진다. 그리곤 쏜살처럼 움직였다.

“아이고, 여보……!”

“아빠! 아빠……!”

“어이, 친구! 우리 퇴장할 시간이라는 거 알지?”

“그래, 가자!”

밖으로 나온 현수와 주영은 인근 생맥주 집에서 가볍게 한잔을 하고 헤어졌다.

오늘 정말 고마웠다. 친구!

다시는 이런 일로 부르지 마라. 친구!

나 언제부터 출근하면 되냐? 친구!

언제든 가능하다. 친구!

그럼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겠다. 친구!

오냐! 잘 자라. 친구!

한 가정에는 벅찬 기쁨이 있었고, 두 친구 사이엔 우정이 깊어가는 그런 밤이다.

* * *

“응? 누구지?”

현수는 갑자기 울리는 벨 소리에 핸드폰을 꺼냈다. 모르는 번호가 찍혀 있기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전화를 받았다. 제약사 등에서 가끔 전화가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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