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52화 (152/1,307)

# 152

“변호사님, 일단 진정하세요.”

“아……!”

주효진 변호사는 평소의 자신답지 않았음을 깨닫고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계면쩍은지 빙그레 웃는다.

하나 시선을 현수에게서 뗀 것은 아니다.

“누가 보냈는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럼 증거는요? 지금으로선 그것만이 무죄를 입증할 증거라는 거 모르십니까? 자칫하면 조직폭력배의 두목이 되어 수형 생활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있다던 결정적인 증거를 혹시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주 변호사의 입에서 여러 소리가 나오게 만든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신색은 태연하다. 마치 남의 집 일이라는 듯 너무도 침착했던 것이다.

“강민경 기자님께 먼저 부탁드리겠습니다. 주 변호사님에게서 벌써 이야기를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번 일은 모함입니다.”

“네에, 이야기는 대강 들었어요.”

강민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현수가 말을 이었다.

“거의 모든 언론에 제가 조직폭력배인 것처럼 나왔다고요?”

“네에.”

이번에도 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방금 전에도 말했듯 누군가에 의한 조작으로 제가 이 모양 이 꼴입니다. 그러니 이번 사건의 의혹을 기사화해 주셨으면 합니다.”

“……! 그러지요.”

강민경 기자가 잠시 말을 하지 않은 이유는 현수의 눈을 보아 진실한지 여부를 판별하기 위함이었다. 이때 현수의 말이 이어졌다.

“저는 변병도와 그의 보디가드를 때릴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클럽 제이에는 그날이 처음입니다. 다시 말해 웨이터 보조들과 알고 지낼 일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리고요?”

“이번 사건이 모함이라는 걸 증명할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는 기사를 내주십시오.”

“진짜 있기는 한 겁니까?”

현수는 강 기자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주효진 변호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변호사님은 클럽 제이의 웨이터와 웨이터 보조들을 집중적으로 만나주십시오.”

“그래야 하는 이유는 뭡니까?”

“놈들이 어디까지 조작하는지 알고 싶어섭니다. 국회부의장의 힘이 얼마나 큰지 이 기회에 한번 확인해 보고 싶지 않습니까?”

“……!”

“강 기자님도 동행하시면 좋겠네요.”

“그러지요.”

“그 전에 제가 아는 어떤 사람에게 전화를 해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녹음하는 말을 듣게 해주십시오. 강 기자님 녹음기 있으시죠?”

“네, 물론이에요.”

현수가 녹음한 뒤 이를 건네받은 강민경 기자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속셈인지 알 수 없어서이다.

접견이 끝난 후 밖으로 나간 강민경 기자가 전화를 한 곳은 지역번호가 대구인 곳이다.

전화를 걸어 오광섭이란 사람을 찾았다. 그리곤 현수가 녹음해 준 것을 들려주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으로부터 강민경 기자와 주효진 변호사를 철저히 보호해 달라는 내용이다.

전화를 걸고 불과 다섯 시간 후 주효진 변호사와 강민경 기자는 조폭 같은 사내들에 의해 둘러싸이게 되었다.

웬일인가 싶었는데 그중 하나가 자신이 오광섭이라 밝혔다. 그러면서 말하길 도사님의 명령으로 보호하려 하니 경계하지 말라 한다.

당최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다. 현수가 도사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을 보라 하기에 클럽 제이로 가서 웨이터 및 보조들을 만나 그날의 상황을 일일이 녹취했다.

물론 전혀 협조적이지 않았다.

웨이터들 전부는 보조 셋이서 쓰러져 있던 변병도와 보디가드들을 짓밟고 있는 현장 외에는 본 바 없다고 진술했다.

다른 보조들 역시 평소 셋의 행동이 난폭했으며, 현수와는 면식이 있는 사이 같다는 말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말을 하면서 눈동자를 심하게 굴린다는 것이다.

촉이 좋다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던 강민경 기자는 이번 일에 야로가 있음을 직감했다.

그런데 변호사뿐만 아니라 신문사 기자까지 나서게 되자 지배인이 나타났다. 그리곤 영업에 방해되니 나가달라는 청을 했다.

물론 상당히 정중한 표현이다.

변호사를 상대로 폭력을 쓸 수 없다. 그랬다간 사법연수원 동기 중 판·검사가 된 이들의 심기를 어지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기자도 마찬가지이다. 잘못 건드리면 벌집을 건드린 것과 같은 결과가 발생된다. 그렇기에 최대한 정중한 표현을 했던 것이다.

둘은 알았다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새벽녘까지 기다려 퇴근하는 웨이터와 보조들에게 접근했다.

다음 날 아침. H일보에 짤막한 기사 하나가 떴다.

변의화 의원 아들의 폭행 피해 사건은 조작된 사건일 수 있다.

확인 결과 범행 상황을 직접 목격한 증인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폭행당했다는 변병도 측의 발언은 사실무근일 수 있다.

현재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는 김현수는 무고함을 주장하고 있다.

변병도가 성폭행을 하고, 웨이터 보조를 폭행하는 것을 말렸다고 한다.

당시 변병도는 깨진 양주병을 무기 삼아 휘둘렀기에 이를 막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부상이 발생된 것이라 한다.

이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최상렬 씨와 성명 미상인 성폭행 피해자의 증언만이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다.

애꿎은 사람이 좋은 일을 하고도 피해를 입지 않게 하려거든 하루라도 빨리 출두하여 증언해야 할 것이다.

―강민경 기자.

기사가 나간 후 강민경 기자는 변의화 의원 보좌관이라는 놈의 항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자마다 고함을 질러댄다.

“강 기자! 당신이 무슨 기자야? 왜 확인되지도 않은 내용을 기사로 써서 국회부의장이신 변의화 의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거야? 당신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하고 싶어?”

“죄송합니다만 전화주신 분은 누구신지요?”

“나……? 나는 변의화 의원의 보좌관인 정주철이야. 그리고 좋은 일을 하고도 피해를 입었다니? 강 기자는 누구 편인 거야?”

“저어,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저는 정주철 보좌관님과 일면식도 없는 사이입니다. 그러니 반말 하지 마. 이 개새끼야!”

강 기자의 말끝은 상당히 강렬했다. 정주철은 당연히 발끈했다.

“뭐어? 너, 너……!”

“너라니……? 어따 대고 너야? 너 몇 살이나 처먹었어? 니 애비 에미가 아무나 보고 반말 찍찍 하라고 가르쳤어?”

“뭐, 뭐야……?”

“야, 이 개자식아! 니가 국회의원 본인이야……? 니가 뭔데 함부로 반말이야? 그래도 된다고 누가 그랬어? 엉……?”

“뭐어……? 너, 너 거기 가만히 있어!”

쾅―!

전화기 내려놓는 소리를 들은 강민경 기자는 혀를 날름거렸다.

이래 봤자 아무 힘도 못 쓴다.

신문사 안에 있는 기자에게는 어떤 권력도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찾아와서 폭력을 쓰게 되면 동료 기자들이 동업자 정신을 발휘할 것이다. 자신도 언젠가 같은 일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사 기자들은 놈을 따라다니면서 모든 것을 샅샅이 뒤질 것이다. 그리곤 세상에 그것들이 폭로된다.

그러면 사회적 지위라는 것은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하는 사람치고 뇌물과 거리를 둔 사람은 지극히 드물 것이다.

더구나 집권여당인 한마음당에 몸담고 있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한마음당이란 당명은 현직 대통령 박명오가 집권 전 당대표일 때 ‘모두가 한마음이 되자!’는 뜻에서 지은 것이라 한다.

뜻은 그럴 듯하다. 하지만 국민들은 결코 집권여당을 한마음당이라 부르지 않는다.

한심(寒心)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정도에 너무 지나치거나 모자라서 딱하거나 기막히다’고 뜻풀이 되어 있다.

정권을 쥐고 있는 한마음당에서 하는 일들을 보면 이 말에 딱 부합된다. 그렇기에 국민들은 한마음당을 한심당이라 부른다.

사전의 뜻대로 하는 짓들은 모두 국민의 기대 이하이기 때문이다. 현재도 기대 이하이며, 앞으로도 쭈욱 기대 이하일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수식어를 붙여 ‘개만도 못한 한심당’이라 칭한다.

어떤 이들은 ‘총만 있으면 쏴서 모조리 죽여 버리고 싶은 한심당’이라도 한다.

집권여당이 국민들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는 데엔 극명한 이유가 있다.

한심당은 대다수 국민들을 위한 정치가 아닌 극소수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을 펼치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나라의 빚이 나날이 늘어만 가지만 이들이 집권하고 처음으로 만든 정책은 부자들만을 위한 감세정책이다.

10∼50%에 달하던 상속세와 증여세를 6∼33%로 인하했다. 이것으로도 부족한지 한때 상속세와 증여세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반발 여론에 밀려 시행하지 못했다.

다음엔 종합부동산세율을 대폭 인하해 줬다.

내용을 살펴보면 오로지 상위 3%에 해당하는 부자들만 혜택을 보는 세율 인하이다.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이전 정부는 3주택 이상 보유자의 양도 세율을 60%로 매겨 놨다. 그런데 한심당은 이것마저 없애 버렸다.

누가 혜택을 입을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어쨌거나 한심당의 모든 정책은 최소한의 상식과 이해 충돌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오로지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이다.

이후에 행한 일들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한심하다.

국민의 혈세를 아무런 효과도 없는 일에 쏟아부은 것은 차라리 애교이다.

국가 전체의 이익을 감소시키는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으며, 후손 대대로 고통을 겪어야 할 정책을 입안하기도 했다.

하나 일관된 것 하나는 있다.

어떠한 경우라도 부자들은 별 손해를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다수 국민들이 지극히 혐오하는 정당이 되었다.

아무튼 국회부의장의 일개 보좌관이라는 놈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 이들이 국민을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여기는지 극명하게 알 수 있다.

자신들이 마치 국민의 상전인 양 거들먹거리는데 어찌 좋은 눈으로 봐주겠는가!

그렇기에 강민경 기자는 한심당에 대해 결코 좋은 감정이 없다. 오히려 지독하게 혐오하는 마음만 있을 뿐이다.

어쨌거나 강민경 기자는 든든한 보디가드가 있다. 오광섭을 비롯한 열 명의 덩치다. 보좌관 정도는 패대기치고도 남을 인원이다.

이들은 현재 신문사 입구에 대기 중이다.

강 기자가 외출하게 되면 전원이 따라붙어 철저한 보호를 한다.

따라서 정주철이란 보좌관이 제 아무리 힘센 거구라 할지라도 손끝조차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오광섭을 비롯한 열 명의 보디가드의 단수를 합치면 50단이 넘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체육관에서 대련을 통해 딴 단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전에서 쌓은 것을 감안한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오광섭은 어떠한 위험으로부터라도 지켜주겠다고 했다. 그렇기에 대놓고 큰소리를 쳤다.

그래 놓고 나니 십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느낌이다. 하여 환한 웃음을 지었다.

2장 걸레 물고 주무십니까?

비슷한 시각, 주효진 변호사 역시 전화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

“안녕하십니까? 주효진 변호사님이시죠?”

“네, 무슨 일로 전화를 주신 거죠?”

주 변호사는 수임한 사건의 반대쪽 사람일 것이라 직감했다. 하여 마뜩치 않았기에 다소 냉랭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쪽은 준비된 말을 한다.

“주효진 변호사님. 법조일원화1)에 따라 경력변호사의 판사임용 제도가 있다는 거 아시죠?”

“네, 그렇습니다만.”

“제가 알아보니 주 변호사님은 사법연수원 시절 판사가 되길 원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요?”

주 변호사의 음성은 더욱 냉랭해졌다. 누군가 자신의 뒷조사를 했다는데 기분 좋을 리 있겠는가!

“그런데 아쉽게도 커트라인 바로 아래셨더군요.”

주 변호사는 올바른 판결을 내리는 공평무사한 판사가 꿈이었다.

그렇기에 판사가 되면 상부로부터 내려온 부당한 압력 따위는 콧방귀를 끼며 걷어찰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법연수원에서의 성적이 꿈을 실현시키지 못하게 하였다.

사법연수원에서는 사시 최종합격자들을 모아놓고 2년간 교육을 한다. 이때 성적에 따라 판사, 검사를 임용한다.

성적순으로 뽑는데 판사가 먼저고 검사가 그 다음이다. 그런데 주 변호사는 판사 커트라인 바로 다음이었다.

당시의 주 변호사는 건강이 매우 좋지 않은 상태였다.

B형 간염에 걸려 심한 피로감 때문에 제대로 공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검사가 될 뛰어난 성적을 얻은 것이다.

원하던 판사를 할 수 없게 되자 주 변호사는 미련없이 변호사를 택했다. 사건 수사 쪽과는 맞지 않는다 생각한 때문이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새삼 속이 쓰렸기에 주 변호사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대꾸했다.

“그런데요?”

“김현수에 의한 변병도 씨 집단 폭행 사건을 수임한 걸로 압니다.”

“네, 그 사건을 맡았지요.”

냉랭한 대답이었지만 상대는 영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듯하다.

“거두절미하고 그걸 포기하면 다음 번 판사 임용 때 일이 성사되도록 힘 좀 써보겠습니다.”

“그래요? 대단히 고마운 말이군요. 그런데 지금 전화 주신 분은 누구신지요?”

주 변호사의 음성은 상당히 부드러웠다.

내심은 분노가 치솟았으나 이를 삭여낸 것이다. 그런데 이를 호의로 받아들였는지 상대가 반색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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