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34화 (134/1,307)

# 134

“도사님, 안녕하십니까?”

“네? 근데 누구시죠?”

“저, 대구동부경찰서 형사과 최장혁 경사입니다. 도사님!”

“아……!”

“도사님 덕분에 많이 좋아져서 오늘 퇴원합니다.”

“그래요? 다행입니다.”

“오늘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당뇨 수치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하더군요.”

“그래요?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립니다.”

“고맙습니다. 이 모든 게 도사님 덕입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그간 고생하셨네요.”

“네, 감사드립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언제든 제 도움이 필요하면 이 번호로 연락 주십시오. 만사 제쳐 놓고 달려가겠습니다.”

“네에, 그러지요.”

“그리고 언제 대구에 한번 내려오십시오.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네, 권지현 사무관 만나러 갈 때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검사 결과가 나오면 그거 사본 한 장 제게 보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이전 검사 결과 기록지와 같이 복사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네에, 그럼 수고하시고 몸조리 잘 하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도사님!”

전화를 끊은 현수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생각이 맞아떨어진 때문이다.

‘그래, 지구의 의약품이 아르센 대륙 사람에게 민감하듯 회복 포션 역시 지구인에게 민감하게 작용해. 이제 상황에 따른 적절한 분량 조절을 해야 할 것 같군.’

회복 포션은 무한정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아르센 대륙에 가서 트롤들만 죽어라고 잡아오면 많은 양을 확보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나 지구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트롤의 목숨을 빼앗는 일은 결코 올바른 방법이 아닐 것이다. 하여 과하게 사용하여 낭비되는 부분을 줄여볼 생각을 한 것이다.

이은정 실장의 할머니에게도 반병을 복용시켰다. 그게 확실한 효과를 보였다면 양을 더 줄여봐야 한다.

현수는 생각난 김에 이은정을 불러들였다.

“이 실장님.”

“네, 사장님!”

“할머니 건강은 어떠세요?”

“네……?”

뜬금없는 물음에 대체 저의가 무엇이냐는 표정을 짓는다.

이럴 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여자라는 동물은 제 마음대로 생각하고 결정짓는다는 걸 현수는 모른다.

그렇기에 앞뒤 설명 없이 다시 물었다.

“할머니 건강이 어떠시냐구요.”

“하, 할머니요……? 할머닌 괜찮으셔요. 근데 왜 사장님이…….”

요 대목에서 은정은 돌이키기 힘든 오해를 한다. 현수가 자신의 할머니 건강까지 챙긴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자신에게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는 오해를 한 은정은 낯을 붉혔다.

이제 겨우 대학을 졸업할 나이이다. 사회 경험도 해보고 싶고, 여건만 된다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여행도 하고 싶다.

그래서 결혼은 서른 즈음에나 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현수가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결혼하여 평생을 솥뚜껑 운전을 하며 살아도 좋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키 크고, 그런대로 준수한 데다 돈도 많고, 인품 좋은 사장님이다. 마르지도 찌지도 않았으며, 미래도 창창하다.

재벌 2세 부럽지 않은 초초초특급 신랑감이다.

게다가 영원한 굴레라 여기던 가난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도록 도와준 사람이다. 어찌 싫은 마음이 들겠는가!

‘사장님만 좋다면 오늘 밤이라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은정의 두 볼이 능금처럼 빨개졌다.

한편 현수는 은정이 조금 이상해 보인다.

갑자기 얼굴은 붉어지고, 몸을 배배튼다.

‘흐음, 복통인가? 화장실이 급한 모양이군.’

“은정씨!”

“네, 사장님!”

더 이상 상냥할 수 없는 음성이다. 하나 현수는 이를 깨닫지 못했다.

“급한 일 있으면 나중에 이야기해도 돼요.”

“네……? 급한 일이라니요?”

현수는 은정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했다. 사장실로 들어가며 문을 닫은 때문이다.

인테리어 업체가 공사할 때 말하길 사장실과 업무 공간은 격리되어야 한다 하였다.

그리고 안에서의 대화 내용이 밖에서 들려선 안 되므로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방음 처리를 하자고 했다. 하여 사장실과 업무 공간은 웬만큼 큰 소리가 아니면 들리지 않는다.

하물며 말끝을 흐리는 은정의 음성이 어찌 들리겠는가!

현수가 문을 닫고 들어가자 은정은 이게 대체 무슨 황당한 상황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또 한 번 오해를 한다.

현수가 말을 꺼내놓고 나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그런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사장님! 언제든지……. 오늘부터 전 사장님을 위해 존재할게요. 언제든지 마음이 결정되면 그때 다시 말씀해 주세요. 무조건 오케이 할게요. 아셨죠?’

닫힌 문을 보며 은정이 윙크를 한다.

한편, 현수는 자리에 앉자마자 진동하는 핸드폰을 꺼냈다. 번호를 확인해 보니 드미트리이다.

“아! 미스터 드미트리?”

“네. 김현수 사장님! 오늘 시간 어떠신지요?”

“언제든 가능합니다.”

“그럼 잠시 후에 찾아뵙겠습니다.”

주식을 매입한 이후 현수에겐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시간 날 때마다 경제와 관련된 서적을 읽는 것이 그것이다.

하여 현수의 책상 위에는 아직 풀지도 않은 택배 박스들이 놓여 있다. 인터넷 서점에 주문했던 경제 관련 서적들이다.

박스를 열고 안에 담긴 책을 펼치고는 이내 독서삼매경에 빠져 들었다.

바디 체인지를 한 이후 집중력이 상당히 좋아진 때문이다. 현수는 은정이 오렌지 주스와 커피, 그리고 사과 주스를 가지고 들어왔었다는 것조차 모른 채 책 속에 빠져 들었다.

흔히들 경제는 살아서 움직이는 생물이라는 표현을 한다.

읽어보니 정말 그렇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모여서 변하는 것이기에 원칙이라는 것이 정해진 바 없다.

하여 큰 줄거리라도 알아보려 책을 읽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을 한참 동안이나 지켜본 사람이 있다.

물론 은정이다. 애정이 담뿍 담긴 사랑스런 눈으로 현수의 모습을 마음에 각인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 현수는 이것마저 모른 채 책에만 빠져 있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쯤 지났을 때이다.

“사장님! 드미트리 씨가 오셨습니다.”

“응……? 누구?”

커피를 가져왔다고 했을 때, 오렌지 주스가 몸에 좋다는 말을 했을 때, 사과 주스는 두뇌개발에 좋다는 말을 했을 때에도 현수는 무반응이었다.

그런데 드미트리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고개를 번쩍 든다. 왠지 껄끄러운 이름이기 때문일 것이다.

“드미트리 씨가 오셨다구요.”

“아, 안으로 모시세요.”

드미트리가 웃는 낯으로 손을 내밀기에 악수를 하며 자리를 권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전에 말씀하셨던 것들을 가져왔습니다. 자, 보시지요.”

드미트리가 007 가방에서 꺼내 건넨 것은 한 장의 서류였다.

이것은 현수가 통관시켜 줘야 할 컨테이너에 담길 것이다.

대전차 로켓 RPG―32 500정, AK―103 20,000정이다.

이중 5,000정은 레이저 조준기와 GP―30 유탄발사기까지 장착된 것이다. 또한 탄창 10만 개라 쓰여 있다.

국방과학연구소 소화기개발팀 사수로 근무했으나 현수는 각종 무기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있다. 당시엔 그런 것에 흥미가 있었기에 닥치는 대로 알아둔 결과이다.

서류를 읽은 현수는 나름대로 부피를 계산해 보았다.

“흐음, 미스터 드미트리! 이것들 전부가 컨테이너 스무 개에 담길 것 같지는 않군요. 안 그렇습니까?”

“김현수 사장님이 어찌 그걸……?”

드미트리는 뜻밖의 물음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는 대한민국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예비역입니다.”

“……!”

예비군이라 하여 무기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 드미트리는 현수의 말 한마디에 대한민국의 모든 예비군들이 군사전문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런처는 있는데 포탄은 없고, 총과 유탄발사기는 있는데 탄약은 전혀 없군요.”

“그, 그건……!”

드미트리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말씀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현수 사장님! 미안합니다. 속이려는 것이 아니라 상부로부터 내려온 지침이 변경되어……. 미안합니다.”

“좋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변경되었는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으음……!”

드미트리가 나지막한 신음을 토했다. 어찌 말을 꺼내야 할지 난감하다는 표정이다. 현수는 마냥 기다리기만 했다.

그렇게 2∼3분쯤 지났을 때 드미트리의 입이 열렸다.

“김현수 사장님! 통관해 주셔야 할 컨테이너 숫자가 조금 늘어났습니다.”

천지건설에서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보내는 화물은 컨테이너로 수천 대 분량이다. 그렇기에 몇 개 정도 더 늘어나는 것은 큰일이 아니기에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말씀하십시오.”

“네, 일단 스무 개였던 컨테이너가 118개로 늘어났습니다.”

“흐음, 118개라면 이 서류에 있는 것들을 다 넣고도 한참 더 남는데요? 뭡니까? 이것 말고 더 넣을 거.”

“그, 그건…….”

드미트리가 또 망설인다.

“이번 거래가 잘못되면 천지건설이 콩고민주공화국과 체결한 계약이 날아갑니다. 뿐만 아니라 현지법인인 천지약품 역시 문을 닫아야 합니다. 또한 모든 한국인들이 추방당하고 영구 입국 금지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

“그럼에도 저는 모험을 무릅쓴다고 했습니다. 그럼 나를 속여선 안 됩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나머진 뭡니까?”

“자, 잠시만요.”

드미트리는 노트북을 꺼내곤 뭔가를 입력한다. 이메일은 아니고 메신저를 사용하는 듯하다.

현수는 더 묻지 않고 보고만 있었다. 대략 10분쯤 지난 후 드미트리가 가방에서 서류 한 장을 더 꺼낸다.

“이게 나머지 물품입니까?”

“네.”

드미트리의 간결한 대답에 현수는 시선을 돌렸다.

반능동 AT―16 Vikhr M, 레이저 유도 Kh―25ML 전술 공대지 미사일, FAB―500 범용폭탄, 23㎜ 기관포탄, 80㎜ S―8 로켓, 122㎜ S―13 로켓 등이 나열되어 있다.

현수가 서류에 시선을 두고 있는 동안 드미트리는 불안한 마음이었다. 이제 와서 계약 위반이니 못하겠다고 자빠져 버리면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흐음, 이건 KA―52 Alligator Hokum B 공격헬기 열 대를 무장시킬 것이군요.”

“헉! 그걸 어찌?”

“KA―52 Alligator Hokum B는 KA―50 블랙 샤크를 기반으로 한 공격헬기지요. 현재 러시아군에서 열 대가 운용되고 있으며 2020년까지 100대를 추가로 도입할 예정이지요?”

“……!”

“이건 미국이 자랑하는 AH―64D 아파치 헬기와 비교했을 때 기동성과 무장 능력이 더 좋습니다. 따라서 전투에서는 KA―52가 더 유리하죠.”

“……!”

“제원까지 읊어볼까요? KA―52는 승무원 두 명, 최대 속력 390㎞/h, 항속거리 1,160㎞, 전투 행동 반경 460㎞…….”

“그만! 그만하셔도 됩니다.”

“좋아요. 이걸 무장할 것들은 컨테이너에 싣는다 칩시다. 그럼 헬기는 어디에 있죠?”

“헬기는 르완다에서 날아서 올 겁니다.”

“좋아요. 그 헬기를 무장시켜서 열 번만 왕복하면 컨테이너에 실으려는 것들을 모두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게 이런 부탁을 하는 이유는 뭡니까?”

“그건… 미안합니다. 그건 답변드릴 수 없습니다.”

“나도 좋습니다. 속사정까지 다 알 필요는 없으니까요. 한데 하나만 더 묻죠. 정말 솔직히 대답해 주셔야 합니다.”

“말씀하십시오.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하나도 속이지 않겠습니다.”

“좋습니다. 이것 말고 추가로 반입하려는 물건들이 더 있습니까?”

“헬기에 사용될 소모품 약간 이외엔 없습니다.”

드미트리는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대답했다. 속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좋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이것까지는 통관을 시켜 드리겠습니다. 단, 다시는 이런 부탁을 하지 말아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화물을 넣고 컨테이너를 봉인하기 전에 내가 확인하게 해주십시오.”

“네?”

“나는 드미트리 씨를 믿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드미트리 씨 몰래 세균전에 쓰일 생물학 무기나 핵폭탄을 실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그건…….”

드미트리가 마땅한 대응을 못할 때 현수의 말이 이어졌다.

“조금 전 드미트리 씨는 오늘 내게 보여준 서류에 있는 물건들 이외엔 헬기에 소요되는 소모품 약간만 담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드미트리는 진땀이 나는지 손수건을 꺼내 목덜미의 땀을 닦아냈다.

“조금 전에 전 KA―52의 제원을 말씀드렸습니다. 어느 것 하나 틀린 것 있던가요?”

“아, 아닙니다. 모두 맞습니다.”

“그렇다면 화물을 보면 그게 뭔지 식별할 능력이 있다고 인정하십니까?”

말을 이렇게 했지만 실상 현수는 어떤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서류상으로 읽은 것이 전부인 지식이기 때문이다.

하나 이를 드미트리가 어찌 알겠는가!

전문가 중의 전문가들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제원을 줄줄 읊었다. 도대체 대한민국의 육군은 장병들에게 어떤 것을 가르치기에 이토록 전문가가 되어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여 심리적 수세에 몰려 있는 상황이다.

“네, 인정합니다.”

“화물을 넣고 봉인하기 전에 제가 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십시오.”

“그,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게 어렵습니까? 아니면 상부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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