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
손톱 열 개가 모두 빠지는 고통과 앞니 네 개를 강제로 뽑아내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누가 시켰는지를 발설치 않은 사람이다.
충성심과 의리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가까이 두라는 조언을 한 것이다.
“네. 형님! 근데 어떻게 구해오신 겁니까?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나를 돕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했다.”
“아, 그러셨군요.”
“나는 이만 가마.”
“네, 형님! 오늘 고마웠습니다.”
“그래.”
경빈과 헤어진 현수는 노트북을 꺼내 월계동에 소재한 해피 클럽이라는 곳을 검색했다. 그쪽에서는 제법 잘 나가는 나이트클럽인 듯 방문 후기들이 주르륵 뜬다.
내비게이션을 조작한 후 그쪽으로 차를 몰아갔다. 유진기 같은 악당을 귀찮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평범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당도했으나 너무 이른 시각이다. 현수가 첫 손님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일단 룸을 하나 잡았다. 그리곤 맥주잔을 홀짝이면서 아공간에 담긴 유진기의 장부들을 읽어나갔다. 역삼동이라고만 했지 어디라곤 말하지 않았으므로 그곳을 찾기 위함이다.
한참만에야 역삼동이 어디를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룸살롱 락희이다. 즐거울 樂, 아가씨 姬!
즐거운 아가씨라는 이름의 룸살롱은 세정파가 운영하는 업소 가운데 가장 매출이 높은 곳이다.
“일단 여기부터 어떤지 확인해 보고.”
현수를 담당한 웨이터는 계속해서 아가씨들을 데리고 들어와 부킹을 성사시켜 주려고 했다. 받은 팁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 계속해서 퇴자를 놓자 조금은 삐친 듯하다. 개중엔 제법 괜찮은 아가씨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 현수는 눈이 매우 높다. 강연희 대리와 권지현 사무관은 연예인들 뺨을 칠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들이다.
이은정 실장과 김수진 씨 그리고 이지혜 씨도 결코 만만치 않은 미인이다. 꾸미기만 하면 연예인들보다도 훨씬 예뻐 보일 것이다..
이런 미인들에 둘러싸여 있기에 웬만해선 눈에 차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웨이터는 끈질겼다. 어떻게든 성사시켜 줘야 팁이 더 나온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손님! 대체 어떤 아가씰 원하시는 겁니까?”
“글쎄……. 내가 조금 눈이 높아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현수는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와 어울릴 생각이 전혀 없다.
하나 웨이터는 아니다. 또 한 번 팁을 받으려면 그에 걸맞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나직한 한숨을 쉬었다.
“휴우∼! 알겠습니다. 진짜 괜찮은 걸(Girl)로 찾아보죠.”
웨이터가 나간 후에도 현수의 장부 열람은 계속되었다.
이번엔 세정파가 벌이는 여러 가지 일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차원이다.
이미 읽었던 것들이다. 그럼에도 읽을 때마다 열이 오른다.
고리대금업에서의 법을 무시한 높은 이자율!
이 과정에서 빚을 못 갚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신체 포기 각서와 장기 적출이 열 받게 하였다.
러시아 마피아 조직으로부터 받은 권총 등 무기 밀매는 범죄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이나 다름없다.
이로 인해 일곱 명의 경찰이 순직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예고 없이 가장을 잃은 그 가족들은 어떠하겠는가! 총이 있음에도 그것을 뽑지도 못하고 당한 그들의 부인은 졸지에 과부가 되었다.
학교에서 공부하던 자식들은 아버지를 잃고 울부짖었다.
어찌 용서가 되겠는가!
다음은 인신매매이다.
길가는 여고생 또는 여대생을 납치하여 일본이나 지나에 돈 받고 팔아넘겼다. 꿈 많던 소녀들은 타의에 의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딸을 잃고 길을 헤매며 울부짖는 부모들을 떠올리니 또 한 번 열이 뻗친다.
지나의 삼합회로부터 공급받은 조선족 여인들 역시 누군가의 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한국의 밤 문화에 눈물 흘렸을 것이다.
물론 그에 걸맞는 대우란 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가짜 양주를 제조하여 비싼 돈을 받아온 것은 차라리 애교이다. 마약을 밀수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중독자로 만들었다.
그들 모두 재산을 탕진했고, 마약을 구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게 하거나 스스로 타락의 길을 걷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가정을 파괴시켰다. 그것은 그 가정의 구성원이었던 아이들의 미래 또한 망가뜨린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국보급 문화재들을 일본으로 반출했다.
그것도 제값을 치르고 가져간 것이 아니다. 교도소에서 포섭한 도둑들로 하여금 문화재를 훔치게 한 뒤 헐값에 넘겨받았던 것이다.
사찰의 문화재는 서슴없이 폭력을 사용하여 백주대낮에 강탈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승려들이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고리대금업, 불법 총기 밀매, 인신 매매, 마약 밀매, 문화재 반출 등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들이다.
그렇기에 잔뜩 열을 받은 것이다.
똑똑똑!
“네에.”
“손님……!”
현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웨이터의 뒤를 따라 들어온 여인을 본 때문이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몹시 화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내가 분명 싫다고 했죠?”
화장실엘 갔다가 오는 길에 손목을 잡혔다. 그리곤 강제로 끌려 들어온 룸이다. 싫다는 말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 손님……!”
예상 외로 거친 반발에 웨이터가 당황한 듯하다. 상황을 지켜보던 현수가 나섰다.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생각한 때문이다.
“미안합니다. 제가 웨이터 분에게 부탁을 드렸어요. 오늘 이 클럽에 놀러온 손님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분을 만나게 해달라고…….”
“네에?”
“불편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네요.”
“뭐가요?”
“웨이터의 눈이 정확하다는 걸요.”
“지금 누구 놀리시는 거예요?”
여인은 본인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 생각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이건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여인의 용모는 아주 못 생기는 않았지만 그렇다 하여 미녀라 하기엔 다소 손색이 있기 때문이다.
“혹시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인 추사 김정희 선생님이 말씀하신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券氣)라는 말을 아시는지요?”
“……!”
“외모만 예쁘고 머릿속이 텅 빈 여인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하나 말을 하지 않아도 풍기는 분위기가 고아한 여인은 외모에 상관없이 아름답지요.”
웨이터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고, 여인은 현수의 말에 담긴 의미를 씹는 듯 아무런 말도 없다. 현수는 웨이터를 위해 할 도리를 다했다 생각했기에 자리에 앉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가 싶더니 여인이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말씀 고마워요.”
그리곤 싸한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로 매몰차게 나가 버렸다.
“수고하셨어요. 이제 그만해도 됩니다. 여기…….”
현수가 내민 지폐를 본 웨이터가 고개를 꾸벅 숙인다.
“아, 아닙니다. 손님! 그거 받을 자격이 없는 거 같습니다.”
말을 마친 웨이터가 꾸벅 인사를 하고는 황급히 나가 버렸기에 현수는 꺼냈던 지폐를 도로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맥주도 두어 잔쯤 마신 것 같다. 하나 아까의 그 열기가 가시지 않은 듯 조금도 취하지 않았다.
똑똑똑!
“네에.”
삐이꺽―!
“들어가도 돼요?”
문이 열리고 아까 화를 냈던 여인이 얼굴만 집어넣고 한 말이다.
“네, 들어오세요.”
현수가 승낙하자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아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강민경이에요.”
“뭐 별말씀을……. 진짜 그랬어요. 반갑습니다. 김현수입니다.”
“아깐 기분 좋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한잔 주세요.”
“그러죠.”
현수가 술을 따라주자 단숨에 들이킨다. 그리곤 휴지를 뽑아 잔을 닦아 현수에게 건넨다.
둘은 더 이상의 대화 없이 각기 두 잔씩을 비웠다.
“술 친구론 최고네요.”
현수의 한마디에 강민경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민다.
“H일보 강민경 기잡니다.”
신문사 기자라면 다소 남성적인 스타일일 것이란 선입관을 지닌 현수는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전혀 기자처럼 안 보이는데요?”
“그래도 기잡니다. 이곳 해피 클럽의 운영주가 조폭이라는 소문이 있어 취재차 온 거지요.”
“조폭……?”
“네, 세정파라는 조폭이 운영하는 곳이란 소문이 있지요.”
현수는 전혀 몰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에……?”
현수의 놀라는 표정을 본 강민경이 피식 실소를 짓는다.
“그냥 그런 줄만 아세요.”
“여자라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혼자서 위험한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요?”
“우리 신문사에 기자들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조폭이 운영하는 곳이란 제보가 들어왔는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더군요. 겁이 나서 그랬을 겁니다. 네에,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론 돈도 안 생기는 일이라 덤벼들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래서 덤벼드신 겁니까?”
“네에. 남들이 전부 Yes라 할 때 혼자서 No 하라는 광고도 있었잖아요. 안 그래요?”
그러고 보니 취한 듯싶다. 말을 하는데 약간 혀 말린 소리가 섞여 있었던 것이다.
“강 기자님, 패기는 좋습니다. 그런데 누울 데를 보고 발을 뻗으라는 속담이 있는 것도 아십니까?”
“김현수 씨도 내가 하는 일이 위험하다 생각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위험하지요. 여자 혼자서 어찌 조직 폭력배들을 당해냅니까? 안 그래요?”
“네에. 무섭습니다. 근데 내가 안 파헤치면 아무도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사회 정의는요? 그 투서는 이 업소의 원래 주인이 보낸 겁니다. 억울하게 빼앗겼다더군요.”
“……!”
“그 사람도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당한 건 억울한 거잖아요. 그리고 내가 안 나서면 아무도 찾아주지 않잖아요.”
마음속에 맺혀 있던 것들을 풀어내는 듯하다. 그런데 점점 더 혀가 말리는 소리를 한다. 많이 취한 듯싶다.
잠시 후 현수는 강 기자를 데리고 나왔다. 해피 클럽을 귀찮게 하는 사람이 아무래도 강 기자 같았기 때문이다.
이때는 이미 만취된 상태이다.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여러 번 물었으나 횡설수설한다. 완전히 맛이 간 상태였다.
H 신문사로 전화를 걸어봤으나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할 수 없이 핸드백 속의 휴대폰을 꺼냈으나 비밀번호가 걸려 있어 집 전화번호를 확인할 수 없다.
결국 바디 리프레쉬 마법을 걸어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택시를 타고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리곤 곧장 집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강 기자 같은 사람이 없으면 은폐되거나 덮어질 비밀이 얼마나 많겠는가 싶었던 것이다. 하여 그녀의 명함을 지갑에 넣어두었다.
다음 날, 킨샤사의 천지약품으로부터 추가 주문서가 들어왔다. 나날이 수량과 품목이 늘고 있다.
은정과 수진, 그리고 지혜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였기에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소맷자락을 걷고 같이 일을 했다.
하루 종일 같이 일을 하면서 여직원들이 얼마나 힘든지를 깨달은 현수는 좋은 CEO답게 회식으로 마무리해 줬다. 다만 알콜이 개입될 수 없도록 패밀리 레스토랑에서의 회식이었다.
저녁 7시. 현수는 지하철에 타고 있었다.
본격적인 퇴근시간인지라 붐비는 편이다. 그렇다 하여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만원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재수가 좋아 한 정거장만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역삼동에 소재한 락희를 찾아가는 길이다.
가면 어찌할 것인지를 생각하던 중 두세 발짝쯤 앞에 있는 아가씨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혹시 몸이 불편하여 그러는가 싶어 자세히 살폈다. 그렇다면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니다! 그녀의 바로 뒤쪽에 서 있던 40대 남자의 얼굴에 서린 음흉한 웃음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보니 사내의 손이 아가씨의 스커트 속으로 들어가 있다.
‘이런 변태 같은 새끼가……! 스테……. 젠장! 저 새낀 또 뭐야?’
꼼짝도 할 수 없도록 만든 후 성추행 현행범으로 체포되게 하려던 현수는 마법 구현을 멈췄다.
두어 발짝 떨어진 곳에서 흥미롭다는 듯 웃음 띤 얼굴로 40대 남자의 손과 아가씨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찍고 있는 녀석 때문이다.
28세쯤 된 녀석이다. 놈의 얼굴엔 아가씨의 심적 고통 따윈 들어 있지 않았다. 그저 곤혹스러워하는 아가씨의 얼굴과 변태의 손을 찍어 인터넷에 올릴 생각뿐이다.
이번엔 놈에게 마법을 걸려 하였다. 놈이 촬영한 장면이 명백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10장 룸살롱 락희에서
“마나여, 영원히 심각한 인생을 살도록 하라! 얼웨이즈 시리어스(Always Serious)!”
희희낙락하던 표정이 삽시간에 굳는다.
이제 놈은 장가가기 힘들게 되었다. 24시간 내내 심각한 표정만 짓고 있는 사내를 좋아해 줄 여자는 극히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순간 40대에게 스테츄 마법을 걸려 했는데 이번에도 멈췄다.
아가씨의 바로 곁에는 50대 대머리 아저씨가 있다.
그런데 그 뒤에 있던 30대 초반이 그 아저씨의 양복 안주머니를 면도칼로 따고 지갑을 꺼내는 장면이 보인 때문이다.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꺼내진 지갑은 순식간에 세 명의 손을 거쳐 현수의 곁에 앉은 사내에게로 전달되었다.
놈이 아저씨의 지갑을 안주머니에 넣는 순간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