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50화 (150/1,307)

# 150

“실례합니다. 방금 전의 사건을 파악하려면 선생님의 진술이 필요합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며 다가온 사내가 내민 신분증을 보니 강남경찰서 형사과 소속 경사이다.

“서까지 가자는 말씀이시죠?”

“네, 아무래도 여긴…….”

경사가 말끝을 흐리자 지배인이 나선다.

“선생님! 오늘뿐만 아니라 다음에 한 번 더 오시는 것까지 비용 청구하지 않겠습니다. 저희 직원이 연루된 일이니 귀찮으시더라도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지배인이 정중히 고개까지 숙여가며 부탁을 하는데 어찌 들어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할 수 없군요. 좋아요. 그렇게 하죠.”

현수는 룸으로 가서 대강의 상황을 설명했다. 모두들 잠자다 날벼락 맞은 표정을 짓는다.

수연이 밖으로 나가 어찌 된 영문인지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하나 기자들이 와 있다며 만류했다. 폭행 사건이 수연과 연루된 일이라는 기사가 나갈 수도 있으므로 그러지 말라 한 것이다.

일행을 룸에 남겨둔 현수는 경찰차를 타고 강남경찰서로 향했다.

‘치잇, 이런 데 자주 오면 안 되는데…….’

형사과 사무실은 수사과나 별반 다를 게 없다.

현수로부터 진술서를 받은 사람은 클럽 제이에서 만났던 변경환 경사이다. 이름과 주소, 직업 등을 대답해 주고 상황 설명을 했다.

더도 덜도 아닌 있었던 그대로이다.

변 경사는 현수의 진술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타이핑을 한다.

그러면서 중간 중간 보충 설명을 요구했기에 약 1시간 20분만에 진술서 작성이 끝났다. 이걸 프린팅하고는 확인해 달라고 해서 읽고 있는데 변 경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네, 네. 네, 네.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래요? 네, 네. 알겠습니다. 일단 그렇게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변 경사가 전화를 받는 동안 틀린 글씨 등을 수정해서 내밀었다. 진술된 내용 그대로이기에 몇 글자만 고치고 다시 프린팅을 했다.

현수는 변 경사가 내민 진술서에 사인을 했다.

“그럼, 이제 끝난 거죠?”

“그게 말입니다.”

변 경사가 잠시 말을 끊었다.

“저쪽에서 김현수 씨를 폭행죄로 고소했답니다.”

“네?”

“그래서 사실 확인이 될 때까지 조금 기다려 주셔야겠습니다.”

“그놈들이 폭행죄로 나를 고소했다고요?”

“네, 클럽 제이의 웨이터 보조들도 함께 고소되었습니다.”

“뭐 이런……! 그 자식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현재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중이라고 합니다. 손목뼈가 골절되었고, 갈비뼈도 두 개나 부러졌다고 하는군요.”

“그럼 그놈 수술 끝날 때까지 여기 있어야 한단 말이에요?”

“네, 현재 상황으로선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폭행 사건으로 고소를 당하셨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참고인이 아니라 피의자 신분입니다. 따라서 유치장에 들어가셔야 합니다.”

“뭐 이런 개 같은…….”

현수는 분통이 터졌으나 말끝을 흐렸다. 변 경사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자신을 구금하려 하겠는가!

“좋습니다. 유치장에 들어가죠.”

피의자 신분이 되었기에 핸드폰과 지갑 등을 꺼내놓고 유치장에 갇히게 되었다.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성폭행 및 살인미수 행위를 한 놈의 수술이 마쳐지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일은 많은 인내심을 요구했다.

곁에 있던 잡범들이 곱상한 현수를 만만히 보고 집적거리려 할 때 웨이터 보조 셋이 추가로 들어왔다.

“어라, 선생님! 선생님이 여긴 왜……?”

“그놈들이 나를 폭행죄로 고소를 했다더군요.”

“술 처먹고 개판 친 새끼들은 그놈들인데 어떻게 선생님을…….”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다.

“그런데 댁들은 여기 왜 들어온 겁니까?”

“우리도 놈이 폭행죄로 고소했답니다. 그것도 집단 폭행으로…….”

분통 터진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잠시 핏대를 올리더니 이내 자리를 잡고 자버린다.

늦은 밤이기에 다른 사람들도 꾸벅꾸벅 졸거나 자고 있다. 현수는 귀를 기울여 형사과 사무실의 통화 내용을 듣기 시작했다.

엿듣기 마법인 이브즈드랍이 구현된 것이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드디어 듣고 싶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즉시 리커딩(Recording) 마법을 구현시켰다.

“네, 보좌관님! 강남서 변경환 경삽니다.”

“그놈, 그러니까 변의화 의원님의 아들을 그 지경으로 만든 놈들은 지금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네, 김현수라는 자와 웨이터 보조 셋 모두 유치장에 있습니다. 그런데 수술은 끝났습니까?”

“조금 전에 끝났다고 합니다.”

“상태는 어떻습니까?”

“진단서로는 전치 16주가 나왔지만 두 달 정도 안정을 취하면 된다고 합니다.”

“다행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어찌 처리하실 계획입니까?”

“놈들 모두 조직 폭력 내지는 집단 폭행으로 처리해야지요. 변 경사님이 수고 좀 해주셔야 합니다.”

“아이고,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저는 의원님과 전 종씹니다. 무엇이든 제깍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하하. 변 경사님이 협조적이라 다행입니다.”

“저어, 보좌관님!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말하십시오.”

변 경사와 달리 상대는 무척 고압적이라는 느낌이다.

“그쪽 주장이 이쪽 진술과 조금 다릅니다. 변 의원님의 아들이 피해자라고 하는데 이쪽에선 변 의원님의 아들이 성폭행을 하고 이를 제지하는 웨이터를 구타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양주병 깨진 걸 들고 죽이겠다면서 위협을 했다고 하거든요.”

“아! 변 경사님은 그깟 웨이터 나부랭이들을 믿습니까?”

“아, 아니 그게 뭐…….”

“그리고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상대가 이유없이 때리려 해서 정당방위 차원에서 병을 들었는데 어딘가에 부딪쳐 깨진 것뿐이라 합니다.”

“정당방위라는 말씀이시죠?”

“네, 생각해 보세요. 그쪽은 클럽 제이의 종업원들입니다. 이쪽은 셋뿐이구요. 그쪽에서 조직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겁니다. 그러니 조직 폭력으로 고소한 겁니다.”

“네에.”

“변 경사님! 아까 변 의원님과는 종씨라 하셨지요?”

“네. 제가 존경하는 분이라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저하고 동성동본이더군요. 의원님이 제게는 아저씨 뻘 되구요.”

“모처럼 종씨를 찾은 거네요. 아무튼 이번 사건이 잘 해결될 수 있도록 변 경사님이 힘 좀 써주셔야 합니다. 조만간 경위 진급도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청담파출소나 삼성파출소 소장님이 되셔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네? 파출소 소장이요? 그건…….”

“이번 일만 잘 해결되면 내가 책임지고 진급할 수 있도록 의원님께 청을 넣어드리겠습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참, 깜박 잊은 게 하나 있습니다.”

“뭐지요?”

“피의자들이 외부로 연락하지 못하도록 해주십시오.”

“네, 그건 왜……?”

“의원님 전담 변호사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외부 세력을 끌어들여 증거 조작을 할 수 있다고…….”

“아, 네에. 알겠습니다.”

경찰이 어찌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겠는가!

변 경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통화가 끝나자 현수는 들었던 내용을 찬찬히 되짚어 보았다.

자신들 쪽에 유리하게 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특히 외부로 연락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부분이 그렇다.

현수의 기억에 의하면 변의화 의원은 현재 국회부의장이다.

또한 친일파 재산환수법에 서명하지 않은 친일파 의원이기도 하다. 국민들이 극구 만류하는 법안을 날치기 처리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세칭 권력의 핵심부에 들어 있는 실세 중 하나이다.

이 정도면 얼마든지 사건을 조작할 힘이 있다. 방금 전, 변 경사에게 은근한 압력을 넣은 것도 그중 하나이다.

보좌관이 통화를 했지만 그게 어찌 그의 뜻이겠는가!

현수가 유치장에 있는 동안 모든 증거들이 조작될 것이다.

상렬이라 불리던 웨이터는 돈 몇 푼으로 입막음할 것이고, 성폭행 당한 여인 역시 상당 액수의 돈으로 매수당할 것이다.

나이트클럽 지배인 역시 회유될 것이다.

변 의원이 앙심을 품으면 나이트클럽 운영에 지대한 영향이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웨이터 및 보조들은 지배인의 함구령에 따라 입을 다물게 된다.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듯 웨이터 보조 셋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자신들의 이익과 안위를 보장받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대로 있으면 조작된 증거에 따른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여 유치장 안의 사람들 모두 딥 슬립 마법으로 재웠다. 그리곤 미러 이미지 마법으로 자신도 잠들어 있는 것처럼 꾸몄다.

다음엔 투명 은신 마법을 써서 신형을 감췄다.

그리곤 언락 마법으로 유치장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유유히 경찰서 밖으로 나온 현수는 택시를 타고 클럽 제이로 향했다.

예상대로 사고 현장은 모든 것이 치워진 상태이다.

하지만 복도에 일정한 간격으로 CCTV가 있었기에 녹화실을 찾았다. 구석에 처박혀 있는 이곳을 찾는 데만 20분이 걸렸다.

마법으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근무자가 졸고 있다.

“다행이군. 마나여, 깊은 잠에 취하게 하라. 딥 슬립!”

마나가 스며들자 코까지 골며 잔다.

현수는 자신이 있던 위치를 녹화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찾았다. 워낙 룸도 많고 복도도 길어서 찾는 데만 30분 이상 걸렸다.

찾아서 돌려보니 다행히도 아직 삭제되지 않았다. 아직 여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모양이다.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사건 발생 전부터 끝날 때까지만 편집하려 했으나 어찌하는지를 알 수 없다. 하여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었지만 사건 발생 일에 녹화된 모든 내용을 하드디스크에 복사해 두었다.

CCTV에 녹화된 파일은 확장자가 ‘mmv’이다. 이것의 확장자를 ‘dll’로 바꾼 뒤 시스템 파일이 들어 있는 폴더 속에 감추었다.

확장자 ‘dll’은 공용으로 쓸 수 있는 실행 루틴11)을 미리 여기에 담아두고 필요할 때 각 프로그램에서 불러다 쓰도록 만든 것이다.

이제 컴퓨터 전문가라 할지라도 웬만해선 알아차리기 힘들 것이라 생각하곤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택시를 타고 경찰서 유치장으로 되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다섯 시간이 넘었다.

“김현수 씨!”

오전 7시가 되자 경찰이 식판에 아침밥을 담아준다.

다시마 어묵국, 김치, 콩자반, 단무지가 반찬이다. 맛은 없었지만 남김없이 먹었다. 안 먹으면 나만 손해이기 때문이다.

의경에게 변 경사가 출근하면 불러달라고 했는데 오전 11시가 되도록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어디에서 누굴 만나고 있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전 11시 10분 경 변 경사가 유치장 밖에 나타났다.

“김현수 씨!”

“네.”

“나 찾았다면서요?”

“네. 변호사 선임을 하게 전화 한 통 쓰게 해주세요.”

“그러죠.”

어제 처음 봤을 때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다르다. 변의화 의원 쪽 편을 들어주기로 완전히 마음먹은 것이다.

“어이, 의경! 피의자가 전화 한 통 쓸 수 있게 해줘라.”

말을 마친 변 경사는 더 볼일 없다는 듯 나가 버렸다.

현수는 의경에게 전화번호가 휴대폰에 입력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안 된다고 한다.

이때 수사과 이현준 경위가 우연히 이쪽을 보게 되었다. 긴가민가 하더니 얼굴을 확인하곤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김현수 씨 아닙니까?”

“아! 이 경위님.”

“이게 어찌 된 영문입니까? 김현수 씨가 왜 유치장 안에……?”

“제가 좀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변호사를 선임하려 하는데 전화번호가 제 핸드폰에 있습니다. 근데 안 주네요.”

“어이, 김 의경! 이분이 어떤 사건으로 여기 계신 거야?”

“네, 어제 저녁에 있었던 폭행 사건 때문에…….”

“이분 핸드폰은?”

“곧 가져오겠습니다.”

의경이 혹시 혼날지도 모른다는 듯 후다닥 달려갔다.

“고맙습니다. 이 경위님 신세를 지는군요.”

“에구, 이게 무슨 신세입니까?”

잠시 후, 의경이 가져온 핸드폰으로 권지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머, 현수 씨! 웬일이에요?”

“지현씨! 내가 조금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알아요. 지금 신문에 현수 씨 기사 떴거든요.”

“네……? 알아요?”

“네, 모든 일간지에 현수 씨가 변의화 의원의 아들을 집단 폭행했다는 기사가 떠 있어요.”

경찰서 출입기자들이 변의화 의원 보좌관실과 변 경사의 입을 통해 사건 경위를 받아쓰기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신문지상엔 현수가 가해자인 것으로 보도되어 있다.

“어떤 내용인지 모르지만 전 가해자가 아닙니다.”

“믿어요. 안 그런 분이시란 걸……!”

“그쪽 보좌관과 변호사가 중간에서 일을 꾸미는 것 같습니다. 저도 변호사가 필요합니다. 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알아보고 곧 찾아가도록 할게요.”

권지현의 음성엔 현수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현수는 금방 마음이 편해졌다.

“강남경찰서 유치장에 있습니다. 만일 여기 와서 제가 없으면 수사과 이현준 경위님을 찾으라 해주십시오.”

현수가 말을 하며 시선을 돌리자 이 경위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해 준다.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숙여주었다.

“알았어요. 최대한 빨리 가도록 조치를 취해 드릴게요.”

『전능의 팔찌』 제7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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