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44화 (144/1,307)

# 144

오늘 이곳에 온 목적은 유진기를 찾기 위함이지 룸살롱에서 아가씨 끼고 노닥거리려는 것이 아니다.

아가씨들 가운데 가장 어려 보이는 세희를 선택하여 오늘 하루라도 편하게 있으라는 배려를 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말문을 연 이후론 대화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스물다섯이면 학교 졸업했겠네요.”

“아니에요. 올해 졸업반이에요. 등록금 마련하느라 2년 정도 휴학을 해서…….”

나세희의 부친은 7년 전에 사기를 당했다. 사건이 터진 다음 날 채권자들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이틀이 멀다 하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때 부친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사기꾼을 찾아내서 손해 본 걸 반드시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내용이다.

그 이후로 단 한 번의 연락도 없었다. 참다못해 경찰에 실종신고를 냈다. 그러면 소식이라도 알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종무소식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채권자들은 뻔질나게 드나들며 집요하게 부친의 행방을 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채권자 가운데 하나가 모친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실종되고 5년이 지나도록 생사 확인이 안 되면 사망 처리를 한다.

그렇기에 사망 선고를 신청한다는 서류에 도장을 찍어달라고 온 것이다. 그러면서 말하길 죽은 사람에겐 빚 독촉을 할 수 없으니 이 서류에 사인만 하면 더 이상 찾아오는 채권자가 없을 것이라 하였다.

어머닌 그 사람의 말을 믿고 서류에 사인을 해줬다. 사망 처리가 되고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채권자들이 다시 몰려왔다.

이때는 부친의 사망이 선고된 이후 3개월 이내에 유산 상속을 포기한다는 서류에 사인을 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 결과 전세보증금을 상속받을 수 있었으나 더불어 빚까지 상속되었다. 물론 전세보증금보다 빚의 액수가 훨씬 크다.

놈들에게 시달리다 못해 결국엔 전세보증금을 뺐다. 그리고 그 돈 전부 채권자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날부터 세희와 모친은 고시원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어머닌 현재 식당에서 설거지 하는 일을 한다.

세희 역시 온갖 알바를 다 해봤다. 여자의 몸으론 힘들다는 신문 배달도 했다. 그래도 비싸기만 한 대학 등록금은 마련할 길이 없었다.

빚잔치를 했건만 채권자들은 채무불이행을 사유로 둘을 신용불량자 명단에 등재시켜 놓았다.

그렇기에 학자금 융자조차 받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취직을 하려면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 그런데 등록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 하여 스스로 락희를 찾아왔다.

인근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을 때 아까 들어왔던 마담이 담배를 사러온 적이 있다.

그때 말하길 알바 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벌이가 있는데 해볼 생각 없느냐고 했다. 예쁘고, 날씬한 데다, 어려 보였던 것이다.

그때의 그 말을 기억하고 찾아온 것이다. 그 결과 오늘은 세희가 락희에 몸 담은 지 딱 100일이 되는 날이라고 한다.

“이거 백일을 축하한다고 할 수도 없군요.”

“네에.”

손님에게 이런 이야길 처음 한 세희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는 몹시 쑥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현수는 은정을 생각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불우한 환경 때문에 온갖 고생을 하지 않았던가!

그나마 은정은 반지하 월세방이라도 있었다.

또한, 할머니마저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있었기에 세희처럼 완전한 바닥까지 내려가진 않은 것이다.

“다음 초까지만 일하면 마지막 등록금이 마련될 것 같아요. 근데 문제에요.”

“뭐가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을 때 여기 왔던 손님이 없는 회사여야 하잖아요.”

룸살롱 호스티스 전력이 있다면 회사 생활하기 어려울 것이다. 동료 직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마 그럴 겁니다.”

“참, 말씀 안 드렸는데 혹시 2차를 원하셔서 여기 오신 건가요?”

“2차요?”

“네, 만일 그런 거라면 저는 못 나가요. 지금이라도 말씀해 주시면 다른 아가씨와 바꿀게요.”

“왜요?”

“전 2차는 안 나가거든요. 죄송해요.”

흘러내린 귀밑머리를 또 귀 뒤쪽으로 넘기며 고개를 숙인다. 그리곤 말을 덧붙였다.

“이 업소는 아가씨들에게 2차를 강요하지 않아요. 그러면 품격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2차를 나가는 아가씨가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 지금이라도 말씀해 주세요. 물론 팁은 안 주셔도 돼요.”

세희가 빤히 바라본다. 얼른 대답해 달라는 뜻이다.

“안 바꿔도 돼요. 그리고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말아요.”

“어머, 죄송해요.”

또 고개 숙이며 귀밑머리를 쓸어넘긴다. 습관인 듯하다. 그렇지만 남자들로 하여금 설레게 하는 습관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곳은 보통 주먹들이 운영한다고 하던데…….”

현수는 그냥 어디서 들었다는 듯 말끝을 자연스레 흐렸다.

“아니예요. 여긴! 룸살롱이긴 하지만 주식회사라고 들었어요.”

“그래요? 근데 아까 들어오면서 보니까 덩치 큰 깍두기들이 보이던데요?”

“그렇긴 해요. 하지만 우리에게 집적대거나 하는 일은 없어요.”

“그렇군요. 근데 여기는 이렇게 술만 마시는 거예요?”

“네? 그게 무슨……?”

“이런 데 오면 노래방 기계 같은 거 있다고 들었는데 안 보여서요.”

“아! 노래 부르시게요? 잠시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가져다 달라고 할게요.”

“……!”

현수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세희는 또 한 번 귀밑머리를 쓸어올리곤 밖으로 나갔다.

현수 역시 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화장실을 찾는 척하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그 결과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락희엔 룸이 50여 개나 있다는 것과 복도가 미로처럼 얽혀 있다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방을 지날 때마다 엿듣기 마법인 이브즈드랍을 구현시켰다. 하지만 쇳소리 섞인 허스키한 음성은 들리지 않았다.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CCTV의 사각지대가 없다는 것이다.

이곳을 방문했던 정재계, 법조계, 언론계 등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완벽하게 옭아매기 위한 조치인 듯싶다.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방으로 돌아오자 세희가 반색한다.

“어디 갔다 오셨어요?”

“아! 화장실을 찾으러……. 근데 왜요?”

세희가 피식 실소를 머금었기에 물은 것이다.

“이런 데 진짜 처음이신가 보네요. 보세요, 여기. 여기 있잖아요.”

세희가 가리킨 문에는 해우소(解憂所)라 쓰인 팻말이 붙어 있다. 근심스러운 것을 푸는 장소라는 뜻이다.

“아! 그걸 못 봤네요.”

현수가 자리에 앉아 세희 또한 앉았다.

“노래 뭐 부르실 건데요?”

“노래요? 세희 씨가 먼저 불러요.”

“알았어요.”

익숙한 솜씨로 리모컨을 작동시키곤 신나는 댄스곡을 부른다.

문득 그 모습이 애처롭게 보였다. 손님들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일부러 선곡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현수 역시 노래 몇 곡을 불렀다.

“휴우∼! 땀이 나네. 어라, 술이 떨어졌네.”

“추가 주문해요?”

“네, 하나 더 하죠.”

“네, 잠시만요.”

나세희가 밖으로 나간 사이에 현수는 바디 리프레쉬 마법을 구현시켰다. 양주 큰 거 한 병을 거의 혼자서 먹었기에 실제로 취기를 느낀 때문이다.

잠시 후 세희가 직접 양주를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주방에서 얻어왔다면서 얼큰한 수제비까지 들고 왔다.

현수는 그것을 먹으면서 기회를 노렸다. 알고자 하는 것을 물어본 것이다.

“근데 수표 좀 바꿔줄 수 있어요?”

“네? 왜요?”

“세희 씨 팁도 줘야 하잖아요.”

“아! 그거요. 절 주시면 제가 나가서……. 어머, 아니에요. 이따 마담 언니 부르세요. 그럼 바꿔 드릴 거예요.”

세희의 표정이 밝다. 별로 놀아준 것도 없건만 팁을 챙겨주려 하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마담이 현금을 그렇게 많이 갖고 다녀요?”

“아뇨. 이 건물 꼭대기에 관리 사무실이 있거든요. 거기 가면 바꿔올 수 있거든요.”

“아, 그렇군요.”

현수는 눈빛을 빛냈다. 알고자 하는 것을 알아낸 때문이다.

어쨌든 수제비를 다 먹고 다시 술판을 벌였다. 노래도 불렀다. 그렇게 30분쯤 놀고는 답답하다는 듯 넥타이를 풀었다.

“흐음, 세희 씨! 잠깐만요. 땀도 나고, 술도 조금 취하는 것 같네요. 나, 나가서 심호흡 좀 하고 올게요.”

현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룸 밖으로 나갔다. 복도에 있던 웨이터가 현수의 뒤를 따랐다.

술값을 계산하지 않은 손님이 밖으로 나갔다가 튀어버리면 다 물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 이내 멈췄다.

세희가 지갑을 두고 나갔다는 말을 했던 것이다.

지상으로 올라온 현수는 바디 리프레쉬 마법을 다시 구현시켰다. 그때 빌딩 현판이 보였다.

놋쇠에 새겨진 네 글자는 ‘세정빌딩’이라는 글자였다.

비록 대로에선 몇 발짝 안에 있지만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12층짜리 건물이다.

지하 2∼3층은 주차장 용도로 사용되고, 지하 1층은 락희이다.

지상 1∼2층은 각종 상가들이 입주해 있다. 3층엔 외과, 내과, 정형외과, 성형외과, 치과 등 병원들이 있다.

4층부터 꼭대기까지는 업무 공간으로 임대된 듯하다.

현수는 골목 속 어둠으로 들어가며 투명 은신 마법을 구현시켰다.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로비 안쪽엔 경비원이 데스크 아래에 시선을 두고 있다. 보나마나 TV일 것이다. 그런데 경비원이 젊다. 여느 건물처럼 나이 든 아저씨가 아니다. 떡대 좋은 이십대 후반인 것이다.

현수는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문이 열렸다 닫히는 순간 고개를 들었던 경비원은 다시 시선을 내렸다가 화들짝 놀라며 입구를 바라본다.

아무도 없는데 문이 열렸다 닫혔다 생각한 것이다.

땡―!

종소리가 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러자 빛이 쏟아져 나온다. 무심코 반사 거울을 통해 바라보던 경비원이 또 한 번 놀란다.

아무도 타거나 내리지 않은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엘리베이터의 문이 스르르 닫히는가 싶더니 위로 올라간다. 그리곤 12층에 멈추자 고개를 갸웃거린다.

“흐음, 전무님이 뭘 잘못 누르신 건가?”

경비원은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한편, 12층에 당도한 현수는 푹신한 양탄자의 촉감을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엘리베이터 반대쪽 벽면엔 세계지도를 형상화한 로고와 ‘(주)세정’이란 돋음 글씨가 새겨져 있다.

간판이 아니라 석재를 깎아 만든 것이다.

둘러보니 최고급 호텔 스위트 룸 이상의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마치 호텔 로비 같다. 양탄자가 깔리지 않은 바닥은 반질반질한 대리석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것이다.

벽면은 각기 다른 색과 크기의 석재를 이용하여 입체적인 조형을 만들어내고 있다. 벽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그런 벽면마다 복제품인지 진품인지 가늠하기 힘든 미술품들이 걸려 있다. 또한 구석마다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천정의 조명도 누군가의 세심한 선택을 받은 듯 상당히 예술적인 것들이 많았다.

“조폭치곤 안목이 높은 모양이네.”

나직이 중얼거리고는 닫힌 문을 열었다.

“언락!”

철커덕―!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서니 짙은 밤색 문들이 보인다. 인사부, 총무부, 업무부, 관제실, 비서실 같은 팻말들이 붙어 있다.

“일단 관제실부터…….”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한 몰래 카메라가 룸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인 등을 협박할 영상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녹화된 것을 지우는 것이 우선이다.

11장 드디어 털었다. 금고!

“언락!”

철컥―!

소리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예상대로이다. 수십 개의 모니터를 통해 각각의 룸과 복도의 풍경이 보인다.

나세희가 홀로 앉아 턱을 괴고 있다가 리모컨을 조작하여 노래를 부르려 한다. 그런데 화질이 상당히 좋다. 탁자 위의 냅킨에 쓰여진 작은 글씨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하긴, 협박 자료로 쓰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메인 컴퓨터를 끄고는 하드디스크를 꺼냈다. 삭제한다 하더라도 복원 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관제실을 나선 현수는 각각의 방을 모두 열어보았다. 누가 봐도 평범한 업무 공간이다.

마지막으로 열어본 곳은 비서실이다.

“언락!”

딸깍―!

다른 곳은 모두 비어 있었다. 만일 사람이 있다면 이곳에 있으리라 판단하였기에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귀를 기울여 보니 비서실 안쪽 전무실에서 소리가 난다. 하여 살그머니 문을 열어보았다.

뭔 놈의 방이 이렇게 많은지 안쪽에 방이 하나 더 있다.

살금살금 다가가 귀를 기울여 보니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된다.

이맛살을 찌푸린 현수는 살그머니 물러났다. 그리곤 전무실 내부를 예리한 시선으로 훑어보았다.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집기까지 전부 예사롭지 않다. 하나 현수의 관심은 이것이 아니다.

그러던 중 입구 위쪽의 인디케이터를 발견하였다. 크기도 적고 예술품을 표방한 것인지라 처음엔 그것이 인디케이터인 줄도 몰랐다.

어쨌거나 다가가 확인해 보니 On Off 버튼 이외에도 Alarm 버튼이 있다. 금고가 열리면 소리까지 나는 모양이다.

“메탈 디텍션!”

마법이 구현되자 교묘한 인테리어 뒤쪽에 자리한 금고 세 개를 찾을 수 있었다. 벽면처럼 보이게 만든 것 뒤에 금고 셋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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