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마음속에 간직한 이에게 정성을 줄 수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 생각한 것이다.
“아! 미안……. 나 지금 엄청 급한 일이 있어서……. 주스는 은정 씨가 마셔요.”
황급히 튀어나가는 현수의 뒷모습에 은정은 입술을 잘근 씹었다. 물론 마음에 안 들어서이다. 하필이면 이때 누가 전화를 걸어 오붓한 시간을 망쳤는지 원망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현수는 차를 몰아 곧장 남동공단으로 향했다.
“저쪽으로 가다가 두 번째 사거리가 나오면 거기서 좌회전 하게. 거기서 쭉 직진하다 보면 왼쪽에 드럼통 잔뜩 쌓아놓은 공장이 보일게요. 거기가 나라정밀이네.”
“네, 감사합니다.”
부동산중개사 사무소 아저씨에게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숙인 현수는 얼른 운전석에 올라탔다. 한시가 급하기 때문이다.
나라정밀이라는 공장은 이미 5년 전에 망한 회사 소유이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사장은 자산의 일부를 매각하여 돈을 챙긴 뒤 외국으로 튀었다. 그리곤 은행과 기업, 그리고 개인 채권자들의 다툼이 시작되었다.
이해 관계가 얽히고 설켜 있는지라 재판이 벌어졌고,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은 공장이라고 했다. 그러는 틈을 타 어떤 나쁜 놈들이 지정폐기물들을 잔뜩 가져다 버렸다.
이는 폐기물관리법상의 유해성 기준에 해당되는 사업장이 배출하는 폐기물로 폐유나 폐산, 폐알칼리, 중금속이나 유기용제를 용출시키는 폐기물 등이 해당된다.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시기에 누군가가 고의로 들여놓은 것이다.
따라서 새로 공장을 소유하게 될 누군가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폐기물을 처리해야 할 입장이다.
관할 구청인 인천시 남동구청에서 폐기물들을 신속히 처리하라는 계고장을 계속해서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차를 몰아 나라정밀 쪽으로 이동했다. 중개인 아저씨 말대로 드럼통들이 쌓여 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양이다.
공장부지 거의 전체에 쌓인 산업폐기물 드럼통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5,000개는 훨씬 넘는 듯하다.
폐유기용제는 톤당 526,000원, 폐산과 폐알카리는 톤당 297,000원의 처리비용이 든다.
공장 마당에 쌓인 드럼 다섯 개가 1톤이라면 적게 잡아도 5천 톤이 넘는다는 뜻이다.
이것들 모두 폐산과 폐알카리라면 약 15억 원의 비용이 들며, 폐유기용제라면 26억 3천만 원이라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공장 인근에 차를 세운 현수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물론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마법이 구현된 상태이다.
입구로부터 공장 출입구를 제외한 모든 곳이 드럼통이 쌓여 있기에 안에서 누군가가 내다보고 있다면 곧바로 들키기 때문이다.
“와이드 센스!”
마법이 구현되자 움직임이 없는 사람 하나와 그 인근에서 얼쩡대는 존재 여섯이 있다.
삐이꺽―!
“누구냐?”
문을 밀었더니 경첩에 녹이 슬어 있는지 소음이 났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가 소리친 것이다.
“플라이!”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신형을 공중으로 띄웠다.
“뭐해? 니들이 나가봐!”
“네, 형님!”
사내 셋이 우르르 달려 나온다. 그러는 동안 현수는 움직임이 없는 사내, 다시 말해 백두마트 상무 비서실의 김 대리에게로 다가갔다.
상황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지독한 고문에 혼절한 듯싶다.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이 퉁퉁 부어 거의 두 배가 되어 있었다. 곁의 탁자에 놓인 벤치에는 살점이 묻어난 손톱들이 보인다.
열 개 모두를 뽑은 듯하다.
뿐만이 아니다. 이빨까지 네 개나 뽑아놓았다.
그 결과 김 대리의 앞섶은 선혈로 흥건하다. 코피와 입술, 그리고 잇몸에서 난 피로 흠뻑 젖은 것이다.
그럼에도 김 대리를 바라보는 두목의 눈에는 악독한 빛이 일렁인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악행과 잔인함으로 인한 것이다.
“형님! 이놈이 끝까지 불지 않으면 어쩌지요?”
“어쩌긴? 마당에 드럼통 많잖아. 그중 하나를 열고 안에 집어넣어. 그럼 뼈조차 남지 않고 녹을 테니.”
“……!”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지 둘이 부르르 떨었다. 과연 두목은 독사라 불릴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뭐해? 시간없다. 어서 물을 끼얹어.”
“네, 형님!”
촤아아악―!
“끄으응……!”
“정신이 드냐? 그럼 다시 묻지. 우리 형님을 미행하라고 시킨 자가 누구냐? 경찰이냐? 아님 검찰……? 말 안 하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당할 것이다.”
“으으으! 말 못 한다.”
“그으래? 좋아, 네놈의 부모 형제를 모두 잡아와도 그러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
“으으으……! 난 고아다.”
“크흐흐, 그건 조사해 보면 다 나오지.”
“마, 마음대로 해라.”
“어쭈……? 아직도 혼이 덜났단 말이지? 얘들아. 힘 좀 써라!”
“네, 형님! 이이잇!”
두 사내가 김 대리의 허벅지 사이에 끼워져 있는 쇠파이프를 잡고 양쪽으로 힘껏 당긴다. 사극에서나 볼 수 있던 주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하다.
힘을 주는 즉시 김 대리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아악! 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느라 벌린 입안이 온통 피투성이다. 위아래 앞니 두 개씩 모두 뽑은 때문이다.
“말해. 어떤 잡놈이 시켰는지!”
“크아아아악! 아아아악!”
김 대리는 대답을 해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무지막지한 고통 때문이다. 비명 지르기에도 바쁜데 어찌 백두마트 상무 조경빈라는 이름을 댈 수 있었겠는가!
‘이런 십장생들이……! 사극 찍나? 하여간 요즘 것들은 너무 흉내를 잘 내! 사극을 방영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현수는 서둘러 김 대리의 고통을 덜어줬다.
“스테츄! 스테츄! 스테츄! 슬립!”
“……!”
갑작스레 혀마저 굳어버리자 셋 모두 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현수는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마법을 해제하기 전에 모습부터 바꿨다.
실제로 모습이 바뀐 게 아니라 보이는 모습이 전혀 다른 이미지로 보이게 하는 마법이다.
“마나여, 나를 산신령의 모습으로 보이게 하라! 임플러멘테이션 오브 컨트롤 이매진(Implementation of control imagine)!”
이 마법을 쓰게 된 것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이다.
이실리프에 기록되어 있는 마법이기는 하나 멀린은 한 번도 시전해 본 적이 없다고 기록했다.
현수가 이를 시전해 본 이유는 연습 상대로 딱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조폭들 입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허연 수염을 단 호호백발 노인이 나타났다. 당연히 셋의 눈엔 경악하는 빛이 어린다. 허공에 둥둥 떠 있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게다가 이야기책에서나 등장하는 전형적인 산신령 내지는 도사의 모습이다. 그리고 노인의 손에는 오리 알 굵기 정도 되는 용두괴장까지 쥐어져 있다.
놈들이 놀라는 사이에 스테츄를 홀드 퍼슨으로 바꾸었다. 그리곤 나직한 음성으로 꾸짖었다.
“네 이놈들! 어찌 인두겁을 쓰고 이렇듯 못된 짓을 하는 것이냐?”
적절한 에코가 가미된 창노한 음성이다. 음성 변조 마법인 보이스 모듈레이션(Voice Modulation)이 시전된 때문이다.
“누, 누구십니까?”
얼떨결에 말을 꺼낸 놈은 굵은 쇠파이프를 쥐고 있던 놈이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현수가 입을 열었다.
“나는 하늘에 계신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너희들의 수명을 단축시키러 온 칠원성군(七元星君)이니라.”
“치, 칠원성군님이시라구요?”
놈들은 자기도 모르게 존댓말을 썼다. 노인의 나이가 100살은 훨씬 넘어 보인 때문이다.
“오냐, 인세의 수명과 재물을 관장하느니라.”
“저, 저희의 수명을 줄이러 오셨다구요?”
“그렇다. 네 수명은 본시 여든일곱이었다. 하나 하늘의 노여움을 사서 이제 서른일곱으로 줄었느니라.”
“네, 네에……? 제, 제가 서른일곱 살에 죽는다고요?”
깜짝 놀라며 쥐고 있던 쇠파이프를 놓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칠원성군의 말이 이어졌다.
“뿐만이 아니니라. 너는 그간 행한 악행의 경과로 말미암아 남은 여생을 미물처럼 살아야 하느니라.”
말을 마친 현수는 자그마한 음성으로 하반신 근육 전체를 마비시키는 패러플리져(Paraplegia) 마법을 구현시켰다.
그와 동시에 녀석이 털썩 주저앉는다. 하반신의 모든 근육이 마비된 때문이다. 이때 현수의 입술이 또 한 번 달싹인다.
“쿼드러플 그래비티!”
바닥에 쓰러진 놈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경악하는 표정을 짓는다.
첫째는 하반신에 전혀 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몸무게가 네 배쯤 무거워진 듯했던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칠원성군의 시선이 두목에게로 향했다.
“네놈 역시 악행이 극에 달해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샀느니라. 오늘부터 너는 장님에 벙어리, 그리고 귀머거리가 되어 살아야 하느니라. 또한 아흔셋이던 네 수명이 서른셋으로 줄었도다.”
두목의 안색이 급격하게 창백해진다. 올해 나이 서른둘이다. 그런데 수명이 서른셋으로 줄었다면 내년에 죽는다는 말이다.
어찌 겁먹지 않겠는가!
“치, 칠원성군님! 하,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이미 늦었느니라! 너희는 수명이 끝나는 날 저승사자가 너희를 18층 지옥 중 가장 뜨거운 대초열지옥으로 안내할 것이다. 게서 3,000년 동안 단련되어야 너희의 죄 값이 사해진다. 알겠느냐?”
“치, 칠원성군님!”
두목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애원했으나 현수의 마법은 이미 구현되고 있었다.
“토탈 뎁(Total Deaf), 토탈 덤니스(Total Dumbness), 토탈 블라인드(Total Blind)! 쿼드러플 그래비티!”
“어버, 어버버! 어버버버버……!”
두목은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자 소리를 내려 했다. 하나 그의 입 밖으로 나온 것은 소리라고 할 수 없는 이상한 소음이었다.
뿐만이 아니다. 갑자기 서 있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로 몸이 무겁다. 하여 잠시 버티는가 싶더니 이내 털썩 주저앉았다.
나머지 하나는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런 그의 하의는 겁에 질려 방뇨해 버린 오줌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너는 본시 조상의 음덕을 입어 아흔일곱까지 풍족하게 살 것이었으나 네놈이 행한 악행으로 태반을 잃었느니라. 하여 네 수명은 이제 2년이 남았도다. 또한 그간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오늘부터 지독한 고통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니라.”
“아아악! 아아아아악!”
현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두 귀를 틀어먹고 발버둥을 친다. 누군가 귀에 대고 엄청난 고음을 질러댔기 때문이다.
이는 ‘더 스크림’이란 마법이 구현된 때문이다.
셋을 처리한 현수가 김 대리를 묶고 있는 밧줄을 풀려 했다. 이때 밖으로 나갔던 셋이 되돌아왔다.
“누, 누구십니까?”
놈들의 눈에도 현수가 산신령 비슷하게 보인 것이다.
“그리스!”
콰당! 우당탕! 콰당탕탕!
달려오던 속도가 있기에 바닥의 마찰력이 제로가 되는 순간 거칠게 나자빠졌다. 둔통 때문에 이맛살을 찌푸린 세 놈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현수의 음성이 이어졌다.
“네 이놈들! 그간 저지른 악행만으로도 지옥행을 면키 어렵거늘 어찌 악업을 계속해서 쌓는단 말이더냐?”
“……?”
“내 오늘 옥황상제의 명을 받들어 네놈들을 엄히 처벌하겠느니라! 모두 시력을 잃을 것이다. 토탈 블라인드! 아울러 반신을 쓰지 못할 것이니라. 헤미플리지어(Hemiplegia)!”
“으헉!”
“으으윽!”
“허억!”
앞이 보이지 않아 눈을 비비려던 순간 왼손을 들 수 없게 되었다. 어찌 당혹성을 토하지 않겠는가!
이 순간 현수의 입술이 달싹였다.
“컴플리트 힐!”
부드러운 황금빛 마나가 김 대리의 몸으로 스며들자 외상이 아무는 모습이 보인다. 하나 빠진 손톱과 이빨이 새로 나지는 않았다.
“흐음, 이건 어쩔 수 없지.”
김 대리를 편하게 눕힌 현수는 두목의 주머닐 뒤져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곤 최근 통화 목록을 뒤졌다.
예상대로 마지막 통화는 유진기랑 했다. 아래에 쓰인 전화번호를 눈여겨 보고는 이내 발신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그래, 독사! 어떤 놈이 시켰는지 알아냈어?”
“아직……!”
현수는 일부러 말끝을 얼버무렸다. 놈에게 존댓말을 쓰고 싶은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진기 특유의 쇳소리 섞인 허스키한 음성이 이어진다.
“끝까지 불지 않으면 드럼통 하나 골라서 넣어버려. 산성이 아니라 알카리성에 넣어야 한다. 쇠로 된 드럼통을 찾으면 된다. 그리고 나서 애들 데리고 월계동 해피 클럽으로 가라. 거기 가면 속 썩이는 년이 하나 있을 거다. 잡아서 아작 내버려.”
“네.”
“처리 결과는 내일 역삼동으로 와서 직접 보고하도록!”
제 할 말 다 했다는 듯 통화가 끝났다. 전화기에 묻은 지문을 닦아낸 현수는 김 대리를 차에 실었다. 그리곤 백두빌딩으로 향했다.
“형님! 김 대리는요? 구하셨어요?”
“그래! 김 대리는 차 안에 있다. 그런데 놈들에게 고문을 당해 손톱과 이빨이 빠진 상태이다.”
“네에……?”
고문당했다는 소리에 조경빈이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다행히 너에 대해선 말하지 않은 것 같더라. 잘 요양시켜 주고 임플란트도 해줘라.”
“그건 당연하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저만한 사람 드물다. 가까이 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